A _ 다가오는 시간을 향한 조용한 떨림

함께할 순간이 마음을 먼저 움직일 때

by Evanesce

Anticipation [ ænˌtɪsɪˈpeɪʃn ]

1. 예상, 예측

2. 기대, 고대


어떤 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몸이 먼저 기억하기 시작하면, 그 만남은 아직 오지 않았음에도 이미 마음속에서 조용히 윤곽을 갖추고, 다가오는 순간의 온도가 먼 곳에서 바람처럼 흘러들어와 서서히 가슴 한편을 누그러뜨리는 듯한 감각을 만든다.


그 감각은 눈에 띄지 않고 거창하지 않으며,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을 만큼 은은하기도 하지만, 그 은은함 속에서 오래 머무는 설렘의 떨림이 생겨난다.


기대한다는 마음, 그리고 그 안의 설레는 마음은 바로 이렇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이미 마음의 결을 움직이기 시작하는 아주 미세한 변화에 가깝다.


어떤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하다는 사실은 그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 뒤가 아니라, 그가 오기 전의 시간 속에서 훨씬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말을 건네기도 전이고, 시선이 마주치기도 한참 전이지만, 이미 마음 한쪽에서는 그 만남을 받아들일 준비가 천천히 이루어진다.


그 준비 과정이 마음을 조금 더 단정하게 만들거나, 하루의 흐름을 잔잔하게 다시 짜놓기도 한다. 이렇듯 다가올 시간에 대한 감각은 때때로 현재의 시간을 정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떤 이와 함께할 때 드러나는 태도나 말투, 미세하게 변화하는 표정과 몸의 긴장, 그리고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부드러움이나 여유 같은 것들은 어쩌면 그 사람에 대한 기대감보다 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보이고 싶은 자신의 모습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특별하게 생각할 때 생겨나는 설렘은 그 사람을 향한 감정이라기보다, 그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감정의 흐름 때문이다. 그 흐름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의 관계가 조용히 만들어 놓은 분위기에 따라 물결처럼 부드럽게 번져 간다.


설렘이란 감정은 종종 작은 계기 하나로써 더 짙어지곤 한다. 스쳐 지나간 문장 하나, 그 사람이 미소 짓던 순간의 잔상, 아무렇지 않게 나눴던 대화의 흔적, 혹은 함께 머물렀던 장소의 공기 한 조각만으로도 다가오는 만남의 분위기가 마음속에서 먼저 피어오른다.


그리고 그 피어오름은 과장되지 않기 때문에 오래 머물고, 오래 머무르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떨림은 오랜 기다림에서 오는 조급함과는 다르고, 특별한 사건을 바라보는 강렬한 기대와도 다르다. 그보다는, 한 사람과 함께할 시간이 주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일상의 한 부분을 조금 더 부드럽게 밝히는 방식에 가깝다.


기다림 속에서 생겨나는 설렘은 그 시간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조용한 다짐이기도 하고, 함께하는 순간이 더 깊이 새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의 형태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대하는 마음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내면에서는 천천히 자신만의 질서를 만들며 다가오는 시간을 향해 스스로 자리를 만든다.


함께할 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있다는 사실, 그 기대가 조용히 마음의 온도를 높여준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이 설렘이라는 감정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 준다.


만남은 실제로 마주하는 순간보다 그 순간을 향해 마음이 움직여가는 동안 더 많은 의미를 품기도 한다. 다가오는 시간이 그림자처럼 먼저 스며들어 현재의 마음을 살짝 비추는 그 짧은 여백, 그 여백이 때때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되기도 한다. 설렘은 그 여백을 천천히 채우고, 채워지는 동안 현재의 순간까지도 따뜻함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어떤 사람과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수록, 그 시간을 온전히 보내고 싶은 마음이 붓처럼 번져가고, 그 번짐 속에서 설렘은 더 깊고 잔잔한 형태를 취한다. 그 감정은 말로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충분히 존재하고, 어떤 마음은 조용히 흐르는 것만으로도 그 자체로 완전한 의미를 갖는다.


설렘은 결국 다가올 순간이 마음속에서 미리 시작되는 조용한 진동이며,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은근한 감사의 흔들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