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포기한 국가대표팀,
그 의미 찾기.

<대한민국 vs 러시아 평가전 리뷰>

by Evans Oh


어제 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2-4의 점수로 러시아에게 패배하였다. 2017년 국가대표팀의 승률이 14%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실 패배라는 결과는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 패배의 뒷맛은 이상하리만치 쓰다. 낮은 성적을 받았다고 늘 혼나던 아이가, 어느 순간 모두의 관심과 질타에서 멀어졌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할 말을 잃었다. "그냥 뭔가 잘못되었는데, 모르겠다 이젠."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패배


패배 이후 인터뷰에서 신태용 감독은 좋은 경기력과 희망을 보았다고 평가했다. 경기력 면에서는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다. 공격작업에서의 부분전술과 전반적인 컨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상황을 떠나 멀티골을 성공시킨 것 역시 매우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본선을 앞둔 시점의 패배에서는 개선에 대한 절박함- 그러한 책임감이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인터뷰에서는 오히려 쏟아질 국민들의 비난에서 팀과 선수를 보호해야 한다는 안쓰러운 간절함이 느껴졌다.


상황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비난의 대상도, 비난의 목소리도 명확한데 책임을 질 주체는 보이지 않는다.


축구협회는 어떠한 책임을 지는가? 신태용 감독에게 뜻하지 않은 안전장치를 줘버렸다. 축구협회가 이미 선택한 사람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감독에게 결과와 상관 없는 무한신뢰를 주게 된 지금의 상황은, 높은 확률로 무사 안일주의와 동기부여 저하로 나타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비전과 해결의지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히딩크 감독 선임 요구 여론은 감정적일지라도, 그 여론은 단순히 덮을 것이 아니라 근본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모두가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축구협회의 핵심인물인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왜 슈틸리케 감독 경질 책임으로 물러난 이용수 부회장과 자리 교체를 한 것인가? 매번 회의 소집에 용이한 수도권 팀 감독들을 기술위원에 구색 맞추기 식으로 포함시킨 뒤, 누구나 예상 가능한 결론을 기자회견장에서 발표한다. 축구협회는 정당이 아니다. 진정으로 축구라는 스포츠 발전을 위해 고민해야 하고, 적극적인 지원과 단호한 결단을 통해 팀의 성장을 자극해야 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현재의 협회는 관성에 안주하여 존재 가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들, 구체적으로 국가대표팀의 팬들은 비난과 함께 이 팀을 책임지려 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여론처럼 과거의 영광에 따라 히딩크를 불러오는 것이 해결책이라 여긴다면, 그 사람들은 축구에 대한 관심도가 일시적인 사람들일 것이다. 히딩크 성공의 뒷면에는 K리그 전체 일정 중단과 수 년에 걸친 합숙훈련이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히딩크는 국가대표팀 개개인을 기초부터 트레이닝시키고 팀을 완성하였다. 전술적 역량과 승부사 기질은 뛰어나지만, 현재 대표팀에서 히딩크가 8개월 내외의 시간 동안 만들 수 있는 기적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전반적인 비난행태도 매우 감정적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진출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낸 신 감독에게 최소한의 존중도 없다. 히딩크 감독이라는 추상적 목표 외에 모든 것들을 싸그리 무시하고 있다. 감독, 선수의 자질부터 축구협회까지 총체적인 비난을 일컬으면서, 정작 실제 움직임에 나서는 사람은 (축구협회 시위 참여자) 20명 내외였다. 이러한 사람들이 만약 히딩크 감독이 와서 실패했을 때, 성숙한 응원을 보낼 것인가? 에이 히딩크도 별 거 없네. 하고 손 털고 물러설 것이다. 대다수의 팬들이 보내는 메시지는, 체념과 조롱 밖에 남지 않았다.


국가대표의 의미


쏟아지는 비난들 속에서, 필자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서 뛰고 있는 것인가? 국가대표의 긍지와 자부심은 이미 바닥으로 내려갔다. 매번 패배의 중심에 있는 선수는 단두대처럼 역적으로 내몰린다. 월드컵에서 기대할 수 있는 성적도 참담하다. 축구협회와 산업관계자들만이 '생존' 이라는 이유로 외롭게 희망을 바라고 있다.


국가대표라는 의미가 사라진 것이, 어쩌면 이 모든 악순환의 원인일 것이다.

대한민국을 상징한다는 것이 가지는 영광보다, 실패의 두려움이 이 팀을 흔들어왔다.

그래서 선수들의 동기부여는 사라져 버렸고, 축구협회는 보수적이고 안전한 -결국은 썩어버린 형태를 유지해 왔으며, 순환구조로 다시 국민들은 모든 신뢰를 던져버렸다.


국가대표는 왜 필요한 것인가? 국가대표팀은 왜 국위선양의 의무를 지고 있는가? 근본적인 물음에 답해보자.


스포츠, 특히 축구는 현대 내셔널리즘의 상징이다. 정치적 요소를 철저히 배제한다는 FIFA의 절대원칙은, 축구만큼 내셔널리즘을 내포한 것이 없다는 반증이다. 평화적인 양상이 무르익어가는 현대 국제질서에서, 필자는 스포츠는 인간 내면의 경쟁과 확장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건강한 폭력성의 배출구로 역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국가대표팀 경기에서는 꽤나 전쟁과 밀접한 용어들이 사용된다. 무적함대 스페인의 다시 찾아온 세계 정복,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인 혈전..과 같은 표현들은 축구가 어떻게 국제관계에서 역할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내셔널리즘과 민족주의가 강한 나라 중 하나이다. 자국의 K리그는 텅텅 비지만, 국가대표팀의 경기들, 특히 월드컵에서 보여준 기록적인 응원들은 이 나라의 스포츠가 어떠한 역할인지를 드러낸다. 작고 어려운 나라가 이렇게 강하게 성장하였다는, 국민적 자부심을 느낄 수단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러한 기대감이 무너져서 차가운 멸시와 조롱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묶고 성장시킬 수 있는 희망이다. 작은 나라에서 국민들이 희망을 품고 단결할 추진력을 가질 수 있다면, 이는 정체된 현 국가 상황에서 매우 긍정적인 트리거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실제로 2002 월드컵의 성공이 대한민국 사회와 경제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침체된 사회분위기에서 축구는 대한민국이 터뜨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희망이다.


대표팀의 상황이 절망적으로 추락한 지금, 국가대표팀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생각해볼 때이다.


아래는 조세 무리뉴 감독이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거절하며 남긴 편지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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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47년간 포르투갈 국민이었고, 축구 감독으로 보낸 시간은 10년입니다. 그러니, 나는 감독이기 이전에 포르투갈 국민입니다. 요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국가대표팀은 개인의 영달이 아닌 국가의 영예를 위한 자리입니다. 이런 이유로, 국가대표팀은 깊은 유대감과 공감, 그리고 일체감이 가득한 자리여야 합니다. 국가대표팀에 뽑힌 선수들은 단순한 프로 축구 선수가 아닙니다. 그들은 포르투갈을 위해 싸우도록 선택된 공인입니다. 그들이 대표팀에 선발된 것은 그들이 다른 포르투갈인들, 즉 은행원, 택시기사, 정치인, 어부, 농부와 같은 사람들보다 축구를 잘하기 때문입니다. 신이 내린 재능을 갖춘 덕에 이렇게 선발된 이들은 포르투갈 대표팀 경기를 위해 모일 때 마음에 이런 생각 하나를 품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클럽에서 뛸 때처럼 단순한 직업 축구 선수가 아니라는 것. 다른 이들은 할 수 없는 일들, 즉 축구장에서 포르투갈의 자존심과 환희를 지켜내는 임무를 맡은 공인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사실 포르투갈 사회에는 축구 한 경기 이기고 지는 것이나, 유로나 월드컵 본선에 나가느냐 마느냐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포르투갈을 대표해 경기장에 나가려는 포르투갈 사람들만큼은 – 다시 말하지만, 저는 그들을 ‘축구선수’라 부르지 않습니다 –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왜 이 경기를 해야 하는지, 여기서 모두가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반드시 알아야만 합니다. 이런 이유로, 포르투갈 축구협회가 저에게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직을 제안했을 때 제가 느낀 감정은 한마디로 자부심이었습니다.

포르투갈 대표로 뽑힌 사람들에게 제가 해주고 싶은 말은 이렇습니다. 국가대표로 뛰는 동안에는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지 마십시오. 대가를 바라지도 마십시오. 개인주의나 개성은 벗어둔 채 자신의 영혼과 마음을 바치십시오. 대표팀에서는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늘 고개를 들고 설령 벤치에 앉는다 하더라도 화를 내서는 안됩니다. 대표팀 안에는 오로지 자부심과 긍정적인 태도만 존재해야 합니다.

이제 포르투갈 대표팀은 새로운 감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새 감독은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모든 이들로부터 ‘우리 감독’, ‘최고의 감독’으로 존경받아야 합니다. “내 것이 최고야!”라는 모토가 떠오르는군요. 만일 우리 팀의 감독이 파울루 벤투라면, 파울루 벤투가 최고인 것입니다.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은 대표팀 감독을 권위있는, 또 보호받는 사람으로 만들어줘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 ‘모든 사람’은 협회, 구단, 전현직 선수들, 미디어 종사자들, 그리고 택시 기사와 정치인, 어부, 경찰, 공장 노동자에 이르는 모두를 뜻합니다. 우리 모두 함께 서서 승리를 따내야 합니다. 만일 패한다면, 그마저도 영광스런 일이 되도록 합시다."



만약 국가대표팀을 응원한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국가대표의 의미를, 그리고 국가대표팀의 동기부여를 누가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이들은 금전적 보상보다 국가의 성공을 위해 헌신을 요구 받는 사람들이다. 국가의 대표는 그 자체로 존중 받고 희망의 목소리를 전달 받아야 한다. 이들에게 동기부여는 오직 국민의 기대와 응원에서 나올 수 밖에 없다. 여기서부터 모든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나는 당신이 축구대표팀에 대해 내는 요구와 주장에 동의하지 못한다. 국가대표팀은 그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지니는 국가에 대한 상징성과 무게감에 공감하면서, 이들의 성공을 위해 협동해야만 목소리의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201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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