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근무 생활 - 1

by YL

코로나 시절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도 원격근무는 존재했다. 시차가 다른 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있었고 나도 가끔은 매니저의 허락을 받고 재택근무를 했었다. 그래서 회사가 아닌 장소에서 맡은 업무를 원활히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조직 구성원들이 매일 원격근무를 하는 상황은 예상치 못한 큰 변화였다. 한국에선 대다수에게 처음이었던 보편적 재택근무가 시행된 2020년과 2021년을 정신없이 보내고 캐나다로 돌아온 후에도 줄곧 원격근무를 하고 있다. 소위 리턴 투 오피스 (return-to-office) 계획이 전혀 없는 회사에서 3년 가까이 일하면서 원격근무는 생활 방식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업무 공간

주 며칠 원격근무가 아닌 완전 원격근무를 지향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해당 근무 방식에 맞는 지원 정책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웹캠, 노트북과 같은 필수 사무기기를 집으로 배송해 주고 모션데스크와 의자 구매 시 회사 제휴 할인을 사용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사비가 들긴 했지만 회사 지원덕에 업무 공간을 최대한 편하고 긴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별도의 업무 공간이 있다는 점이 회사로 출근해서 일할 때와 같은 생산성을 유지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 게다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덜하다 보니 업무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유연함이 원격근무가 주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시간 관리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 출퇴근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일과 나머지 삶의 경계가 흐려지기 쉽다. 특히 북미 동부에 있는 나로선 3시간의 시차로 인해 서부에 있는 팀원들보다 퇴근이 더 빠르다. 협업 상대가 아직 업무 중인데 나만 퇴근하는 것은 처음엔 쉽지 않았다. 퇴근 후 회사 메신저로 연락이 오면 으레 답장을 해주곤 했다. 팀에 그 누구도 그 시간에 일하길 기대하지 않았지만 바로 답장을 안 하자니 마음이 불안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업무 시간이 불필요하게 길어지고 번아웃이 올 게 뻔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시간 관리 계획이 필요했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퇴근 시간 후에 잡히는 회의는 수락하지 않고 오는 연락은 대부분 답장하지 않았다. 실시간 협업이 요구되는 업무가 없는 경우에도 일정한 출퇴근 시간을 유지했고, 다른 시차에서 일하는 팀원들의 업무시간을 똑같이 배려해 줬기에 일의 경계를 정확히 세울 수 있었다.


소통

원격근무의 단점 중 하나는 독립된 공간에서 일하는 것에서 오는 고립감이다.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전사 재택근무가 시작할 때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몇 년 동안 원격근무를 하다 보니 팀원들과의 심리적 거리가 크게 느껴졌다. 하루에 회의가 서너 개씩 있어도 같은 방에서 마주 보고 하는 회의에 비해 상호작용이 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다행히 1년에 두 번 정도 팀 전체가 한 오피스로 모이는 행사와 가끔 팀원들과 원격으로 진행하는 커피챗덕에 주기적으로 교류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업무에 관한 얘기로만 시간을 채우는 것이 아닌 가벼운 소통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언뜻 보기엔 근무 시간의 일부를 일과 관련 없는 시간으로 보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선 지금 당장 비용이 들더라도 임직원들 사이에 라포를 형성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앞으로의 협업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원격근무 환경에서 효율적인 협업을 장려하고 이끌어낼 수 있게 지원을 해주었기에 높은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동안의 원격근무 생활을 돌이켜보면 장소에 상관없이 회사에서 일하는 것과 동일한 생산성과 환경을 만드는 데에 많은 신경을 썼다.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사내 문화와 정책도 한 몫했다. 집에서 근무를 하는 경우 일과 나머지 일상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쉽기 마련인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자신만의 루틴을 정하고 조직 차원에서의 업무 제도 수립이 필요하다 생각된다. 원격근무가 기본인 회사에서 몇 년 간의 경험으로 얻은 유연성과 자율성은 상당한 가치가 있다. 모든 회사와 직종에 알맞은 근무 형태는 아닐 수 있고 단점도 존재하지만 충분히 높은 생산성을 지속하면서 조직원의 유연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매력적인 장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3년 마무리 (+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