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마르고, 관광객은 넘쳐흐른다

일본 어느 ‘살아나는’ 마을의 아이러니-재 편집본-

by 슈우

프롤로그.


「水が、涸れていく——。」(물이 말라간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시즈오카현 야마자토 지역의 주민들은 잠시 말을 잃었다.

오랫동안 이 마을은 ‘물의 고장’으로 불렸다. 후지산의 빙설이 녹아 스며든 지하수가 사계절 맑게 솟아나고, 논밭을 적시며, 마을을 감싸 안듯 흘렀다.

도쿄에서 두 시간 남짓 떨어진 이 산골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자족적인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물이, 이제는 마르고 있었다.

샘은 예년보다 일찍 마르고, 논두렁의 물길은 흐르지 않았다.

폭염이 길어진 여름 탓일까, 지하수 개발로 인한 영향일까.

주민들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지만, 누구도 그 원인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확실한 건 하나 있었다.

물이 말라가고 있는데도, 마을은 점점 북적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거대한 렌즈를 든 관광객이 옛 창고 앞을 점령하고,

인스타그램에 “#일본의 숨은 명소”로 태그 된 작은 찻집에 긴 줄이 생겼으며,

언덕 너머의 폐교는 ‘레트로 감성 숙소’로 탈바꿈해 도쿄 젊은 층의 위시리스트에 올랐다.

그리고 그 붐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전통적인 일본 마을’의 이미지였다.

시간이 멈춘 듯한 돌계단, 지붕을 얹은 물레방아,

낡은 창호지문 뒤로 어렴풋이 보이는 노부인의 실루엣.

그 모든 것은 ‘진짜 일본’을 체험하고자 하는 도시인의 상상 속 풍경에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졌다.

관광청의 지원 아래 마을은 빠르게 변했다.

옛 민가는 마치 세트장처럼 리모델링되었고,

낙엽 밟는 소리마저 연출된 듯한 산책로가 조성되었으며,

온천마저 ‘SNS 인증 명소’로 탈바꿈했다.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줄은 매일 길어졌고,

실제로 그 장소에 살아온 이들의 삶은 점점 배경이 되어갔다.

마을의 노인회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우리가 사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보러 오는 장소가 된 것 같소.」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주민의 삶은 관광 콘텐츠로 재구성되었고,

생활공간은 체험의 장이 되었으며,

역사적 기억은 ‘스토리텔링’으로 가공되었다.

“오이시이 네!”라고 외치는 관광객 앞에서

진짜 시즈케나 삶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었다.

기차역에서 내리는 관광객 수는 매해 갱신되고 있었지만,

정작 지역 초등학교는 폐교가 논의 중이었다.

마을에 거주하는 젊은 부부는 “아이를 키우기 힘들다”며 교외로 이주했고,

남아 있는 이들은 70대 이상의 고령자뿐이었다.

그들의 주름진 손은 여전히 단호했지만,

그 눈빛에는 묵직한 외로움이 묻어 있었다.

사이타마에서 온 한 관광객은 말했다.

「여기 오면 마음이 편해져요. 옛날 일본 같아서 좋아요.」

그녀가 “옛날 일본”이라 부른 그 풍경은,

사실 어제도 오늘도 누군가 살아가는 현재의 터전이었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아이러니를 파헤치려는 시도이다.

물이 말라가는 마을에서, 왜 사람은 넘쳐흐르는가.

그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고,

무엇을 ‘보지 않으려’ 하는가.

그들이 말하는 ‘살아있는 일본’, ‘로컬의 매력’은 과연 누구의 언어인가.

이 질문을 따라, 나는 일본 각지의 ‘관광화된 마을’을 찾아다녔다.

교토의 골목 끝에서,

기후현의 시라카와에서,

오이타의 온천 마을에서,

나는 비슷한 문장을 반복해서 들었다.

「예전엔 여기가 우리 것이었는데… 이젠 사진만 찍고 가버리죠.」

이 책은 일본의 한 마을 이야기를 넘어,

관광이 만들어내는 시선, 재현, 소비의 풍경을 해부하는 보고서다.

동시에, 살아 있는 삶의 공간이 어떻게 연극 무대가 되어가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물이 마르고, 사람이 넘쳐흐른다.

그 역설적인 풍경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이 마을이 처음으로 주목을 받은 건, 어느 여행 인플루언서가 찍은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붉은 기와지붕 너머로 안개 자욱한 산자락이 뻗어 있고, 손때 묻은 우체통 옆으로는 담쟁이가 어지럽게 늘어졌다.

“일본의 숨겨진 풍경”, “진짜가 남아 있는 마을”이라는 문구가 덧붙여진 그 사진은 불과 하루 만에 수만 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그리고 곧, 마을은 변하기 시작했다.

구청은 즉각 대응에 나섰고, 지역 상공회의소는 ‘관광 전략 회의’를 열었다.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 마을의 이름이 회자된다는 것은 행운이었고, 이 기회를 살리지 않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퍼져 있었다.

‘지역을 살리자’는 슬로건 아래, 여러 프로젝트가 동시에 추진됐다.

낡은 가옥을 리모델링해 카페로 전환하고,

조용한 묘지를 옮긴 자리에 전망대를 세우고,

옛 가마터 앞에는 QR코드가 새겨진 설명판이 세워졌다.

노인들이 손수 짜던 볏짚 공예는 ‘문화 체험 프로그램’으로 편입되었고,

동네 공동우물은 ‘일본 전통 수자원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홍보되기 시작했다.

관광객은 늘었다.

하지만 늘어난 건 방문자 수뿐만이 아니었다.

동시에, 주민 사이에는 새로운 경계가 생겨났다.

한쪽에서는 “이제야 마을이 숨을 쉬게 됐다”라고 말했고,

다른 쪽에서는 “숨조차 쉬기 어렵다”라고 토로했다.


관광업으로 수입을 올리는 소수의 사업자와, 그 소음을 견뎌야 하는 다수의 노년층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텅 빈 골목은 카메라 셔터 소리로 가득 찼지만,

정작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지워졌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환경 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선의 구조’가 바뀐다는 것,

즉, 삶이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으로 재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낡은 외양간은 포토존이 되었고,

축제는 지역주민을 위한 의례가 아닌 외부인 맞이용 콘텐츠로 기획되었다.

아이 없는 지역에서 굳이 행해지는 전통 혼례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 일본의 ‘과거’를 상징하는 이벤트로 재구성되었다.

그러나 그 ‘과거’는 진짜 주민의 기억이라기보다,

도시 관광객이 상상하는 전통의 이미지에 가까웠다.

그렇게 마을은 '여기'가 아닌, '거기'로 변해갔다.

실재의 공간은 점차 소실되고,

그 자리를 ‘이야기로서의 마을’,

**‘체험으로서의 지역’**이 대신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점점 침묵하게 되었다.


가령, 폐광의 흔적은 ‘산업유산’으로 조명되지만,

그로 인해 삶을 잃은 광부들의 이야기는 누락되었다.

태풍 피해를 입은 공동체의 기억은 사진 전시로 소비되지만,

그 고통은 박물관 유리 너머로 봉인되었다.

마을의 전설은 상품화되지만,

그 전설을 살아온 노인의 병상은 비가 새는 낡은 집 안에 방치되었다.

관광은 ‘보이는 것’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은 점차 자리를 잃는다.

그 침묵의 공간에, 나는 귀 기울이고자 했다.

이 책은 단순히 관광의 폐해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지역 활성화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 두 흐름 사이에서

“무엇이 놓치고 있는가”,

“누가 말하지 못하게 되었는가”를 묻고 싶었다.

관광이 마을을 ‘살리는’ 동시에,

누군가의 ‘삶’을 소외시키는 구조.

재현이 기억을 왜곡하는 과정.

진짜보다 진짜 같은 이미지가

진짜를 대체하는 기묘한 순간.

이 모든 풍경은 일본의 한 마을 이야기로 시작되었지만,

결코 그 마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농촌, 유럽의 시골, 동남아의 산간 마을에서

똑같은 메커니즘이 반복되고 있었다.

나는 기록하고 싶었다.

그곳에서 흐르던 물의 길과,

이제는 사라진 사람의 길을.

물이 마르고, 관광객은 넘쳐흐른다.

마을은 되살아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죽음의 방식을 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불편한 생명, 그 역설의 경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모든 장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씩 찾아가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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