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사라지는 일상, 침투하는 타인의 시간
홋카이도의 한적한 마을, ‘유키노사토(雪の里)’는 한때 겨울이 가장 조용한 계절이었다. 두터운 적설, 고요한 밤, 느리게 피어오르는 연기와 가끔씩 들리는 눈 치우는 소리. 아이들은 이불속에서 고요히 잠들었고, 노인들은 벽난로 옆에 앉아 된장국을 천천히 저었다. 삶은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이어졌고, 이 마을의 시간은 마치 외부와 단절된 듯했다. 그러나 어느 겨울, 관광객이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그 고요한 균형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진가 한두 명이 찾아왔다. “일본의 마지막 설국(雪国)”이라는 이름으로 SNS에서 소개된 이후였다. 하얀 눈에 덮인 가옥들, 동화책에 나올 법한 목재 지붕, 그리고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삼나무 숲. 이국적인 풍경을 기대했던 도시의 청년들은, 이곳이 자신들이 그리던 “진짜 일본”이라며 환호했고, 인스타그램에는 ‘#눈의 마을’, ‘#시간이 멈춘 곳’ 같은 해시태그가 쏟아졌다.
마을은 더 이상 외부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골목 끝 집의 작은 정원조차 누군가의 렌즈에 포착되었고, 집 앞 장작더미 위에도 셀카봉이 올려졌다. 이들은 담장 너머를 넘보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감각 없이, ‘진짜 마을’을 ‘기록’하려 했다. 그 기록은 필터로 보정되었고, 몇 초짜리 영상으로 재편되었다. 그러나 그 안에 이 마을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관광객은 일시적인 존재였지만, 그들의 시선은 상시적이었다. 하루 수십 명씩 마을을 통과하는 타인의 시선은, 더 이상 이곳이 ‘마을 사람들만의 공간’이 아님을 상기시켰다. 설령 그들이 아무 말 없이 지나간다 해도, 주민들은 창문을 닫고, 커튼을 내리고, 마당에서의 대화를 줄였다. 익숙한 공간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유키노사토’의 중심에는 오래된 우물 하나가 있었다. 전통적인 돌로 둘러싸인 그 우물은 예로부터 마을의 생명선 같은 존재였다. 겨울이면 얼지 않도록 보온 덮개를 씌웠고, 여름에는 이슬처럼 맑은 물을 이웃과 함께 나눴다. 우물가에서 일어나는 일상은 소박했지만 풍부했다. 젊은 엄마들은 갓 빨아낸 기저귀를 펄럭이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할머니들은 이곳에서 말린 무청을 헹구며 계절의 흐름을 읽었다.
그러나 관광객이 몰려든 이후, 우물은 “명소”가 되었다. “일본의 옛 시골 풍경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라는 소개와 함께, 여행 블로거나 영상 콘텐츠 제작자들이 이 공간을 배경 삼아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개 옷을 갈아입고 전통 복장을 걸친 뒤, 마치 이 마을에 뿌리내린 사람처럼 사진을 찍었다. 우물 곁에서 인위적으로 퍼올린 물을 배경으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일상’을 연출했다.
이전까지 마을 사람들만이 알고 있던 ‘정서적 공간’은, 이제 낯선 이들을 위한 무대가 되었다. 주민들은 한때 자신들이 주인이었던 장소에서 뒷걸음질 쳤다. 실제 생활의 흐름은 관광객의 동선에 밀려났다. 낮에는 우물가로 가는 것을 피했고, 아이들도 그 근처에서 놀지 않았다. 주민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오늘은 사진 찍는 사람이 많으니까 저녁에 나가자고요.”
이 문장은 단지 시간 선택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외부 시선으로부터 방어하는 전략이었다.
관광객에게는 ‘보고 싶은 풍경’이 있었고, 그에 맞는 ‘배경’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배경이 누군가의 삶의 장소였다는 사실은 잊혔다. 마을의 공간은 점차 무대 장치로 기능화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 무대에 억지로 출연해야 하는 배우가 되었다. 그들은 의도치 않게 장면 속의 ‘엑스트라’가 되었고, 침묵하거나 퇴장함으로써 그 장면의 분위기를 맞춰야 했다.
“여긴... 원래 이렇게 시끄럽지 않았어요.”
미즈키(みずき) 할머니는 오래된 집 앞에서 엽차를 나르며 말했다. 그녀는 81세. 태어나 자라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보낸 곳에서 지금은 ‘기념사진의 배경’이 되어 있다. 그녀의 집은 SNS에서 ‘시라카와고 최고의 포토스폿’으로 유명해졌다. 이 집 앞에 매일 수백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들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들은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시라카와고는 간사이 지방에서 물자를 나르던 무역 길목이었고, 수공업과 농업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자급자족의 공동체였다. 논물은 계절마다 적당히 흘러들었고, 겨울엔 물레방아가 얼어붙으며 잠시 숨을 고르던 곳이었다. 그러나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마을은 점차 ‘거주지’가 아닌 ‘전시관’이 되어갔다.
관광은 처음엔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빈집은 민박으로 바뀌었고, 도로는 확장되었으며, 인근 고속도로에는 ‘시라카와고 IC’가 생겼다. 그러나 물은 변했다. 더 이상 자연스레 스며들지 않았고, 관광 개발로 인해 지하수 고갈이 가속화되었다. 마을을 감싸던 물줄기는 점차 얕아지고 흐름을 잃어갔다.
지하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마을을 떠날 때, 모든 것이 무너진다. 2003년, 마을의 중심을 흐르던 소규모 계곡 ‘고로자와(五郎沢)’의 수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뭄이라 여겼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나도 물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이, 마을에는 새로운 숙박업소 23곳이 들어섰고, 관광객을 위한 온천시설이 두 곳 건설되었다.
지하수 취수량은 증가했고, 전통적인 수로 시스템은 새로 설치된 정화조와 배수시설에 밀려났다. 마을의 한가운데 있던 연못은 이제 건천(乾川)이 되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개울에서 장난치지 않고, 관광객은 셀카봉을 든 채 물 없는 물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들의 기억 속에 ‘물’은 없다.
시라카와고의 합장조(合掌造り) 주택은 한 채를 짓는 데 30명 넘는 인원이 함께 모여 지붕을 얹는 '야이카에(結い)'라는 공동체 행사를 통해 완성되었다. 서로의 노동력을 교환하는 이 제도는 오랜 세월 마을의 유대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지금, 합장지붕을 보수할 수 있는 사람도, 그것을 위해 모일 사람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관광 수입은 마을에 돈을 가져왔지만, 일손은 밖에서 데려와야 한다. 전통적인 지붕 보수는 외주업체가 맡고, 관광객은 그 모습을 ‘이벤트’로 관람한다. 야이카에는 이제, 퍼포먼스가 되었다.
마을회관에서 열린 주민 회의에서 한 노인이 말했다.
“우리가 뭘 지키는 건지, 요즘은 잘 모르겠어. 우리 손으로는 이제 이 지붕 하나 못 고치는데… 그럼 이건 우리 건가?”
그는 생애 마지막 지붕 수리를 외주 계약서로 마무리하며, 어린 시절 자신이 직접 얹었던 볏짚의 감촉을 떠올렸다. 기억 속 그 지붕은 무겁지만 따뜻했고, 지금의 지붕은 가볍고 멀기만 했다. 전통은 남아있지만, 그것을 지탱하던 몸과 손은 사라지고 있다.
밤이 되면 관광버스는 모두 떠나고, 마을은 조용해진다. 그러나 그 조용함은 고요함이 아니다. 텅 빈 소리다.
가끔 남은 몇몇 주민들이 마을회관 앞 정자에 모여 막걸리를 나눈다. 그들은 예전 이야기보다는 이제 주로 부동산 이야기, 공공지원금 이야기, 외지인 투자자의 태도 등을 나눈다. 소리가 바뀌었다. 마을의 언어는 ‘살기’에서 ‘운영’으로, ‘함께함’에서 ‘관리’로 바뀌었다.
밤중, 전통 가옥 중 하나인 오가이케(大垣家)에서는 바람이 지붕 사이로 스며들며 낮게 운다. 그 소리는 오래된 물레의 회전음처럼 들리다가, 문득 멈춘다. 그 지붕은 오래전부터 손이 닿지 못한 채였다. 지붕 안쪽에 달린 오래된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며 찰랑일 때, 잠들기 직전의 아이는 묻는다.
“엄마, 저 소리 무서워.”
어머니는 창밖을 본다. 그리고 대답하지 못한다. 아이가 듣는 소리는 마을이 사라져 가는 소리다.
젊은이는 떠났다. 도쿄, 오사카, 나고야. 대도시는 더 빠르고 더 편리하다. 시라카와고의 청년 대부분은 마을을 ‘한 번쯤은 돌아볼 곳’으로만 생각한다. 돌아올 이유가 없다. 돌아와도 일자리는 민박 관리나 청소 일뿐이고, 집은 부모 세대가 물려받은 것이지만 유지비가 너무 크다.
그리고 돌아올 수도 없다.
시라카와고에선 2010년 이후 귀농 신청자의 82%가 ‘민박 운영’을 조건으로 받아들여졌고, 그중 절반 이상은 3년 이내에 철수했다. 전통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건, 취미나 낭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매일 풀을 뽑고, 눈을 치우고, 물길을 파야 했다. 그것은 시간과 체력, 그리고 협동이 필요한 삶이었다. 하지만 지금, 마을엔 함께할 사람이 없다.
마을 입구의 작은 수로 옆, 낡은 표지석엔 이렇게 새겨져 있다.
「此ノ水、村ヲ生シ、時ヲ運ブ」
(이 물은 마을을 살리고, 시간을 나르네)
이 문장은 이제 지워지고 있다.
표지석 주변은 사진 스폿으로 정비되었고, 포토존 안내판이 세워졌다. 표지석 위엔 관광객이 음료수를 올려놓기도 한다. 더 이상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읽지 않는다. 가끔, 어릴 적 마을을 떠난 어떤 이가 돌아와 그 문장을 쓰다듬는다. 그에게 물은, 아직 살아있는 기억이다.
그러나 마을은 그것을 점점 잊는다. 물은 이제 더 이상 살아있지 않고, 장식되었다. 마을도 그러하다. 풍경은 남았지만, 기능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남았지만, 의미는 사라졌다.
시라카와고는 아직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더 이상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잔재로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