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 엘리엇이 그의 시 '황무지'에 썼듯 '4월은 잔인한 달'! 맞는 것 같다. 그 어느 해의 4월 보다도 혼란스럽고 마음 편치 않은 때다. 적어도 세상 돌아가는 게 내 눈에 그렇게 비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과 거리 두기를 하고 나만의 평온한 세상에 안주하면 될 테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 4월이었다.
걷는 시간에 비해 정치 관련 리뷰어들의 너튜브 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나는 어느새 너튜브 속 부캐로 탄생한 채 전투적 덧글을 달기도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3월 이후 내내 내 에너지를 거기다가 쏟아붓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5월이 왔고, 라일락도 불두화도 아름답게 피었다.
선택적 귀차니스트(필요할 때는 부지런해지기에)지만 다시 이 좋은 계절을 누려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어느 날인가 그날따라 더 기운이 없는 날이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너튜브를 보며 흥분하고 공감 표시하고 덧글까지 몇 개 쓴 탓도 있을 듯싶었다. 마침 농협에서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둔 까지 않은 더덕이 생각났다.
더덕의 껍질을 벗기는 일은 참 고되다. 시장에서 깨끗하게 껍질을 벗겨 파는 할머니의 더덕은 결코 비싸다는 생각을 해선 안 되겠단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끈적한 액체가 우리 몸에 좋은 '뮤신'이라는 것쯤은 웬만한 방송을 통해서 마르고 닳도록 나와서인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
이렇게 어렵게 깐 더덕을 칼등으로 살 살 때려 더덕의 몸을 부드럽게 하는데, 좀 미안한 생각도 든다. 보통은 더덕을 참기름에 살짝살짝 구워 맛있게 만든 양념장을 재우듯 끼얹어 먹는 일반적인 레시피가 있다. 하지만 양념장까지 만들기가 그날은 왠지 귀찮더라. 그래서 그냥 밥통에 있는 현미밥을 푸고 소금 살짝, 식초 조금, 설탕도 살짝 넣고 살 살 섞어놨다.
그와 동시에 팬을 올리고 두드려놓은 더덕을 기름(참기름이든, 현미유든 상관없음) 살짝 바른 후 굽는다. 소금이나 후추를 조금 뿌린다. 생각을 좀 더 해서 더 맛있게 구울 수도 있었겠지만 최대한 빨리 먹을 생각에 빠르고 단순한 방법을 찾았다. 당근을 볶아 넣을까 싶었지만 그래서 생략했다.
재빨리 김발에 김 한 장을 놓고 밥을 살살 펼치며 얹고 그 위에 깻잎 3~4장을 얹고 구운 더덕을 넉넉히 올린다. 무언가 나를 위해 보양식이라도 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 인생 뭐 있겠나. 김밥에 더덕쯤 마음껏 올려 먹을 수 있을 만큼이면 '부자' 아닐까? 싶었다.
아무튼 이 김밥 또한 맛있게 먹으려면 고추냉이를 푼 초간장이 필수다. 일전에 5만 조회수를 기록한 '하나로 김밥을 소개합니다'에서도 소개했듯 고추냉이 간장에 찍먹 하는 이 단순한 김밥은 정말 맛있다. 뿐만 아니라 먹고 나면 왠지 기운이 솟아나는 듯하다.
봄날, 세상 돌아가는 게 그냥 다 짜증스러울 때, 기운도 없고 뭘 해먹기도 귀찮아질 때, 간단히 해 먹을 수 있는 나를 위한 레시피 아닐까 싶다. 신기하게도 더덕 김밥을 먹고 나면 기운이 좀 나는 것 같다. 무엇보다 해 먹기가 간단하다는 게 이 김밥의 장점이기도 하다.
<더덕 하나로 김밥 레시피>
1. 김밥용 밥을 새로 지어도 좋지만 없다면 밥통의 밥을 사용합니다.
볼에 밥을 담고, 맛소금, 식초, 설탕을 적당히 한 꼬집씩 넣어가며 간을 합니다.(참기름 넣지 않았어요)
2. 손질한 더덕에 참기름이나 현미유를 살짝 발라서 팬에 구워서 식혀놓아요.
3. 김발에 김밥용 김을 펴고 밥을 살 살 펴서 얹어요.
4. 밥 위에 깻잎을 서 너장 깔고 그 위에 더덕을 놓고 김밥을 꽉 꽉 싸주면 됩니다.
5. 진간장에 식초 설탕 그리고 고추냉이 살짝 풀어놓아요.
6. 가지런히 자른 더덕 하나로 김밥을 찍어 먹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