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 비건 식당 베제투스

파가니니 말고 비건 파니니

by 김윤선

나는 서울 사람이지만 서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고향이 북아현동 산동네쯤이었다는 것과 희미한 기억 속 유년의 추억이 전부라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결혼 후 살게 된 과천 인근의 환경이 맘에 들었다. 서울 집값이 지금처럼 범접 불가의 클래스로 오르기 전 남편은 여러 차례 서울로의 이사를 제안하곤 했었다. 하지만 나는 번번이 이 제안에 저항하곤 했다. 첫 번째는 아이들이 나고 성장한 곳을 벗어나 겪을지도 모를 정서적 불안을 이유로. 두 번째는 지금은 돌아가신 친정 엄마와 멀어짐을 이유로 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인근을 기점으로 운영하던 요가원과 강사일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재 방문하게 된 해방촌 비건 식당 베제투스의 파니니와 바이 두부의 랩을 먹어보고 난 이후 예상치 못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심지어 니콜의 흐름 요가 시즌 3을 해방촌으로 이사와 여는 건 어떨까 하는 충동이 생기기까지 한다. 요가원 운영이란 엄연한 비즈니스이기에 단지 맘에 드는 비건 식당이 있어서 열고 싶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잘 알면서도 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베제투스 얘기를 하기로 한다.


해방촌 비건 식당 베제투스를 첫 방문했던 건 몇 년 전, 요가원을 운영할 때였다.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것 같아 당시 꽤 유명세를 타고 있는 어느 요가 주말 워크숍에 참석했었다. 본인이 요가원을 운영하지는 않던 그 요기의 워크숍은 시내의 요가원을 돌아가며 열리곤 했다. 총 3회의 워크숍 일정 중에 두 번째로 기억되는 그날의 워크숍은 한남동 쪽에 위치한 요가원에서였다. 경기도의 집에서 일찍 출발한 데다 긴 시간의 웍샵을 마친 후 허기가 몰려오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워크숍 장소 근처 비건 식당을 검색하다가 못 가본 식당 중에서 선택한 곳이 바로 '베제투스'였다. 웍샵을 마치고 삼삼오오 어딘가로 향하는 이들과 달리 그날도 나는 혼자였다. 일반인에 비해 요가인들 중에 채식과 비건 지향인이 많겠지만 윤리적 비건을 선택한 내 삶의 방식은 그리 일반적이지 않다. 하지만 요가인이라면 당연히 비건 라이프, 즉 요가 철학 속 아힘사를 지향해야 한다는 게 일관적인 내 생각이다.


아무튼 그날 웍샵을 마치고선 특히 더 외롭고 배도 고프고 그랬다. 택시를 잡아 타고 해방촌의 비탈진 언덕길을 달려 달려 올라간 곳에 베제투스 간판을 보고 어찌나 반가웠는지. 실내 인테리어는 지금처럼 그렇게 초록 초록했다. 잘 자란 실내 넝쿨식물들이 벽을 타고 있었고 전면 벽이 유리창으로 된 실내는 초록으로 환했다.

왼쪽 : 베제투스 초록초록한 실내, 오른쪽 : 맛도 가성비도 갑인 베제투스 버거셋트

당시에는 주방에도 홀에도 외국인들이 있었는데 서툰 한국말 서빙과, 주문이었지만 맘에 와닿는 친절함이 느껴졌다. 베제투스의 상징이랄 수 있는 '베제투스 버거 세트'를 시켰는데 소식좌인 내게는 양이 어마어마했다. 버거 사이 패티는 자체에서 만든 수제 패티 느낌이었고 곁들여진 샐러드와 감자튀김도 바삭했다. 정말이지 나는 그것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운 것 같다.


그리고 이어서 디저트를 주문했다. 요가복 위에 헐렁한 꽃무늬 뷔스티에 원피스를 입고 갔었는데 부풀어 오르는 배를 보고 탁월한 의상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득 주문받던 외국인 여성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지는 걸 봤는데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왜소한 체구의 저 동양여성이 혼자 먹어대는 음식량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지금은 베제투스에 갈 때도 올 때도 걸어가고 걸어올 만큼 그 일대 길에 환해졌지만 그날은 첫 방문이었기에 너무 배가 불러 택시를 타고 언덕길을 내려 녹사평역으로 간 것 같다.


베제투스의 첫 방문기를 떠올려보면 '허기진 배, 아니 허기진 마음' 이 가득하다. 그리고 나는 그날의 허기를 베제투스에서 깨끗이 해소했었다. 소외된 마음을 치유받고 온 느낌이랄지, 먹고 났는데 속이 불편한 게 아닌 푸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사이 해방촌에도 몇몇 비건 식당 혹은 비건 옵션 식당들이 생겨났다. 이후에도 몇 번 방문했었지만 그때의 첫 '베제투스'를 무심히 잊고 있었다.


왼쪽 : 셋이 주문했던 비건 파니니 삼총사와 다른 메뉴, 오른쪽 파니니의 자태

최근 들어 자연스레 재방문의 기회가 생겨 두 달 사이에 세 번을 가게 되었다. 한 번은 자주 보진 않지만 이해의 폭이 넓은 문단의 대선배님과, 한 번은 내 동생과, 한 번은 소중한 내 친구들인 정가 보컬리스트 정마리와 정구종 씨 커플과 함께였다. 세 번을 다 파니니를 먹어봤는데 세 번 다 맛있었다. 내가 안 가던 몇 년 사집 파니니에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세 번 갈 때마다 상대별로 다른 종류의 파니니를 주문했는데 비건도 논 비건도 다들 좋아하는 맛이었다.

왼쪽 : 조만간 다시 가게 될 것만 같은 해방촌 베제투스 간판, 오른 : 서울동물원 침팬지 해외반출반대 집회 중인 정마리씨와 필자

아주 드물게 논 비건 친구들과 밥 약속을 잡을 때가 있다. 이럴 때 우선 고려되는 것이 음식 맛인데 동물성 식재료를 쓰지 않고도 오히려 더 맛있다고 평가된 곳을 찾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교통편인데 아무리 구석에 숨어있더라도 찾아가는 비건들에 비해 논 비건을 안내할 때는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오래전 이 부분에 대한 불편한 경험 이후 세워둔 나만의 기준이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드문 만남이어도 내 쪽에선 재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내가 방문한 적 없는 비건 식당을 첫 약속으로 잡기에는 아무래도 모험이 따르기 때문이기에 그랬다. 그런데 최근 들어 재발견하게 된 '해방촌 베제투스' 는 조만간 자주 가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