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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Jul 18. 2022

소월로 20길, 바이 두부

'두부'로 채워주는 넘치는 사랑의 비건 식당


이틀 전 토요일엔 후원하고 있는 '동물해방 물결'의 안내를 받고 집회에 다녀왔다. 정말이지 그 이름도 입에 담고 싶지 않은 '개식용 종식'을 위한 집회였다. 마음과 달리 이런 종류의 집회에는 자주 참석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회 참석 후엔 꼭 '비건 식당'에 찾아가는 버릇이 있다. 정해진 집회 날짜에 드문드문 참석을 하는 나 같은 사람조차도 집회가 끝난 후의 감정엔 허기가 가득 몰려오나 보다. 하물며 제 아무리 공통의 가치와 이슈를 갖고 하는 일이라지만, 이 아프고 끔찍한 일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기획하는 일이란 어떨 것인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품과 감정적 노고가 들어가는 일 일 것이라 예상이 되고도 남는다. 




그날의 드레스 코드는 희생된 개들을 추모하는 의미로 '흰 티셔츠'였다. 나는 몇 해전 비참한 개 사육장에서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설악이'의 펀딩에 참석하며 생긴 강아지 얼굴이 그려진 흰 티셔츠를 입었다. 헐렁한 티셔츠에 평범한 반바지와 운동화 차림은 작고 볼품없는 나 자신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모자 속에는 땀으로 찰싹 들러붙은 머리칼까지. 나는 잠시 이대로 집으로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의 크기'가 '마음의 허기'를 넘어서지는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컨디션 관리를 위해 평소 안 먹던 아침밥까지 든든히 먹었지만 내 감정의 허기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이쯤에서 내 식욕의 지점은 '영혼의 허기' 거나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가 아닐까 싶었다.  용산역에서 새로 옮긴 대통령 청사인 용산 집무실까지 행진하며 악을 쓰며 외쳤던 구호에 걸려 남은 에너지가 다 고갈이 된 것일까? 한번 더 볼품없이 땀에 절어진 스스로를 돌아봤지만 어느새 발길은 '바이 두부'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두부로 만들어내는 요리 중 세 번째 요리를 먹어야 할 날이었다. 그날의 선택은 '에그리스 샌드위치' 달걀이 들어있지 않은 달걀 샌드위치였다. 첫 방문, 바이 두부 랩도 그랬지만 아니 이 집은 어쩌자고 샌드위치 속을 이리도 꽉 꽉 채워준단 말인지. 나는 그 '뚱뚱하고 충만한 샌드위치'의 자태 앞에서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바삭하게 구워진 비건 빵 사이로 와락 한 잎 깨어 무는데 뭔가 달콤한 맛이 혀에 스민다. 뭐지? 달걀 대신 채워진 두부 맛에 배어진 과하지 않은 스모크향과 슬라이스 된 토마토와 루꼴라 잎도 좋았다. 두부 아니 달걀 아닌 달걀의 그 어마어마한 양은 먹어보지 않으면 알 길 없는 충만한 만족감이다.



나는 정말 그 두 쪽을 다 먹을 수가 없는 위장의 소유자다. 맛이 좋아한 쪽(? 한쪽이라기엔 한 덩어리가 적합)을 먹을 때 이미 알아차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장해 가기엔 뭔가 아쉬워져 그냥 맛있을 때 거기서 다 먹기로 결심, 와구와구 다 먹어치우고 말았다. 단순한 인간으로서의 나는 그 순간 집회에서 느꼈던 그 모든 아픔이 씻겨나간 듯 충만해진 배를 두드리고 있었다. 예상대로 이 허기의 근원은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가 맞았던 거였다.  



'바이 두부'By TOFU'는 녹사평 역에서 내려 해방촌 언덕길을 따라 마냥 마냥 걸어 올라가면 나온다. 날이 좋을 때는 걸어서 올라가도 좋지만 입구에 늘 서있는 2번 버스를 타고 소월로가 시작되는 오거리에서 내려서 가면 된다.  내 경우엔 길이 좀 가파른 편이라 내려올 때 버스를 타고 중간쯤에서 내려 걸어서 역으로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첫 방문 때 먹었던 '브로콜리 두부 강정'과 '바이 두부 랩'에 이어 혼자 가서 먹어본 '에그레스 샌드위치' 도 다 성공적, 건강한데 맛까지 잡은 맛이다.




그날따라 손님이 한가한 틈을 타서 잠깐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시간 또한 다정하고 편안했다. 사실 식당을 운영한다는 건 사 먹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품이 든다는 것을 외국서 비건 식당을 운영하던 친지를 통해 들어서 알고 있다. 바쁠 때면 얘기를 청하는 것조차 어려웠겠지만 때마침 마감시간 전의 방문인지라 가능했다. 


바이 두부 운영자이자 셰프의 비건 식당 운영의 단초는 이렇게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무렵 어느 매체에선가 본 '소의 눈'이 자꾸 생각나더라는. 결국은 그 눈빛과 눈망울을 잊지 못해 '비건'이 되었다는 얘기. 그래서 그런지 비건 식당 '바이 두부'에는 유기견들 해외 입양에 적극적인 참여와 안내 홍보를 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식당 입구에는 동행한 댕댕이들을 위한 물이 준비되어있고, 댕댕이들 간식도 준비되어있었다.



해마다 그 여름 무렵이면 불편해지는 마음이 왜일까? 그러다 결국은 내 마음 편하려고 드문드문이지만 집회에 참석하곤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돌아온 2022년의 초복날, '개식용 종식'을 외치러 나갔던 집회를 마치고 혼자 갔던 '바이 두부'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나는 그렇게 그날 집회에서 느낀 개들의 고통과, 두려움, 집회 참석자들의 분노와 슬픔을 바이 두부에서 다 풀어낸 셈이다. 미안하고도 감사한 하루였다. 


보기에 따라 지나치게 소박하고 작은 식당. 하지만 그 어느 곳에 비해서 뒤지지 않을  큰 사랑을 품은 소월로 20길, 언덕 꼭대기 위 작은 비건 식당. 건강하고 맛있는 재료에 넘치는 사랑을 꾹 꾹 눌러 담아주는 '바이 두부'를 여러 분들께도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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