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카페에서 커피 향이 풍겨 나오면 나도 모르게 그 카페에 들어가고 싶어 진다. 아니 마음은 이미 카페 안, 창 쪽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을 하고 있을 때도 있다.
커피잔을 마주한 채 앉아 도란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더 특별해 보인다. 실제로 그들이 그 순간 다정한 사이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잠시'나도 저런 자세로 앉아 커피를 마셨었지' 잠시 그날의 분위기에 젖어보는 것이다.
이렇듯 '커피'에는 마신다는 물리적 행위를 넘어서는 어떤 정서적 영역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언젠가 이끌리듯 들어섰던 해방촌 언덕길 작은 카페에서의 비건 라테 한 잔
커피와 함께 해온 시간이 꽤 길다. 커피와 설탕 크리마를 1: 1: 1.5의 비율로 잔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던 커피로부터, 캡슐 커피의 시대까지 커피의 취향과 방법 또한 진화해왔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커피 취향은 핸드 드립 커피이다. 잘 볶은 신선한 커피콩을 핸드밀로 직접 갈아천천히 방울방울 내려 마시는 한 잔의 커피 말이다. 아침에는 오트 밀유를 따끈하게 데워 진하게 내린 에스프레소와 섞어 오트 라테로 마시곤 한다. 땅콩버터와 블루베리잼을 바른 통밀빵 한 조각에 오트 라테 한 잔은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비건 한 끼 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어쩐지 커피를 줄여야 할 때가 왔다는 게 느껴진다. 수북이 쌓여가는 커피 캡슐도 이유라면 이유, 수거해 재활용한다고 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없기에 그 또한 그린워싱 성 홍보 마케팅이 아닐까 의심이 된다.
물론 핸드드립도 마찬가지로 종이 필터며, 커피 찌꺼기며 커피 한 잔을 위해 소용되는 쓰레기가 만만치 않다. 간혹 불편한 맘에 커피 찌꺼기를 모아 화분에 주기도 하지만 제대로 재활용을 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뭐 이런 이유 말고도 사실 '커피'는 불공정 무역의 대표적인 산물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커피를 끊지 못했다. 간혹 공정 무역(페어 트레이드) 상표가 붙은 커피를 찾아 주문하기도 하지만 지속적이지 못하다는 게 함정이었음을 고백한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커피 홀릭'들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목에 가시가 돋치는 게 아니다. 이를테면 책은 못 읽어도 하루라도 커피를 마시지 못할 때 그런 현상이 생긴다고나 할까. 한 번은 커피 드립용 종이 필터가 떨어진 적이 있었다. 아마 그때도 커피를 좀 끊어볼까 싶어서 커피는 남아있었으나 일부러 사놓지 않았던 터였을 것이다.
그러자 커피 홀릭은 매의 눈으로 필터를 대체할 그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했고 마침내 식탁용 종이 냅킨을 필터 사이즈로 잘라 드리퍼에 올려놓고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제대로 잘 내려지지 않았으나 어떻게 서든 커피 한 잔을 얻어낸 후에야 비로소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던 경험이 있다.
요가 생활과 비건 생활을 하지 않던 오래전 만성 위염에 시달리던 때가 있었다. 사실 그때도 디카페인 커피를 식구들 몰래 마시곤 했었다. 물론 지금은 비건과 요가 생활 이후 위염은 저절로 치유가 된 상태에 이르렀다. 그런데 최근 들어 비교적 적극적으로 커피를 줄여야지 마음먹게 된 건 카페인으로 인한 수면 장애가 생겼기 때문이다.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특히나 진하게 잘 내린 핸드드립 커피를 맛있게 마신 날은 어김없이 뜬 눈으로 밤을 새워야만 했다.
마살라 차이 티의 풍미를 내주는 특별한 재료들
인도에서는 마샬라 차이, 그냥 짜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인도인들이 전방위적으로 즐겨마시는 '마샬라 차이 티'가 그때 떠올랐다.
커피는 커피 열매 즉 녹색의 커피콩을 갈색이 나도록 볶아서 분쇄하고 그걸 내려서 마신다. 짜이는 열매가 아닌 녹차 즉 어린 찻 잎을 따서 말리고 덖어서 만든다. 둘 다 독특한 향을 가진 식물들에게서 온 귀한 먹을거리이다. 때마침 선물로 받은 짜이 티를 보니 아예 카더몬 등의 향신용 열매까지 섞여 있어서 끓여 마시기가 전보다 간편해졌다. 그러고 보니 인도 여행 중 어느 식당, 어느 거리, 시장통이건 흔히 마실 수 있는 게 짜이 티였다. 남인도의 바자르 즉 시장 골목에서 마셨던 짜이의 맛도 생생하다. 맛은 달콤했고 향은 독특했다.
냄비에 짜이 티 잎 몇 스푼과 통계피 조각과 생강 한 조각을 함께 넣고 팔팔 끓이기 시작하면 짜이 티 특유의 향기가 온 집안에 퍼져나간다.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 커피 대신 짜이를 마시겠다고 저 스스로 마음을 먹어서인지 '커피' 향이 아닌 '짜이'의 향이 낯설지가 않다. 커피는 커피대로 짜이는 짜이대로 독특한 향기와 풍미가 있다. 커피 대신 짜이 티를 더 많이 마시는 나날들이 이어지다 보니 전처럼 커피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느낌도 든다.
사실 이 두 식품을 먹지 않는다 하여 어떤 영향의 불균형을 초래하지도 않는다. 어디 커피뿐이겠는가. 세상 모든 종류의 차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게 커피 쪽에 치우쳤던 차의 취향에서 벗어나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날에는 짜이 티 한잔을 마셔도 좋고 안 마셔도 괜찮다. 결국 균형감을 갖는다는 건 홀릭, 즉 중독에서 벗어 나오는 것.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것과도 통하는 일인 듯싶다.
아주 가끔씩은 오전 중에 커피를 내려 마시기도 한다. 코로나로 외출이 줄었으나, 만약 햇빛 좋은 거리를 걷다 열린 카페 문을 통해 커피 향이 흘러나오면 별일 없어도 들어가 볼 생각이다. 카페 안에 읽을만한 취향의 책이 있다면 몇 장 읽다가 와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냥 한가히 앉아 온전히 그 시간 속에 있다 와도 좋을 것 같다.
시작은 커피였는데 쓰다가 보니 '균형감'과 결국은 '마음' 얘기로 넘어간다. 흔히 요가 수련을 말하며 몸의 움직임과 호흡의 연결에 대해서 빼놓지 않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연결성은 요가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들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커피'냐, '짜이'냐의 취향 선택이 어려웠던 게 아니라 균형감을 갖지 못한 내 '마음'에 답이 있었다는 걸 어느 정도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