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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Oct 13. 2022

천변 산책자의 하루

참 다행이다


집을 나와 5분 정도의 거리에 천변이 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천변에 사는 청둥오리를 보거나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뿐인가, 물가 주변 풀밭에 피어나는 들꽃이며 갈대의 어울림은 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질 않는다. 시중의 화려함과는 결을 달리하는 고유한 색채는 수수하고도 아름다워서 산책자의 마음을 따스하게 물들여준다.

이 꽃들이 머금은 '야생'의 빛에게선 팔려나가길 기다리는 도시 꽃집의 냉장고 속 꽃들과는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꽃'을 사고파는 일 또한 인간에게서 비롯된 꽃의 대량 사육 비즈니스의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집 근처에 산책 나갈 천변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 오늘은 특히 더 그런 날이었다. 모처럼 좀 멀리 나간 산책길에서 특별한 나무를 발견한 날이기 때문이다.


다른 날에 비해 동쪽 산책로 쪽으로 더 많이 걸어 올라간 날이었다. 지금껏 산책로에서 봤던 다른 나무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거대한 나무의 자태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이 터져 나왔다. 대체 저만한 나무가 되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제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서있던 것일까. 아니 지켜냈던 것일까. 


수시로 널뛰는 마음 하나 다스려보겠다고 자리에 앉아 채 30분을 고요히 있지 못하는 허약한 내 명상 시간이 떠올랐다. 인간이 나무 앞에 겸허해져야 할 자명한 이유가 아닐 수 없다.       


그 나무 아래서 요가 수련을 하고 싶어진 어느 날, 간단한 요가복과 매트를 챙겨 집에서 4 천보를 걸어 나오는 중이었다. 하필이면 그때 전 생애를 걸어 전력질주로 살아낸 작은 벌레와 마주쳤다. 산책로를 걷다 반쯤 죽어 꿈틀대는 지렁이나 벌레를 보는 일은 흔한 일인데, 그 벌레는 좀 달랐다. 


그것은 온전히 살아 있다는 신호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한낮의 자전거 도로를 횡단 중이었다.  일부지만 간혹 어떤 자전거 폭주족(?)은 산책자들조차 위협감을 느낄 정도로 속도를 내는 경우를 익히 봐온 터였다.  하물며 먹이사슬의 최하위에 속하는 지렁이(사실은 지렁이가 대지와 토양을 건강하게 하는 역할을 하므로 쉽게 해충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함)나 개미, 나무에서 실수로 떨어진 매미며 작은 벌레들의 목숨을 누가 아쉬워하겠는가.


내 새끼손가락의 3분의 1 길이도 채 될까 말까 하는 그 작은 털북숭이는 ‘송충이’였다. 내가 서있는 길 반대편 언덕의 나무에서 실수로 떨어졌을 거로 짐작된다. 자기 앞에 펼쳐질 무시무시할 미래를 알지도 못한 채 자전거 도로를 건너 인도를 거쳐 이제 막 천변 옆 나무 수풀 쪽으로 첫 발을 내딛는 중이었다. 길 끝에 자전거라도 등장하면 어떻게든 송충이를 들어 풀숲으로 옮겨줘야 하는 게 아닐까 난감해질 무렵, 그 작은 녀석은 제 힘으로 무사히 길을 건너 안전지대로 들어서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신기하고도 경이로운 현장 앞에서 나도 모르게 길을 멈추어 섰다.


“정말 잘했어, 정말 다행이다”라고,
“살아있는 동안 어느 손길에도 잡히지 말아”라고.

만약 길을 걷던 누군가가 쭈그리고 앉아 중얼거리는 나를 보았다면 어땠을까? 참 다행스럽게 그날 한낮의 그 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누군가의 발길에 밟혀 으깨지지 않은 채 사지를 탈출해나간 기특한 그 '송충이'를 통해 살고 싶어 하는 고귀한 생명의 본성을 보았다.


한낮'송충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살아있는 그 어떤 존재도 '하찮은 생명은 없다'라고 생각한다. 비건 십 수년 하면 '송충이'에 까지 '감정 이입'을 하게 되는 거냐고, 혹시 웃음거리가 된다 해도 나는 그날의 기억이 소중하다..


그리고 더 소중한 것은 비교적 타 존재의 고통을 담보로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비건의 생활방식을 선택했다는 거다. 무엇보다 살고 싶어 하는 의지와 권리를 짓밟힌 생명체들을 '먹고 싶어 하지 않는 것'도 참 다행이다. 


하찮은 벌레에게서 그의 전 생애를 읽어보게 된 것도 어쩌면 이런 생활이 쌓여가며 저도 모르게 채워진 자비로운 마음 때문이  아닐까 가만히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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