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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Apr 20. 2022

비건 식당, 레트로 33

당신을 인터뷰하고 싶었습니다.


용인시 기흥구 흥덕 사이 차 없는 길을 사이에 두고 비건 식당 레트로 33이 있다. 식당 앞에는 수채화 클래스가 열리는 아뜰리에가 있고, 그 사이에 '길냥씨'와 '고영희 씨'로 불리는 귀여운 고양이들이 있다. 이 고양이들은 식당과 아뜰리에를 유유자적 드나드는 건 기본, 그림 수업 중인 테이블 위로 올라가는 것 또한 흔한 일이다. 조용한 길이다 보니 오가는 사람들도 대략 이 집 앞 고양이들처럼 느긋해 보인다.

 

33 아뜰리에 수채화 수업시간에 참여 중인 고양이


나는 이 식당의 분위기를 부지런히 올라오는 S.N.S 피드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레트로 식당 계정에 꽤 혁신적 변화를 알리는 피드가 올라왔다. 지난 7년간 잘 운영해오던 '일반식당'을 '완전 비건 식당'으로 바꾸기로 했다는 거였다.  사실 이 집 분위기가 너무 좋아 보여서 '비건 옵션 주문'을 하더라도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비건 식당의 전환이라니, 손뼉 치며 환영할 일이었다. 더불어 이토록 대폭적인 선언을 하기까지 무엇이 그 마음을 움직였을지 내심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비건 식당으로의 전환 선언' 이전에 그의 피드에 변화의 조짐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의 독서 리스트 속 책들로부터였는데 그는 책 읽는 비건 식당 운영자였다.  식당 운영으로 바쁜 와중에도 그 무렵 다독가인 그가 읽거나 보고 올린 것들은 주로 채식과 육식의 효용성과 문제의식을 담은 책들이었다. 넷플릭스의 '더 게임 체인져 스' 외에도 소에 대한 음모 '카우 스피라 시'를 비롯한 자본주의의 구조적 사회망 속에서 벌어지는 공장식 축산의 폐해를 파헤친 책들로 기억된다.

 


아 그렇게 품고 있던 내 마음속의 비건 식당 레트로 33에 최근 들어서야 첫 방문을 하게 되었다. 이 비건 식당의 탄생과정을 지켜봐서인지 이미 찐 팬이 되어버린 터였음에도 첫 방문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2년 여가 걸린 것이었다. 정말이지 SNS를 통해 본 것과 다른 게 전혀 없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사진과 글을 보며 그려봤던 그대로 음식이며 인테리어며 사소한 것 곳곳에까지 '진심' 이 느껴졌다.

 


아티스트답게 그가 직접 그린 메뉴판과 간판의 감각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는 재활용의 달인이기도 한데 평소의 태도로 보아 환경보호를 위한 의지의 실천이 아닐까 짐작하곤 했다. 새 물건 아닌 중고 의자를 들여다 리폼하고 기존의 가구에 페인트를 칠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개성 넘치는 가구로 재탄생시키곤 했다. 

이름만큼이나 'Retro 레트로'스럽다. 또한 레트로 33은 '용기'를 준비해서 음식을 주문 해갈 경우 가격 할인을 해주는데 이 또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려는 이 카페의 가치관과 지향보여주는 실천이다.


직접 그린 메뉴판 이미지


식당 벽면에 직접 그린 걸로 보이는 세계지도가 있는데 지도 속 군데군데에 코르크병 마개 가 붙어있다.  와인을 마신 손님들이 본인들이 좋아하는 세계의 곳곳을 표시해놓은 거라는 설명이었다.  '저건 뭐지?' 하다가 밥 먹느라 잊고 있었는데, 마침 옆 테이블 손님이 물어보는 걸 듣고 알게 된 사실이다. 다음 방문 때는 좋았던 여행지 몇 곳을 표시해놓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조만간 세계 전도 위를 코르크로 빽빽이 채워지는 날이 올 것만 같다.



핸드메이드 메뉴판에 소개된 메뉴들이 하나같이 아름다워서 선택에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은 이 식당 '베스트'로 표시가 되어있는 비주얼이 눈길을 끄는 메뉴 두 가지를 주문했다. 첫 째 '통마늘 스파게티'는 올리브 오일로 마늘을 볶았는지 강하지 않은 순한 향이 났다. 다양한 색감의 구운 야채들이 데코는 눈을 즐겁게 했고 식감이 잘 어울렸다. 번째 요리는 '레인보우 랩'이었는데 이 식당이 지향하는 자연식물식 그 자체의 맛 그대로였다. 깨끗하고 고소한 맛이라고나 할까? 건강에 좋은데 맛없는 것이 아닌 맛도 건강에도 좋은, 비주얼 또한 이름처럼 아름다웠다.



우리가 감탄을 이어가며 요리를 먹는 사이 돌봄을 받는 고양이들답게 태평스러운 포즈로 식당의 발코니에 와서 밥을 먹고 물을 마신다. 종종 길가는 이들에게 쓰다듬을 받기도 한다. 돌려 말할 것 없이 이거야 말로 '공존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사육환경 등의 참혹함은 차치하고 영양학적 측면에서도 과도한 육식은 각종 성인병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치킨의 왕국이라는 별명답게 '치맥'이라는 이름의 배달음식은 일종의 '문화'처럼 생활 속에 자리 잡게 됨을 알 수 있다. 과도한 육식은 콜레스테롤을 높이고, 콜레스테롤을 낮추기 위해 약을 복용하면서 동물성 식품을 계속 먹는다면 그야말로 병 주고 약 주는 격이 아닐까? 그런 맥락에서 비건 식당의 탄생은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불편한 진실과 딜레마를 줄여줄 수 있는 확실히 긍정적인 움직임의 하나라고 본다.  



그러므로  이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에서 재 탄생한 비건 식당이 점점 더 흥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뿐만 아니라 비건 식당 레트로 33을 격하게 응원하게 되었다. 어쩌면 좀처럼 가 볼일이 없었을 수도 있었을 용인의 한 지역을 이토록 의미 있고도 그리운 장소로 만들다니 귀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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