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지머리 그레이 아티스트의 커피
허름한 골목, 단골카페 옆 새로 생긴 호프집 사이 카페 사장님이 배고픈 동네 고양이들 챙기느라 차려놓은 밥자리가 보입니다. 오늘도 그곳을 지나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한눈에 성별의 구분이 잘 가지 않는, 그러나 하얗게 센 머리를 뒤로 넘겨 묶은 노인이 보입니다. 그분이 앉아있는 자리는 필자의 지정좌석에서 바로 잘 보이는 좌석입니다. 앉은자리의 정면에서 잘 보이는 필자의 시선과 달리 그 자리의 대상은 누구든 그의 오른쪽 옆면을 보여주는 위치입니다. 일주일에 최소 3번 이상, 여기 와서 글을 쓰는 것인지 사람 구경을 하는 것인지 돌아오는 3월이면 만 1년이 됩니다.
오늘의 손님은 다른 날 보던 이들과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그 또래 남성 노인들과 다른 차림새의 그는 꽤 조용합니다. 테이블 위에 소중하게 올려놓은 아이보리빛 헤드셋과 감각 있어 보이는 에코백이었습니다. 어쩐지 그 가방 안에는 악보뭉치가 잔뜩 들어있을지도 모를 거라는 근거 없는 상상도 피어납니다.
하여 표 나지 않게 탐색의 시간을 가져봅니다. 등산복과 등산화, 헛기침 섞인 큰 목소리가 아닌, 베이지색 워크점퍼와 네이비색 캔버스 화도 필자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얼굴이 작아서 얼핏 여성 노인으로 보았었지만 일어서는 순간 보니 큰 키였습니다. 흔히 젊었을 때, 멋있을 것 같다는 표현은 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분은 그냥 지금 현재 멋져 보였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고급진 음감으로 들을 수 있는 헤드셋을 준비할 만큼의 여유와 예쁜 에코백을 선택할 감각이 있는 멋쟁이 노인이었습니다.
어둠이 내려올 무렵이었다면 7,80년대 올드 팝 카페의 연주자가 아닐까 짐작해 볼만큼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간은 오전 11시, 문화센터에서 악기를 가르치는 분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쨌거나 노년의 남성을 규정지을 수 있는 트레이드 마크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그분은 누군가의 글쓰기 속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필자가 이 글을 쓰겠노라 허락을 받진 않았지만 그분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