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차오른다.
발이 엉켜 넘어졌다. 손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고 무릎을 본다. 주름진 무릎 사이 모래가 빨갛게 물든다. 또 꼴찌였다. 팽팽하던 결승선이 힘없이 바닥을 뒹군다. 결승선은 꼴찌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엄마는 넘어진 나를 놀린다. 달리기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란다. 엄마의 조언대로 입술은 야무지게 꽉 물고 양손 주먹 꽉 쥐고, 팔을 앞뒤로 힘차게 휘젓고 보폭을 아무리 크게 벌려도 꼴찌는 늘 내 몫이었다. 엄마도 언니도 계주 선수였는데 나는 달리기만 하면 그렇게 넘어지거나 꼴찌였다.
그때부터였을까.
항상 뒤처지는 기분이다. 세상살이 분명 정답이 없는데 사회는 자꾸 답을 만들지 못해 안달이다. 스무 살이면 대학을 가야 하고, 스물여섯쯤이면 취업을 하고, 서른쯤 되면 돈 모아 결혼하고. 남들 다 하기에 허겁지겁 쫓았다.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고, 돈을 모으고. 그렇게 남 뒤꽁무니만 쫓다 보니 언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데 영 페이스를 찾지 못했다. 남 뒤꽁무니 쫓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바삐 돌라가는 세상에서 선두를 잡기 위해 앞으로 달리기보다 뒷걸음질 치는 쪽이 더 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숨이 차오른다. 숨이 차면 곧장 시야가 뿌예지고 머리가 아프다. 인생에 코치가 있으면 좋겠다. <스카이스 캐슬>의 김주영쌤처럼 하나하나 챙겨주고 지시해 주는 사람. 답 없는 세상에서 답을 만들어 주는 사람. 언제부터인지 자꾸 확인받고 싶어졌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건가? 잘 성장하고 있는 건가?
생후 4개월부터 만 6세가 되기 전, 영유아는 총 7차례에 걸쳐 검진을 받는다. 또래보다 성장이 느리진 않은지, 발달이 더딘 건 아닌지. 키와 몸무게는 또래에서 상위 혹은 하위 몇 % 인지. 77억 명의 인구를 줄 세우면 나는 몇 등쯤으로 달리고 있을까. 내 뒤에는, 앞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이가 아등바등 코스를 이탈하지 않으려,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고 있을까.
인생에 코치가 있으면 좋겠다. 달려도 숨이 차지 않도록, 나만의 레이스를 무사히 완수할 수 있게 정답을 주는 사람. 여기선 물을 마셔, 이쯤에선 전력 질주가 필요해. 하지만 김주영쌤은 만들어낸 인물이고 인생의 코치는 존재하지 않는 직업이며, 여전히 세상엔 답이 없다. 그러니 코스 좀 이탈하면 어때. 뛰다 다치지 않게 중간중간 스트레칭도 좀 하고, 같은 구간에 있는 사람이랑 대화도 좀 해보고. 숨이 차면 걷자. 미세먼지를 차단하려, 코로나 19 감염을 막으려 산소호흡기마냥 착용한 마스크에 그저 숨 쉬는 거조차 힘든 세상. 사는 데 가장 기본적인 숨 쉬는 것조차 힘들게 만드는 이 답 없는 세상, 조금 쉬어간들 큰 문제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