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엄마가 될 거란 생각을 가지고 살 때가 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말이다. 결혼은 인간으로 태어나면 당연한 일로 생각했으니, 언젠가는 남들처럼 결혼할 줄 알았지. 스무 살 때, 아동 심리학 수업을 들으면서 교수님이 자신은 육아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이를 낳으면 수업 내용을 잊지 말고 잘 써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부모 교육이 얼마나 중요하며, 아이들이 유전적으로 타고 태어나는 기질과 그것들에 영향을 주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면서 나는 누구보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다. 내 아이는 나와는 다르길 바랐던 것 같다.
우리 엄마는 교육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저 아프지 말고, 잘 먹고, 어른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방 정리만 잘한다면 혼날 일이 없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한글을 떼지 못해 받아쓰기에서 빵점을 받아도 받아쓰기 연습을 시키는 게 아니라 우리 딸은 빵은 좋아한다며 놀리기 바빴고, 엉터리 맞춤법으로 적은 일기를 보면서 우리 딸은 일기를 일본어를 쓴다고 놀리던 사람이었다.
한 번은 대학 시험에서 멘토에 관해 서술하는 문제가 나온 적이 있다. 중고등학교 때 존경했던 선생님에 관해 쓰려다 문득 엄마 생각이나, 인생의 멘토로 엄마에 관해 서술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멀쩡한 직업이 없었어도 두 딸을 건강히 키워낸 여자. 21세기에도 여자 혼자 애 둘을 키우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닐 텐데, 20세기의 그는 얼마나 고단한 삶을 보냈을까.
가끔 먼지 쌓인 앨범을 들춰보다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영 낯설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긴 머리에 서울깍쟁이처럼 한껏 멋 부린 차림새를 한 20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분간 가지 않는 똑같은 옷차림과 머리 모양, 같은 자세로 찍은 수학여행 사진. 우리 엄마도 나와 같은 학창 시절과 청춘을 보냈던 사람인데. 가끔 나는 그 사실을 잊는 듯하다.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는 주입식 교육이 효과가 있었는지, 엄마에게 상처가 될 말과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리고 엄마가 곁에 없을 때 미안함을 느끼지. 엄마한테 직접 사과도 못 하고 혼자 마음속으로만 미안해하면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지만 매번 그렇게 혼자 회개하고 넘어가는 거다.
한참 육아 방송이 붐을 일으킬 때가 있었다. 굳이 본방송을 챙겨보지 않아도 tv를 틀면 사랑이가 나와 과일을 야무지게 먹곤 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사랑스럽던 아이는 잘 웃고 잘 놀다가도 작은 일에 울음을 터뜨리면 부모 품에 안기곤 했다. 나도 사랑이만 했을 때가 있었을 텐데. 우리 엄마도 울고 떼쓰는 나를 품에 안아 달랬겠지.
어렸을 때 기억이 많지 않은데 유독 선명히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엄마랑 언니랑 어딘가 놀러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었다. 곧잘 멀미를 하던 나는 버스만 타면 잠이 들곤 했는데 그날은 내리기 전 잠에서 깨었다. 하지만 깬 체를 하지 않고 계속 자는 척을 했지. 엄마 등에 업히고 싶었거든. 한 다섯, 여섯 살 쯤 되었을까? 어쩌면 일곱 살이었을 수도 있다. 집이랑 버스 정류장이랑 거리가 꽤 있었는데도 엄마는 나를 깨우지 않고 업어줬다. 언니가 엄마에게 내가 업히고 싶어 일부러 자는 체를 하는 거라고 업어 주지 말라 말을 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힘든 내색 없이 어부바를 해주던 엄마가, 내 발걸음에 맞춰 걷던 엄마가, 이제는 내가 엄마의 발걸음에 맞춰 걸어야 할 만큼 시간이 지났다.
몇 해 전 부모 품에 안겨 우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가 크지 않길 바랐다. 아이가 크는 일은 슬프잖아. 더 이상 안기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품속에 꼭 들어오지 않고, 부모 앞에서 울음을 감출 테니까. 우리 엄마도 그런 생각을 할까. 내가 어른이 되어 슬펐을까. 나는 어리고 엄마는 젊었을 때가 좋았다. 엄마의 흠을 모를 정도로 어렸을 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