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헌사 中_생텍쥐페리
근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다시 읽었다.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꼽자면 당연, '그가 작은 소년이었을 때의 레옹 베르트에게'라는 헌사. 어렸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작은 소년이었을 때'라는 말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나의 어릴 적 모습을 기억하고 그때의 나에게 바치는 헌사라니. 내가 레옹 베르트였다면 눈물 한 바가지 흘렸을 듯.
거기다 간략하게 '레옹 베르트에게'로 끝낼 수도 있는 헌사를 왜 그에게 바치는지 조곤조곤 설명해 주며 글을 읽을 어린이에게 사과하는 자상함. 생전에 생텍쥐페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는 분명 다정한 이었을 테다.
모든 어른이 처음엔 아이였듯이 나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꼬물꼬물 그림일기를 쓰고, 알약이 먹기 싫어 변기에 몰래 버리기도 했고, 담을 넘다 바지를 찢어 먹기도 하고, 엄마와 길을 걷다 혼자 넘어지곤 뭐에 뿔이 났는지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심통을 부리기도 했다.
나였음에도 이해 가지 않는 어린이였던 나. 그 모습을 기억하고 같이 추억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당시 나에게 헌사를 바치는 이가 생긴다면 내 인생을 바치리.
아이였을 땐, 엄마 잠옷을 끌어안고 외로움을 달래기도 했다. 세상 전부가 엄마였을 때니, 심심해도 아파도 코피가 터져도 언니랑 싸워도 엄마만 찾았다. 엄마만 곁에 있다면 무서울 것도 필요한 것도 없었지. 즐거운 일이든 힘든 일이든 시시콜콜 엄마에게 말해, 비밀이랄 게 없던 시절. 어떤 짓(?)까지 했냐면 악몽에 잠에서 깨면 곧장 안방으로 달려가 엄마 옆에 누워 팔을 끌어다 베고 엄마 살내음을 맡으며 안정을 취했다. 악몽으로 기분 나쁘게 쿵쾅거리던 심장은 금세 엄마 심장 소리에 속도를 맞추었고, 그렇게 엄마 옆에 누워 있으면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보호막이 생겨 어떤 무서운 일도 생기지 않을 거 같았다. 분리 불안을 겪는 짐승에게 어미 혹은 주인의 냄새 묻은 수건이나 담요 따위를 주는 것과 같은 이치로, 어린 나는 한 마리 짐승과 다를 게 없었다. 어쩌면 모든 아이가 한 마리 짐승과 다를 바 없을지도. 통제 불가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며, 심지어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말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잖아.
생텍쥐페리가 말했듯, 모든 어른이 한때는 아이였다. 안타깝게도 그 사실을 기억하는 이가 별로 없다는 사실은 그가 살았던 시대나 현재나 비슷해 보인다. 어쩌면 요즘 들어 더 잊고 사는 이가 많은 듯싶기도 하고. 전체관람가로 나온 엄연히 아동을 위한 영화인 <겨울 왕국 2>는 애정 하는 어른이 많다는 이유로 노키 존을 요구하고, 수많은 커뮤니티에선 손쉽게 아동 혐오 글을 볼 수 있다. 산책로에서 개똥을 봤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잘못을 묻는가. 당연히 똥을 직접 싼 개가 아니라 그 개를 반려동물로 데리고 있는 사람이다. 아이는 시끄럽고 사고 칠 가능성이 높다고 출입을 막고, 아이가 이용하는 시설과 어른이 이용하는 시설을 분리한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아이가 사회에 적응할 기회를 빼앗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게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어 더 늙은 어른과 한 사회에서 만나 잘 융합될 수 있을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어렸을 때의 자신이 사라지는 게 아닌데 어떤 이는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었다는 듯 행동하고 말한다. 모두가 지나온, 지나야 할 과정을 본인은 마치 겪은 적 없던 것처럼 말이다. 모두가 꼬물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겨우 연필을 잡고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꿈을 꿨을 테고, 어른이 듣는다면 허무맹랑할 상상을 하며 자라왔다. 그때 생각을 얼마나 기억하는지, 현재가 당시 당신의 상상과 얼마나 비슷한지, 가끔 떠올려보는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