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이란 허황한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어쩌다 그런 허무맹랑한 꿈을 꾸었냐면... 주말 밤 공영방송에서 특선영화로 해주던 <아이엠 샘>을 보고 나서였다. 그전까지는 감명 깊게 본 영화나, 좋아하는 배우나 감독이나 그냥 영화 자체에 딱히 관심이나 생각이 없었다. 별생각 없이 살 나이기도 했지만.
7살 지능을 가진 아빠와 또래보다 유독 똘똘한 딸의 이야기가 얼마나 감동이었는지 두루마리 휴지의 반은 눈물을, 반은 콧물을 닦으며 갑자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영화 한 편으로 생판 모르는 남을 이렇게까지 울릴 수 있다는 놀라움을 느끼며 나도 누군가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얇지만 영화 쪽 공부를 했고, 감독은 영 무리란 생각에 작가 쪽으로 방향을 돌려보기도 했지만 통제할 수 없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체력이며 정신이며 한계를 느끼고 나서야 좋아하는 건 취미로 남길 때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웃긴다면 웃긴 게 막상 영화감독을 꿈꿀 때는 영 영화를 안 봤었는데 근래 몇 년은 영화를 많이 보려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고, 같은 영화를 본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도 즐겁긴 한데. 약간 의무감으로 보려는 느낌이 있다는 거지. 누가 과제를 내준 것도 아닌데 어렸을 때 꿈이 영화감독이었다면 이 정도 영화는 봤어야지 하는 내세움을 위한 것인지, 본 영화 개수를 늘리려고 노력 중이다. 왓챠의 마수에 걸려든 것 같기도 하고... 게임 레벨 올리듯 왓챠 영화 편 수 늘리는 재미. 처음 왓챠를 시작했을 때는 어렸을 때 봐서 기억이 잘 안 나는 영화는 일부러 평가를 안 하기도 했었는데 점점 숫자에 집착하게 되면서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더라도 봤다 싶으면 죄 평가를 했다. 그렇게 억지로 억지로 긁어모아 462편이 되었다.
올해 안에 500편 넘기기를 목표로 잡았는데, 뭔가 영화를 볼수록 취향이 모호해진다. 취향이 꽤 확고한 편이라 생각했는데 변했다고 해야 하나. 나이를 먹을수록 싫어하던 걸 좋아하기도 하고 좋아하던 게 싫어지기도 한다. 가장 극명하게 바뀐 취향은 액션/오락/코미디 장르다. 어렸을 때는 액션이나 코믹 영화를 싫어했다. 의미 없이 싸우고, 의미 없이 웃기고 흔히 말해 킬링타임용 영화. 허세인지는 모르겠으나 좀 우울하고 명확하지 않고 뭔가 대중은 쉽게 눈치채지 못할 의미를 담고 있을 거 같은 영화. 그런 영화를 좋아했다. 좋아하는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와 팀 버튼.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감독.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들의 영화를 좋아한 게 아니라 명성을 향한 부러움이 좋아함으로 포장되었던 것 같다. 평점이 높고 유명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감독의 작품이라면 영화를 보면서 갸우뚱해도 좋게 좋게 생각했으니까.
요즘은 킬링타임용 영화가 좋다. 우울하고 보고 나면 찜찜한 영화는 되도록 피하려 한다. 영화를 보는 이유 중 하나가 현실 도피인데 영화에서 조차 현실을 마주하면 속이 갑갑해 지거든. 작품성이 없든 개연성이 똥망이든 마음에 드는 대사가 한 줄이라도 있다면 왓챠의 예상 평점이나 평균 평점과는 다르게 별점을 부여한다. 영화를 볼수록 취향은 모호해졌지만, 나의 감상이 더는 명성에 휘둘리지 않는 것. 나름의 발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