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란 이름을 거론할 정도로 인생의 도전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본디 겁쟁이로 태어나 남 앞에서 나서는 것도 주목을 받는 것도 부담스러워했기에 사소한 실패에도 잔뜩 주눅이 들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수업 시간에 아는 문제가 나와도 혹여나 틀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손을 들어본 적이 손에 꼽힌다. 나의 부족함을 남이 아는 것이 싫었다.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공부를 하기보단 최대한 나서지 않는 쪽을 선택했고 그 결과 어렸을 때 가장 기피하던 재미없는 회사원이 되어 있었다.
중학교 때 봤던 영화 <토탈 이클립스>에서 시인 랭보는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묻는 말에 '내가 그들을 생각하듯, 그들도 나를 생각하는 것'이라 답했다. 당시에는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가장 기피하던 분류의 사람이 되었을 때 랭보의 두려움에 공감했다. 회사원이 되기 싫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고 반복되는 일을 하며 어제와 오늘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일상.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한 회사를 십여 년 동안 다니고 매일같이 야근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좀이 쑤셨다. 회사에 적응하고 일에 익숙해지고 변화 없이 해가 지날수록 삶의 의문이 생겼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 그쯤 새로운 좌우명을 하나 새겼다.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없다면 재미있는 삶이라도 살자' 그렇게 새 좌우명과 함께 퇴사를 결정했다.
어찌 보면 인생의 첫 도전이자 일탈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도 종종 글을 쓰긴 했지만, 자기만족용이었고 그마저도 제대로 쓴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 사람이 글로 돈을 벌겠다고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다니. 이제 와 생각해보면 무슨 오기였는지 모르겠다. 왕복 세시간 거리의 아카데미를 다니며 방송작가가 되기 위해 용을 쓰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평소 관심 있던 분야의 프로그램에서 일하게 되었다. 드물게 막내 작가가 담당하는 코너가 3개나 있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채용공고가 올라왔을 때도 6개월 이상의 경력 막내를 뽑는다고 해서 사실 별 기대 없이 지원해봤는데 덜컥 합격. 초심자의 행운인지 초반에는 일이 잘 풀리는 것만 같았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인생이 참, 당연하게만 흘러가지 않았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갑자기 프로그램의 개편이 결정됐다. MC가 바뀌고 그 과정에서 한 달 동안 특별 MC와 특집을 하고, 내내 실내 촬영만 하던 프로그램이 갑자기 신청자를 모집해서 야외 촬영을 나가고... 기존 코너를 쓰면서 개편되는 코너의 구성도 짜야 했다. 아무리 짧은 코너였어도 이제 좀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격변하는 세계... 아니, 방송에서 멘탈을 지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불규칙한 일상에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다. 결국 보기 좋게 도망쳤다.
핑곗거리를 찾았다. 그것도 버티지 못하냐는 비난을 피하고 싶었다. 타인의 시선을 피하고자 점점 시도하지 않고 포기하는 사람이 되었다. 쌓인 실패는 사소한 습관부터 바꿔 놓았다. 어느 시점부터 이벤트에 응모하지 않았다. 어차피 되지 않을 거란 생각에.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데 시도하는 행위조차 박탈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마른 우물을 만들었다. 땅을 팔수록 쌓이는 흙더미에 앞은 보이지 않고 하늘은 멀어졌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고 비라도 내리면 속절없이 침식될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우습다. 권력이 있는 것도, 중대한 결정권이 있어서 국제적 문제가 발생할 일도, 기업의 존폐가 결정될 일도 없는데 뭐가 그렇게 무서울까. 내가 생각하는 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어쩌면 실패인데,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뻔한 말이지만 실패를 도약으로 삼아야지. 실패에 익숙해져서 땅을 파는 게 아니라 내딛는 걸음이 수월하도록 땅을 다지자. 인생에 실패가 연속되더라도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