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과거의 나를 떠올려본다. 나는 어떤 아이였더라.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고, 운동을 못 했고, 동네 이웃에게 인사를 잘했고, 가끔은 무례했고, 한때는 손버릇이 나쁘기도 했고, 화가 나면 주변 물건을 던지는 고약한 짓도 했고. 나는 계속 '나'인데 자란다는 개념과는 다르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질은 날 때부터 정해져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단점도 쉽게 합리화하기 편하기도 하고. 간혹 불의의 사고나 사건으로 성격이 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사고는 없었지만, 기억을 곱씹어 보면 성격에 영향을 미칠 만큼 핵심 기억으로 남은 행동이 있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가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뭐라도 한다. 열아홉 살과 스무 살, 미성년자와 성인. 단어로만 보면 하늘과 바다처럼 천차만별 같지만 겪어본 사람은 알다시피 별반 다를 게 없는 시기. 나 역시 열아홉 살 때와 스무 살 때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굳이 다른 게 있다면 주로 활동하는 지역이 달라졌고, 학비가 몇 배로 늘었다는 사실 정도. 그리고 수험생일 때보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다. 학비를 조금이라도 충당하려면 장학금을 받아야 했고, 학점은 시험만 잘 본다고 나오는지 않았다. 웹툰 <치즈 인 더 트랩>에서 매번 열불 나게 하는 조별 과제 역시 남의 이야기 아니었다.
부끄러운 과거지만 고등학교 때 조별 과제를 하면 내 역할은 <치인트>의 '상철'이와 비슷했다. '상철'이처럼 남을 괴롭히진 않았지만 거의 무임승차를 했다. 참, 인생은 돌고 돈다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설'이에 가까웠다. '유정'이나 '백인호'같은 남자도 없고, 수석 할 성적도 아니었지만, 조별 과제 한해서는 나를 중요한 역을 많이 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발표자 역할은 인생에서 없었는데 말이다! 대학에 입학해서 했던 첫 조별 과제는 아직도 눈앞에 선명하다. 3명이 한 팀이었는데 가위바위보로 발표자를 정했다. 믿음이 없는 자. 미안한 말이지만 발표자로 뽑힌 친구가 못 미더워 발표자를 자처했다. 보통 팀플이라 하면 파트를 나눠서 진행하기 마련인데 그 과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고, 그 후에도 여러 번 발표자 역을 했었다.
그 다음 기억은 스쿠버 다이빙이다. 당시 스쿠버 다이빙이 하고 싶었지만,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스쿠버 다이빙을 '할' 이유와 '하지 않을' 이유를 따져 보았을 때, '하지 않을' 이유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히 비용과 시간이었다. 지나고 나서야 좀 더 길게 다녀왔어도 됐겠다 생각했지, 당시에는 3박 4일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여행이었으니, 보름 일정이 충분히 길게 느껴졌고, 스쿠버 다이빙을 하려면 여행 일정 보름 중 5일을 소요해야 했다. 말이 5일이지, 방콕에서 꼬타오까지 이동 시간을 포함하면 거진 일주일이 걸리는 일정이었다. 비용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전체 예산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했으니. 반면, 스쿠버 다이빙을 '해야 하는' 이유에는, 재미? 색다른 경험? 말고는 없었다. 꽤나 고민했다. 스쿠버 다이빙을 포기하면 더 좋은 숙소에서 더 맛난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으니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과거의 나는 스쿠버 다이빙을 선택했다.
PADI 오픈워터와 어드밴스 자격증 과정으로 예약했기 때문에 자격증 취득을 위해 필수로 수행해야 하는 미션이 있었다. 첫날은 기본 동작 및 수신호를 배우고, 수영장에서 간단한 테스트를 했다. 첫 번째 테스트는 스노클링과 오리발을 착용하고 수영 킥 판을 잡고 수영장을 2,3 바퀴를 도는 거였다. 수영을 배우지 않아도 킥 판과 스노클링이 있으면 수영장 2,3바퀴 도는 것쯤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심지어 몇 년 전이긴 했지만 수영도 배운 상태였다. 허나 처음 껴 본 스노클링이 낯선 탓인지, 수영장 깊이에 놀란 까닭인지, 얼마 가지 못하고 물을 먹고 허우적거렸다. 목구멍으로 물이 넘어가, 발버둥 치던 그 짧은 순간에 지옥을 봤다. 아직 다이빙 수트는 입어보지도 못했는데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방콕에서 열 시간 넘게 달려온 것도, 예산의 3분의 1인 가격도 목숨보다 소중하진 않잖아. 다행히 강사님이 바로 발견한 후 진정시켜 주어 겨우겨우 수영장 돌기 미션을 완수하고 다이빙 수트를 입을 수 있었다. 사람이 참 간사하게, 공기통을 메고 호흡기를 무니, 더는 물이 무섭지 않았다.
이틑날부터는 바다로 나갔다. 모든 장비를 갖춰도 바다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자꾸 따로 놀았다. 다이빙할 때는 호흡기를 물고, 수경을 손으로 잡고 뛰어내려도 자꾸 수경이 벗겨지고 물을 먹었다. 분명 이론을 알고, 그대로 뛰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보면 사진을 보면 폼이 죄다 엉망이었고, 마지막 날에서야 겨우 바른 자세가 나왔다. 약간 감동.
위에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는 표현을 썼는데, 사실 거짓말이다. 그 후에 있던 발표마다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다이빙도 마찬가지였다. 5일 연속으로 물에 들어가고 하루에 2~3번씩 다이빙을 해도, 매번 수경이 벗겨지고 물을 먹을까 긴장되고 겁이 났다. 그럼에도 행했던 이유는, 일단 뭐라도 해야 결과가 생기니까.
인생이 참 동전의 앞면과 뒷면 같다. 뒤집는 행위를 하지 않으면 한 면은 계속 암전인 세계고 뒤집는 순간, 순식간에 감정이나 상황이 역전될 수 있다. 어쩌면 모든 답은 행동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만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글을 쓰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이는 행위도 결국 행동이고, 행동해야 생각이 이어지고 생각을 잇기 위해 행동하고. 무슨 이유에서건 다이빙하지 않았다면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다이버가 된 기분을 평생 몰랐을 테지. 바닷속에서 호흡기를 낀 채, 말하고 웃는 소리가 얼마나 신기하지도 몰랐을 테고, 지금의 나 역시 없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