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이라는 뜻도 제대로 모를 나이에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던 이불이 하나 있었다. 언니가 어렸을 때부터 쓰던 이불이었는데, 초록색에 노란색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던 거 같다. 물고 빨거나, 그 이불 없인 잠을 못 잔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감촉이 좋아서 이왕이면 오래오래 갖고 싶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나, 그리 낡아 보이지 않았는데 엄마는 낡았다면 버리자고 했다. 버리기 싫다고 고집도 부려봤지만, 어느새 커버린 몸을 덮어주기엔 작아져 버린 이불을 끝내 버릴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언니가 인형 뽑기 기계에서 작은 강아지 인형을 뽑아 왔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털이 곱슬곱슬한 갈색 인형이었다. 만지면 보들보들하니 집에 있을 때면 줄곧 손에 쥐고 있었다. 한 번은 오른쪽 앞다리가 터져 봉합수술을 한다며 손수 바느질까지 했었다. 바느질 통에서 가장 비슷한 색의 실을 골라 작은 손으로 한 땀, 한 땀 수술을 했는데 어느 순간 바느질 자국이 보이지 않아서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던 거 같다. 워낙에 어렸을 때라 정확한 기억은 아닐 수 있기에 차치하려 했는데, 문득 다친 다리가 나아서 도망이라도 갔나 싶을 정도로 어느 날부터 눈에 보이지 않았다. <토이 스토리>가 아닌 이상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 걸 알지만,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자취를 감춰버리는 물건들이 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외출할 때면 매일 같이 들고 다니던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스누피 장난감도 그랬다. 아마도 연필이나 볼펜 꽁지에 붙어 있던 장식이 떨어져서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던 거 같은데, 우리는 친구니까 세상 구경시켜주겠다고 밖에 나갈 때마다 함께 했지만 그것도 어느 날 사라져 버렸고, 하루는 애착 인형이 갖고 싶어서 버리는 옷과 베개로 만들었던 손바느질 솜인형도. 얼굴은 어떻게 만들었더라, 사인펜으로 그렸는지 단추를 눈이라고 바느질했는지 기억나지도 않고 정말 어설픈 솜인형이었지만, 그것도 친구라며 옆구리에 끼고 다녔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서 없어져 버렸다.
천계영의 만화 <DVD>에는 컴퓨터에서 날려버린 문서들이 사는 곳, 잃어버린 양말 한 짝들이 사는 곳이 나온다. 내가 잃어버린 물건들도 그런 곳에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잃어버린 것인지 엄마가 내다 버린 것인지 알 길은 없다만, 어딘가에 그렇게 오순도순 모여 살면 그건 그거대로 위로가 되지 싶다.
살다 보면 그런 것들이 있다. 평생을 간직할 것만 같고, 영원히 잊지 않을 거 같은 것들. 그러나 서서히 잊히거나 곁을 떠나 버리는 것들. 물건뿐 아니라 기억이나 행동 같은 것도. 중학교 때 개그프로그램에서 투명 인간을 개그로 삼는 코너가 인기였다. 그때 내 친구 토마스니, 동수니 하며 절친이라고 옆에 있는 것처럼 놀곤 했는데, 동수고 토마스고 평생 데리고 살 줄 알았지. 새삼 어리고 유치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있는데, 돌이켜 보면 어떤 버릇은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자연히 없어졌다. 고등학교 때부터 첫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도 시도 때도 없이 양쪽 발가락을 오므려 뼈 소리를 내던 버릇도 언젠가부터 안 하더라. 이런 것들은 대개 사라진 순간에는 모르다 한참이 흐른 뒤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잊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것들이 하나씩 잊힐 때, 그것을 한참 뒤에나 눈치챘을 땐, 참 슬퍼하기도 모호하다. 사라진 순간을 몰랐던 시간만큼 소홀했다는 것이니. 애착이 덜 했다는 얘기겠지. 어쩌면 애착이 덜한 게 삶에 피곤을 덜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기억이든 영원은 없으니 애착이 덜해야 잃어버려도 덜 슬프겠지. 덜한 걸 생각하며 살고 싶지 않은데 삶이 팍팍하니 자꾸 재게 된다. 하나라도 손해 보기 싫어 애정을 지닌 대상에게도 계산기를 두드리니 이거 원 말세다, 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