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 윙카는 후계자를 찾기 위해 자신의 초콜릿 공장으로 다섯 명의 아이를 초대한다. 단순 공장 견학인 줄 알고 초대된 아이들은 윙카가 설계한 놓은 함정에 한 명, 한 명 빠지게 되고 결국 찰리만 남게 된다. 윙카는 우승자 선물이 공장이라 말하며 가족을 떠나 공장에 들어와 후계자 수업을 받으라 하는데...
극 중 윙카는 부모를 말로 내뱉지도 못할 만큼 '부모'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영화 중간중간 윙카의 어린 시절과 함께 그의 아버지가 나오는데, 치과 전문의인 윙카의 부는 굉장히 강압적으로 윙카의 초콜릿과 사탕을 난로에 던져버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학대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때리는 행위만이 학대가 아니다. 직접 위해를 가하지 않아도 학대가 될 수 있다. 윙카 부의 행동도 학대로 보인다. 아이에게 강압적으로 행동했고, 그 일로 인해 가출을 감행하고 '부모'를 언급조차 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윙카는 자랐다. 그런 윙카는 찰리와 만나게 되면서 가족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된다. 어린 시절 떠나왔던 아버지를 다시 만나기도 하고. 아버지는 윙카가 떠났던 그 날부터 윙카를 기다리며 그의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고 그리워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포옹하며 눈물의 재회를 하지.
윙카의 아버지가 그를 그리워하고 사랑한다고 해서 강압적이었던 행동이 사실이 아닌 일이 되지도, 용서받을 자격이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은 그깟 초콜릿이나 사탕 좀 태운 거로 가출한 윙카를 나무랄 수도 있다. 부모 속을 썩였다고, 뭐 그까짓 일로 가출이냐고. 우리는 종종 나의 기준으로 타인을 재단하는 실수를 범한다. 상처는 상대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은 수치화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의 기준에서 생각하고 함부로 혹은 쉽게 말해선 안 된다.
가족을 떠나 초콜릿 공장의 후계자가 되라는 제의를 거절한 찰리는 어리석어 보였다. 이런, 방금까지 나의 기준으로 타인을 재단하지 말라 했는데 이렇게 찰리를 재단 했네;; 무튼, 돈이 많아도 불행할 수 있지만 돈 없이 행복하긴 힘들다. 우리 집이 그랬다. 크게 행복한 기억이 없다.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큰돈 들이지 않으면 기억에 남는 것도 별로 없는 거 아닌지. 돈 없이 특별해지기 힘든 세상이다.
딴 얘기만 주저리주저리 한 느낌인데, 아무튼 이 영화가 환상적인 모험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뻔한 가족 영화라 맥이 좀 빠졌다. 성격이 급하고 극단으로 생각하는 나에겐, 부모의 학대를 용서하라고 강요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부모의 사랑으로 학대를 정당화할 수 없다. 학대의 기준은 오롯이 아이여야 한다. 아이에게 부모를 이해하고 용서하라, 사랑하라 강요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매체에서 부모의 학대를 사랑으로 정당화한다. '그래, 나를 사랑해서 그랬어.'가 아닌 '나를 사랑하면 그러면 안 되지!'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네이버 웹툰 <집이 없어>에서 마리의 이야기는 슬프면서도 속이 시원했다.
'부모가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그러니까 네가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해라'가 아니라, 사회가 가정의 문제를 공적으로 다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매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감정은 중요하지만, 문제를 축소하려 감정에 호소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찰리가 비판적인 사고를 지닌 아이였다면, 지붕이 뚫려 집의 기본 기능조차 하지 못하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걸 선택하는 게 아니라, 가족과 떨어져 지내더라도 공장에 들어가 후계자 수업을 받는 일이 합리함을 알고 윙카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을 테다. 찰리가 윙카의 아버지를 찾아가 윙카의 감정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너의 후계자가 되어 줄 테니,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가족을 만나게 해 주고, 경제적 지원도 필요해'라고 합의를 하는 멋진 아이길 바랐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집에서 당장 누가 아파 큰돈이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윙카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하나.
위험에 처한 도마뱀은 꼬리를 자르고 도망간다. 가족이 위험이 된다면 잘라내야 한다. 그런 이야기가 많이 나오면 좋겠다. 위험이 된 가족마저 품는 게 아닌, 언제든 잘라 버려도 된다고. 품지 못하는 게 네가 못나서도 아니고, 너의 잘못도 아니니 죄책감조차 가질 필요 없이 그저 건강하게 새 살을 채우면 된다고.
결말이 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지 전반으로 재밌게 보긴 했다. 성별이 없나 싶었던 움파룸파조차 스테레오 타입으로 성별을 표현하고, 잠깐 스치듯 지나간 도쿄 장면에서 보인 보라색 브릿지;; 굉장히 거슬렸지만 15년 전 영화이니 그러려니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