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분리수거보다 오늘 본 나뭇잎 그리기

미양의 감정생태 이야기

by 미양
작은 관찰이 실천입니다 2025 ⓒmee.yann

"텀블러 또 안 가져왔어..."

오늘도 카페 앞에서 한숨을 쉽니다. 일회용 컵을 받을지, 그냥 커피를 포기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일회용 컵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기분이 찝찝합니다.

"나는 환경을 생각한다면서 왜 이것도 못 챙겨?"

환경교육사로 일하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저 환경 실천하고 싶은데요, 뭐부터 해야 하나요?"

그리고 그 질문 뒤에 숨겨진 진짜 질문은 대부분 이것입니다.

"완벽하게 못 하면 안 하는 게 나은 거 아닌가요?"


환경 실천의 완벽주의 함정

우리는 언제부터 환경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을까요?

분리수거를 완벽하게 해야 하고, 텀블러를 항상 들고 다녀야 하고, 비닐봉투는 절대 받으면 안 되고, 일회용품은 무조건 거부해야 하고, 제로웨이스트 매장에서만 장을 봐야 하고...

그렇게 해야만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문제는, 그렇게 완벽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환경학을 전공하고, 환경교육사로 일하면서도 텀블러를 잊고 나올 때가 있고, 피곤한 날엔 배달음식을 시키고, 분리수거를 제대로 못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감정은 뭘까요?

죄책감.

"나는 환경을 가르치는 사람인데 이것도 못 하네." "나는 위선자인가?"

그런데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이 죄책감이 저를 더 나은 환경 실천으로 이끄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환경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요.


죄책감은 지속되지 않는다

심리학에는 '도덕적 허가(moral licensing)'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좋은 행동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엔 약간 나쁜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하게 분리수거를 했으니, 오늘은 배달음식 시켜도 돼. 일주일 내내 텀블러 들고 다녔으니, 오늘 하루쯤은 일회용 컵 써도 괜찮아.

그리고 그렇게 일회용 컵을 쓰고 나면 또다시 죄책감이 몰려옵니다.

죄책감 → 완벽한 실천 → 허가 → 포기 → 다시 죄책감

이 악순환은 결국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아예 환경 실천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어차피 완벽하게 못 할 거면 안 하는 게 낫지."

저는 이런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환경에 관심이 많고, 진심으로 지구를 걱정하는데,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해서 결국 포기하는 사람들을요.

그게 제일 안타까웠습니다.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안합니다.

방식을 바꿔보자고.

완벽한 분리수거 대신, 오늘 본 나뭇잎을 그려보는 건 어떨까요? 제로웨이스트 매장 가기 전에, 창밖 나무 한 그루를 관찰해보는 건요?

"그게 무슨 환경 실천이에요?"

라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환경 실천의 출발점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의 목록이 아니라, 자연과의 연결이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자연을 지키고 싶은 이유는 뭘까요?

기후변화 데이터 때문일까요, 멸종위기종 통계 때문일까요?

아니요.

우리는 자연이 아름답고, 소중하고,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지키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 마지막으로 자연을 느꼈나요?

출근길 가로수를 진짜로 본 게 언제였나요? 베란다 화분에게 말을 건 게 언제였나요? 하늘을 1분 이상 올려다본 게 언제였나요?


오늘 본 나뭇잎 그리기

저는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첫 시간에 항상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늘 오면서 본 자연 중에 하나만 떠올려보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합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괜찮아요. 지금 창밖을 보세요."

창밖에는 늘 자연이 있습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흐르는 구름, 부는 바람.

"그걸 한번 그려볼까요? 아주 서툴러도 괜찮아요."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선을 긋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뭇잎 하나를, 어떤 사람은 구름을, 어떤 사람은 떨어진 낙엽을 그립니다.

그리고 5분, 10분이 지나면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의 얼굴이 부드러워집니다.

"이 나뭇잎, 이렇게 생겼었네요." "저 나무 매일 지나쳤는데 이렇게 자세히 본 건 처음이에요."

관찰하는 순간, 연결이 시작됩니다.


작은 관찰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과정

제가 만난 한 수강생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분은 "저는 환경에 관심이 없어요. 너무 어렵고 부담스러워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냥 이렇게만 제안했습니다.

"이번 주에 출근길 나무 한 그루만 관찰해보세요. 사진 찍어도 좋고, 그려도 좋고요."

일주일 후, 그분이 보내온 메시지입니다.

"선생님, 제가 매일 지나다니던 은행나무가 이번 주에 잎이 노랗게 변했어요. 그걸 알았을 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오늘 그 나무 밑에 쓰레기가 버려진 걸 보고 주워 버렸어요. 처음에는 안 그랬을 텐데, 이제는 그 나무가 친구처럼 느껴져서요."

이게 제가 말하고 싶은 겁니다.

연결되면, 지키고 싶어집니다.

완벽한 분리수거를 하라는 강요가 아니라, 작은 관찰에서 시작되는 자연스러운 실천.

그게 지속 가능한 환경 실천입니다.


당신의 환경 실천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혹시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나요?

"나는 환경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것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

물을 아껴 쓰는 것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이미 환경 실천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텀블러를 잊고 나와도 괜찮습니다. 분리수거를 실수해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기에 하나만 더 추가해보는 건 어떨까요?

죄책감으로 하는 환경 실천 대신, 기쁨으로 하는 작은 관찰 하나를요.

오늘 본 나뭇잎을 그려보세요. 창밖 구름을 1분만 바라보세요. 베란다 화분에게 말을 걸어보세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작은 연결이 당신만의 환경 실천의 시작이니까요.


나로부터 시작하는 생태감성

환경은 거창한 게 아닙니다.

완벽한 분리수거도,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도, 비건 식단도 물론 훌륭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당신을 지치게 만든다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다면, 잠시 멈추고 이렇게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 본 자연 하나를 기억하기.

그게 나뭇잎이든, 구름이든, 바람이든, 빗방울이든.

그리고 그걸 그려보거나, 사진을 찍거나, 짧게 메모해보세요.

그 작은 관찰이 쌓이면, 어느새 당신은 자연과 연결되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자연과 연결된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연을 지키게 됩니다.

완벽함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요.


미양(美量)
생태감성 아티스트 | 감정· 예술 ·환경을 잇는 교육 전문가

"나로부터 천천히 시작하는 환경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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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mee.y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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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밖에서 본 자연 중 하나만 떠올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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