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양의 감정생태 이야기
누군가는 숲에서 힐링을 얻는다고 한다.
"자연 속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숲에서 걸으면 머리가 맑아진다"고.
나는 오랫동안 그 의미를 몰랐다.
산에 가도 그냥 나무였다.
바다에 가도 그냥 물이었다.
공원을 걸어도 그냥 풀이었다.
자연은 늘 거기 있었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나는 자연을 보지 못했다
어린 시절, 나에게 자연은 '배경'이었다.
창밖에 나무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 나무가 어떤 종류인지, 언제 꽃이 피는지,
잎이 어떤 모양인지는 관심 없었다.
산에 가면 "공기 좋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숲을 느낀 적은 없었다.
바다에 가면 "시원하다"고 했지만,
파도 소리를 들은 적은 없었다.
내 눈은 떠 있었지만, 마음은 닫혀 있었다.
왜 그랬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살아남는 데 급급했다.
주변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감정을 관찰하는 법은 배웠지만,
자연을 관찰하는 법은 몰랐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았다.
어느 가을 오후, 나뭇잎 하나
전환점은 우연히 찾아왔다.
어느 가을 오후, 동네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쉬고 싶었다.
그때,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가 내 무릎에 내려앉았다.
보통이라면 그냥 털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문득, 그 나뭇잎을 자세히 보고 싶어졌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들여다봤다.
갈색과 노란색이 섞인 색.
구불구불한 잎맥.
바삭하게 마른 가장자리.
부서질 듯 얇은 두께.
그 순간,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이 나뭇잎은 언제 돋아났을까?"
"어떤 계절을 보냈을까?"
"지금 떨어져서 슬플까, 편안할까?"
나는 처음으로 나뭇잎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자연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출근길에 보이는 가로수가 달랐다.
어제까지 그냥 '나무'였던 것들이
은행나무, 느티나무, 벚나무로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나무인데도
아침 햇살을 받을 때와
저녁 노을 속에 있을 때가 달랐다.
비 오는 날의 나뭇잎과
바람 부는 날의 나뭇잎이 달랐다.
자연은 늘 거기 있었는데,
내가 비로소 보게 된 것이다.
어느 날은 작은 돌멩이를 주웠다.
매끈하게 둥근 돌.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크기.
차가운 촉감.
이 돌은 언제부터 여기 있었을까?
비바람에 얼마나 깎였을까?
누군가 밟고 지나갔을까?
돌 하나에도 시간이 있었다.
관찰이 회복이 되는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자연을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내 감정도 함께 관찰하게 되었다.
나뭇잎을 보며 "떨어져서 슬플까?" 물었을 때,
사실 나는 내 안의 슬픔을 보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버티기 힘들겠다" 생각했을 때,
사실 나는 내 안의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자연은 거울이었다.
내가 자연에 물었던 질문들은
사실 나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리고 자연은 답을 주었다.
나뭇잎은 떨어져도 흙으로 돌아간다.
나뭇가지는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는다.
돌은 깎여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자연은 견디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나도 조금씩 배웠다.
환경교육사가 된 이유
사람들이 묻는다.
"시각디자인 전공인데 왜 환경교육사예요?"
"예술하다가 갑자기 환경으로 바꾼 건가요?"
아니다. 갑자기가 아니었다.
나는 이미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고, 어른들과 드로잉을 하고.
예술로 사람들과 연결되는 일.
그런데 자연을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예술과 환경은 따로가 아니구나.
나뭇잎을 보며 색을 배우고.
나무를 보며 형태를 배우고.
계절을 보며 변화를 배운다.
자연은 가장 위대한 예술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품어왔던 환경에 대한 관심이
비로소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예술교육에 환경을 담고 싶었다.
환경교육에 감정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환경교육사 자격을 취득했다.
이건 전공을 바꾼 게 아니었다.
내 안의 두 가지 갈망을 하나로 연결한 것이었다.
예술로 표현하고.
환경으로 연결하고.
감정으로 치유하는 것.
이 세 가지가 만나는 지점.
그곳에 내가 서 있다.
자연은 내 감정을 담는 그릇이었다
자연을 관찰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자연은 판단하지 않는다.
나뭇잎은 내가 슬프다고 해서 피하지 않는다.
바람은 내가 화났다고 해서 멈추지 않는다.
햇살은 내가 지쳤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자연은 그냥 거기 있다.
그래서 나는 자연 앞에서 솔직해질 수 있었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화날 때도, 지칠 때도
자연은 나를 받아주었다.
자연은 내 감정을 담는 그릇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는 자연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서툴렀다.
나뭇잎 하나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본 것을 기록한다는 것.
내가 느낀 것을 표현한다는 것.
그게 전부였다.
당신도 자연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자연을 보고 있나요?
아니면 그냥 지나치고 있나요?
괜찮습니다.
나도 오랫동안 보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만 기억해주세요.
자연은 늘 거기 있습니다.
당신이 마음을 열면
자연은 말을 걸기 시작할 겁니다.
창밖의 나무 한 그루.
길가의 풀 한 포기.
발밑의 돌멩이 하나.
모두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관찰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어떻게 관찰해야 하나요?"
"뭘 봐야 하나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1) 멈추세요
바쁘게 지나치지 말고, 잠시 멈추세요.
자연 앞에서 5분만 머물러보세요.
2) 자세히 보세요
그냥 보지 말고, 들여다보세요.
색, 모양, 질감, 크기.
3) 질문하세요
"이건 언제부터 여기 있었을까?"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4) 느껴보세요
그걸 보며 드는 감정을 느껴보세요.
슬픔, 기쁨, 평화, 그리움.
관찰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분석하려 하지 마세요.
완벽하게 알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있으세요.
그냥 보세요.
자연은 당신이 준비되었을 때
말을 걸기 시작할 겁니다.
자연이 내게 준 선물
자연을 보기 시작한 이후,
내 삶에 변화가 생겼다.
첫 번째 선물 : 현재에 머무는 법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 대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되었다.
나뭇잎을 보는 5분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이었다.
두 번째 선물 : 연결감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무, 풀, 바람, 햇살.
모두 나와 연결되어 있었다.
세 번째 선물 : 감정 회복
자연을 관찰하며
내 감정도 함께 관찰하게 되었다.
슬픔은 억누르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
피로는 참는 게 아니라 인정하는 것.
네 번째 선물 : 생명력
자연은 계절마다 변한다.
떨어지고, 돋아나고, 피고, 지고.
그 순환을 보며 깨달았다.
끝은 없다. 모든 것은 순환한다.
자연은 늘 거기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자연은 당신 곁에 있습니다.
창밖의 하늘.
화분의 식물.
길가의 나무.
모두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다만 당신이 듣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연은 늘 거기 있었지만,
당신이 마음을 열었을 때 비로소 들립니다.
오늘, 5분만 시간을 내보세요.
창밖을 보거나.
공원을 걷거나.
화분을 들여다보거나.
그리고 물어보세요.
"너는 어떻게 지내?"
자연이 답할 겁니다.
미양(美量)
생태감성 아티스트 | 감정·예술 ·환경을 잇는 교육 전문가
"나로부터 천천히 시작하는 환경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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