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분이 어때?"에 답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미양의 생태감성 이야기

by 미양
IMG_5687_72.jpg 나는 수많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2020 ⓒmee.yann

"오늘 기분이 어때?"

친구가 물었을 때, 나는 멈췄다. 모르겠다.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힘든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모르겠다.

"천천히 생각해봐."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났다. 여전히 모르겠다. 친구가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감정 단어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기쁨, 슬픔, 화남, 불안, 외로움, 지침, 설렘, 평화, 답답함, 허무함, 만족, 짜증, 무기력, 서운함, 안도감, 자부심, 수치심, 죄책감, 감사, 사랑, 미련, 뿌듯함, 경계심, 두려움, 놀람, 고요함...

리스트를 읽는 순간, 눈물이 났다.


1. 나는 감정의 이름을 몰랐다

그 종이에는 50개가 넘는 감정 단어가 있었다.

기쁨, 슬픔, 화남, 두려움...
기본적인 것들.

그런데 나는 그 중 절반도 구분하지 못했다.

"지금 화난 거야, 슬픈 거야?"

모르겠다.

"불안한 거야, 무서운 거야?"

모르겠다.

30년을 살면서 나는 감정의 이름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2. "괜찮아"와 "별로" 사이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감정 표현은 몇 개나 될까? 잠깐 세어보았다. 대부분 이 정도였다.

좋아

괜찮아
별로야
안 좋아
그냥 그래

다섯 가지.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수십, 수백 가지다.

"별로"라는 말 안에

지침

허무함

외로움

서운함

무기력

답답함

공허함

최소 일곱 가지가 섞여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냥 "별로"라고만 말한다.


3. 감정의 어휘가 빈곤하면

친구가 말했다.

"감정 어휘가 빈곤하면, 감정을 다룰 수 없어. 이름을 모르면 구분할 수 없고, 구분할 수 없으면 돌볼 수 없지."

뜨끔했다. 나는 지금까지 화난 건지 서운한 건지 몰랐고,

슬픈 건지 외로운 건지 몰랐고, 불안한 건지 초조한 건지 몰랐다.

그냥 "별로"였다. 그러니 어떻게 돌봐야 할지도 몰랐다. 전부 다른 돌봄이 필요한데, 나는 전부 "참으면 돼"라고만 생각했다.


4. 첫 번째 이름 찾기

상담사가 숙제를 냈다.

"오늘 하루, 당신이 느낀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여보세요."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며 느낀 감정은?

처음엔 "그냥 별로"였다.

하지만 멈춰서 생각해봤다.

무거운가? 답답한가? 지친가? 불안한가?

...불안하다.

"나는 지금 불안하다."

입 밖으로 말하는 순간, 가슴이 조이는 게 느껴졌다.

아, 불안이었구나.


5. 두 번째, 세 번째 이름

점심시간. 동료와 대화 중 느낀 감정은? "짜증"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서운함"이었다.

내 말을 끊고 자기 이야기만 했으니까.

"나는 지금 서운하다."

저녁. 퇴근 후 집에 들어왔을 때 느낀 감정은?

"피곤"이라고 생각했는데, 정확히는 "외로움"이었다.

빈 집, 아무도 없는 고요함.

"나는 지금 외롭다."


6. 하루에 스물여섯 가지

그날 저녁, 하루를 돌아보며 센 감정이 스물여섯 가지였다.

불안, 서운함, 외로움, 지침, 짜증, 안도감, 기쁨, 무기력, 평온, 조급함, 부러움, 만족, 두려움, 설렘, 답답함, 감사, 허무함, 경계심, 뿌듯함, 수치심, 자부심, 그리움, 초조함, 고요함, 놀람, 실망.

하루에 스물여섯 가지.

"괜찮아"와 "별로" 두 단어로 뭉뚱그렸던 하루의 풍경이 이렇게 다채로웠다.


7. 이름을 알자 보이기 시작했다

일주일 후. 같은 "별로"라는 말 안에도 매일 다른 감정이 숨어있다는 걸 알았다.

월요일 아침 "별로" = 불안 + 조급함
수요일 오후 "별로" = 지침 + 무기력
금요일 저녁 "별로" = 허무함 + 외로움

이름을 알자, 패턴이 보였다.

월요일은 항상 불안하다. (회의가 많으니까)
수요일은 항상 지친다. (주중 체력이 바닥)
금요일은 항상 허무하다. (끝났는데 공허함)

이름을 알자, 대처도 달라졌다.

불안할 때 → 깊게 숨쉬기
지칠 때 → 완전히 멈추기
허무할 때 → 작은 의미 찾기

같은 "별로"가 아니니까.


8. "슬픔"과 "우울"의 차이

한 달 후. 어느 날 갑자기 눈물이 났다. 예전 같았으면 "우울한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멈춰서 구분했다. 슬픔인가, 우울인가?

슬픔: 무언가를 잃었을 때
우울: 에너지가 완전히 바닥났을 때

지금은? 슬픔이다.

친구와의 다툼. 관계가 틀어졌다. 무언가를 잃은 것 같다. 슬픔이면 괜찮다.

건강한 감정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만약 우울이었다면?

전문가를 만나야 한다. 이름을 구분하니, 언제 도움을 받아야 할지 알았다.


9. 감정 어휘가 늘어나면

3개월 후. 나는 50개가 넘는 감정 단어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달라진 것들, 자기 이해가 깊어졌다.

"나는 월요일마다 불안하구나"
"나는 혼자 있으면 외롭구나"
"나는 칭찬받으면 부끄러워하는구나"

관계가 정직해졌다.

"괜찮아" 대신 "나 지금 서운해"

"그냥" 대신 "나 지금 외로워"

감정이 폭발하지 않았다.

매일 조금씩 이름 붙이고 흘려보내니 쌓이지 않았다. "별로"로 묶어두면 곪는다. 이름 붙이면 흐른다.


10. 당신도 수십 가지를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기분은 어떤가요? "괜찮아"라고 답하려 했다면, 잠깐 멈춰보세요. 정말 '괜찮음'인가요?

아니면,

지쳐서 느낄 여유가 없는 건가요?

표현할 단어를 모르는 건가요?

복잡해서 설명하기 귀찮은 건가요?

"괜찮아" 안에 숨은 감정이 있습니다.


11. 오늘부터 시작하는 감정 이름 찾기

1단계: 멈추기

"지금 나는 어떤 감정인가?" 답이 바로 안 나와도 괜찮습니다.

2단계: 구체화하기

"괜찮아"가 아니라 더 정확한 단어 찾기.

좋아? → 기쁜가, 설레는가, 만족스러운가?

별로? → 지친가, 외로운가, 서운한가?

그냥? → 무기력한가, 허무한가, 무감각한가?

3단계: 이름 붙이기

"나는 지금 ( )하다."

말로 꺼내보세요.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이름을 붙이는 순간, 감정이 명확해집니다.


12. 감정 어휘 리스트 (시작용)

처음엔 이 정도로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긍정 계열: 기쁨, 설렘, 만족, 감사, 평온, 안도감, 뿌듯함, 자부심

슬픔 계열: 슬픔, 외로움, 그리움, 허전함, 허무함, 상실감

화남 계열: 화남, 짜증, 분노, 억울함, 서운함, 원망

불안 계열: 불안, 두려움, 초조함, 걱정, 긴장, 조급함

무기력 계열: 지침, 무기력, 우울, 무감각, 공허함, 답답함

중립/혼합: 놀람, 당혹감, 혼란, 경계심, 부러움, 수치심, 죄책감

이 중에서 지금 당신과 가장 가까운 단어는?


13. 이름을 아는 만큼 자유로워진다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이름을 붙일 수 있으면, 다룰 수 있다."

이름 없는 감정은:

불분명하고

통제할 수 없고

쌓여서 폭발합니다

이름 있는 감정은:

명확하고

다룰 수 있고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당신은 하루에 몇 가지 감정을 느끼나요? 다섯 가지? 열 가지? 아마 스물여섯 가지는 넘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걸 "괜찮아"와 "별로" 두 단어로 뭉뚱그려왔습니다. 오늘부터 이름을 찾아보세요.

처음엔 서툴 겁니다. "이게 슬픔인가, 외로움인가?" 헷갈릴 겁니다.

괜찮습니다. 이름을 찾는 과정 자체가 당신을 이해하는 시간입니다.

"나는 지금 ( ) 하다."

오늘 딱 한 번만, "괜찮아"가 아닌 정확한 이름을 불러보세요. 그게 시작입니다.


미양

생태감성 아티스트 | 감정·예술 ·환경을 잇는 교육 전문가

"나로부터 천천히 시작하는 환경 감수성"


� 이런 글이 더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mee.yann

브런치 구독하기: [미양의 감정생태 이야기]

클래스101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아이패드로 그리는 환경드로잉'

https://class101.net/ko/products/689da1436a835ce434f75c11


� 댓글로 나눠주세요

오늘 당신이 찾은 감정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작가의 이전글내 감정 생태계가 사막이었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