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킹언니 Jun 25. 2021

에피소드 6. 또라이 총량의 법칙

ft. 직장 진상 보고서

우리 팀에 경력직 직원을 채용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기쁜 일이다.

바쁜 시기인데,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면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채용공고를 내고, 원서를 받고, 서류전형을 거쳐,

1차 면접이 진행되었다.

수백 명 원서 중, 수십 명 면접자를 1차 선별하고,

그 선별된 사람들을 시간대별로 4명씩 조를 짜 면접을 진행했다.


1차 면접이 끝나고 나니, 내 머릿속엔 2명이 남아 있었다.

남자 1명, 여자 1명이었다.

남자 후보는 대답이 논리적이며 온화했고, 조직에 잘 스며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자 후보는 경력이 우리와 맞는 부분이 많아, 업무적으로 수월해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행히 팀장님과 내 의견이 일치해, 2명에게 최종면접의 기회를 주었고...

결국 남자 후보가 채용되었다.


같은 팀원으로, 후배로 1년 정도 같이 지내보니,

솔선수범하는 면도 있고, 성격도 온화하고, 

후배지만 가끔 밥도 사는 됨됨이가 된 친구였다.^^


가끔 허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늦게 출근하거나,

미팅이 잡혔다고 나가 오랜 시간 안 들어오는 경우를 빼면 말이다.


후배 직원이 입사하고 1년쯤 되던 날, 조직개편이 있었다.


드디어 내가 오랜 팀원 생활을 청산하고 처음으로 팀장이 된 것이다.

"OO팀 팀장 OOO"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이 후배 직원은 내 유일한 팀원이 되었다.


회사에서는 내게 처음 팀장을 맡기는 거니, 아무래도 단출하게 시작해 보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난 업무에 있어서는 욕심도 많고 의욕도 넘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팀장이 되었으니, 당시 얼마나 부릉부릉 열정이 넘쳤던 지...

주변에서 힘들겠다는 위로를 많이 했다고 한다. 내 유일한 팀원에게 말이다.


잘하고 싶었다.

일 잘한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어온 터였지만, 

리더로서의 평가는 받을 기회가 없었던 나였다.


그러나, 팀장이 된 첫날부터 난 실무 팀장이 되어야만 했다.

업무는 크게 바뀐 게 없었다는 얘기다.

팀원이 1명이니, 당연한 일이다.


어느 날, 유일한 팀원인 이 후배 직원이 교통사고가 났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당분간 매일 통원 치료를 다녀야 한다고 말이다.

(어느 부위를 다쳤는지는 쓸 수 없는 점 이해 부탁드립니다. ^^)

그렇게 2달을 병원 통원을 위해 오후 4시에 퇴근했다.

이 일로 생긴 업무 공백은 모조리 팀장인 내가 채워야 했다.


당시 회사엔 나와 경쟁 관계에 있던 동갑 남자 팀장이 있었다.

그 팀장은 나보다 늦게 입사했음에도 먼저 팀장을 달았고.

내가 팀원 1명일 때, 그 팀장은 팀원이 무려 4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성과는 내가 훨씬 좋았다.

비슷한 업무를 하는 5명인 팀과 2명인 팀 중, 2명인 팀의 매출이 더 높았다는 얘기다.

당연히 그 남자 팀장은 나를 견제하고 미워했다.

그 감정이 오롯이 내게 전해질 정도로 감정의 농도는 높았다.


나의 유일한 팀원인 남자 대리를 동생처럼 데리고 다니며 나에 대한 안 좋은 얘기들을 했을 것이다.

미루어 짐작컨대, 팀장인 내 말을 다 안 들어도 된다던 지...열심히 회사생활하지 말라던 지...

너희 팀장 이상하지 않냐 등 이런 말들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짐작입니다.)


내가 왜 이런 억측들을 할 수밖에 없었냐면,

1년간 같은 팀원으로 있었을 때 한 번도 겪지 않았던 문제를 

내가 팀장이 되자마자 수도 없이 겪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팀원의 병원 통원과 외근의 횟수가 잦아지고, 내가 모르는 비용 지출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 회사는 1장짜리 보고서가 매우 흔하다.

격식을 갖추지 않은, 요점만 정리된 문서인 1장짜리 보고서...

나의 유일한 팀원에게도 이 일이 주어졌다.

몇 시간도 아닌, 며칠 만에 받은 1장짜리 보고서는 내 눈을 의심하게 했다.

차라리 내가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게 나을 것 같은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큰 행사가 있던 날, 회사 앞에 잠깐 볼일 보러 간다며 사라진 내 유일한 팀원!

현수막을 달고, 의자를 옮기고, 귀빈들을 의전하는 일을 팀장인 내가 혼자서 다 소화해야 했다.

동분서주하는 나를 본 윗분이 밑에 직원 어디 가고 혼자 이러고 있냐고 다른 팀 직원을 불러 돕게 했다.


이후로도 팀원과 내가 부딪히는 일은 수시로 일어났다.

같이 들으러 간 세미나에서 급한 은행 볼일이 있다며 나가 4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세미나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가 끝날 시간이 다 되어 돌아온 것이다.


어떤 날은 결막염이 걸려 대학병원 진료를 받고 있다며 2주간 출근을 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이런 일은 계속되었다.

대화 중에 뜬금없이, 

"사람 죽는 거 본 적 있으세요? 저는 바로 앞에서 봤어요. 중국 사람들이 사람 어떻게 죽이는지 아세요?"

이러는 거다...

내가 그만하라고, 알고 싶지 않다고 해도, 따라오며 계속 내게 설명을 했다.


다른 날은,

자기가 사람을 치면 살인미수라고, 복싱을 오래 해서 자기는 사람 치면 살인미수가 된다고...

이런 얘길 팀장인 내게 왜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내가 부족한 점이 있겠지 싶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눠 보면 분명 해결책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분위기 있는 이태리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내 딴에는 어렵게 자리를 마련한 거였다.


소프트한 주제로 얘길 하다가, 지금까지 겪은 문제들에 대해 얘기를 시작하려던 찰나,

지금 당장 해야 할 게 있어 가야 한단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OO에 소독약 받으러 가야 한다고...

제삼자가 들어도 이건 지금 당장 안 해도 되는 일이다.

옆팀 팀장이 시킨 일이라 가서 해야 한다고, "저 갈게요!" 하고 일어나 버린다.


어이가 없었다. 당신의 팀장은 바로 나인데...

옆팀 팀장이 시킨 일 해야 한다고 팀장을 앞에 두고 가 버린 팀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여자 상사라 대놓고 무시하는 건가 싶고,

분하고... 어이없고... 만감이 교차했다.




당시 우리 팀 매출은 계속 초과 달성이었다.

기존 사업들이 잘 되었고, 새로운 사업도 몇 가지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매출이 좋아도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기쁘기는커녕, 어이없는 팀원으로 인해 하루하루가 고통의 나날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윗사람이 또라이인 것보다 아래 직원이 또라이면 이건 더 답이 없구나.


나는 결단은 내려야 했다.

매월 윗분들 전체에게 메일을 썼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조목조목 설명하며 나는 이 친구와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음을 설파하고 또 설파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내 목소리에 귀도 기울이지 않던 부서장이....

이 친구에게 직접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어느 날 아파서 출근이 힘들다고 당일 아침에 카톡으로 통보가 왔다.

어디 아프냐고 회신을 보냈지만 나는 결국 답을 받지 못했다.


다음 날, 부서장이 나와 내 팀원을 회의실로 불렀다.

"OOO, 여기는 회사야. 어디가 아프면 어디가 아프니 출근이 어렵다. 정확하게 팀장에게 노티를 해야 할 거 아니야?" 하셨다.


그러자 나의 이 유일한 팀원은...

손을 부르르 떨며....

"내가 너무 아파서 카톡을 보낼 힘도 없는데 어떻게 카톡을 보냅니까?" 라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이 말을 들은 부서장은 얼굴이 벌게지고 눈이 동그래지더니, 

더 말해도 소용없겠다 싶었는지 그냥 나가라고 하더라.


나는 지금이 기회라 생각했다. 이 팀원을 떼낼 기회 말이다.

오래전부터 이런 일들이 계속되어 왔고, 혼자 X 고생해도 괜찮으니 제발 팀원 좀 빼 달라고 하소연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리도 소망한 1인 팀장 겸 팀원이 될 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에피소드 5. 후배의 뒤통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