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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Jan 11. 2022

알기 쉬운 종교 이야기:
1. 신학과 종교학

개신교 신학 전공자로서 뒤늦게 종교학을 공부하려다 보니 평생 읽어 볼일 없을 것 같던 책들이나 저널들을 읽어보게 된다. 검색도 마찬가지다. 기초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다른 종교들이나 종교학 이론들에 대해서 찾아보게 되고 세계의 여러 종교들에 대해서도 (주요 종교들을 중심으로) 찾아보게 된다. 각 종교를 대표하는 기관이나 연합기구의 홈페이지도 수시로 들락거리게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러한 공부를 통해서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진리의 개념들이 좀 더 명확해지면서 다른 종교에 대해 좀 더 열린 시각과 이해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타 종교에 대해 무지한 종교들이 때로 타 종교에 대 폭력성을 가지는 경우가 있는데 종교가 정치에 이용당할 때, 특히 종교지도자들이 정치적인 목적성을 가졌을 때 이는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 오늘날 일어나는 세계의 많은 종교 분쟁들의 실질적인 이유는 종족 갈등, 식민주의 역사, 빈부격차, 사회적 불평등 등에 기인한 것임에도 마지막에 그 폭력의 불을 지피는 방아쇠는 종교인 경우가 많다. 아마도 종교를 가진 많은 이들이 종교적 가치는 목숨을 걸 만큼 고귀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의 그러한 심리가 정치가 종교지도자의 선동을  통해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는 다. 십자군 전쟁 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 인도네시아 말루쿠 제도의 암본에서 있었던 이슬람과 기독교 간의 종교분쟁은 어마어마한 사망자와 난민을 만들어 냈다. 원래는 기독교 지역이었지만 자바 등지의 이슬람 지역으로부터의 오랜 이주를 통해 지역에  따라서는 이슬람 신자와 기독교 신자의 비율이 비등해지게 되었. 그러다 보니 갈등의 골 깊어졌다. 소위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상황이 되었는데 재력과 권력 등에서 더 우월한 위치에 있었던 이들은 분명 자바인들이었기 때문에 말루쿠인들 소외감과 상실감, 분노 느끼게 됐. 그 갈등이 심해졌을 때  생겨난 우발적인 폭력사건은 종교분쟁으로 발전했고 그것이 심화되었을 때는 성탄절이나 라마단 기간 같은 종교적 절기였다. 종교심이 극대화된 절기에 서로의 집을 찾아가 불을 지르고 살육을 했다. 기독교인인 그 지역 경찰 기독교인의 편에서, 이슬람 신자인 자바에서 파견된 군인들은 무슬림의 편에 서서 싸웠다. 그렇게 군인대 경찰의 싸움, 이슬람대 기독교의 싸움이 되어 버 것이다. 정치불안, 경제 불평등, 민족감정 등의 많은 분쟁 요소들이 있었지만 그 방아쇠는 결국 종교가 당겼기 때문에 종교분쟁이라고 이름 붙여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들을 폭넓게 이해하고자 공부를 시작했고 곧 시작할 학기를 위해 이것저것 읽는 내용들을 정리하 중에, 혹 관심 있는 분들이 있을까 하여 정리한 내용들을 브런치에 간단히 올려보려고 한다. 세계의 주요 종교들, 종교를 연구하는 방법들, 종교로 인한 문제들과 해법과 같은 내용들을 종교학의 관점에서 기초적인 수준으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그에 앞서 신학과 종교학의 차이를 잠깐 설명하자면, 신학은 신의 존재를 믿고 이를 가르치고 전하고자 하는 이들의 입장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개신교 신학은 교회를 섬기기 위해, 선교하기 위해, 신앙을 교육하기 위해 필요하다. 이슬람 신학도 동일하다. 그러다 보니 종교 간의 접점이 없다. 각자가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하는 신념들이 다른 곳에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종교는 폭력을 정당화하지 않지만 그 절대 진리에 대한 개념이 때로 폭력을 정당화하게 되는 것이다. 성전(Holy War)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종교은 신학과 달리 사회과학 혹은 인문학 쪽에 가깝다. 심리학, 문화인류학, 철학, 사회학 등을 도구로 하여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종교성을 객관적으로 탐구하려는 시도이다. 그가 기독교이든 무슬림이든 연구자가 가진 신앙의 색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각 종교와 종교현상을 바라보려는 시도이다. 물론 자연과학을 연구할 때처럼 소위 객관적인 방법론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사회과학 쪽에서 볼 때는 비과학적이고, 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는 비신앙적이며 종교에 도움이 안 되는 학문으로 취급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종교학이 필요한 이유는 각자 자기 자신을 좀 더 정직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도구가 종교인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어쩌면 한국의 각 종교계가 사회에 도움이 안 되고 늘 염려를 끼치는 이유는 나만 진리다, 라는 편협함 가운데 다른 종교 혹은 세상의 문제들을 등한시하는 것 때문이 아닐까 한다. 더 나아가 지성과 도덕성을 잃어버렸는데도 이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사실 각자의 경전이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겠지만 세상에 대한 책임과 개인의 도덕성이 부차적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들이 있기 때문에 각 종교의 문제는 내부에선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기도 한다. 교세만 커지면 된다는, 다른 종교만 세상에서 몰아내면 된다는 패권주의가 오늘날 종교가 없는 이들에게 종교를 혐오하게 만들고 종교가 있는 이들을 종교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종교에 대한 간단한 이해를 통해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종교적 상황과 문제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일주일에 하나라도 관련된 글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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