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에서 갈 만한 여행지는 따만 미니, 꼬따 뚜아, 안쫄 유원지 등이 있고, 남쪽으로 좀 더 내려가면 따만 사파리와 보고르 식물원이 있다. 생각보다 볼 것이 많기도 하고, 인구 1000만의 도시 치고는 볼 게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시골에 살다가 자카르타에 올라오니, 어쩐지 견학을 좀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국립박물관, 국립미술관(Galleri Nasional Indonesia), 모나스 타워를 차례로 방문하게 되었다. 코로나 탓도 있었지만 근처에 몇 년 동안 살면서도 기대감이 없어 안 가본 곳들인데, 먼 곳으로 이사 가고 나니 동일한 것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가 바뀐 것이다. 오늘 간 곳은 국립 미술관이었는데 역시나 식민지풍의 건물들, 특히 그 기와가 매력적이다. 이곳 사람들은 외국인인 우리에게 한국어로 인사해 주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며, K-pop과 K-drama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이곳에서 인기인 조국의 문화산업 때문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상설전시실만 보고 왔는데 첫 번째 전시실은 아이들이 좋아했는데 두 번째 전시실은 조금 무서워했다. 종교에 대한 관심이 큰 인도네시아인들은 영적인 존재들에 대한 표현들을 많이 하기도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아이들에겐 좀 기괴해 보여 두려움을 느끼게 했나 보다. 그래도 버츄얼 투어를 통해 본 몇몇 익숙한 작품들도 보이고, 집에서 보이는 므라삐 화산을 그린 작품도 있어서 반가웠다. 아내와의 런던 여행에서 내셔널 갤러리를 방문했을 때는, 볼 게 너무 많아서 다음 날 한 번을 더 가서 그림들을 보고 나왔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그러나 이곳의 내셔널 갤러리를 둘러보는 데는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었다. 사실 유럽의 미술관들에 비하면 작품 수나 전시의 질이 별 볼 일 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고, 천천히 그림들을 보다 보면 그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도 사실 모르겠다. 이곳에 몇 년 살다 보니 어느덧 나에게 익숙해진 이곳의 사람들과 자연의 모습이 오히려 나에게 더 친숙한 인상을 주었다.
미술관을 나서는데 모나스타워가 보였다. 아들은 어제 갔던 박물관에서도 보이던 저 타워를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가봐야 볼 것도 없고, 덥고 힘들기만 할 것 같은 불길한 기분이 들지만 갈 수밖에 없다. 부모와 자식이 결국 그렇게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관계 아니겠는가. 택시를 타러 나가는 길에 보니 한 번도 타보지 않은 교통수단이 있었다. 바자이(Bajai)였다. 바자이는 오토바이를 삼륜차로 개조한 것 같은데 뚝뚝이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태국에서 많이 타는 그 교통수단과 비슷해 보였다. 족자카르타로 이사 가기 전까지는 차량을 직접 운전했었는데 이사 간 이후로는 주로 그랩이라는 브랜드의 차량 호출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블루버드라는 이름의 택시(Taksi)를 이용한다. 거주 중인 족자카르타에서는 자전거 혹은 오토바이가 뒤에서 미는 형태의 베짝(Becak)을 타거나, 오젝(Ojek)이라고 불리는, 오토바이 뒤에 타고 이동하는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자카르타 근교에 살 때는 앙곳이라는 다마스만 한 마을버스를 타보기도 했었는데 지금 사는 동네에는 앙곳도 없고 시내버스도 다니지 않는다.
며칠 전 족자카르타역에서 자카르타의 감비르역까지 6시간 20분을 달려와서 숙소까지 갈 택시를 잡는데 20만 루피아를 불렀었다. 그랩으로 찍어보니 5만 루피아가 안 되는 비용이었는데 무려 네 배 이상을 불렀던 것이다. 다른 기사분을 통해 7만 5천 루피아로 흥정을 해서 가긴 했는데 택시에 대한 불신이 살짝 생겼었다. 보통 블루버드 택시는 그랩만큼 많지가 않고 약간 비싼 대신, 안전하게 운전하고 바가지를 쓸 일이 없는데 처음 겪은 일이라 살짝 당황했었다. 바자이를 타면서도 혹시나 바가지를 쓰면 어쩌나 싶어, 우리 부부와 아이 둘이 두 대에 나눠 타야 하는지 가격은 얼마인지를 먼저 물으니, 아이를 안고 한 대를 타면 되고 국립 미술관에서 모나스 타워까지 25,000루피아(한화로는 2000원쯤)라고 했다. 괜히 바가지 걱정한 게 죄송스럽기도 하고, 비싸지 않게 코끼리 열차 타는 기분으로 모나스 타워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모나스 타워를 가는 길은 덥고 힘들었으며, 전망대를 올라가는 표가 매진되어 타워의 박물관과 뜰만 둘러보고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만 뷰도 만족스러웠고 이곳에서의 새로운 경험도 하나 추가되었으니 나쁘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