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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Nov 08. 2021

스마랑(Semarang)의 아침

코로나로 2년 정도 휴가를 가지 못했다. 가까운 반둥이나 보고르 정도만 다녀왔었는데 최근 몇 주간 인도네시아의 코로나 확진자수가 1000명 이하로 머물고 있어서 휴가를 한 주간 나오게 되었다.  이젠 자카르타 근교에서 중부 자바의  족자카르타라는 도시로 이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집을 얻으러 가는 목적이 크다. 며칠 전까지 아이들이 비행기를 타지 못했었기 때문에 차량을 렌트했는데, 렌트를 하고 나니 아이들이 비행기를 탈 수 있다고 한다. 고속도로가 잘 되어 있긴 하지만 한 번에 가려면 7시간 이상을 가야 해서 오후에 출발한 우리 가족으로선 중간 스마랑이라는 도시에서 하루를 자고 갈 수밖에 없었다. 족자카르타에선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해뒀는데 스마랑에선 호텔이다. 잠깐만 쉬었다 갈 거라고 넷이서 침대 하나에 다닥다닥 붙어서 자는 중이다. 발코니에 나와보니 호텔의 뷰와 공기가 좋고 덥지 않아서 더 좋다. 내가 사는 곳 빼고는 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곳인가 싶다. 에어컨을 켜지 않고 자는 것 이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인도네시아는 인구가 많다 보니 부자도 많다. 빈부격차도 그만큼 크다. 이곳도 그냥 고속도로 출구에서 가까워서 잡은 호텔인데 동네가 좋다. 언덕으로 올라오는 내내 집들이 한남동 같다고  아내와 감탄하면서 왔다. 스마랑은 중부 자바의 북쪽 바닷가에 위치한 중부 자바주의 주도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몇 번째로 큰 도시고 서쪽의 자카르타와 동쪽의 수라바야 사이에 위치한다. 한국의 봉제업체들도 이곳에 많이 나와 있다. 인도와 말라카 해협, 그리고 대순다 열도를 거치는 무역로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무역로는 예로부터 번성했기 때문에 이곳도 오래전부터 발전했던 도시고 식민시대의 유산들도 남아있는 도시이다. 한국보다 열 배는 긴 수탈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들 역시 네덜란드에 대한 저항과 그로 인한 박해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이 일본에 대해 가지는 일종의 증오심을 그들에게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본 또한 이곳을 3년 정도 식민지화했었는데 일본에 대한 악감정도 거의 없다. 한국인들의 민족적 자존심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우리는 그 치욕을 자손 대대로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아침을 먹고 다시 차로 세 시간 동안 족자카르타를 향해 달리게 될 것이다. 족자카르타(줄여서 족자)는 지리적으로는 중부 자바에 속해 있지만 네덜란드와의 독립전쟁에서 선봉에 섰던 공로로 공화국 속 왕국으로 승인된 사실상의 자치권이 있는, 특별주이며 술탄국이다. 여전히 술탄이 다스리고 있고 관료 임명권 또한 가진다. 물론 공화국 서열로는 왕이 장관, 공주가 차관 정도의 예우를 받는다고 한다. 장로교 목사가 술탄국으로, 그것도 술탄이 졸업한 학교로 공부하러 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삶이 약간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저 오늘은 아무 생각없이 시원한 곳에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내일의 걱정은 전부 내일에게 맡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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