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자카르타에 산지 일 년이 넘어가는데 근처에 있는 보로보도로 사원과 쁘람바난 사원을 가보지 않았었다. 이곳 분들이 워낙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유적들이기 때문에 방문해 봤는지를 계속해서 물어보는데, 교통이 불편하고 가고자 하는 열정도 부족하여 그동안 갈 생각을 안 했었다. 오늘은 이민국에 여권을 찾으러 갈 일이 있었는데 쁘람바난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겸사겸사 들러보게 되었다. 혼자 움직이게 되어서 가족에게 조금 미안했는데 아내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딸아이와 싸우기 싫다며 혼자 다녀오는 게 오히려 더 고맙다고 했다.
가기 전에 간단한 공부를 해봤는데 Tineke Hellwig의 The Indonesian Reader: History, Culture, Politics에 사원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사진이 들어 있다. 족자카르타의 북쪽에는 므라삐 화산이 있고 그 서쪽에는 대승불교사원인 보로부두르(Borobudur), 동쪽에는 힌두사원인 쁘람바난이 있다. 둘 다 마타람 왕국 시대에 건축되었는데 쁘람바난이 반세기 정도 후에 건축되었다. 쁘람바난은 9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건축 이후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 수도가 동부자바로 옮겨지게 된다. 지진 혹은 므라삐 화산의 폭발, 아니면 정치적 문제 등이 이유로 추정되는데 이와 동시에 쁘람바난도 갑자기 혹은 점차적으로 파괴되게 된다. 수백 년간 잊혀 있다가 1733년 네덜란드인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복원작업은 19세기말이 돼서야 시작되었고 199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마타람 왕국 당시의 주신은 시바였기 때문에 브라마, 비쉬누, 시바 중 시바신전이 가장 높게 만들어져 있고 인도의 서사시인 라마야나(Ramayana)가 부조로 기록되어 있다. 자바의 전설인 라라 종그랑도 쁘람바난 사원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 라마야나는 힌두교의 유명한 서사시인데 인도네시아의 인형극인 와양 꿀릿으로도 이야기가 전해진다. 주인공 라마의 조력자인 하누만은 손오공의 원형으로 알려져 있고 라마의 아내인 시타로부터 (남편을 화장할 때 아내가 불속으로 뛰어드는) 힌두교의 악습인 사티(Sati)가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며칠 간격으로 라마야나를 주제로 한 공연이, 그리고 매주 금요일 저녁 라라 종그랑의 전설을 배경으로 한 공연이 있다. 해가 뜨고 질 때의 풍경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나는 한낮에 가서 수학여행 중인 학생들에 둘러싸여 움직였다. 쁘람바난 사원은 여러 신전으로 이루어진 사원 군인데 복원되지 않은 돌무더기의 형태의 사원도 많고, 현재 복원 중인 사원들도 있다. 그리고 한 번의 입장료를 내면 쁘람바난 뿐 아니라 같은 콤플렉스 내에 위치한 룸붕(Lumbung) 사원이나 불교사원인 세우(Sewu) 사원 등도 같이 방문할 수 있다.
입장료는 US달러로 25불 정도인데 인도네시아 거주증이 있는 경우는 한화로 5000원 정도의 입장료만 내면 된다. 박물관과 양궁장, 카페와 작은 사슴공원도 있고 출구를 나가면 바로 식당가와 기념품 시장이 있다. 전체적인 이용가격은 현지물가다. 이동을 위해 골프카트를 타려면 1인당 한화 이천 원 정도, 나시 고렝 등의 간단한 식사거리는 한화로 천 원에서 이천 원 정도, 화살 12개를 받아서 양궁체험을 하는 데는 한화 이천 원, 사슴 먹이를 주는 체험을 하는 데는 한화 오백 원 정도가 든다.
약간의 배경을 공부하고 쁘람바난에 갔지만 이미 오토바이 뒤에 한참을 타고 와서 또다시 한참을 걷다 지친 상태라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그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잘 가꾸어진 공원과 아직 복원되지 못한 돌무더기들이었다. 보로부두르와 쁘람바난의 건축 당시 인도네시아 군도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이던 마타람 왕국은 이후 국가가 둘로 분열되며 쇠락하게 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어쩌면 쁘람바난을 무너지게 만들었을 지진 혹은 므라삐 화산폭발, 두 사원의 건축에 동원된 주민들의 피신으로 인한 농업 생산력 저하 등이 꼽힌다. 그러고 보니 종교라는 게 절망가운데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 일상을 절망으로 만들기도 한다. 자신들의 신을 잘 숭배하기 위해 그 신의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에 정당성이 부여되니 말이다. 왕국을 번성하게 하려고 신전을 지었는데 얼마지 않아 신전도, 왕국도 무너져 내린 것을 보면 더 멋진 신전을 짓는 것이 그들의 신의 뜻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역사는 늘 현재에 교훈을 주고 있으니 가볍게 넘길 일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