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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Jan 25. 2023

세탁소에 맡긴 바지가 망가졌다

인도네시아에서 정장을 입을 일이 있을 땐 바틱 셔츠와 정장 바지를 주로 입는다. 그렇게 입으면 한국에서 정장을 입는 것과 거의 동일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여행할 때도 예의를 갖춰야 하는 자리에 가게 될 것을 대비해 바지 하나와 바틱 셔츠는 챙겨서 다닌다. 얼마 전 발리에 가면서도 만날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틱 셔츠와 정장 바지를 하나 챙겨갔었다. 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 처남이 챙겨준 바지가 아주 편하고 몸에 딱 맞아서 최근엔 그 옷만 입고 다니곤 했는데 세탁소에 빨래를 맡길 때 편하게 입는 옷들과 함께 그 바지도 같이 맡기게 되었다. 세탁비는 빨고 말리고 다림질하고 개어 가져다주는데 1kg당 한국돈 천 원 정도였는데 살고 있는 족자카르타 지역에 비해서 두 배 정도 높은 수준이다. 


산책을 하던 중 아내의 휴대전화로 메시지가 하나 왔는데 바지가 손상됐다는 연락이었다. 높은 온도로 다림질을 해서 옷을 상하게 한 직원이 변상하기로 했다는 메시지도 덧붙여져 있었다. 세탁물이 손상된 적은 처음이지만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맡긴 물건이 망가지는 경우는 워낙 빈번하다 보니 대기업 제품이 아니라면 컴플레인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상점에서 산 아이들 슬리퍼의 플라스틱 고리가 한 주 만에 깨지기도 하고, 아내가 산 구두는 두 달도 안 돼 앞굽의 본드가 떨어져 나갔다. 고가의 제품은 아니지만 다들 아는 브랜드의 제품이기 때문에 한국이라면 가서 컴플레인을 할 수 있겠지만 그저 렘 꼬레아(Lem Korea)라고 불리는 순간접착제를 하나 사서 붙이고 신게 된다. 하다못해 오늘 시킨 M사의 빅맥세트에도 프렌치프라이가 빠져서 왔다. 인도네시아 스타일로 치킨을 꼭 밥과 먹는 아들이 주문한 Panas라는 이름의 닭다리 하나 밥 하나, 그리고 음료수로 이루어진 세트에도 밥이 빠져서 왔다. 컴플레인을 해도 중간에 있는 사람들만 난처해지니 컴플레인할 수 있는 본사차원의 콜센터가 있는 게 아니라면 그냥 넘어가는 것이 인도네시아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사실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면 될 문제이고 그렇게 아무 일 없이 넘어갔지만 마음에 걸렸던 것은 직원이 변상할 거라는 메시지였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고가의 바지는 아니었지만 정가대로 한다면 하루종일 에어컨도 안 나오는 곳에서 다림질을 하고 있을 직원의 한 달 인건비와 크게 다를 가격이다. 그 직원은 사장에게 혼나고 변상을 약속하는 동안 마음이 적지 않게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손님이 변상을 요구하지 않도록 미리 약간의 과장을 보탠 세탁소 사장분의 지혜? 일 수도 있겠지만 충분히 직원에게 책임을 물릴 수도 있는 악덕자본가 성향을 가진 사장분들도 많다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실수한 직원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연락할 방법도 딱히 없으니 그저 평안하기를 바랐을 뿐이다. 


일하던 재단에서 만난 현지인 직원이 오토바이 헬멧을 쓰지 않아서 딱지를 끊은 적이 있다. 난처한 얼굴로 딱지를 가져온다. 한국돈 이만 원이다. 출근하지 않아서 숙소에 올라가 보면 시름시름 앓고 있다. 병원비와 약값 만원이 없어서 그저 앓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인들에겐 고민이 필요한 액수가 아니기 때문에 바로 처리해 주면 되지만 이들에겐 스스로 처리하기 쉽지 않은 금액이다. Covid-19이 한참일 때 하루 천 명씩 사망자가 나왔었는데 사실 병원에 가지 않고 사망한 사람들을 합치면 그 숫자가 훨씬 클 거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했었는데 이 또한 같은 이유다. 몸이 아파 죽을 것 같아도 병원에 가는 사람보다는 안 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니 말이다. 초등학교 밖에 못 나올 아이들을 중학교까지 보내고, 고등학교까지 공부하는 게 최선인 아이들이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다면 이 친구들의 인생이 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 기회를 얻는 아이들도 결국은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되는 가정들이다. 본질적인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무겁다는 것이 때로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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