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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Apr 19. 2023

아내를 위해 꽃다발을 하나 샀다

오랜만이다

논문 지도교수께서 Guru Besar(구루 브사르)가 되는 날이라 축하행사에 참석했다. 주변에 아직 물어보지 않아서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고 어떤 혜택이 주어지는지도 모른다. 그저 가보니 어마어마한 행사고 일가친척 모두에 엄청난 영예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그냥 가기 뭐해서 동기생들이 모여있는 채팅방에 물어보니 인도네시아에서는 그냥 가면 된단다. 다들 그냥 온다는데 뭘 가져가기도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으니 아내가 그래도 한국인이니 꽃다발이라도 들고 가란다. 아내 말대로 꽃집에 들러 좋아 보이는 꽃다발을 하나 샀다. 125,000루피아, 한국돈으로 만원이 조금 넘었는데 아무리 물가차이가 있지만 가격을 보고는 조금 놀랐다. 사진을 같이 찍을 때 지도 교수께 드렸더니 너무나 좋아하셨다. 기분이 좋으셨는지 박사과정 단톡방에까지 꽃다발 사진을 올려서 고마움을 표하셨다. 역시 아내 말을 들어서 손해 볼 건 없다. 


행사를 마치고 나오다 생각해 보니 집 근처에 꽃집이 없어서 최근엔 기념일에도 아내에게 제대로 된 꽃을 선물한 적이 없었다. 다들 각자 논문들을 쓰느라 특별히 볼일이 없는 대학원 동기들이 같이 모일까 하는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다음에 날을 잡자며 급하게 오토바이를 불러 다시 그 꽃집으로 향했다. 아침에 왔다가 점심에 다시 온 외국인 손님을 보고 꽃집 가족이 놀랐다. 추측해 보건대 컴플레인을 하러 다시 온 손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부부가 꽃을 만들고 이제 막 장성한 딸은 카운터를 보고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남편사장님에게 물어보니 30년째 이 일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딸은 카운터 뒤에 한국의 유명 보이밴드의 로고로 별도의 조명등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내가 한국인인걸 알고는 바로 그 조명부터 보여줬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어딜 가나 한국인인 것 때문에 관심을 받게 된다. 


서른 개가 족히 넘을 사진의 샘플 중 하나를 고르면 그 자리에서 바로 꽃다발을 만들어 주는데 가격은 한국돈으로 몇 천 원에서 시작해 몇 만 원 사이이다. 10만 루피아, 한국돈으로 9천 원 정도 하는 샘플을 골랐다. 아무 날도 아닌데 비싼 걸 고르면 아내에게 혼날 것 같았다. 꽃집에 흰색 장미가 보이지 않아서 물어보니 창고에서 바로 흰색장미를 가지고 나왔다. 꽃다발 가격이 한국보다 많이 저렴하다고 하니, 대뜸 한국꽃은 예쁘지 않냐고 카운터에 있던 딸이 이야기한다. 아무리 봐도 한국과 동일한 품질이었기 때문에 똑같다고 이야기해 주니 깜짝 놀란다. Dari Korea, 한국산이라는 건 이곳에서 동경하는 곳에서 온 고품질의 제품들이기에 충분히 비싼 돈을 지불해도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란 생각이 있을 텐데, 품질이 똑같다는 나의 말에 놀랄 수도 있었겠다.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 온 문구류는 3천 원이라고 쓰여 있는데도 만원을 받는다. 늘 문방구에서 한국제품을 집어드는 아이들에게 그건 한국 들어갈 때 사줄게,라고 달래며 인도네시아나 중국에서 만든 제품을 골라줄 수밖에 없다. 비싼 가격에도 잘 팔리는 걸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고, 많은 이들이 존중하고 동경하는 나라에서 왔다는 사실에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꽃다발을 가지고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깜짝 놀란다. 그래도 괜한 돈을 썼다고 혼내지 않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은가보다. 딸아이는 꽃다발을 보자마자 장미 몇 송이를 뽑아서 나름대로 자신의 공간을 꾸민다. 아들은 역시나 큰 관심이 없다. 열대의 나라에서 꽃이 피고, 시들고, 썩어가는 일은 며칠 가지 않는 과정이지만 가족 모두가 만원의 사치를 통해 그 꽃의 절정의 순간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하면서도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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