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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Apr 29. 2023

De Tjolomadoe 혹은 De Colomadu

네덜란드식민시대의 설탕공장

1862년, 수라카르타 술탄국의 망꾸느가라 4세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와 합작으로 수라카르타(솔로) 지역에 설탕 공장하나를 지었다. 인도네시아 말루쿠지역에서만 생산되던 넛메그와 메이스, 그리고 정향으로 무역에 있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er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VOC)의 부도 이후로 네덜란드 정부가 인도네시아 군도를 직접 지배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식민정부의 이름은 네덜란드령 동인도(Nederlandsch-Indië) 였는데, 인도네시아 전역에 대한 지배권은 사실상 20세기 들어서 잠깐 동안만 획득했기 때문에 식민재배 시기에도 각 술탄국들의 영향력은 공존하고 있었다. 술탄의 지시로 지어진 설탕공장이지만 인도네시아 정부로 이양될 때까지 여전히 설계와 건축, 기계와 운영 등은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영향권아래 있었다. 수탈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Colomadu라는 말은 "꿀의 산"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경제적 측면에서는 수라카르타 술탄국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인들에게도 꿀을 주는 곳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20세기말까지 운영되던 설탕공장은 이제 박물관으로 탈바꿈되었다. 상당히 괜찮은 콘서트홀과 야외 정원, 박물관과 갤러리, 스쿠터 체험 서비스, 그리고 카페테리아에 기념품 샾까지 전혀 촌스럽지 않은 관광지로 변모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무슬림들은 라마단 금식 이후, 보통은 한주정도의 휴가를 갖는다. 르바란이라고 부르는 이 기간은 인도네시아 최대의 명절이기도 한데, 올해는 1억 4천만 명 정도가 이동한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이 기간 동안 한국을 방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기간 인도네시아의 항공권 가격과 호텔가격은 평소의 두 배 이상으로 뛰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집에만 머물 수밖에 없었다. 종교적 관용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진 인도네시아이지만 강성 이슬람주의자들이 부상하고 있는 중이라, 이번 라마단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의 종교부 장관은 밖에서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식당의 유리를 전부 가리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기독교인을 비롯한 타 종교인들이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정치적으로는 상당히 도전적이고 위험한 결정이었다. 때문에 나 역시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약간의 긴장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내가 공부하는 박사과정은 기독교를 비롯한 마이너리티 종교들에 대한 관용과 종교적 자유 등에 대해서 주로 연구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종종 보수적 무슬림 단체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기도 한다. 이슬람주의의 발흥은 전혀 반가운 소식이 아니고 학과 홈페이지에 대문짝만 하게 사진과 이름이 올라가 있는 나로서는 가족의 안전이 늘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걱정은 나의 몫이고 아이들은 그저 집에만 갇혀 지내고 있느라고 답답해하는 중이었다. 여전히 르바란 연휴는 진행 중이지만 아이들이 심심해하는 게 마음에 걸려서 가까운 솔로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던 것이다. 이제는 박물관으로 바뀐 Colomadu라는 이름의 오래된 설탕공장은 살고 있는 족자카르타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수라카르타(솔로)라는 지역에 있는데 두 지역을 오가는 통근열차를 타면 1인당 8,000루피아(약 700원) 정도의 요금을 내면 갈 수 있다. 종점에서 종점까지 가는 것이기 때문에 앉아서 갈 수는 있지만 한국의 지하철과 비슷하게 빼곡하게 사람들이 서 있기 때문에 약간은 불편한 이동이었다. 중간중간 아이들에게 힘들지 않은지 물어보았는데, 오랜만의 여행이라 너무 신나 있었기 때문에 불편함에 대한 미안함은 접어 두었다. 


150년이 넘은 설탕공장의 역사, 그리고 족자카르타 예술가 집단이 만든 전시관들, 그리고 설탕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설명들을 보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설탕공장에서 얻은 이익으로 학교를 만들고, 지역을 발전시킨 역사를 보다 보니, 억압과 착취 가운데서도 이곳의 술탄이 전혀 무능하진 않았나 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창 더운 오후에 집에 가고 싶은지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더 있고 싶다고 했다. 찾아보니 바로 근처에 역시 오래된 설탕공장을 리모델링한 Heritage Palace라는 이름의 트릭아트 뮤지엄이 있었다. 역시 부모와 아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무슨 재미가 있을까, 하고 갔었는데 오전에 들렀던 콜로마두에서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전시된 올드 카들과 트랜스포머 복장을 한 사람들과, 그리고 여러 가지 배경들 속에 들어가 함께 사진을 찍다 보니 아이들에게 생기가 돈다. 끝내 아쉬워하던 아들을 여러 번 설득해서 겨우 다시 통근열차를 타고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긴 여행이건 짧은 여행이건, 여행은 늘 새로움 들을 선사한다. 비행기, 기차, 자동차,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보는 풍경은, 전부 다 다른 모습이다. 같은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접근하는지, 경제학적으로 접근하는지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한산한 도로와, 논밭을 지나 처음 가본 기차역에 내리면서 그렇게 또 새로운 인도네시아를 경험했다. 물가도 비싸고, 배달도 어렵고, 가게도 열지 않는 시간이 많다 보니, 이래 저래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보내던 르바란 휴가를 솔로행 통근열차 덕분에 이렇게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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