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자카르타(Yogyakarta) - 덴파사르(Denpasar)
갑자기 일이 생겨 발리에 가게 되었다. 혼자 가는 일정이고, 육로로 이동해 보고 싶기도 하고, 돈이 충분한 것도 아니라 겸사겸사 버스여행을 선택했다.
구능 하르타(Gunung Harta)라는 버스회사의 침대칸을 한화 5만 원 정도로 예약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좀보르(Jombor)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노선이었다.
오전 10시 차에 타니 차장분이 빵과 스낵, 음료가 담긴 봉투를 건넨다. 기사 두 분, 차장 두 분이 교대로 근무하는데 비번인 경우에는 뒤칸에서 잠을 잔다. 18시간 동안 버스는 쉬지 않고 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온라인으로 처리할 일들을 마치곤 동영상 강의 하나를 틀어놓고 잠이 들었다. 3시간을 갔는데 겨우 고속도로 입구다. 멀미약이 독한 건지 다시 잠이 들었다. 차장 한분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버스가 이미 식당에 도착했다. 프라스마난(Prasmanan, 간단한 뷔페식) 식당이고 버스요금에 식대가 포함되어 있다.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에 갔는데 지갑에 잔돈이 없다. 로컬 화장실엔 보통 한화 200원 정도의 요금을 내곤 하는데 미처 준비가 안 된 것이다. 다행히 식당직원은 돈을 내지 않아도 무방한다고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버스에도 화장실칸이 있었지만 사용하기가 불편한 상황이었다.
다시 몇 시간을 가니 고속도로가 끝났고, 쿵쾅거리는 국도로 또다시 몇 시간을 가다 깨어보니, 내가 탄 버스가 훼리에 실려 있었다. 버스에서 주는 컵라면을 하나 먹고 갑판에 내려 새벽바다를 구경했다. 발리의 서쪽 끝은 자바의 동쪽 끝인 바뉴왕이(Banyuwangi)에서 눈앞에 보일 정도로 지척이지만 시커먼 바다를 보니 뭔가 다른 세상을 향해 가고 있는 것처럼 신비로워 보였다.
동남아와 호주의 생태계는 확연히 다른데 이를 나누는 가상의 선이 월리스(Wallace) 라인이다. 발리와 롬복사이에 그 경계가 설정되어 있으니 나는 여전히 아시아에 속해 있다. 월리스라인 건너에 있는 인도네시아의 파푸아주에는 코알라와 개미 핥기가 산다. 라인의 서쪽으로는 여전히 호랑이와 코끼리 등이 존재한다. 오스트로네시아 인종은 월리스라인 서쪽이 뭍으로 연결되어 있던 오랜 옛날 인도네시아 군도까지 내려와 자리를 잡았고, 동쪽지역은 멜라네시아 인종의 영역이다.
30분이나 지났을까, 훼리는 발리의 길리마눅(Gilimanuk) 쪽에 도착했고 버스는 다시 덴파사르를 항해 다소 위험한 주행을 계속했다. 예정보다 다소 이른 새벽 3시 40분 버스는 덴파사르에 도착했다. 시차를 계산하면 17시간이 조금 덜 걸렸지만 원래의 운행시간은 18시간이다.
씻고 움직여야 해서 그랩 오토바이를 불러 레기안(Legian)의 한 호스텔로 향했다. 그랩비용은 3500원 호스텔비용은 만원 정도다. 뭔가 챌린지를 하는 느낌이라 약간의 팁을 제외하고는 조금의 비용이라도 더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약속시간까지의 몇 시간은 꾸타(Kuta)의 비치웍(Beachwalk)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보내고 있다. 가족 없이 혼자서 할 일도 없다 보니 오랜만에 브런치 어플을 다시 다운로드하여 삶의 기록을 남기는 중이다. 훼리에서 본 밤바다도 신비로웠고, 호스텔과 비치웤 옥상에서 보는 해변도 흐렸지만 아름다웠다. 삶에서 생기는 작은 문제들은 누리는 삶의 은혜에 비할 바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