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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호랑이 Sep 19. 2016

닮고 싶은 그녀


"신 대리가 일을 참 잘해. 같이 일해봤는데, 꼼꼼하고 똑 부러지게 일처리를 하더라고."


이번 주에만 벌써 세 번째 신 대리 칭찬을 들은 신입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과장님, 신 대리 자리는 어디예요?"

"신 대리? 저기 화분 옆에 갈색으로 염색하고 머리 묶고 있는 사람 있지? 저 사람이 신 대리야."

"아, 저분이 신 대리였어요?"

사무실을 오가며 봤던 여직원이었다. 볼 때마다 노트북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눈에 불을 켜고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저렇게 집중하고 있는 거지? 노트북에 구멍 뚫리겠다.'

신 대리가 일하는 모습은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녀가 게시판에 올린 글만 봐도 철두철미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신 대리가 있는 B부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신입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글을 풀어서 써놓았고, 다시 한번 리마인드 할 수 있도록 자료를 첨부하여 전 직원이 안내사항을 완벽히 숙지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신 대리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뒤부터 신입은 보고서를 작성할 때, 심지어 메일을 보낼 때에도 신 대리가 작성한 자료를 참고했다. 보고서에는 도표와 그래프를 적절히 포함시켰고, 메일 받는 사람이 제목만으로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도록 제목 한 줄 작성할 때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신 대리가 작성한 보고서를 출력해 참고하며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기척 없이 다가온 권 과장이 말을 걸었다.

"신입, 무슨 자료를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는 거야?"

"아, 이거요. 신 대리가 공지했던 자료인데요, 잘 만든 것 같아 참고하면서 보고자료 만들고 있어요."

"그래? 모방은 성공의 어머니라고, 좋은 생각이네."

"네. 따라 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긴 한데, 그래도 도움 많이 되는 것 같아요."

"흠, 근데 말이야. 다른 사람 보고서는 참고만 하고 똑같이 만드려고는 하지 마. 처음부터 다른 사람 틀에 맞춰 일하다 보면 나중에는 그 틀을 벗어나기 힘들어. 막막해도 나만의 방식을 창조하는 훈련을 해야지."


신입은 모두가 칭찬하는 신 대리가 부러웠다. 그녀가 하는 대로 똑같이 따라 하면 자신도 언젠가 그녀처럼 칭찬받는 직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권 과장이 말한 것처럼 일을 배우는 단계에서부터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틀에 갇히기는 싫었다. 그 날 저녁, 회사 앞 도서관에 들러 보고서 및 기획서 작성하는 방법에 대한 책 두 권을 빠르게 읽었다.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원리는 다음과 같았다.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한 줄로 정의하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라

What / Why / How / IF를 정확하게 제시하라


'보고나 기획하는 방법이 책으로 잘 정리되어 있네. 관련 도서도 엄청 많고. 앞으로는 전문서적 참고하면서 나만의 방식을 만들어야겠어.'


다음 날 아침, 지하철에 내려 사무실로 걸어가는데 앞에 신 대리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신입은 남몰래 짝사랑하고 있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H팀에 새로 오신 분 맞으시죠?"

"네, 맞아요."

"신입 들어온 뒤부터 H팀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남자밖에 없어 다들 무서워하는 부서였거든요. 호호. 남자 직원 사이에서 홍일점 역할 잘 하고 계신 것 같아 보기 좋아요."

이제 막 통성명을 끝낸 사이였지만, 신입은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고 대뜸 질문을 던졌다.

"대리님,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대리님은 일하는 게 재미있으세요? 지나다니면서 일하시는 모습 봤는데, 항상 즐겁게 일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호호. 그랬어요? 저는 원래 일 좋아해요."

"네? 일을 좋아하신다고요? 야근도 자주 하시는 거 같던데, 일하는 게 왜 좋으세요?"

"흠, 매일 새로운 일이 생기기 때문에 끊임없이 배울 게 있잖아요. 공부할 것도 계속 생기고요. 작년부터 MBA 시작했는데 새로운 걸 공부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미간을 찌푸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신입을 보고 신 대리가 웃었다.

"이왕 일하는 거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죠. 저도 대리 1년 차에는 이 분야로 온 걸 진짜 많이 후회했어요. 왜 이렇게 힘든 일을 시작했을까 하면서요. 그래도 그 속에서 재미를 찾아야 해요. 그게 열심히 일하는 나를 위한 예의이기도 하고요"

신 대리는 일만 똑 부러지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매너, 일에 대한 가치관 모두 흠잡을 데 없었다. 또각또각 걸어가는 신 대리 뒷모습을 보며 신입은 생각했다.

'신 대리님은 내가 한동안 자신을 따라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르시겠지.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애쓸 필요는 없어. 나도 언젠가 신 대리님처럼 누군가에게 닮고 싶은 사람이 되면 그걸로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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