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는 괴로워

그는 그녀의 뺨을 휘갈기고 거칠게 밀쳐냈다.

by 오조

'인신 매매' 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는 몰도바는 걱정했던 것보다 안전한 나라였다. 이를 테면, 밤 9시에 도심 쪽 후미진 골목을 동양인 2명이서 걸어다니더라도 여태껏 위험한 일은 없었다. 물론, 특별히 위험한 지역이 있긴해도 생각보다 안전한 나라였다.

몰도바에는 희안하리만치 일방통행이 많고, 시내가 아닌 이상 횡단보도가 많지 않다. 대신 지하 굴다리(?)를 이용해 이동한다. 한 번은 밝은 대낮에 그 굴다리를 통해 이동하다가 늙다리 주정뱅이 노숙자 할배에게 불쾌하고 경미한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꽤나 눈에 띄는 젊은 동양여성으로써 안전의 중요성을 알기에 늘 촉을 곤두세운다.


버스를 기다릴 때면 안전해보이는 현지인들 가운데 섞여 줄을 선다. 지난 1년간의 데이터 베이스를 기반으로, 주로 아주 젊은 여성이나 올챙이 배를 가지신 어르신들의 곁이 가장 안전하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나이가 들어도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과 호기심은 꺾이지 않는지, 95프로 이상의 확률로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신다. 또 내가 스탄 국가 출신이겠거니 생각이 드시면 종종 러시아어로 말을 걸어오신다. 공용어는 루마니아어이지만 소련의 잔재인 러시아어도 흔하게 들을 수 있다. 특히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께서 러시아어를 사용하시는 편이고, 몰도바 북쪽의 여러 마을들은 러시아어만 사용하기도 한다.



버스 정류장 쪽으로 앳돼보이는 구릿빛 피부의 여자가 유모차를 끌며 다가오고 있었다. 18살은 됐을까. 엄마도 아이도 무언가 지저분해보이는 옷차림새이다. 사람들은 안 보는 척 보고 있었고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집시라는 것을.


찰-싹!

그녀가 한 무리에게 다가간지 5초만에 들려온 소리였다. 이내 분노에 찬 고함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직감적으로 무리 중 한 명에게 곤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날 따라 무슨 공사를 하는건지 버스 정류장 앞은 차가 늘어져있고, 한 트럭 아저씨께서 경적 소리로 그 남자에게 경고하며 무어라 말씀하셨다. 남자는 아저씨 쪽으로 다가가 토로하듯 대답했고 루마니아어라 전부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아마 집시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말을 했겠지.

그녀는 핏기 없는 얼굴로 불꽃같은 비난을 받아내다 결국 담배 한 대를 얻어 피우고는 다른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한 쇼핑몰의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와 아이를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선뜻 그녀에게 다가가 금전적인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나는 여행자가 아니다. 이 곳에 자원 봉사자로 살고 있는 사람이자 몇 안 되는 동양인이다. 함부로 도와주었다가는 감당되지 않는 불편한 일이 생길 것이 뻔했다.


그녀가 하고 있는 일은 분명 문제가 많은 일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비판하기 보다 그녀가 아이와 함께 무사히 돌아가기를 기도해주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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