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별을 따라가라 1부. 1장(1/3)

1부. 성장통 - 카자흐스탄 편 - 1장. 카이로스Καιρός를 따라서

by 청연
모든 성장에는 성장통이 있다. - 니체 -
성장통 - 카자흐스탄 편 Intro.


카자흐스탄의 국화는 백합(Lily)이다.

백 개의 껍질이 모여 하나의 알뿌리를 이루는 백합은

140여 종족이 모여 한 나라를 이루고 사는 그 들의 모습과 참 닮았다.

중앙아시아의 거인 카자흐스탄!

내겐 해외 생활 중 겪은 100가지 성장통 중 99가지를 겪은 나라.

돌아서면 그립고 다가서면 가시처럼 따가웠던 곳.

그래서 나는 그곳을 ‘애증(Love and hate)’이라 부른다.

아직 애증의 카자흐스탄에는 나의 꿈, 그 절반이 남아있다.




세 갈래 길

인생, 결국 선택이다.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나이가 든 어느 먼 훗날, 아마 그 어딘가에서 탄식하며 이 이야기를 하겠지.
나무 아래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더 적은 사람들이 밟은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그 모든 것 - 운명조차 바꾸어 놓았다고...

- 로버트 프로스트, ‘The Road Not Taken’ 중 (작가 번역) -


결혼 전 아내의 활동반경은 굉장히 넓었다. 가까운 중국에서 저 멀리 아프리카까지. 아내는 이십 대 중반, 생전 들어 본 적도 없는 서아프리카의 아주 작은 나라 감비아로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떠났었다. 갑작스러운 행보로 주변 사람들을 적잖이 당혹게 했었는데, 감비아에서 2년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국해, ‘해외 출국 잠복기’ 중 우연히 나를 만났다.

‘바람의 딸’ 한비야 님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너무 좋아했던 그녀는, 호시탐탐 그와 같은 기회를 노리는 사람이었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처럼 나에게 발목이 잡혀 두 딸아이를 낳고 날개를 접었지만, 그녀는 늘 내가 꿈꾸었던 하늘만큼이나 더 넓은 세상을 동경했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카페(한식당)를 같이 해보지 않을래?


*Кафе(카페): 현지에서는 중급 수준의 식당을 보통 ‘카페’라고 부른다, 이하 카페


얼마 전 아내의 오랜 친구인 싸샤(Саша, ‘Alexander’의 러시아식 애칭)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카자흐스탄에 사는 한국교포(고려인) 3세인데,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지만 아내와는 벌써 십년지기 친구였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그와는 얼마 전 SNS를 통해 다시 연결되었다는데, 그사이 싸샤는 카자흐스탄에서 제법 성공한 사업가로 변모해 있었다. 아내는 그를 아주 정직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조심스럽게 카자흐스탄에서의 카페 공동창업 제안 얘기를 꺼냈다.


그것이 이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이었고, 그 짧은 한 줄의 메시지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왜 하필 이 시기에?


사실 얼마 전부터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곧 다가올 소령 진급 심사를 앞두고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원래 내 군생활 목표는 '20년 군 복무 - 군인연금 수혜 조건'을 채우고, 퇴역 때까지 성실히 군 생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확고했던 목표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최근 (육군 항공) 선배들 사이에서 민간항공사 조종사로 이직 붐이 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사람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역 후 국내 또는 주로 미국 소재 비행교육원에서 고정익 조종 교육을 재이수한 그들은, 파일럿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메이저급 민간항공사로 대부분 채용이 되었다.

나 이번에 00 항공에 부기장으로 채용됐어!

가깝게 지냈던 선배, 동기가 민간항공사 부기장으로 채용됐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축하의 메시지와 박수를 보냈지만, 솔직히 숨길 수 없는 부러움이 밀려왔다. 최근에는 그 뒤를 따르겠다고 출사표를 던지는 동기들이 더 많이 늘었고, 까마득한 후배들까지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다 보니, 어느새 나도 점점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이 중요한 결정의 시기에, 여태 꿈도 꿔보지 않았던 사업 제안이 갑자기 들어왔다. 그것도 해외에서!


해외 이민과 창업. 정말 다시없을 기회일까?

처음에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해외 사업 제안에 아주 당혹스러웠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설레고 두근거렸다. 사업. 이민. 나와는 너무도 무관했던 단어들. 그런데 이상하게 생각할수록 마음을 격동케 했다.

사실 이 제안을 받았을 때는, 해외여행 경험조차 거의 없을 때였다. 필리핀으로의 신혼여행과 미국 LA로 열흘간의 초청 방문 경험이 전부. 사실 LA도 방문 주목적은 현지 조종사 비행훈련원을 직접 방문해서, 비행 교육 비용과 여건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1억 원이 넘는 현실적 교육비용은 부담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몇 년 더 직장생활을 하며 돈을 모으고, 퇴직금을 보태면 교육비용을 마련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만 남겨두고 왔었다. 다만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언젠가 기회가 있다면 미지의 땅 미국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인간,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갈대

숙고하고 숙고할수록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은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 독신이었다면 결정이 좀 더 쉬웠겠지만, 아무래도 가장이란 무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으로서 나의 꿈 그리고 가족, 이 둘 사이에서 가장 균형 있고 이상적인 길을 택해야 했다. 총알이 넉넉하다면야 뭐가 문젤까? 일단 한 발 쏴보고 표적에 맞지 않으면 다시 조준해서 쏘면 되겠지만, 지금 내 형편은 ‘일발필중 (One shot, One Kill)’ 하지 못할 일이라면 차라리 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마음 하나, 진급, 원한다고 내 맘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사실 진급도 내가 원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최선을 다해서 좁은 문을 향해 뛰고 있으니, 내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오죽하면 ‘진급자 발표 날에는, 무덤에 잠자던 귀신도 일어나서 본다’라고 할까? 혹, 진급에서 계속 누락된다면 결국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마음 둘, 성공적인 이직, 민간항공사 조종사로의 전환도 마음같이 쉬운 일은 아니다.

고정익 조종사로의 전환 교육 비용은 약 1억 원에 달하고, 비행교육 시간과 타임빌딩(최저 비행시간, 항공사 채용 기준) 시간도 1년여 가까이 걸린다. 물론 채용의 보장은 없다. 기회비용을 톡톡히 치러야 하는 선택이다.

그렇다면 이직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사실 지금은 막연한 기대감과 이전에 없던 길을 개척해가야 할 선구자가 아니라는 약간의 안도감만 있을 뿐이다. 다만 주변인들이 그 길을 가고 있기에 나도 열심히 그들을 따라가다 보면 마침내 그 꿈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먼저 이직한 선배와 동료들은 다들 능력 자라서인지 하나같이 메이저 항공사로 채용이 되었지만, 나는 그들보다 늦게 그 과정을 겪어야 하는 상황이니 내게도 그런 ‘운’이 따라 줄지는 미지수다.


마음 셋, 사업,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객관적으로 또 좀 더 멀리 보자면 직업군인이든 민간항공사 조종사든 직장생활의 궁극은 은퇴다.

그럼 은퇴, 그다음엔?

평생직장 생활로 집 한 채 사기 어려운 시대다. 아이들도 키워야 하고, 얼마간 여유 자금을 모은들 노후 생활 자금으론 충분하지 않을 터 또 무언 갈 해야 할 것이다. 그건 아마 소규모 자영업 같은 개인 사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은퇴 시점에는 나이가 적지 않을 테니...

그렇게 꼬리를 물었던 스스로에 던진 질문과 대답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해야 할 일이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인간은 실로 '미래 근시안'이다.
운명을 갈라놓을 세 갈래 길. 그리고 망설여지는 결정.
최대한 목을 내밀어 그 끝을 더듬어 보고 싶지만, 그 모든 길의 끝은 너무도 희미하고 아련하기만 했다.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

“아직 결정 못 했어?”

싸샤는 어떤 방향이든 빨리 결정 내려 주기를 원했고, 특별히 강권하진 않았지만 긍정적인 대답을 바라는 그의 기대가 느껴졌다. 아내도 내게 최종 결정은 맡겼지만, 은근히 도전해보기를 원하는 눈치였다. 나는 아직 민간항공사로의 이직과 해외 창업 사이에 서 있었다. 감당해야 할 무게와 가능성을 저울질하면서.


Opportunity seldom knocks twice.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

그리고 최종 결정을 위한 마지막 질문에 도착했다.

나 같은 보통 사람이, 해외 공동창업 제의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이미 성공한 사업가로부터...


결국, 내 결정은 카자흐스탄으로 향했다. 고심할수록, 나와 우리 가족에게 우연인 듯 찾아온 이 갑작스럽고 특별한 제안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기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내 생에 두 번 다시없을 ‘기회’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남들은 정말 평생 구경도 못 할,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바보가 되어서야!



내가 선택한 ‘자유’ 사업가의 꿈


마침내 미지의 세상으로의 설레는 이민과 성공적인 창업 그리고 폭넓은 의미의 ‘자유’는,

10년이 하루 같이 반복되는 '군생활 루틴'속에서 잠자고 있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새로운 꿈이 되었다.


자유. 자유. 자유!

나는 무의식적으로 사업가 앞에 거듭 ‘자유’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유’라는 단어에 자꾸 설레고 마음이 쏠렸다. 사실 장기복무 직업군인들은 ‘전역’을 곧 ‘자유’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심각한 착각, 착시현상이지만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막연하지만 심장 떨리는 ‘자유’는, 지난 10년의 군 생활 동안 가장 동경해왔던 것이기도 했다. 이미 조종사라는 꿈을 이루었기에, 그다음은 어떤 사람이 또 무엇이 되는 것보다 ‘자유롭게 사는 것’ 그 자체가 꿈이었으니까.

박수 칠 때 떠나라!

나는 ‘손뼉 칠 때 떠나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좋은 시작을 훌륭한 끝맺음으로 완성하기에 어쩌면 지금이 가장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문, 치열한 진급 경쟁에서 씁쓸히 밀려나기보다 지금 충분히 좋을 때 스스로 잘 마무리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사실 내 생애 가장 뜨겁고 아름다웠던 시절을 불사르듯 최선을 다해 달려온 지난 나의 군 생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손뼉 쳐 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선의의 진급 경쟁자들은 쌍수 들어 물개 박수를 쳐 줄 게 분명했다.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그 지혜로운 선택에!

꿈은 현실적이어야 한다

재물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경제적 성공은 세속적이지만, 가장 현실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또 아무래도 젊고 열정 넘치는 지금이라면 혹, 실패하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이 꿈의 최대 수혜자는 아이들이 되길 바라며

끝으로, 앞서 나열한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두 딸아이 양육의 문제. 아직 너무도 어린 두 딸아이의 나이는, 이제 만 세 살 그리고 막 돌이 지난 만한 살이다. 우리에겐 아직 작은 인형 같고 핏덩이 같은 가장 소중한 우리의 ‘미니어처’들이다. 지금으로선 사업이 얼마나 언제쯤 성공적으로 안착할지 알 수도 확신할 수도 없다. 다만 ‘경제적 자유’ 다음에 ‘시간의 자유’가 온다면 물 머금은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날 아이들과 함께 더 많이 걷고 싶다. 더 넓은 세상 더 많은 나라를 여행하듯 거닐며 더 많은 '공유한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꿈. 가능하면 '지도밖까지 행군' 하고 싶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지도 밖으로...

정말 이 마지막 바람이 이루어진다면, 그 모든 과정도 결과도 다 좋다는 뜻일 것이다.


꿈을 향해 밟는 가속 페달 바로 옆에는 항상 브레이크가 있다.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의 반응은 확실히 부정적일 것이다. 결정을 내림과 동시에 떠오른 그들의 반응은 ‘너, 미쳤구나!’였다. 비록 금수저, 은수저는 아닐지라도 현상 유지만 해도 배곯을 일 없을 ‘강철 수저’ 쯤은 되는 직업군인이라는 든든한 직장을 내려놓겠다면... 헬기 조종사라는 희귀한 라벨도 접어 두겠다면... 듣도 보도 못한 나라 카자흐스탄으로 전격적인 이민과 사업이라곤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모든 걸 쏟아부어 카페 창업에 도전하겠다면... 그 비상직적인 결정을 이해해 달라고 한다면... 벌써부터 그들의 일그러진 표정과 만류의 말들이 읽히고 들리는 것 같았다. 환영은커녕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나를 만류할 것이다.

늘 그렇듯 용기 있는 도전과 꿈을 향한 길에는 항상 주변인들의 ‘진심 어린’ 걱정과 근심이라는 브레이크가 걸리기 마련이다. 사실 그들의 ‘진심 어림’이 문제다. 정말 진심이니까.


사실 이런 ‘미친’ 듯한 선택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날 보병 소대장을 마치고, 육군 항공 병과로 전과하려 했을 때도 그랬다. 사실 나는 남들보다 아주 늦게 개과천선하듯 ‘인생 목표’를 발견했다. 오랜 방황을 끝내고,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 학군장교로 임관했을 때, 나의 군번은 동기들에 비해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가벼웠다. 그 덕에 보병 병과에서 그 군번만큼만 늘 선두를 유지한다면 장군도 바라볼 수 있겠다는 가끔은 아주 쑥스러운 칭찬도 받았었다. 그런데 돌연 육군 항공 병과로 전과하겠다며 지휘관에게 전과 시험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했을 때 나는 얼마나 ‘아름다운(?)’ 격려를 받았는지 모른다. 물론 나는 그것이 나를 아꼈던 선배 장교서의 진심 어린 관심과 사랑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혹, 아니었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내 어릴 적 꿈, 하늘을 나는 조종사가 되고자 하는 그 첫걸음에 걸렸던 아주 강력한 브레이크였다. 그 후로 말할 수 없는 여러 고초가 따랐지만, 끝내 나는 내 꿈을 찾아 떠났고 마침내 헬기 조종사가 되어 꿈꾸던 하늘을 마음껏 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그 브레이크를 견뎌내고 극복하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어쩌면 죽을 때까지 하늘을 동경만 하며 살았을 것이다.


내 인생은 나의 것. 한 번뿐인 인생 간절하고 생생한 꿈을 좇아 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후회 없는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들(Dream Breakers)의 고견’이 아니라, ‘나의 꿈’이다.

물론 선택에 대한 책임도 내 것이다.

나는 새로운 꿈에 충분히 설득되어 있었고, 이 결정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싸샤에게 전화해줘요. 우리가 카자흐스탄으로 가겠다고!


희망은 있지만, 보장은 없는 길
내 주변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
대부분의 사람이 선택하지 않는 길
그래서 타인의 정답지를 커닝하기도, 조언받기도 어려운 길


그 미지의 길에

피 끓는 젊음과 태양같이 뜨거운 열정을 ‘올인(All in, 몰방, 沒放)’했다.

나의 전부를 걸었다.




눈을 덮은 긴 앞머리는

나를 마주치는 사람이 나를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나를 놓쳐 버리면 다시는 나를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오, 이방인이여!

그대에게 경고의 교훈을 주기 위해 나는 이곳, 문 앞에 세워졌노라.

나는 모든 것의 정복자 카이로스 곧, 기회다!

Kairos(Καιρός), the all-subduer, the opportunity!


이태리 토리노 박물관, 카이로스(Kairos)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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