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별을 따라가라 1부. 1장(2/3)

1부. 성장통 - 카자흐스탄 편 - 1장(계속) 카이로스를 따라서

by 청연
성장통 - 카자흐스탄 편, 1장 카이로스를 잡다. 계속(2/3)


운명은 나의 편, 천군만마千軍輓馬를 얻다


스탄, 스탄... 카자흐스탄!

생면부지의 그 땅은 한국에서 4,200km나 떨어져 있다는 실제적 거리만큼이나 심적 거리도 멀었다. 사실 처음 카자흐스탄이라는 나라 이름을 들었을 때 지구 상 어디쯤 붙어있는 곳인지도 잘 몰랐다. 세계지도를 펼쳐서 확인하고서야 러시아 바로 아래 동쪽으로 중국을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라는 걸 알게 됐다. 중앙아시아 대부분을 차지하는 어마어마하게 영토가 넓은 나라였다. 무려 세계 9위!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나라를 여태껏 모르고 살았지?


사실 지방 극한 시골에서 태어나 일찌감치 직업군인의 길로 들어선 나는 세계지도를 볼 일조차 없었다. 지구본도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이념 체제가 달랐던 이전 사회공산주의 국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학교에서 조차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사회공산주의'라는 그 단어 자체가 입에 담기 무섭고 심지어 불경스럽게 치부되었기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1980년대에 초등학교를 나는 적극적인 대남 전단 살포, 소위 '삐라'의 마지막 세대였다. 어릴 때 학교를 오가는 시골 오솔길과 논바닥에 '삐라'가 심심찮게 발견되었고, 한 손 가득 주워 학교에 제출하면 노트나 30cm 자를 포상으로 받았었다. 그러니 당연히 당시 사회공산주의의 구심점이었던 구소련은 교육과 관심에서 괄호 밖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러시아는 세계를 움직이는 강대국중 하나이니 자세히는 몰라도 국가명만큼은 익숙했다. 하지만 구소련 70년 동안 러시아가 품고 있었던 국가들, 이후 구소련 붕괴 후 독립한 신생국들에 대해서는 관련 지식이 전무했다. 싸사와의 인연이 없었다면 아마 평생 관심의 '괄호 밖'의 나라들이 었을 것이다.


카자흐스탄을 처음 들어 본건 결혼 직후 처녀시절 아내의 다이내믹한 세계 여행기를 들었을 때였다. 아내가 마치 바람같이 훌쩍 아프리카 감비아로 떠났던 그 여정에 카자흐스탄이 경유지로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 싸샤와 특별한 인연이 되었고, 그 이후 서로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가 오늘 동업을 이야기할 만큼 가까운 관계에 이르게 했다.


아무튼 생각조차 못했던 극단적이고 급직적인 인생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생면부지의 미지의 땅 카자흐스탄으로 이민하고 무려 사업까지 시작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시쳇말로 아직까진 대박이다.


카자흐스탄,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브리지(Bridge)
* 카자흐스탄공화국은 중국, 러시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그리고 서쪽으로 카스피해를 국경으로 한다. 주변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거대한 영토를 가진 나라인지 실감된다.


불쑥불쑥 드는 생각. 동업 괜찮을까?

오로지 파트너 한 사람만 믿고 얼마 안 되지만 그나마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던지는 게 올바른 선택인가?


아, 누가 인간은 의심의 동물이라 했던가? '지혜로운 사람'이란 뜻의 생각하는 인류 - 호모 싸피엔스는 그 숙고의 본성을 버리지 못한다. 단지 문제는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는 인간이 된 것이다. 이미 결정은 내린 상태였지만, 이 조금은 '위험한 기회(Risky opportunity)'에 나와 가족의 운명이 달려있기에 한동안은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일말의 의심이 있어 구두로 맺은 약속을 물릴 수 있다면, 아직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은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다.


위험한 동거, 고정관념

걱정이 쉽게 사그라 지지 않았던 이유는 동업과 공동창업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썩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실 동업은 그 말로가 늘 좋지 않다고 들은 적이 있다. 서로 협력하며 성공적으로 사업을 일으키고 오랜 시간 또 세대를 이어가며 번성한 공동창업 사례가 많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 학부시절 경영학도로서 기업 성공 사례를 수도 없이 조사했지만, 공동창업주의 성공기는 드물었다.

동업이나 공동창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무엇보다 기업이 잘되면 잘되는 대로 안되면 안 되는 대로 문제가 생길 소지를 항상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도 의견의 차이가 있고, 때로는 다툴 때가 있는데 다른 사람이야 오죽하랴! 그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데칼코마니 같이 꼭 맞춘다는 건 마치 어지럽게 펼쳐놓은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동업은 그 자체로 '위기'다.


신뢰, 오로지 신뢰!

투자 자본은 동일하게 한다 할지언정 투입하는 각각의 노력의 양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서로에게 걸었던 기대만큼 부지런히 움직여 주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지? 몇 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이런 의문과 걱정은 싸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리는 아직 일로서 서로를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함께 하기로 결정했으니, 이젠 오로지 사업 준비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직 싸샤와 일면식도 없는 나의 걱정을 간파한 아내가 싸샤에 대한 자신의 신뢰를 거듭 강조했다. 그 말은 일리가 있었다. 결정을 바꾸거나 무르지 않을 것이라면, 차라리 그 시간을 온전히 사업 준비에 쏟는 것이 더 현명했다. 일단 힘을 모으기로 한 이상 서로를 신뢰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가 이곳에서 준비하고 노력하는 이상으로 그도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공동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고 믿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한치의 의심 없이 그를 믿기로 결정했다.


협업, 소통이 가장 중요

싸샤는 자기 의견을 숨김없이 오로지 '직선'으로 솔직하게 표현했다. 처음에는 마치 ‘돌직구’처럼 직설적인 그의 표현에 당황스러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히려 그게 훨씬 더 유익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상대방의 심리상태, 즉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으니 탐색을 위한 불필요한 에너지의 낭비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극단적으로 다르기에 표현의 방법은 차이가 많았지만, 소통에 막힘이 없다는 건 '형통'이란 대로에 가까이 있다는 걸 의미했다.


환상의 '컬래버레이션'을 위한 전략

생각해보면 동업과 협업에도 매력은 충분히 있다. 상호 간 신뢰와 원만한 소통을 전제로 한다면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성공전략이 될 것이다. 각자의 재능을 보태 혼자서는 불가능할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 또 서로가 잘하는 것을 구분 지어 함께 또 각자가 전략적으로 사업을 준비하는 것 그것이 협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렇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면서, 이른 시일 내에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가 구상한 윈-윈 전략이었다.


사업 무경험. 요식업 무경험. 해외 생활 무경험. 깨끗해도 너무 깨끗한 백그라운드

어쩌면 떠나기로 결정한 것은 이후의 준비과정에 비하면 훨씬 쉬웠다. 그저 마음만 먹으면 되는 것이었으니.

마치 백지상태 같은 지금,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든 게 뜬구름 잡는 것 같이 막막하기만 했다.


“일단, 카자흐스탄 현지 준비는 내가 할 테니 주방 준비에만 신경 써.”


카페 공동창업에서 우리는 한식과 몇 가지 현지 음식을 만들어낼 주방 전체를 맞았고, 사업허가와 제반 법적 조치들 그리고 사업장 내외부 공사 등은 현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싸샤가 맡기로 했다. 주방은 요식업의 핵심이니 우리의 역할이 너무도 중요했다. 그만큼 부담이 컸지만, 애초에 싸샤가 동업을 제의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으니 우리는 최선 그 이상의 것을 준비해야 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요식업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카자흐스탄에 거주하고 있는 싸샤와는 매일 인터넷으로 화상회의를 했는데, 그도 요식업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자주 아이디어의 한계에 봉착했다. 우리가 회의 중 가장 많이 사용했던 말은 ‘아마 그렇겠지?’였다. 사실 ‘최신 한국 스타일 카페’라는 외형적인 목표 외에는 모든 게 불확실했다. 아직 매장으로 사용할 장소도 정해지지 않았다. 장소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그 규모에 맞추어 준비해야 할 제반 주방 물품과 인테리어, 익스테리어 재료들도 견적을 낼 수 없었다. 카페에서 제공할 메뉴도, 그 메뉴를 위해 필요한 여러 집기류와 용기, 용품들까지 온통 물음표 투성이었다. 그저 우리 집 작은 주방을 참고해 대량 조리에 적합한 ‘업소용' 주방을 상상해 볼 뿐이었다.

그제 서야 본격적으로 부담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정말, 너무 겁 없이 뛰어들었다.


요식업, 맨 마지막에 하는 장사

그래서 음식 장사는 맨 마지막에 하는 거야!


우리의 ‘좌충우돌 준비 열전’을 한동안 지켜보셨던 장모님이 너무 답답하신 듯 입을 여셨다. 말수가 적으신 장모님은 웬만해선 참견하시는 성품이 아니신데, 오로지 열정밖에 없는 우리가 심히 걱정되시는 모양이었다.


“맞아! 그러고 보니 엄마 예전에 함바(공사 현장 현지 임시 식당 - 일본어 잔재) 했었잖아!”


아내는 그동안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장모님이 공사 현장 임시 식당을 운영했었던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막내딸이자 장모님과 단짝인 아내는 갑자기 쌍꺼풀 없는 눈을 크고 동그랗게 떠 장모님을 바라보며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엄마, 우리랑 같이 갈래요? 애들도 좀 봐주고, 주방일도 좀 도와주시고요. 그러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 잘되면 사업장 하나 드릴게요!”


사실 아내는 우리가 카자흐스탄으로 떠나면 몇 해 전 홀로 되신 장모님이 외로우실까 걱정을 많이 했었다. 더욱이 우리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어린아이들을 누가 어떻게 돌볼 것인지 고민이 많던 차였다. 아내의 제안대로 정말 장모님이 함께 가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상황이었다.


“엄마야! 내가 거길 어떻게 가? 말도 안 통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릴!”


장모님은 일흔을 바라보고 계신 연세였다. 신앙심 깊고, 말수가 적고, 인심이 후하신 장모님은 동네에서 인기가 많으셨고, 그만큼 맡고 계신 일도 많으셨다. 그런데 갑자기 막내딸 내외가 외국으로 같이 떠나자고 하니 깜짝 놀라 정색하셨다. 다만 같이 가자고 끊임없이 조르며 몸을 비비는 아내의 애교에 한 번 기도는 해 보시겠다며 가능성의 문은 열어 두셨다.


이 세상, 내리사랑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

결국 장모님은 우리와 함께하시기로 하셨다. 두 손녀, 특히 아직 기저귀도 못 뗀 막내에 대한 걱정과 그동안 맞벌이하고 있던 우리 부부 대신 지금껏 길러주신 큰딸이 너무 눈에 밟히신 탓이었다. 안락한 보금자리를 떠나 인생 느지막한 연세에 모진 타향살이를 하게 해 드려 너무 송구했다. 하지만 장모님의 용감한 결정 덕분에 우리에겐 가장 강력한 지원군이 생겼다.

장모님의 극적인 합류, 그렇게 우리는 다섯이 되었다.

‘천군만마千軍萬馬’라는 표현으론 부족했다. 마치 ‘만군만마萬軍萬馬’를 얻은 것 같았다.




Fortune favors the bold!

행운은 용감한 자의 것이다!

- 영어 속담 -


keyword
작가의 이전글너의 별을 따라가라 1부. 1장(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