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별을 따라가라 1부. 1장(3/3)

1부. 성장통 - 카자흐스탄 편, 1장 카이로스를 따라서 (3/3)

by 청연
성장통 - 카자흐스탄 편, 1장 카이로스를 잡다. 계속(3/3)


순풍, 그리고 제하분주濟河焚舟


비자는?

사업과 이민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최고 관심사는 비자였다. 합법적으로 장기 체류하려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유효기간이 길면 길수록 좋았다. 싸샤가 현지 한국 대사관과 카자흐스탄 이민국을 통해 취득 가능한 장기비자를 알아봐 주겠다고 했는데 며칠째 소식이 없어 조금 답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자흐스탄으로 보낼 물품 컨테이너를 분주히 채우고 있는데 싸샤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아주 좋은 소식이야. 그린카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현지에서 소위 ‘그린카드’라고 불리는 ‘거주권(вид на жительство-비드 나 쥐쨀스트보)’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이었다. 영주권 제도가 따로 없는 카자흐스탄은 사업목적이나 다른 이유로 장기체류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승인해주는 거주권 제도가 있는데 사실상 영주권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별다른 조건 없이 필요한 서류만 잘 갖추면 바로 거주권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정말 굿뉴스였다. 먼 항해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어서 가라고 순풍이 불어주는 것 같았다.


다만 거주권 신청을 위해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가야 할 서류들이 많았다. 모든 서류는 우리나라 외교부에서 아포스티유를 받아야만 했다. 반드시 아포스티유를 받아가야 외국에서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어 지역 관공서와 서울 외교센터를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는지 모른다. 당시에는 ‘가족관계 증명서’ 같이 한글로만 발급되는 공문서가 있었는데 그런 서류들이 가장 문제였다. 공인 번역사와 법무사를 통해 영문으로 또 일부 서류는 러시아어로 번역 공증하고 다시 외교부에서 아포스티유를 받아야 했다. 국제 표준 공문서 서식과 맞지 않아 서류 준비에 발생했던 큰 불편함이었다. 이 일에만도 시간과 비용이 적잖이 들어갔다.

무엇보다 건강해야 해. 안 그럼 말짱 도루묵이야!

우리에겐 해외 이민 경험에 대해 직접 조언받을 수 있는 지인이 딱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것도 구소련 국가와는 색깔이 전혀 다른 미국 이민자. 그는 먼저 축하와 더불어 걱정의 목소리를 보탰다. 당신이 처음 미국으로 이민 갔을 때 고행했던 기억이 떠오른다면서...

이민 1세대는 무조건 고생하는 거 알지?


그곳과 카자흐스탄 상황은 많이 다르겠지만, 해외 생활 경험이 단 1도 없는 우리에겐 일반적인 조언조차 도움이 많이 되었다.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건 건강이라고 했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국가 의료보험제도가 발달해 있지 않아 아프면 병원비가 아주 많이 드니 꼭 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했는데, 반대로 의료 후진국이라면 무엇보다 의료 수준이 낮아 문제가 되지는 않을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정말 일리 있는 얘기였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을게 건강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은 가장 보편적인 진리니까...


지금은 다들 건강하지만, 그곳에서도 건강해야만 한다. 건강은 이제 우리에겐 '의무'가 된 느낌이었다. 물론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또 건강이지만... 무엇보다 이제 유년기를 지내고 있는 아이들이 걱정됐다. 지난 몇 년간 두 아이를 키우면서 급성 고열 감기와 바이러스로, 새벽에 몇 번이나 응급실로 비상 출동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어린아이의 숨겨진 혈관을 찾지 못해 몇 번이나 찌르는 바늘에 눈을 질끈 감고 아이를 붙잡고 있어야 했던 기억은 언제고 가슴을 철렁 이게 한다.

아, 그러고 보니 애들 예방접종은 그곳에서 맞힐 수 있으려나?


싸샤는 카자흐스탄이 이제 막 1만 달러 정도의 개인소득 국가로 올라선 나라라 의료시설이나 기술이 우리나라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했다. 특히, 국가 질병 관리 체계가 다르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필수인 일본뇌염 같은 일부 예방접종은 아예 백신 자체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조언은 이랬다.


“맞힐 수 있는 예방접종은 다 맞히고 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이들은 지역 보건소를 방문해 예방접종을 마쳤는데, 이제 한국 나이로 두 살밖에 안 된 둘째는 아직 남아 있는 예방접종 빈칸이 너무 많았다. 몇 년 뒤나 한국에 들어올 수 있을 텐데, 그때까지만 아프지 않고 잘 지나가기만을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치과에서 아직 아프지도 않은 사랑니를 뺐다. 몇 달 전 조금씩 아리던 사랑니 하나를 뺄 때도 고생했지만 멀쩡한 녀석을 일부러 건드린 이번에는 정말 턱이 다 내려앉는 줄 알았다.


그렇게 우리는 몸과 마음이 카자흐스탄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보통사람, 감격스러운 꿈의 잉태

우리의 거친 꿈을 이루어줄 아주 작은 것 - 숟가락 하나부터 생전 처음 사본 업소용 대형 냉장고에 이르기까지 수개월에 이르는 준비 끝에 마침내 어느 햇살 좋은 날 포워딩 작업을 마치고 컨테이너 문을 닫았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뿌듯하고 또 울컥했다. 마치 컨테이너가 자식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인지... 아마도 한 없이 쏟아부은 정성 때문일 것이다.


아내와 둘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준비했던 모든 과정은 엄청난 체력 소모전이었다. 컨테이너는 정말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었다. 혹시 모르니 하는 아쉬움에 하나도 더 가져가라고 빈 공간 하나 없이 컨테이너를 꽉 채웠다. 무엇이든 구할 수 있고 더없이 풍요로운 한국을 떠나야 하는 자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40ft 컨테이너의 공간이 그렇게 넓은 건지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넓은 공간을 다 채우고, 두껍고 무거운 양쪽 철문을 닫고, 봉인(씰) 처리할 때, 그 오묘한 느낌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그것은 '위대한 꿈의 잉태'라고 부를만한 아주 보통사람의 용기 있는 또 감격스러운 첫걸음이었다. 이 컨테이너가 우리보다 앞서 카자흐스탄에 도착해서 우리를 맞을 것이고, 이 것이 씨앗이 되어 열매가 맺힐 테니까...


함부로 꾼 꿈의 대가, 가슴 시린 상처

사실, 생에 첫 컨테이너 작업은 또 다른 의미에서 나와 아내에게 생애 가장 가슴 아프고, 아찔한 순간으로 남았다. 한날 컨테이너를 준비하고 있을 때, 그날따라 우리를 따라나섰던 첫째가 작업장 주변에 있던 칼같이 날카로운 샌드위치 패널 모서리에 왼쪽 뺨을 깊게 베인 사건이 있었다. 너무도 길고 깊게 패어, 피부가 벌어져 뼈가 드러난 상처와 거기서 멈춤 없이 흘러내리는 피를 보면서, 나와 아내는 생애 처음으로 숨을 쉬지 못하는 고통을 맛보았다. 정말 그게 나였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너무도 미안하고 아픈 마음. 부모의 마음...


불행 중 다행이라고 조그만 더 상처가 깊었으면, 왼쪽 뺨은 평생 웃지 못했을 거라는 의사의 말에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지금도 생생한 그 아픔의 순간은 지금도 아이의 얼굴에 남아 있는 흉터를 볼 때마다 심장을 철렁하게 했다. 매일 거즈를 떼고 독기 오른 듯 까실한 실밥에 닿으면 아플까 봐 조심스레 상처를 소독해 주면서 독하게 다짐을 했다.


아빠가... 너의 아픈 상처를 절대 헛되지 않게 할게...

편도 항공권을 출력하며

편도로 예매한 카자흐스탄행 항공권을 출력해서, 서류철에 끼우니 이제 정말 떠난다는 것이 실감 났다. ‘편도’라는 의미는 돌아 옮을 기약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막상 떠나려니,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정든 곳을 떠난다는 섭섭한 마음이 교차했다. 아마 한국이 또 지금 내 자리와 내 모습이 싫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더 그런 것 같았다. 문득 창 너머 석양을 보다가 군복 입고 거수경례했던, 노을에 어린 마지막 국기 강하식이 떠올랐다. 정말 많이 그리울 것 같았다.


마지막 여행. 그 바다 돌아옴 없을

이제 한동안 어쩌면 몇 년을 뵙지 못할 부모님, 가족들과 마지막 작별의 시간을 보내고 경기도 포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한국에서의 마지막 가족 여행으로 계획했다.

“바다가 좋겠지?”

“무조건, 바다로!”

우리는 동해, 남해, 서해 해안을 따라 무작정 해안 길을 달렸다. 그저 바다를 따라 달렸다. 아쉽게도 내륙 국가인 카자흐스탄에는 바다가 없다. 늘 곁에 있었지만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무척 그리워질 바다였다.

여보, 저 풍경 좀 봐. 너무 아름다운데!


달리고 달리다 붉은 노을이 마지막 순간을 고하는 서해안 어느 해안절벽 길에서 잠시 멈추어 섰다.

흩어 뿌려둔 것 같은 섬들 사이 너울지는 파도에 그 잔잔히 일렁이는 바다를 그러데이션 하듯 붉게 물들인 곳.

이 땅에 삼십 년을 넘게 살면서, 내 조국에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이토록 많다는 걸 몰랐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지금껏 너무 앞만 보고 바쁘게 달려온 탓이겠지?


못내 아쉬운 마지막 석양의 순간까지 말없이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았다. 노을 풍경 사이사이 크고 작은 배들이 항구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해 질 녘 집으로 돌아오는 배와 사람들. 그 풍경을...


아내가 살며시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언젠가 우리도 저 배들처럼 돌아오겠죠?”

“그럼. 언젠가는... 비록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다만, 오늘 타고 가는 배는 아닐 것이다.

편도로만 계획한 첫 항해가 끝나면, 우리가 타고 간 배는 그곳에 태워질 테니까...




인생은 절대 왕복 티켓을 발행하지 않는다. - R. 롤랑 -


우리는 매 순간을 ‘살 (Alive)’ 아야 한다.

단 한 번뿐인 단편 인생.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시간은 절대 돌아옴이 없기 때문에...




마지막 여행. 풋풋했던 때


한 장의 사진에 참 많은 것들이 담겼다.

나의 턱수염은 군 생활 동안 늘 동경해 왔던 ‘자유’의 상징이었고,

큰딸의 얼굴에 남은 가슴 아린 상처는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해선 안 될 우리 꿈의 ‘가치’였다.

지금껏 우리는 행복했지만 새로운 꿈과 희망이 있기에 더 행복할 것이다.

꼭! 그래야 한다.




이제 우리 이야기는 2장. '중앙아시아의 거인을 만나다'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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