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철부지 파일럿 아빠와 유쾌한 그림쟁이 딸

by 청연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다시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 날개, 이상화 -



날개


의미 없는 어제와 무기력한 오늘.

꿈은 배신했고

희망은 등을 돌렸다.

무의미한 일상은

무자비한 운명의 칼등, 그 생명력의 절벽에서

까치발 세워 버티고 있는 나를 키득키득 비웃 고만 있다.


깊은 어둠으로 밀려오는 심연의 권태.

끝도 없이 늘어진 삶의 그림자들...

긴 한숨 내뱉은 자리에는

알 수 없는, 그러나 익숙한 실루엣이 어른거린다.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려워 온다.

아, 때가 왔구나!

마침내 신호가 왔구나!

저 높은 곳에 어서 오르자.

정오의 사이렌이 울리면

한 번만 더

그래, 한 번만 더

희망을 노래하자.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다시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 청연 -




글 초보 아빠와 유쾌한 그림쟁이 딸의 'Deal'


아빠 : 딸, 30여 편의 글과 30여 편의 그림으로 우리만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보는 건 어때?

딸 : 음... 괜찮을 것 같아요.

아빠 : 그래. 그럼 너의 그림 30여 작품을 내가 살게.

그럼 내가 네 그림의 첫 고객이네? ^-^

딸 : 좋아요. 그럼 어떤 그림을 그리면 되죠?

아빠 : 음. 아빠가 짧은 글이나 시를 써서 보내줄게.

아빠의 글을 읽고 나서 너의 느낌에 따라 자유롭게 그려주면 좋을 것 같아.

정해진 틀은 없어. 다만 아빠가 필요할 땐 어떤 느낌이었으면 좋을지 말해줄게. 그럼 되겠지?

딸 : 네. 좋아요!


2021년. 4월.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겁 없는 아빠와

그림을 밥 먹듯 그리는 유쾌한 딸의 '딜'은 그렇게 성사되었다.

무엇보다 나의 글(아빠의 생각)을 읽는 아이의 생각이 궁금했고

그것을 자기만의 느낌으로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랐다.

또한 아빠로서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적절히 응원해줄 수 방법을 고민한 결과였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에서

도전의 'Passion'(열정과 고통 - 창작의)과 피, 땀으로 일궈낸 성취의 기쁨을 돕고 싶었다.

그 첫 느낌으로

그림뿐만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추구하게 될 어떠한 영역에서도 주저함 없이 도전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제 열셋.

종잡을 수 없는 봄바람 같은 이른 사춘기에 접어든 딸의 생각이

전문적 그림의 배움이 전무한 '나이브 Naive - 순수' 한 그의 손끝에서 창조될 그림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서로 같은 또 다른 시선


서로 호흡도 맞출 겸 연습 삼아 보내준 첫 문구는 나의 글이 아니었다.

일부러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는 글을 시험 삼아 보냈다.

최근 읽었던 책 중에서 갈무리해 두었던

당시 몇몇 지인들에게 공유하고, 공감하며 또 삶의 의미를 생각게 했던 글이었다.

"인생은 숨을 쉰 횟수가 아니라 숨 막힐 정도로 벅찬 순간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로 평가된다."
"당신은 단지 조금 숨을 쉬면서 그것을 삶이라 부르는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중에서
temp_1618709092861.1625332980.jpeg 며칠 뒤 딸이 보내온 그림


딸 : 아빠, 날개를 그리기가 너무 힘들어요!

오늘 안에는 완성 못합니다.

아빠 : (엥? - 무슨 말이지? ㅡ.ㅡ;) 괜찮아요.


며칠 뒤 카톡으로 딸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날개를 그려 보냈다.

'웬 날개?'

내가 보낸 글에는 '날개'라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에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많이 궁금했지만 딸의 생각을 더 묻지 않았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

동 작가(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중에 있는 글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림의 방향을 묻지 않는 것은

딸을 초보 작가로서

또 내 글에 그림을 담당하게 될 파트너로서 인정하는 배려의 의미였다.


무엇보다

그림이 완성되면 알게 될 것이니..

temp_1618705755589.-1277433638.png 유쾌한 그림쟁이 딸의 첫 - 여전히 미완작 '날개'


며칠 뒤 딸은 아직 채색하지 않았지만 '틀'은 완성된 그림이라며 내게 보내왔다.


'하!'


인생, 숨, 숨 막힐 듯 벅찬 순간 그리고 삶.

열셋 딸에게 조금은 난해할 단어들에 대한 반응을 기대했던 나는 작은 탄성을 내었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라고 해서

새를 그릴까 했는데

그 새의 느낌을 담아서 날개 달린 소녀를 그렸어요."


딸은 글을 품고 있는 책 제목에 시선이 더 간 듯했다.

내 생각과 조금은 방향이 다르고 엉뚱했지만

어떠한 설명도 없는 세줄의 글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그려낸 것만큼은 정말 대단했다.



날개


며칠 뒤 딸아이가 그려 보내준 날개 달린 소녀를 무심히 바라보다

문득 소설 '날개'가 떠올랐다.

무능한 자아와 무기력한 일상.

생기 없는 나날들 가운데

어느 날 한 점 - 옥상, 정오의 사이렌 소리 - 에서 힘주어 외쳤던 소리!


"날개야, 다시 돋아라!"


어릴 적 교과서에 실린 이 소설의 일부를 읽었던 때에는 미처 발견치 못했던 단어가 보였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다시'는 언젠가 한 번은 돋았던 날개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었다.

지금 간지러운 겨드랑이 바로 그 자리에서 말이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날자'라고 말이다.


'다시 돋을 날개'는

살아 있지만 죽은듯한 삶에 다시금 생기를 불어넣어

마침내 다시 자유롭게 날개 할 '희망'일 것이다.

그 희망은 '갱생'을 품은 '부활'이 될 터다.


그리곤 '날개'라는 제목으로 서둘러 몇 자 적어 내려갔다.

무익하고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감히 생사의 가름을 판단하고

희망이 상실된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언젠가 돋아났던

그 날개가
다시 한번 돋아 났으면 하는 바람이 적혀 내려갔다.

다시 한번 날 수 있는 날을 노래하는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나의 날개.

나의 꿈이 쓰였다.


그리고 다시 딸에게 회신해 주었다.


"너의 그림이 다시 나를 꿈꾸게 하는구나! 고마워!"




나에게 '날개'는 '여행'이다.

익숙한 그러나 늘 새로운 여행

그러므로 내게 여행은 '다시 희망'이다.

- 청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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