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끝없는 이야기 주머니, 신비한 이름 케냐

아모르 파티 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 - 니체 -

by 청연
5장. 끝없는 이야기 주머니, 신비한 이름 케냐
- 키베라 Kibera, 나이로비의 정글
- '신의 선물' 가발 러시
- 아프리카에서 뜨거운 크리스마스를
- 빛나는 산호 사장, 몸바사
- 쌍무지개? 아니 삼 무지개!


키베라 Kibera, 나이로비의 정글

나이로비에 정글이? ‘정글’이란 뜻의 키베라 Kibera

직장 동료들과 케냐 현지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 우연히 세계 3대 빈민촌이 나이로비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키베라 Kibera - 정글 또는 밀림이라는 뜻’라는 지역인데 나이로비 이렇게 번화한 도시 한복판에 그런 빈민촌이라니 도무지 상상이 안 됐다.


궁금한 건 잘 못 참는 성격이라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키베라는 필리핀의 ‘톤도 Tondo’, 브라질의 ‘호시냐 파벨라 Favela in Rocinha’와 더불어 세계 3대 빈민촌이라고 했다. 여의도보다 작은 면적에 약 70만 명에서 최대 100만 명 가까이 모여 산다고 추산한다는데 정확한 인구통계조차 내지 못하는 곳이었다. 대략의 나이로비 인구의 무려 1/4이 거주하는 곳 키베라. 정말 상상하기조차 힘든 엄청난 규모의 빈민촌이다.


키베라, 쓰레기 더미 속 어린이 / 출처 : 유니세프 홈페이지, 케베라 리포트


관련 영상을 찾아보니 정말 그 살아가는 환경이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나도 일곱 살 때까지는 흙벽과 나무 기둥, 슬레이트 지붕을 주재료로 한 아주 오래된 집에 살았었지만 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채 1m도 안 되는 판자촌 샛길로 오가는 사람들. 쓰레기 더미와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 먹을 것이 극히 부족하고 전기도 화장실도 없는 곳. 의료 시설도 약도 절대 부족한 곳. 대부분 일용직으로 하루 벌어 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 도무지 21c 기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5분쯤 되는 영상을 보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에 탄성이 났다. 정말 빈민촌의 대명사라는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Urban poor 도시 빈민들’이라고 키베라를 소개하던 영상은 많은 관심과 도움을 호소하면서 끝을 맺었다.


절망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아이들

그런데 영상을 보는 내내 배경음악으로 흘렀던 노래가 참 인상적이었다. 열악한 환경을 보여주는 영상과는 너무도 대비되는 밝고 경쾌한 음악이었는데 해맑은 소리의 아이들 합창이었다. 스크롤을 내려 보니 영상 아래에 노래 제목이 적혀 있다.


Jambo bwana잠보 브와나(안녕하세요! 선생님)


‘Jambo bwana’는 뎀 머쉬룸스 Them Mushrooms라는 케냐의 한 호텔 밴드가 1983년에 발표한 곡이었는데 가사가 참 단순하고 희망적이었다. 특히 가사의 거의 절반이 ‘Hakuna matata 하쿠나 마타타 - 문제없어요’였다. 아주 익숙하고 단순한 후렴구의 반복이었는데 그 경쾌한 후렴구가 한동안 귀에 맴돌았다.


케냐 예투, 하쿠나 마타타! (케냐는 문제없어요!)




Jambo Bwana 안녕하세요 선생님


Jambo, Jambo bwana,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Habari gani, Mzuri sana. 잘 지내세요? 저는 아주 좋아요.


Wageni, Wakaribishwa,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Kenya yetu Hakuna Matata. 케냐는 문제없어요.


Kenya nchi nzuri, 케냐는 참 좋은 나라예요.

Hakuna Matata. 걱정하지 마세요!


Nchi ya maajabu (케냐는) 참 신비한 나라예요.

Hakuna Matata. 걱정하지 마세요!


Nchi yenye amani, (케냐는) 참 평화로운 나라예요.

Hakuna Matata. 걱정하지 마세요!


Watu wote, Hakuna Matata, 여러분들 걱정하지 마세요!

Wakaribishwa, Hakuna Matata.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문득 무려 25년 전 대 히트했던 ‘라이온 킹’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심바, 품바 그리고 티몬이 함께 불렀던 ‘하쿠나 마타타’라는 OST가 떠올랐다. 그때 귀여운 미어캣을 캐릭터 화한 티몬은 이렇게 말했었다.


나를 따라 해 봐. 하쿠나 마타타! 걱정하지 말란 뜻이야. 정말 멋진 말이지.


기회가 되면 한 번은 꼭 방문해 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어떤 여행자들은 키베라를 ‘관광코스’라고 간다는데 사실 ‘관광’이라는 어감이 좀 불편하게 느껴졌다. 키베라 거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다행이겠지만...


키베라 하늘에 걸린 신발, 그 조촐한 희망들


멀리서 바라본 키베라, 생각보다 거대한 빈민 거주 지구

어느 날 나이로비 외곽 '카렌 Karen'이란 지역에 새로 대형 쇼핑몰이 개장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주말에 한 번 방문해 보려고 구글 맵으로 경로를 확인하다 보니 마침 키베라 옆을 지나가는 도로를 이용했다.


어쩌면 지나가면서 키베라를 볼 수도 있겠구나.


아이들과 함께 키베라 내부로 들어가긴 좀 무리인 듯해서 미뤘었는데 지나는 길에 전체 풍경이라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길을 나섰다.


나이로비 타운을 관통해 남부 순환로를 따라가다 보니, 드디어 저기 오른쪽 언덕 아래로 키베라 판자촌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서 전체 풍경을 보니 그 규모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얘들아! 저기 좀 봐봐! 저기가 키베라야.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이래... 마실 물도 없고 화장실도 없대...”


아이들은 차창에 붙어 키베라 판자촌을 바라보았다. 사실 이런 곳은 ‘살아있는 배움의 현장’이다. 아이들이 충분히 눈으로 담을 수 있도록 천천히 차량 속도를 줄여 이동하면서 저곳 사람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지 미리 공부한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늘 그렇듯 이야기의 시작은 부드러웠는데 조금 흥분해서 어느새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우리는 정말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거다. 그렇지?


어찌 아이들이 다 이해할 수 있을까?

다만 눈에 담긴 이 생생한 모습과 아빠가 해준 이야기가 그들 어딘가에 남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살다가 언제든 ‘신세 한탄’될 때 오늘을 떠올리며 힘을 냈으면 좋겠다. Jambo Bwana 노랫말처럼 하쿠나 마타타! 하면서...


“저쪽 길 너머, 오른쪽 언덕부터는 골프장이야.”


키베라 오른쪽 끝에서 불과 몇십 미터나 될까?

넓고 잘 관리된 골프장이 바로 옆에 보였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부유와 빈곤의 대조가 너무도 극명했다. 마치 넘을 수 없는 선이 그어진 듯한 키베라 둘레길 그래서인지 더 어둡게 느껴지는 곳 키베라였다. 지난번 봤던 영상이 머리를 스쳤다. 맨발로 신나게 뛰어놀던 코 흘리게 꼬마들의 모습이...

미뤄둔 버킷리스트. 우물파기

“NGO에서 일하는 당신 친구가 우물 하나 파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든다고 했었지?”

물이 부족한 아프리카 곳곳에 생명수가 되는 우물 파는 일은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다. 나라별로 기초 인프라와 개발 여건이 달라 개발 비용도 차이가 크게 난다고 했다. 그런데 우물을 파는 것도 파는 거지만 계속 식수로 쓸 수 있도록 위생 점검하고 유지관리도 필요하다. 그래서 한 우물 당 적어도 천만 원에서 많게는 3천만 원 가까이 예산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 이곳에 사는 날 동안. 언젠가는...


마음은 있지만 아직은 그만한 주머니의 여유가 없다.

아쉽지만 ‘언젠가 그러나 꼭’으로 미루어 둘 수밖에 없다.


떠나보니 다시 보이는 것

“그러고 보면 한국은 진짜 천국이지?”

“두말하면 잔소리죠!”


아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의견에 동의했다. 사실 한국에서 살 때는 조국 한국이 얼마나 안전하고 풍요로운 나라인지 지금 만큼 확실하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간 카자흐스탄과 케냐 두 나라를 살아 보면서 또 거쳐 온 다른 나라까지 견주어 보아도 정말 한국만 한 나라가 없었다. 한국보다 후진국들에서만 살아봐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해서 아내에게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럼, 카자흐스탄은?”

“아, 카자흐스탄! 생각 좀 해봐야겠어요... 적어도 거긴 마실 물이 부족하진 않았지!”




지난 해외 생활을 통틀어

아직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보다 더 좋은 나라를 만나보지 못했다.




케냐 나이로비, 또 다른 빈민촌 고로고초 Korogocho


‘고로고초 Korogocho’는 스와힐리어로 ‘쓰레기’란 뜻이다.

나이로비에는 또 하나의 최대 빈민촌 고로고초 Korogocho가 있다.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이곳에 12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들어 재활용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곳.

절망의 끝 같은, 정말 신조차 외면한 듯 남루한 곳.

그러나 그들에게도 꿈과 희망은 있다.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면 그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나와 우리가

조금만 그들의 꿈과 희망을 응원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신의 선물’ 가발 러시

가발, 과연 신의 선물!

가발 업계는 11월부터 12월 중순까지가 연중 가장 바쁘다. 바로 크리스마스가 눈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넓게 보면 영국, 프랑스를 필두로 한 옛 서구 제국들의 아프리카 식민지 정복과 지배의 영향으로 현재도 아프리카 대륙 전체 인구의 약 45%(약 6억 3천만 명, 2018년 통계)는 기독교 신자들이다. 특히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케냐는 인구의 80%가 기독교인. 그러다 보니 크리스마스는 케냐의 국민 축제이면서도 아프리카의 축제이기도 한 것이다.


가발은 흑인 여성들을 위한 ‘신의 선물’이라 불릴 만큼 그들의 미용을 확실하게 책임지고 있다. 누구나 가장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축제의 시기 가발은 이때만큼은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반드시 챙겨야 할 필수 아이템이다. 그러다 보니 본인의 미용을 위해 또 선물용으로도 각광받는 가발이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 그 수요의 절정에 달했다.


여기까진 즐거운 비명?

‘가발 시즌’ 절정에 들어선 12월부터는 정말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폭발하는 수요에 대비해서 미리 물류창고를 꽉 채워 두었었는데 하루가 무섭게 줄고 있고 국내외로 크리스마스를 대목을 겨냥한 대량 제품 출하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아직 창고지기 초년생인 나에게는 조금 벅찬 일들이었는데 가끔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한계에 도달하기도 했다.


아... 안돼!


정말 웃긴 얘기지만 가발에 눌리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실감 나도록 생생하게 꾸었던 그 꿈은, 대형 트럭에 올려 싣던 가발 자루가 우수수 쏟아져서 망연자실했던 것이다. 남자들이라면 혀를 내두르는 군대에 재입대하는 꿈만큼이나 껄끄러운 꿈이었다.


이건, 그냥 비명!

하늘이라도 도와주면 좋겠는데 나이로비 기준으로 4~5월 우기 다음으로 11~12월이 비가 가장 많이 오는 시기다. 오늘도 비 때문에 한바탕 했다. 출하하려고 거래처별로 배송할 제품들을 노상 시멘트 바닥에 빼곡히 쌓아두었는데 먹구름이 밀려오더니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품이 비에 젖기 전에 전 직원을 동원해 창고 안으로 다시 옮겨야만 했는데 결국 아침 내내 분주하게 해 놓은 분류작업은 수포가 되었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도 이런 야단법석을 피웠다. 이렇게 한 바탕씩 하고 나면 정말 에너지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이런 해프닝들로 시간이 지연되어 배송이 계획보다 늦어지면 거래처에서 본사로 바로 연락이 왔다.

“제품 독촉 전화가 왔어요! 도대체 언제 출하해요?”

“네, 방금 출발했습니다~!”

이 난장판을 보여 줄 수도 없고, 그저 빨리 보내겠다고 할 수밖에... 마치 ‘막 출발했다’고 하는 자장면 배달 개그나 다름이 없었다. 일이란 게 적당히 바쁘면 시간도 잘 가고 일할 맛도 나서 좋긴 하지만, 이런 ‘주문 폭주’의 시기에는 매일 같이 독촉의 비명을 질러야 했다.


하라까! 하라까! 빨리빨리!


오늘도 무사히 잘 다녀오겠지?

마침내 제품을 가득 싣고 출발하는 배송 차량을 보면 늘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이렇게 바쁜 시기에는 도난 사고 발생률도 높기 때문이었다. 한두 개의 제품 분실부터 차량을 몽땅 털리는 위험까지. 그저 하루를 안전하게 잘 마무리하는 것만큼 간절한 것도 없는 시기였다.




[자투리 가발 이야기]


여자의 변신은 무죄!


가발은 가히 흑인 여성들에게는 ‘신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기능적으로는 생필품이지만, 헤어스타일이라는 심미적인 면에서는 최고의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예쁘고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여성들에게 가발은 정말 확실한 효과를 보장했다. 이건 생산 공장에서 근무하면서 ‘월급날 이후’ 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변신은 무죄, 예뻐져 울린 남심은 유죄!


사실 검은 피부색 때문에 웬만한 화장으로는 도드라지는 아름다움을 다 표현하기 어렵다. 물론 화장품이 싸지도 않다. 비용이 좀 들더라도 풍성한 인공 모발로 스타일을 더해주면 단번에 화사하게 변한다. 마치 새 옷 입은 ‘나비’ 같은 느낌? 특별한 날 여성들은 마음에 드는 가발 제품을 직접 사서 미용실로 향한다. 한 여직원은 미용실에서 전문적인 스타일링 받을 때 편안한 의자에 앉아 변신(?) 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나라마다, 사람마다 '아름다워지는 방법'은 다르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인간의 참 본성이다.



아프리카에서 뜨거운 크리스마스를!

처음 맞아보는 크리스마스다운 크리스마스

사실 우리 가족도 현지인들 못지않게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로 들떠 있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지난 몇 년간 고생한 모두를 위해 특별한 선물이 될 특별한 여행을 계획했기 때문이었다. 목적지는 케냐 최고의 휴양지 몸바사 Mombasa! 드디어 케냐 버킷 리스트에 넣어 두었던 곳 중 한 곳에 처음으로 동그라미표를 칠 기회가 왔다.


따뜻한 바닷가 햇살이 부서지는 산호 사장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상상만으로도 행복이 파도같이 밀려왔다. 연일 계속되는 연장근무에 몸은 엿가락처럼 늘어졌지만 아프리카에서 처음 누려볼 크리스마스 다운 크리스마스에 마치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부푼 꿈으로 살았다.


나이로비에서 몸바사까지 거리와 경로를 살펴보니 편도로 쉬지 않고 달려서 8시간 조금 넘는 거리였다. 생각보다 이동 시간이 오래 걸렸다. 거리상으로는 500km 정도인데 8시간이 걸린다면 도로 사정이 썩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도로 상황 분석을 끝내고 구글 맵에 경로상 주요 포인트 표시하고 있는데 아내가 조금 불안한 듯 말했다.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역주행하지 말아요!”

케냐에서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그 먼 거리를 무사히 운전해 갈 수 있겠냐는 무사고 20년 자존심에 실금 가는 소리를 했다.


여보, 하쿠나 마타타! 몰라?


여행,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상쾌한 바람

마침내 숨 돌릴 틈도 없던 연말 배송 전쟁이 무사히 끝났다. 드디어 올해 마지막 근무일 퇴근 날! 정말 이보다 더 기쁜 날은 있을 수가 없다. 고생했다고 회사에서 보너스를 챙겨줘서 더 기쁜 마음으로 긴 연휴를 맞이했다.


따르릉!


새벽 4시 반. 출발을 재촉하는 자명종이 시끄럽게 울었다. 사실 기대감에 더 일찍 출발하고 싶었지만 안전 문제를 고려해서 결정한 출발 시각이었다. 8시간을 달려 몸바사에 도착, 늦은 점심을 먹고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알찬’ 첫날 계획이었다. 잠이 덜 깬 아이들을 차에 조심스레 태우고 출발하면서 한 다섯 시간 만이라도 더 자줬으면 하고 바랐다. 일찍 깨어서 멀미라도 하면 모두가 힘들어질 테니까.


나이로비를 빠져나온 후 한참 동안은 어둠으로 주변 풍경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고지대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한 사행 길이 많았는데 역시나 도로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러다 서서히 동이 트고 날이 밝아오자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눈앞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평원 길을 달리니 마치 거대한 아프리카 사파리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달려가니 뼛속까지 전해지는 상쾌함이 어제까지 완전히 늘어져 있던 몸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었다.


아, 이 살아있는 기분!


생기를 불어넣어 인간에게 생명을 주었다는 성경의 이야기처럼, 상쾌하게 가슴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지쳐있던 모든 세포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는 듯했다.


첫 번째 서프라이즈, 도로를 점령한 원숭이 무리


“여보, 모니터링 잘하고 있지? 졸면 안 돼!”


이른 새벽엔 교통량이 많지 않아 길을 독차지하고 달렸다. 운전에 문제없다고 호언장담했었지만 혹시나 실수로 역주행하지 않으려고 아내의 ‘모니터링’을 요청해 두었다.

사고가 났나?


저 앞쪽에 차들이 비상등을 켜고 멈춰 있어 뒤따라 속도를 줄여 멈춰 섰다.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보니 원숭이 한 무리가 도로를 점령하고 있었다. 진풍경을 놓칠세라 잠들어 있던 아이들을 흔들어 깨웠다.


“얘들아, 원숭이 좀 봐!”

“와! 원숭이다. 저기, 새끼도 있어요!”


눈을 비비며 잠이 깬 아이들이 원숭이를 보고 소리쳤다. 물론 원숭이를 처음 본 건 아니지만 이렇게 도로를 전세 내듯 점령하고 있는 야생 원숭이 무리는 처음이었다. 몇몇 원숭이들은 먹을 것 좀 달라며 천천히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치 ‘한 푼 줍쇼!’ 하듯 적선을 바라는 생생하고 간절한 표정이 압권이었다.

아내가 간식으로 먹으려고 챙겨 온 빵과 과자 몇 조각을 창밖으로 던져주니 큰 원숭이가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낚아챘다. 그러다 실소를 터트렸는데 다른 원숭이들이 빵조각을 차지한 원숭이를 바라보는 표정이 ‘리얼’하게 부러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다시 우리에게로 눈을 돌렸는데 마치 ‘뭐 좀 더 없니?’하는 것 같았다. 얼른 빵조각과 과자를 몇 개 더 던져주고선 조심스럽게 원숭이 무리 속을 통과해 다시 속도를 냈다.


“왠지 통행료 내고 가는 것 같은데? 그치?”


그림 속을 달리는 고속도로, ‘A109’ The Nairobi–Mombasa Road

지나가는 풍경 하나하나가 그림 같았다. 녹색 초원지대, 평원에 불쑥 솟은 검은색 언덕과 적색 토양 반사막지대 그리고 그 위로 새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다양하게 펼쳐지는 이국적이고 아프리카적인 풍경에 연신 감탄이 터져 나왔다. 사실 연휴를 나이로비 근교에서 보낼까도 고민했었는데 과감하게 떠나오길 정말 잘했다. 물론 보지 않았으면 아쉬움조차 없었겠지만 한번 보고 나니 한 번만 보기는 참 아까운 풍경이었다.


코끼리다!


한참을 달려가다 도로 주변으로 나무가 제법 울창한 지역을 지날 때 코끼리 한 마리가 나뭇잎을 뜯는 모습이 보였다. 갈 길은 바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속도를 최대한 줄이고 코끼리가 있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아쉽게도 교통법규와 치안 상 함부로 갓길에 차를 정차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눈을 떼지 못하고 흥분해 탄성을 쏟아냈다.


그런데 코끼리가 저렇게 막 돌아다녀도 되는 건가?


하기야 이 대지의 원주인은 그들이 아니었던가... 중간중간 지나치는 이정표를 보니 저런 대형 야생 동물들이 출몰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이로비에서 몸바사로 가는 가장 빠른 길 ‘A109’ 번 고속도로는 광대한 자연보호지구와 국립공원들을 관통하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얘들아, 다음엔 뭐가 나올까?

“음... 사자요!”

“오, 그건 좀 위험한데!”


사실 이 길을 먼저 다녀간 여행자들의 후기 같은 것들도 있었겠지만 매일 일에 쫓기다 보니 그런 것들을 찾아볼 생각조차 못 했었다. 그래서 무작정 목적지만 정하고 출발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잘된 것 같았다. 무엇을 마주치게 될지 모르는 이 길이 더 설레고 더 기대됐다.


세 번째 서프라이즈, 난생처음 본 바오바브나무

“어! 저기 바오바브나무 아닌가?”

어느 이름 모를 언덕을 넘고 내리막길로 접어드는데 눈앞에 바오바브나무 군락지가 펼쳐졌다. 거대한 바오바브나무를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어린 왕자에 나왔던 거대하고 이상하게 생긴 나무로 행성을 파괴할 수도 있는 아주 무서운 바오바브나무! 그래서 매일 같이 뽑아버려야 할 못된, 악역으로 등장했었던 ‘상상 속의 나무’다. 실제로 보니 한편으론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고 또 다른 한편으론 왠지 신령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진짜 웃기게 생겼네!


한 이십에서 삼십 미터는 족히 될 듯한 오크통같이 배가 볼록한 거대한 줄기와 그 줄기 끝에만 매달려 있는 빈약 하리만큼 왜소한 가지와 잎사귀들... 그 모양은 마치 뿌리가 하늘로 뻗어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웅장함을 정말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데 나무 크기로 보아 수백 년 어쩌면 천년도 넘게 자란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바오바브나무들이 서있는 모습이었다. 너무 가까이도 붙어 있지 않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은 아주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일부러 저렇게 간격을 맞추어 심은 것도 아닐 텐데...


적당한 간격은 서로를 위한 배려일까? 아님 이기적인 거리일까?


몸바사 가는 길은 마치 양파 껍질을 하나하나 벗기는 것처럼 그 신비함의 끝을 가늠할 수 없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추억해보니 몸바사도 참 좋았지만 그 가는 길에 마주쳤던 풍경들과 야생동물들이 더 감동적이었고 오래 기억에 남았다.


특히, 바오바브나무는!




['A9'에서 건진 인생 레슨]



바오바브나무와 아프리카 전설


여행이 끝나고 바오바브나무에 관한 재미있는 아프리카 전설을 알게 됐는데, 원래는 저런 우스꽝스럽고 이상한 모습이 아니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바오바브나무는 신이 제일 처음 창조한 나무였다. 그런데 바오바브나무는 자신의 모습을 불평하면서 다른 나무들처럼 예쁜 가지와 달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신께 졸랐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나무들처럼 만들어 달라는 바오바브나무에게 화가 난 신은 그를 뽑아서 거꾸로 처박아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저렇게 뿌리가 하늘로 향하는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었다고...


바오바브나무는 영어로 ‘Up side down tree’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위아래가 뒤집힌 나무’라는 뜻이다. 거꾸로 된 나무... 직감적으로 너무 잘 와 닿았다. 웃기기도 하고 좀 슬프기도 한 ‘뼈’ 있는 전설이다.


남 부러워 말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살라!

오늘 나를 향한 그 지혜의 메시지가 마음에 울린다.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바오바브나무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리하여 하늘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있는 것처럼,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으니...


- 칼릴 지브란, ‘결혼에 대하여’ 중 -


우리 부부는 결혼생활 10년이 넘는 동안 ‘부부 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의견의 차이는 늘 있게 마련이지만 다툼이 없었던 것은

우리 서로는 신뢰와 기다림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왕이면 좀 더 참아주기를 꼭 안아 주기를 또 같이 웃고, 울어 주기를 택했던 탓일 것이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둔 이유일 것이다.

함께 있되 서로의 자리를 존중해 준 탓일 것이다.

시인의 노래처럼

우리들은 함께 태어났으니 영원히 함께할 수 있길를 소망한다.




빛나는 산호 사장, 몸바사

장장 9시간을 달려 예약해둔 휴양소에 도착했다. 몸바사가 가까워지니 거대한 컨테이너 운반 트럭들이 거북이 운행을 해서 아찔한 추월을 몇 번이나 감행하기도 했었다. 교통 범칙금이 생각보다 비싼 나라라서 오는 내내 조마조마했는데 용케도 무사 완주! 케냐 도로 주행 연수는 오늘로써 종지부를 찍었다. 장시간 큰 불평 없이 동행해준 아이들과 겁 없이 여기까지 달려온 왼쪽 주행 왕초보 운전자인 스스로가 대견하기만 했다. 야자수와 꽃길을 따라 휴양소로 들어가는 길은 얼마 전 지나온 광대한 광야 지역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드디어 몸바사다!


해발 고도 ‘제로’, 스트레스도 ‘제로’

체크인을 마치고 서둘러 바닷가로 나갔다. 역시 명불허전! 산호가 부서져서 만들어진 모래사장이라 그런지 더 뽀얗고 발에 닿는 아주 부드러운 느낌이 한국의 모래사장과는 사뭇 달랐다. 파도가 밀려드는 눈부신 해안 풍경에 완전히 매료돼 그 자리에 잠깐 멈춰 섰다. 겨울이라 해야 할지 여름이라 해야 할지 헛갈리는 12월, 몸바사의 따뜻한 바람과 따가운 햇볕... 그냥, 모든 것이 완벽했다!


“참 좋다. 그치?”


그동안 마음고생도 몸 고생도 참 많았다. 사실 카자흐스탄에서 맞았던 환율 사태 이후 지난 삼 년 동안 지금 같이 완전한 쉼이 있는 휴가를 보내 본 적이 없었다. 정말 이런 잠깐의 시간조차 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오늘 이 해변을 걸으며 마음껏 행복해하는 가족들을 보니 잔잔한 미소와 함께 넉넉한 평안과 위로가 느껴졌다.


예쁨과 아름다움의 차이

“좀 걸을까?”

아내의 어깨를 손으로 감싸고 해변을 따라 발을 담갔다 벗어났다 하면서 앞장서 걸었다. 모처럼 아내의 얼굴에 연애 시절에 보았던 티 없는 미소가 가득했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는 참 예뻤는데...”

“왜? 지금은 아니야?”


아니... 지금은 아름답지!


정말 그랬다. 처녀 시절 아내의 예쁨에 매료되어 목숨 걸고 쫓아다녔었는데 살아보니 또 더 살아보니 그는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마치 신혼여행 온 것처럼 분위기를 잡고 살짝 입맞춤을 나눴는데, 뒤따라오던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달려왔다.


안돼~! 딴 사람들이 보잖아! 뭐 하는 짓이야!


둘째는 언제부턴가 우리 부부를 강력하게 견제하고 있었다. 동생이 생길까 봐 내는 조바심. 막내는 영원히 막내로 남고 싶어 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 인생

고삐 풀린 아이들은 모래사장을 다 뒤집어 놓았다. 그간 답답한 아파트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치안 사정이라도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아쉬움이 밀려왔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된 달까?

이곳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얼마간이라도 비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고정적인 수입이 있으니 경제적으로 안정은 되었다. 그런데 카자흐스탄에서처럼 아이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고 같이 장난치고 손잡고 걸어 줄 수 있는 시간은 너무 많이 줄어버렸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으니 주중에는 늘 잠든 모습만 보게 됐다. 그렇게라도 함께라서 좋긴 하지만 애초에 한국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출발할 때 목표로 했던 ‘아이들과 많은 시간 보내기’는 당분간 힘들 것 같았다.


그게 참 아쉬웠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듯했다.


인생에도 ‘잠시 멈춤 Pause’ 기능이 있다면...

한참을 아이들과 같이 모래사장에서 뛰어놀다가 바위 턱에 걸터앉아 저 멀리 바다를 멍하니 바라봤다. 바다는 그 곁에만 있어도 그 푸른 바다의 색과 부딪히는 파도 소리만큼이나 마음이 시원해졌다. 바다는 정말 그런 매력이 있다.


휴양소에 미온수 수영장이 있어서, 아이들과 아내는 물속에 넣어두고 나는 야자수 그늘에 누웠다.


이보다 더 좋은 천국이 있을까?


인생에도 ‘잠시 멈춤 Pause’ 기능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행복한 시간은 좀 더 오래 멈추어도 좋을 텐데...


발가락을 까딱까딱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깊이 잠이 들었다.

마치 ‘잠시 멈춘’ 것처럼...




눈부신 산호 사장 몸바사 Mombasa / 이 나무 아래서 잠을 청했다


밤이 되면, 특별한 무대가 준비되는 해변

휴양소에서 준비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밝은 조명이 비추는 해변으로 산책 삼아 걸어 내려갔다. 아이들이 먼저 달려 내려가니 아내는 아이들이 넘어질까 봐 천천히 가라고 종용하면서 뒤쫓아 갔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멈추어 서더니 어서 와보라고 손짓하면서 외쳤다.


“여보! 빨리 와 봐요. 여기 개들이 엄청 많아!”

“개들?”


낮에 해변에서 어슬렁거리던 개들이 모여 있는 모양인데 혹시나 애들을 공격할까 싶어 얼른 뛰어 내려갔다.


오우! 완전 ‘게’ 판이네!


불빛 아래로 모여든 작은 게들이 수만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이 많은 게가 낮에는 어디 숨어 있었는지 낮에는 보이지도 않더니 제법 큰 녀석부터 완전 새끼까지 ‘밤마실’을 나왔다. 그 속으로 조심스럽게 파고들어 가면서 게를 밟지 않으려고 아주 조심조심 걸었지만 발바닥으로 뭔가 ‘툭’하고 터지는 느낌이 왔다.


“Oh! Sorry!”




밤마다 펼쳐지는 'Crap Show'


졸지에 '검거' 당한 꽃게


부성애, 모성애 못지않다

어제 ‘게 쇼’를 즐기며 밤늦게까지 놀았는데도 아이들은 지칠 줄 몰랐다. 아침 일찍부터 수영장에 물놀이 가자고 재촉해서 같이 놀아주고 객실로 돌아오는데 주차장 위쪽 공터에 몇 사람이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까이 가보니 원숭이 가족이 사람들에게 아침을 얻어먹고 있었다. 총 네 식구였다. 사람들이 빵조각을 던져주니 덥석덥석 잘도 받아먹었는데 아주 편안한 자세로 봐선 이 휴양소 터줏대감인 듯했다.


“새끼들 옆으론 가지 마세요!”


아이들이 새끼가 귀엽다고 다가서니, 새끼 원숭이가 조금 놀란 듯 뒤로 물러섰는데 옆에 있던 직원이 새끼와 있을 때는 어른 원숭이가 사납다고 주의를 줬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자식, 새끼 사랑은 참 각별하다. 갑자기 모성애인지 부성애인지 궁금해졌는데, 우리를 향해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바로 눈치챘다.


음... 의외로, 부성애였다.





쌍무지개? 아니 삼 무지개!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습니까?


저녁에 ‘정든’ 까칠한 동갑내기 상사에게서 안부를 묻는 문자가 왔다. 문자를 보는데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의 삶을 담백하고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 주는 인연이 생긴 탓이었다. 덕분에 즐겁게 보내고 있는데 내일 돌아가야 되니 너무 아쉽다고 답을 보냈다.


다시 가기 힘든 먼 길인데 내일 대기 근무는 제가 설 테니 하루 더 쉬다 오세요.
가족들과 많은 시간 보내주세요.


말만으로도 참 고맙고 달콤한 유혹이었다. 사실 딱 하루만이라도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는데 내 욕심만 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아내도 그들에게도 자주 없을 소중한 연말 휴가니 편히 쉴 수 있게 민폐 끼치지 말자고 해서 아쉽지만 계획대로 돌아가기로 했다.


폭우, 이 또한 지나가리라

몸바사로 내려올 때는 피곤한 줄도 모르고 달려온 길이었는데 막상 돌아가려고 나서니 9시간의 ‘회귀 질주’에 막막해졌다.


아, 하루 더 쉬고 간다고 할 걸 그랬나?


좋았던 시간이 못내 아쉬워 마지막으로 해변을 한 번 더 거닐고 나이로비로 출발했다.

몸바사를 벗어 난지 얼마 안 되어 차를 멈추어야 할지 고민될 정도의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와이퍼를 최고속도로 작동해도 앞 유리에 쏟아지는 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 괜찮겠어요?”

“어허! 하쿠나 마타타!”


걱정하는 아내를 농담으로 달래고 룸미러로 뒤를 보니 장모님은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하고 계셨다. 늘 그러시듯 불안한 상황이면 저렇게 기도하신다. 괜히 신경 쓰일까 봐 말씀도 안 하시고...


이건 뭐, 마치 액션 영화 찍는 것 같은데...


평소 이런 스릴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대형 트레일러들이 다니는 길인 데다 도로 폭이 좁아 갓길에 세우면 더 위험할 것 같아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익숙한 오른쪽 통행이었으면 좀 수월했을 텐데 익숙하지 않은 왼쪽 운전이라 더 어려웠다.


다행이라면 헬기 조종할 때 갑자기 비를 만나면 옆을 보면서 전진 비행을 할 때 가 있었는데(Crabing 크래 빙), 몸에 익은 이 비행 기술이 이번 위기를 모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정말 폭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보통 한 시간 정도만 지나면 소강되거나 개니, 휴게소 같이 안전하게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잠시 여유를 가지는 것이 좋다.)


쌍무지개? 삼 무지개 정도는 돼야 케냐지!

한 십 분쯤 달려갔을까? 기대대로 비가 조금씩 잦아들더니 맑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사실 걱정할까 봐 말은 안 했지만 모처럼 진땀 뺐다.


“어머, 저게 뭐야! 쌍무지개네!”


조용히 기도하시던 장모님이, 창문을 열어 내다보시더니 천진무구한 소녀같이 외치셨다.


“엄마, 무지개가 하나 더 있어. 잘 봐봐!”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지나면서 무지개를 보니 정말 선명한 두 개의 무지개 외곽으로 희미하게 또 하나의 무지개가 보였다.


세 겹 무지개는 뭐라고 해야 하지? 삼 무지개인가?


정말 신기하고 새로운 발견이 많았던 몸바사 오가는 길이었다. 복귀 때는 한 번만 보기 아까운 풍경을 모두 쓸어 담고 올라왔다. 다만 해가 져서 원숭이 가족들이 도로에 나오지 않아 아쉬웠지만 다음에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꼭 또 한 번 달려보고 싶었다. 정말 케냐는 '잠보 브와나 Jambo bwana' 노래 가사처럼 참 신비로운 나라였다.

Kenya Nchi ya maajabu! 케냐는 참 신비로운 나라예요!





고대인들은 무지개를 신들의 활동 중 가장 아름답고 신비한 현상으로 여겼다고 한다.

특히 무지개는 지상으로 특별한 소식을 전해온다고 믿었다.

오늘 저 무지개는 우리에게 어떤 소식을 가져온 걸까?

3겹에 숨겨진 특별한 의미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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