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케냐에 살어리랏다

아모르 파티 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 - 니체 -

by 청연
4장. 케냐에 살어리랏다
- 어서 와! 케냐로
- 황열 예방접종 대소동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 가족, 가장 아름다운 울림
- 하드커버 Hard cover, 까칠한 동갑내기 상사
- 스콜, '건더기'가 너무해
- 나이로비가 불안해?


어서 와! 케냐로

한 날 전무님이 사무실로 호출했다. 일과 중에 사무실로 호출받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분은 업무시간에는 굉장히 엄하시지만 개인적으로는 잘 적응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셔서 참 고마운 분이었다. 건너편 공장에 있는 사무실로 찾아뵈니 평소보다 더 부드러운 표정과 어투로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일이 할 만한가?”

“네, 아직까진 할 만합니다.”


안 그래도 관광비자로 입국한 3개월 체류 기간이 곧 만료되어 조금 불안하긴 했었다. 나보다 앞서 노동 허가를 받은 동료가 때가 되면 전무님이 부르실 거라고 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인 것 같았다. 지난 3개월 남짓한 인턴 생활을 평가받고 정 직원으로의 채용이 결정되는 날이었다. 막상 이렇게 도마 위에 오르니 조금 긴장됐다.


“계속 일할 의사가 있으면, 정 직원으로 채용하려 하네.”

“네.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휴... 일단 합격점을 받았고 한시름 놓게 되었다. 이제 케냐 정부로부터 노동 허가를 승인받으면 2년이란 체류 시간을 확보하게 됐다. 아직 카자흐스탄에는 언제 다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니 지금으로선 바라던 시나리오대로 가고 있다. 몇 가지 부차적인 조건이 붙긴 했지만 어차피 지금은 이곳에 머무르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잘 준비해도 내일을 알 수는 없는 게 사람 일이지만, 해외 생활에서는 ‘예측 가능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일단 충분한 시간을 확보한 지금은 자축할 만한 일이었다.


사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가족으로부터 분리된 기러기 아빠의 외로운 나 홀로 생활이 그 끝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역시 가족은 ‘함께’ 일 때 더 의미가 있다. 마음은 벌써 아내와 아이들이 곁에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정 직원으로 채용됐어. 그간 고생했어. 이제 케냐로 올 준비해. 사랑해!


당장 내일 가족들이 오는 것도 아닌데, 들뜬 마음에 잠이 오질 않았다.

아내는 처녀 시절 서아프리카 감비아라는 정말 생전 처음 들어보는 조그마한 나라에서 2년이란 시간을 봉사활동으로 보냈었다. 아내에게 케냐는 감비아에 비하면 생활적인 면에서는 불편함이 없을 것 같았다. 아내는 늘 자기는 전혀 문제없으니 나만 좋으면 된다고 했었다. 어린아이들은 또 다른 낯선 환경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좀 걱정이 되지만 거친 카자흐스탄도 잘 지나왔는데 이곳도 문제없겠지 싶었다. 사실 주변인들의 피부색만 바뀌는 거니까. 작은 꿈이 있다면 이곳에서도 아이들을 지금처럼 홈스쿨 하면서 키워야 하겠지만 여유가 생기면 학교생활을 경험할 수 있도록 얼마간이라도 정식 학교에 보내주는 것이었다.


... 그리고 엄마도 애들 봐주신다고 같이 가시기로 했어요.


다음날 아내로부터 축하 메시지와 더불어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는데, 이번에도 장모님이 같이 와 주시기로 한 것이었다. 장모님은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친구이자 선생님이었다. 온종일 쫑알쫑알하는 아이들을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다 받아주실 수 있는 분은 장모님밖에 없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지금껏 구김살 없고 행복하게 자랐다. 한국 사람들과는 거의 교제가 없는 고립된 환경에서도 아이들의 한국어가 유창한 것도 다 외할머니 덕분이었다.

아, 황열 예방 접종!


그러다 문득 황열 예방접종 확인서가 있어야 케냐에 입국할 수 있다는 게 생각났다. 가장 중요한 아프리카 입국 준비를 빼먹을 뻔했다.


황열 예방 주사를 맞을 수 있는 병원을 확인해 봐.
꼭 예방접종 확인서를 가지고 와야 해!


황열 예방 접종 증명서는 그 색깔 조차 황색이다.
< 황열 Yellow fever 예방접종 >

* 바이러스 매개체 : 모기!
* 백신 접종 필수 서류 : 여권
* 백신 접종 중요도/ 예방 효과 : 필수 / 약 98%
* 주의 사항 : 예방접종 후 열흘은 지나야 제대로 예방 효과가 있으므로 아프리카, 남미 등 황열 유행지역으로 여행 출발 전에 미리 맞아두어야 한다.




황열 예방접종 대소동


인내심을 갖추는 것만으로도 위대하고 고귀한 힘을 가지는 것이다. - 호레이스 부쉬넬 -


카자흐스탄에는 황열 백신이 없다!

아내는 며칠째 황열 예방접종이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 중이었다. 카페 직원을 동원해서 국공립병원과 대형 사립병원마다 직접 전화해서 확인하고 있는데 백신을 보유한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심켄트와 옛 수도 알마티, 심지어 현재 수도 누르술탄(옛 아스타나)에도 황열 백신이 없었다.


수도에도 백신이 없다니!


결국 카자흐스탄에는 황열 예방 백신이 없다는 얘기였다. 아프리카 국가들과 교류가 거의 없는 나라인 데다 황열 백신이 비싸 기도하고 보관 유효기간이 있어 병원에 가져다 놓지 않는다고 했다.


아!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


그렇다고 황열 예방 접종하자고 한국에 들어갔다가 예방접종을 마치고 다시 케냐로 오는 것은 정말 최악의 방법이었다. 4명이 움직이면 항공료도 두 배로 들고 귀한 시간도 의미 없이 허비하는 꼴이었다. 아내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는데 카자흐스탄 수도에도 없다는데 달리 방도가 있을까 싶었다. 결국 한국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벌써 속으로는 체념하고 있었다.

백신이 있는 곳을 찾았어요!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Bishkek에 있대요.


엥? 비슈케크에?

다음날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보니 메시지가 와 있었다. 역시 우리 아내구먼! 옆 나라 키르기스스탄까지 연락해 본 모양이었다. 직원이 키르기스스탄에 사는 지인을 통하고 그 지인이 또 다른 지인을 통해 수소문해서 극적으로 비슈케크에 황열 백신을 보유한 병원을 알아냈다고 했다.

사실 더 놀랄 수밖에 없던 이유는 키르기스스탄은 비자 여행을 워낙 자주 다녀봐서 익히 알듯이 카자흐스탄에도 없는 황열 백신이 있을 만한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키르기스스탄은 세계 10대 빈곤국 중 하나로 손꼽히고 국민 1인당 GDP가 채 1,500달러가 되지 않은 나라다. 그보다 5배 이상 경제부국인 카자흐스탄에 없는 백신이 그곳에 있다니 정말 기대하지 않았던 희소식 중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또 한 번의 기차 왕복 24시간. 그동안 여러 번 비슈케크로 기차여행을 했었지만 이번에는 나 없이 아내가 장모님과 아이 둘을 이끌고 다녀와야 했다. 늘 문제가 있었던 국경 탓에 조금 걱정됐지만 그래도 부녀자들에게는 좀 관대한 나라들이니 거기에 희망을 걸어 볼 수밖에 없었다. 피곤하고 힘들겠지만 한국으로 가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비슈케크행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스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안전하게 비슈케크에 도착하는 날까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잘 다녀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낸 후 출발 후 14시간 만에 비슈케크에 잡아둔 게스트하우스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다행히 국경도 큰 문제없이 통과했다고 했다. 내일 병원에 가서 예방 주사만 맞으면 된다고 하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다음날 계획대로 백신을 잘 맞고 왔는지 궁금해서 늦은 저녁 전화를 걸었는데, 시차 상 이미 깊은 새벽이 된 비슈케크에 있는 아내는 자다가 일어나 전화를 받았고, 목소리는 피곤에 젖어 있었다.


그 병원에 황열 백신이 없대요...


“엥? 그건 또 무슨... 분명 백신이 있다고 했고... 아니 예약까지 하고 갔잖아?”


전화상으로 미리 예약까지 해 두었던 병원에 갔더니 그사이 방문한 다른 외국인들에게 접종해 줘 버려서 남은 게 없다고 했단다. 고생해서 거기까지 갔는데 완전 수포가 될 상황이었다.


“다행인 건, 그 병원에서 백신이 있는 다른 병원을 알려 줬어요.”

“하... 그런데 웬일이래? 병원이 나서서 직접 수소문을?...”


‘스탄’, 원조 배 째! 실수를 인정하는 건 죽음이다

병원에서 실수를 인정했다?

구소련 국가 3년 생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일은 정말 의외의 사건이었다. 병원에서 스스로 실수를 인정하고 직접 수소문해 주었다는 건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적극적인 책임감을 보여 준 사례였다. 그야말로 기적에 견줄 만큼... 이럴 경우 보통 예상되는 상대방의 대응은 ‘난 몰라, 난 책임 없어!’였기 때문이다.


‘스탄’ 나라들은 구소련 시절 어두운 그림자가 남아 있어서 보통 어떤 사건의 책임을 인정하는 건 곧 유배나 처형을 의미했기 때문에 절대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법이 없었다. 카자흐스탄에 있을 때 이런 태도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이런 무책임한 일을 당했을 때 처음에는 분노가 일었지만 그다음에는 그러려니~, 나중에는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하면서 우리도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일 오후에 복귀 출발하잖아? 시간이 되겠어?”


다행히 내일 오전에 예방접종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면 복귀하는 기차를 늦지 않게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이 기차를 놓치면 이틀 뒤에나 다시 심켄트로 돌아오는 기차가 있었다. 사실 워낙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나라들이라 걱정이 됐지만 그저 순조롭게 지나가기만을 기도할 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황열 예방접종 부작용 - 두통, 근육통 등...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예방접종 후 간혹 발생한다는 부작용에 대비해 하루 정도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었는데 이제는 예방접종 후 곧장 12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돌아와야 했다. 항상 어린아이들이 걱정이었다. 막내가 이제 만 4살인데 이런 강한 백신을 잘 견딜 수 있을지...


매사 이렇게 극적일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카자흐스탄에는 아주 사소하고 간단한 일도 늘 코너에 몰릴 때가 많았다. 사실 대한민국보다 경제, 의료 후진국에 산다는 것은 감수하고 살아야 할 부담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의미했다. 사실 살다 보면 어느 곳이든 문제는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경제·의료 후진국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것에 투입되는 과도한 시간과 노력이 더 힘들고 지치게 했다.


돈으로 해결되는 일은 가장 쉬운 일이다.


이 말은 교민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었다. 같은 시기를 살아가는 교민들의 고충은 비슷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말 이 말이 참 진리 같이 다가왔다. 이번 ‘황열 백신 소동’도 그러한 경우 중에 한 번이었다. 이런 불비한 환경에 많이 적응됐다 싶었는데 아직도 인내의 ‘내공’을 쌓기 위한 수련이 더 필요한 듯했다.




[일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온 아내는 더 바빠졌다. 케냐로 떠나면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니, 우리 대신 모든 업무를 책임지고 맡아줄 매니저를 대리인으로 세우느라 온 힘을 다 쏟았다. 그때그때 결정이 필요한 일들은 인터넷으로 주고받기로 했다. 현지 매니저를 은행거래를 포함한 총괄 대리자로 세웠으니 그저 믿고 맡길 수밖에 없다. 주방 직원들에게는 마지막 한 수까지 전수하면서 항상 같은 맛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지난 3년간 한솥밥 먹으면서 가족같이 지냈던 15명의 식구들... 정말 직원이라고만 부르기에는 아까운 사람들이다. 식당을 개업한 날부터 3년 동안 쉬지 않고 충성을 다해 주고 있는 직원들도 있고 잠시 다른 직장으로 떠났다가 이곳과 사람들이 그리워 다시 돌아온 직원들도 있었다. 그들은 많이 부족했지만 최선을 다했던 우리 부부를 믿고 여기까지 따라와 주었다. 비자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잠시 떠나야 하는 상황을 모두가 안타까워했고 오히려 최선을 다해 잘 지키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우리를 위로했다.


주인은 있지만 주인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

‘주인 없이 과연 직원들로만 식당 운영이 가능할까요? 다른 선진국이라면 모르겠지만... 여긴 카자흐스탄인데?’

‘더 치열해질 경쟁 속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한식 카페에 한국 사람이 없다는 건...’


가까운 지인들은 현지인들에게 완전히 맡기는 건 불가능한 어쩌면 위험한 일이라고 진심 어린 걱정을 해주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아예 폐업, 정리하고 얼마라도 남는 것이 있다면 챙겨서 떠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얘기였다.


그들의 조언은 일리가 있었다. 아직도 부정부패가 사회 전반에 만연하고, 경제가 침체된 이후 많은 식당과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어쩌면 이런 외부적인 요인보다 더 불안한 건, 우리 대신 식당 운영을 맞게 될 매니저 한 사람만 등을 돌려도 이 식당은 망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걱정들은 노동 비자가 연장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부터 아내와 내가 수없이 걱정하고 나누었던 얘기들이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다만 직원들이 그들의 가족들까지 끌어안으려 했던 노력을 잊지 않고 기억해 준다면, 어쩌면 기적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는 그들을 믿고 나와 아내가 따라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케냐로 출발 전날, 아내는 여전히 마지막 식당 점검과 대리인 서류들을 정리하느라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떠날 준비는 다 된 거야?”

“정신없이 쫓아다니다 보니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아, 참. 그리고 한 가지 얘기할 게 있는데, 미리 상의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우리 차는 시골에서 현지인 사역하시는 선교사님께 집을 정리하다 나온 여러 가지 물품들과 같이 기증했어요.”


그 차는 정말 어렵게 모으고, 또 모아서 산 중고차였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 팔아서 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유일한 장비였는데 그 소중한 차를 아내가 나와 상의도 없이 기증해 버린 것이었다.


“잘했네! 그런 건 상의할 필요도 없지. 같은 마음이었을 테니까.”


해외 생활 4년 차. 도움을 받을 때도 도움을 줄 때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도움을 더 많이 받고 살아왔다. 대가를 바라지 않았던 그 많은 도움의 손길들... 그에 대한 작은 보답으로 누군가에게 우리의 작은 것을 나눈 오늘

잔잔한 감동과 행복이 밀려왔다.




가족, 가장 아름다운 울림


두 번째 이민, 첫 번째보다는 가볍다

사실 한 가족 전체가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려 두 번째 이민. 첫 번째 카자흐스탄으로의 이민에 비하면 비교적 빠르고 쉽게 이주하고 있다. 첫 이민 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몰라 불필요한 것도 많이 챙기고 사업 물품까지 챙겨야 했었기에 정말 짐이 많았다. 그에 비하면 두 번째 케냐로의 이민은 아주 심플했다. 각자의 몸과 각자의 수화물 20kg. 그 이상은 군더더기일 뿐이다. 아무리 챙겨도 살면서 채워야 할 것들이 더 많았다. 이민 짐을 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수화물 가방에 담을 수 있는 만큼, 딱 그만큼만 인생 짐을 지고 살면 좋겠다...


내가 걸어온 길, 그 길을 따라오는 가족들

가족들이 도착하는 날 감사하게도 회사에서 가족들을 잘 맞이하라고 특별히 하루 휴가와 차량까지 배려해 줘서 들뜬 마음으로 공항으로 향했다. 석 달 전 이 길을 따라 회사로 향하면서 난생처음 아프리카와 케냐를 마주했던 것이 기억이 되살아났다. 많이 설레었고 긴장했던 그리고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서 너무도 피곤했던 길이었다. 아프리카 땅을 처음 밟는 여덟 살, 다섯 살 된 딸은 그때의 나처럼 설레고 신기하고 확실히 피곤할 것이다.


공항에 일찍 도착해서 어서 무사히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문득 전에 도착했을 때 나를 당황스럽게 했던 비자 심사관과 100달러를 뜯어간 괘씸한 세관 직원이 기억났다. 정말 세관은 갑 중 갑이다. 혹시 몰라 아내에게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일러두긴 했는데 이번에는 별로 세관에 걸릴만한 것들이 없으니 그나마 안심이었다.


항공편 도착 안내 모니터에 우리 항공편이 도착했다고 떴다. 두바이에서는 환승 대기 시간이 새벽이었고 공항 인터넷이 안 되었는지 연락이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니 잘 도착했겠지...


항공기가 도착한 지 꽤 지났는데 아직 나오지 않는 걸 보니 아마도 비자를 받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았다. 더욱이 이번엔 4명이다. 이제나저제나 언제나 나올까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는데 저 앞에 무시무시한 세관을 들어서는 가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 여기 있다고 손을 들고 크게 흔들었지만 아직 많은 군중 속에 있는 나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빨리, 빨리, 빨리! 옆 돌아보지 말고!


아내에게 ‘세관 통과 지침’을 속으로 애타게 외쳤다. 마침내 세관을 ‘잡힘 없이’ 통과했고, 출구 앞에 서 있는 아빠를 알아채고 달려오는 아이들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팔을 넓게 펼쳐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딸들! 먼 길 오느라 힘들었지?”


아이들은 많이 보고 싶었다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고 짐을 끌고 뒤따라오던 아내도 몰라보게 홀쭉해진 나를 보고선 왜 이렇게 말랐냐며 눈물을 터트렸다.


“괜찮아. 몸이 가벼워서 더 좋아.”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여기까지 함께 와주신 장모님과도 오랜만에 뜨겁게 안아봤다. 지금껏 고생만 시켜드려 죄송함이 앞섰다.


잃어버린 인형, 누군가의 기쁨이 되기를

차를 타고 숙소로 출발하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울상을 지으며 얘기를 꺼냈다.


“근데, 아빠. 두바이에서 엄마가 사준 인형을 잃어버렸어요. 너무 슬퍼요...”

“아, 정말. 애들 생일, 어린이 날, 크리스마스 선물을 몰아서 첨으로 애들이 원했던 것 하나씩 사준 거였는데... 생각할수록 아까워요!”


그동안 아이들에게 주어진 장난감이나 인형은 대부분 지인들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이었다. 아내는 두바이에서 경유 대기하는 동안 큰 맘먹고 아이들이 그토록 원했던 ‘새로 산 인형의 포장을 직접 뜯어보는 기쁨’을 선사했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기뻐했을지 눈에 선했다. 그런데 새벽 시간이라 정신이 몽롱해진 아이들은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엄마와 할머니의 등에 업히면서 손에 꼭 쥐고 있던 인형을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손에는 한가득 짐을 등에는 늘어진 아이들을 업고 있던 어른들은 뒤돌아볼 새도 없이 비행기에 탑승했고, 기내 수화물 짐을 정리하다가 그제 서야 아이들 손에 인형이 없다는 걸 발견했던 것이었다.


“괜찮아. 그 인형이 다른 아이에게 필요했나 보지. 아빠가 여기서 하나 더 사줄게!”


아이들의 ‘소중한 것의 상실’을 위로하면서, 문득 생각해 보니 내가 좀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러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꽉 잡고 있었어야지!’하고 다그쳤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아님 조금 더 철이 든 걸까?


이유야 어쨌건, 나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이제 조금 더 선명하게 분별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아이들과 가족이 무사히 잘 도착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인형을 잃어버린 아쉬움을 털어버린 후 우리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의도치 않게 까까머리가 된 사연 같은 좌충우돌 나의 생존일기와 카자흐스탄 일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아내의 고군분투 영웅담, 아프리카 땅을 처음 밟아 본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첫 풍경들이 일으키는 질문들... 몇 날 며칠을 나누어도 모자랄 이야기보따리가 하나씩 풀어졌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첫 아프리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가족이란 단어에는 특별한 소리가 있다.

말이 없어도 전해지는 느낌이 있다.

가족이란 그 존재 자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울림이다.




하드커버 Hard-cover, 까칠한 동갑내기 상사


작은 변화, 험난한 미래의 전조

가족들이 도착하기 얼마 전 처음 근무했던 지방 생산 공장에서 나이로비 타운에 있는 본사 물류창고 담당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직위는 공장에서 생산된 가발들을 종류별로 저장하고 국내·외로 주문에 따라 출하하는 물류 총책임자였다. 책임도 크고 업무량도 많아 부담이 많은 자리였다. 이제 막 공장 매니저 업무에 적응했는데 새롭고 바쁜 업무에 한동안 좌충우돌할 내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무래도 나이로비 타운이 가족들이 생활하기에는 여러모로 여건이 좋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 새로운 자리를 잘 감당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근무지를 옮기고 제일 잘된 일은 나보다 직급은 높지만 동갑인 직장 상사를 만난 것이었다. 그는 회장님의 총애를 받고 있는 본사 정예 요원 중 한 명이었는데 단단한 체형과 우직한 성품으로 내가 봐도 신뢰가 갈만한 사람이었다. 사실 이것은 시간이 지나서 그를 경험하고 느낀 그의 본모습이었다.

자리를 옮기고 처음 그를 봤을 때 그의 첫인상은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좋지 않았다. 왠지 까칠하고 날카로워 보여 섣불리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마치 포커페이스같이 표정의 변화 없는 얼굴과 호두 껍데기같이 딱딱한 어투는 마치 아주 오래된 책의 하드커버(Hardcover-딱딱한 겉표지) 같은 느낌이었다. 왠지 쉽게 꺼내 읽기 부담스러운 책 같은...


“어때요? 힘들죠? 일할 만합니까?”


어찌할 바를 몰라 정신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나에게 그가 처음으로 내게 했던 말이다. 어리바리한 동갑내기를 바라보는 그의 안쓰러운 눈빛. 그 이후로는 가끔 조언도 해주고 마주칠 때마다 말없이 가볍게 웃어주기도 했다. 평소 말이 많지 않은 그는 늘 짧고 간단하게 조언해 주었다.


우 대리님! 아 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늘 ‘아 놔~’로 시작하는 그의 어투가 참 재미있었다. 회사 차량으로 출퇴근을 같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더 가까워졌고 출퇴근 때마다 그간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듣고만 있어도 업무에 참고될 만한 내용이 많아 유익했는데 참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았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일명 ‘건더기’ 사건이었다. 때는 폭우가 쏟아지는 우기. 한 날은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 비상조치 차 회사에 들어와 보니 재래식 화장실이 넘쳐 ‘흉측한 건더기’들이 둥둥 떠다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화 신은 경비가 자기를 업고 그 떠다니는 흉측한 지뢰들을 피해 다녔다는 조금은 ‘더티’한 에피소드였다.


“물류 창고는 눈 뜨고 당하는 곳이니, 늘 긴장해야 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하는 진심 어린 당부였다. 완전히 적응하기까지 스트레스를 좀 받겠지만 잘 적응하길 바란다는 응원을 늘 덧붙였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조금씩 가까워지던 어느 날 문득 그가 여기까지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해서 개인적인 질문을 했다. 이곳에 온 지 벌써 5년이 넘었고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잘하다가 아이들 미래를 생각해서 고민 끝에 케냐행을 택했다고 했다. 그도 나처럼 ‘가족’이 가장 중요한 삶의 이유인 게 분명했다. 마침 우리 큰딸이 그 집 막내딸과 동갑, 아내가 한 살 연상이라는 것도 공통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 나눌 만한 공통된 주제가 참 많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되었다.


왠지 좋은 사람 좋은 인연은 마음이 먼저 아는 것 같다. 투박하지만 그 속은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동갑내기 상사. 그는 어느새 옆에만 있어도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되었다. 업무 조언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주말에 나들이할 만한 곳, 불안한 치안 대처법, 아이들이 경험해보면 좋을 만한 학교 정보 등도 알려주었는데 막 이주해온 우리 가족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조언해 주는 그는 동갑이지만 마치 형 같은 느낌이었다.


열심히 읽고 싶어 지는 사람

처음 그를 만났을 때는 정말 조선 시대 상투 튼 양반같이 아주 고지식하고 따분하게 사는 사람이다 싶었는데, 알면 알수록 속이 깊고 배려심도 많은 참 괜찮은 ‘향기’ 나는 사람이었다.



인연은 한 권의 책과 같아서 대충 보면 놓칠 수 있고, 너무 열심히 읽으면 눈물이 날 수 있다

이 동갑내기 상사와의 만남이 딱 그랬다.

그와 함께라면 외롭지 않게 좀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표지로 그 책을 판단하지 마라.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정말 좋은 인연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콜, ‘건더기’가 너무해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저녁 식사 후 밖을 내다보니 날이 어두워지면서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번개와 천둥이 번갈아 치더니, 정말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퍼붓는 데 정말 큰 난리 한번 나겠다 싶었다. 말로만 들었던 아프리카 스콜, 집중 폭우였다. 사나운 폭우는 이 도시를 다 쓸어버릴 기세다. 일전에 비 쏟아지고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은 웬만하면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들었던 기억났다. 수년 전에 이런 날씨에 가정집에 벼락이 떨어져 일가족이 죽은 사고도 있다고 했는데, 정말 저런 번개를 빗맞아도 전기 통닭구이가 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해발 고도가 높아서 벼락이 잘 떨어지는 건가?


나이로비가 해발 1,600m가 넘는 고원지대라 하늘과 가까우니 벼락의 위험도 더 높은가 싶었다. 잠깐 쏟아진 폭우에도 아파트 앞 도로에 물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는데, 정말 이대로 몇 날 며칠 계속 내리면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대홍수 사건이 재현될 것 같았다.


문득 천정에서 비가 조금씩 새는 물류창고가 생각났다. 천둥 벼락에 민감한 창고 경보 센서라도 울리면, 아마도 오늘 밤 출동해야 할지도 몰랐다. 비상소집 명령이 하달되면 즉시 출동할 수 있게, 핸드폰 볼륨을 최대로 올려서 머리맡에 두고 잠을 청했다.


최고 수준의 대기 태세!


마치 군 시절 ‘5분 대기’ 같은 기분, 경험은 하나도 버릴 게 없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조금 일찍 동갑내기 상사와 함께 서둘러 본사로 출발했다. 그는 어젯밤 내린 비가 왠지 심상치 않다고 하면서 어제 같은 폭우라면 창고 중앙 복도에 그 ‘건더기’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은근히 겁을 줬다.


아! 그런 불길한 말씀 마시죠!


본사에 다다르니 진입로 비포장 길이 아직 배수되지 못해 고인 물로 한강을 이루었다. 본사 옆에는 언뜻 봐서는 빈민촌 같은 서민 주거지가 있는데 배수로가 없어 고인 물웅덩이마다 아무 데나 버린 쓰레기들이 둥둥 떠다녔다. 가뜩이나 열악한 환경에 이런 취약한 위생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사회적 고질병이었다.

쓰레기라도 아무 곳에나 버리지 않으면 좀 나을 텐데...


밤새 굳게 닫혀있던 철문들을 열고 물류창고로 이어지는 통로로 들어섰는데 아직 물기가 흥건한 중앙 복도 중간중간 범상치 않은 흔적들이 보였다. 아! 이 뭔지 알 것 같은 불길한 느낌... 역시나 검으틱틱하고 흉측한 폭탄들이 지뢰밭을 이루고 있었다. 역시 수년의 현지 생활 경험에서 오는 그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아, 이걸 어떻게 하지?'

잠시 고민하고 있는 사이 상사가 뒤따라왔다.

“우 대리님, 거긴 어때요?”

“아, 예상하셨던 대로네요.”

“아 놔. 또 넘쳤네! 아스까리! (Askari-경비!)”


도와줘요, 아스까리!

현장으로 달려온 아스까리 (경비)는 우리 앞에 펼쳐진 아름답지 못한 풍경을 보자마자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익숙한 듯 뒤로 돌아서 나에게 등을 내줬는데, 저쪽으로 건네다 줄 테니 업히라는 뜻이었다.

“아싼떼 싸나!”

오늘도 그는 장화를 신고 있었다. 밤새 폭우로 우의는 입고 있었지만 축축하게 젖은 그의 등에는 사람 냄새(?)가 솔솔 풍겼다. 그래도 이 등이 얼마나 고마운지... 사실 내 발로 건널 수야 있었지만 ‘건더기’ 뭍은 발로 가장 청결해야 할 물류 창고에 들어서는 건 위생상 안 될 일이었다.


경비 등에 업혀 무사히 지뢰밭을 통과해서 창고에 들어서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출고할 제품을 분류, 쌓아서 정리해야 할 앞마당에도 물이 가득 고여 있었고 창고 안에도 비가 샌 흔적이 보였다. 우기 폭우 때마다 반복될 피곤한 에피소드였다.


직원들이 출근하면 소싯적 우 대위로 돌아가 치밀하고 은밀하게 지뢰 제거 작전부터 시작해야겠다.


작전명, ‘롸잇나우! (Right Now-지금 당장!)’




[자주 받은 질문]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요?


지인들과 가끔 안부를 주고받을 때면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 이 세 단어로부터 시작되는 질문들이 아주 많았다. 아직 아프리카 생활자로서는 긴 시간을 살지 못했지만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와 같은 ‘편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몇 가지 정도는 말해 줄 수 있었다.


아프리카는 ‘나라’가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넓은 ‘대륙’

아프리카 대륙에는 약 54개 되는 나라가 모여 있다. 그러니 아프리카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것은 오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 현생 인류의 발상지로 알려진 아프리카는 각 나라마다 다른 기후대, 자연환경 그리고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정치·경제적인 면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는데 특히, 케냐에 와서 놀란 점은 수도 나이로비는 유엔 사무국이 두 곳이나 있고 동아프리카의 금융허브라 외국계 기업들이 가장 먼저 상륙하는 거점 도시란 점이다. 케냐와 수도 나이로비는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 도시였다.

절대적 물 부족? 사실 더 문제는 깨끗한 식수의 부족


“물은 괜찮아? 우물에 물 길으러 다니는 건 아니고?”


농담으로 던지는 말에는 ‘물이 부족한’ 아프리카라는 인식 때문이다. 사실 나도 케냐에 와보기 전까지는 아프리카 전체를 도매금으로 물이 부족한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절대적으로 물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일강, 콩고강, 니제르강 같은 어마어마한 수량을 자랑하는 규모의 강들도 많은 곳이 아프리카다.


정말 문제는 일반적인 물 부족 문제보다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2015년 통계자료를 보면 지표 담수지의 80%가 심각하게 오염되어 식수는 물론, 가축에게도 먹이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사실 이 심각한 오염의 원인은 바로 사람, 바로 인재 人災다.


무분별한 광물개발과 적절하지 못한 사후관리에 따른 중금속 같은 위해물질의 유출로 지표수와 지하수가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광대한 농지 개발을 위해 그 귀한 지하수를 끌어올려 사용하다 보니 오히려 식수가 부족해졌고 가뭄은 더 심해졌다. 무분별하게 버린 쓰레기와 생활하수, ‘지구온난화’까지 포함하면 결국 마실 물의 부족은 최악의 인재라 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는 그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지구를 같이 사용하고 있는 우리도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깨끗한 물은 어디서 구해?

“동네 마트에서. 하하!”


그리고 ‘나이로비’는 냉장고 안에 있어.
왜냐하면 나이로비는 ‘시원한 물’이란 뜻이거든!


마지막 질문의 주제는 ‘여행’


“케냐는 한 번쯤 여행 갈만해? 볼만한 곳이 많아?”

“오우! 케냐의 자연환경은 최고죠!”


캐냐는 한반도의 3배 가까이 되는 면적으로 기후대가 5개로 구분되는데 그만큼 동서남북으로 다이내믹한 풍경이 펼쳐진다는 뜻이다. 그중 으뜸은 아프리카의 대표적 산정호수 빅토리아 호수라고 할 수 있는데 놀랍게도 그 주변이 열대 우림지역이다. 남동부 지역의 ‘산호(모래)사장 몸바사’는 유럽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양지 중 한 곳이다. 아프리카 야생동물과 마사이족의 천국 마사이마라, ‘핑크 플라밍고’가 아름다운 나이바샤 국립공원(Lake Naivasha National Park) 등 정말 너무너무 많다.

물론 이런 곳들은 나의 ‘케냐 버킷리스트’에 올려두었다.

어서 와요! 같이 가게!




나이로비가 불안해?

걸리면 통구이, 고압전기가 흐르는 철조망

평화로운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불안한 치안 상황 때문에 가족은 이주해온 이후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만 보내야 했다. 걷기를 즐기는 그들이 이 이국적이고 멋진 풍경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한 나라를 잠시 여행을 하는 것과 그 나라를 산다는 것은 정말 다른 차원의 일이다. 특히 나이로비에는 각종 대형공사로 중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현지인들은 중국인은 ‘돈(현금)이 많은 사람’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그래서 특히 중국인은 각종 범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컸고 한국인이나 타국 관광객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가 임대해서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도 중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아파트 입구에 경비와 경찰이 실탄을 장전한 채로 24시간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여차하면 쏠 기세다. 아파트 담장 위로는 고압전기가 흐르는 철선까지 설치되어 있다. 아무래도 안전을 우선으로 하다 보니 주거환경이 삭막하고 살벌했다.

돈을 잃는 것이 가장 적게 잃는 것이다

나이로비에서 강도나 절도는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건·사고다. 심지어 우리 회사 직원들 가운데도 피해자들이 있었다. 한 직장 선배가 얼마 전에 자가용을 타고 가다가 당했던 그 기막힌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번잡한 시내 어느 거리를 운전하고 가던 중 날이 더워 차창을 평소보다 조금 많이 열어 두었는데 갑자기 조수석 창문 너머로 손이 쑥 들어오더니 노트북이든 가방을 순식간에 낚아채 갔다고 했다.


“어이쿠! 그래서 잡으러 쫓아갔습니까?”

“어휴, 큰일 날 소리!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만약 차에서 내려 그를 쫓아갔다면 몸을 다쳤거나 아예 차까지 없어졌을 거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떤 교민은 운전 중에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옆으로 지나가면서 자동차 사이드미러를 쳐서 뜯어 가버렸다고 한다. 무슨 무협 소설 같은 얘기들이 이곳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었다. 카자흐스탄에서 들었던 ‘네 바퀴 절도’나 ‘번호판 절도’ 사건은 비교도 안 되는 정말 위험천만한 사건들이었다. 혹, 강도를 당하면 반항하지 말고 지갑이나 가진 모든 것을 줘버리라고 했는데 정말 돈을 잃는 게 가장 적게 잃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사건·사고들이 남의 얘긴 줄만 알았는데 그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며칠 전 아내도 사고를 경험했다. 감비아라는 ‘극빈’의 아프리카 생활 경험이 있고 성격조차 씩씩한 아내는 가끔 운동 삼아 아이들과 이십 분 거리 상가 거리까지 걸어가곤 했었다.


한날은 오토바이가 지나가면서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치고 가는 바람에 땅바닥에 떨어뜨려 완전히 박살이 났다. 아내는 인도를 걸어가고 있었으니 다분히 의도적인 접촉 사고였다. 아마 스마트폰을 빼앗아 가려고 한 것 같았는데 다행히 보는 눈이 많으니 돌아오지 않고 사라져 버린 듯했다. 핸드폰은 도저히 수리가 불가능해서 새로 교체하는 비용이 꽤 들었지만 사람 다치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테러, 다시는 없어야 할 아픔

치안 상황이 이러다 보니 나이로비에선 어디를 가든지 실탄을 장전한 총을 든 경찰들을 볼 수 있다. 대형 마트나 쇼핑몰에 차량으로 들어갈 때는 늘 차량 바닥과 트렁크, 실내까지 검색하고 나서야 통과시켜준다. 쇼핑몰 내부로 입장할 때는 마치 공항처럼 무기류 검색과 간이 엑스레이를 통과해야 한다. 불편하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다. 안타깝게도 지난 2013년 9월에는 나이로비 대형 쇼핑몰 웨스트게이트에서 테러 사건이 있었는데 그중 한국인 희생자도 있었다.


불안한 치안과 상존하는 테러의 위협은 '생활자'로서 가장 아쉬운 점이었다.




[나이로비 에피소드]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차를 사서 직접 운전해보니 제일 불편한 것은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고 도로의 왼쪽으로 주행하는 것이었다. 한국과는 정반대의 교통체계라 처음에는 아주 어색하고 불편했다.

“어, 핸들이 왜 없지?”


웃기게도, 차를 사고 나서 몇 번이나 왼쪽 문을 열었다가 핸들이 없어서 당황했었다. 도로 연수 삼아서 집 근처에서 몇 번 연습 주행했을 때는 할 만하다 싶었는데 복잡한 시내로 들어서니 순간 헛갈려서 멈칫멈칫했다. 그럴 때마다 뒤차가 시원하게 경적을 날렸다. 20년 가까운 운전습관이 몸에 익어서 빨리 교정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정상이다. 특히, 나이로비 시내에는 신호등이 없는 로터리 형태의 교차로가 많은데 누가 진입 우선인지도 헛갈려서 로터리만 다가오면 바짝 긴장했다.


한 번은 교외로 나들이 갔는데 뒤에 따라붙은 차가 계속 경적을 울렸다. 물론 천천히 달리고 있긴 했지만 한적한 길이니 추월해가면 될 것을 왜 경적을 울리며 재촉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무의식 중에 중앙선을 넘어 오른쪽 차로로 역주행하고 있었다. 아뿔싸! 앞에 가는 차가 없으니 나도 모르게 습관 따라 운전해 도로 위 무법자가 되어 버렸다.


저기,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케냐에서 자가운전 시에는 유효한 국제 운전면허증, 여권 그리고 운전면허증 원본을 항상 휴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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