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 파티 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 - 니체 -
2장. 부지런한 아프리카 새들의 노래
- 가발공장 사람들
- 부지런한 새들의 노래
- '천국의 문'을 향해 쏴라!
- 일상, 행복의 재발견
- 케냐, 어쩌면 운명
인턴 3개월 후, 정 직원 채용 결정
그것이 회사와의 계약 조건이었다. 그러니 앞으로 3개월 안에 이곳에 남을지 또 어디로 떠나야 할지 결정되겠지만 일단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빨리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그래야 벌써 그리워지는 가족과 빨리 재회할 수 있을 테니까.
흐트러진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트럭에서 짐을 내리는데 뒤에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잘 왔는가?”
황송하게도 생산 공장 총책임자인 전무님이 직접 마중 나와 주셨다. 단조롭고 투박한 말투였지만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시니 감사했다.
짐을 챙겨서 사무실이 있는 건물로 올라가는 길에 생산 공장 현황에 대해 간단하게 브리핑도 해주셨다. 신입사원 대접치 곤 굉장한 후대가 아닌가 싶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굉장히 공장이 크다 싶긴 했는데 넓은 공장용지에 생산직 현지 직원만 육천 명이 넘는 가발 생산 공장이었다. 나는 몇 개의 생산 공장 중 한 곳을 맡아서 생산 총괄 매니저로 일을 하게 될 거라고 했다. 대충 계산해 봐도 팔백 명에서 천 명 가까이 되는 규모의 큰 공장이었다. 천명이면 소대장 시절 대대 당직근무를 설 때 통솔했던 아침 점호 인원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수였다. 와우!
동병상련, 가장 애틋한 '연'
전무님이 입사 선배들과 안면을 틀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어서 각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던 한국 매니저들이 사무실로 소집됐다.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 매니저들이 하나둘씩 사무실로 들어왔고 신입 사원답게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다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환영해 주었다. 벌써 몇 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분도 있었고 두 달 전 이곳에 온 나보다 나이가 어린 입사 선배도 있었다. 다행히 각 공장 총괄 매니저급 이상 간부들은 한국 분들이라 홀로 왔지만 그렇게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들 첫인상이 좋았지만 그중에 키가 크고 준수한 외모로 유난히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이었는데 그가 바로 내 사수가 될 사람이었다. 그가 곧 다른 보직으로 이동하게 되면 내가 그의 자리를 인계받게 될 것이었다. 그러니 그는 내가 이곳에서 초기 적응 기간 동안 가장 영향을 미칠 중요한 인물이었다. 군 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전임자가 어떤 사람인지, 또 업무를 어떻게 인계받느냐에 따라 적응 기간 몇 달을 고생할 때도 있었고 잘 풀릴 때도 있었다. 기왕이면 후자 쪽이면 좋겠다고 바랐다.
잠깐의 미팅이 끝나고 전무님이 사수에게 나를 데리고 공장을 한 바퀴 돌면서 현장 오리엔테이션을 해주라고 해서 사수를 따라 한 바퀴 둘러보러 따라나섰다. 그의 뒤에 바짝 붙어 따라가면서 하나라도 더 듣고 배우고자 귀를 쫑긋 세웠다.
현장을 보여주며 이것저것 설명해 주던 사수가 잠깐 멈춰 서더니 개인적인 질문을 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요?”
“그게... 설명하자면 좀 복잡합니다.”
육군 항공에서 장교로 장기 복무하다 출사표를 던졌던 카자흐스탄에서 겪은 여러 어려움 때문에 이곳까지 오게 됐다고 했더니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장교? 그럼 후배네. 아무래도 내가 몇 년 선배 같은데?”
알고 보니 그는 같은 출신, 장교 선배였다. 아무래도 젊은 날 고생을 경험한 공통분모가 있다 보니 서로에 대한 끈끈한 호감이 생겼다. 학연, 지연 이런저런 인연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깊은 인연은 동병상련!
아직 사수가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와 있는지 아직 모르지만 적지 않은 굴곡을 겪었을 것은 분명했다. 아프리카가 쉽게 올 만한 곳을 아니니..
괜찮아, 가장은 원래 그렇게 사는 거야!
잠시 말을 잊은 나의 어깨를 툭 치며 괜찮다고 힘내라고 응원해 주는 그의 한마디에 따뜻한 위로가 느껴졌다. 가장은 원래 그렇게 사는 거라는 그 말. 정말 그랬다. 가장이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뉴-페이스의 등장, 그리고 치열한 탐색전
공장을 둘러보면서 사수가 업무에 관련된 여러 가지 얘기들을 해 주었는데 사실 내 눈과 관심은 열심히 가발을 만들고 있는 현지 직원들에게 집중됐다. 그리고 내가 그들을 유심히 보는 것처럼 현지 직원들도 나에게 관심이 많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뉴-페이스’의 등장에 직원들이 조용히 술렁이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손은 가발을 만들고 있는데 눈은 우리 둘, 특히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옆의 사람을 쿡쿡 찔렀다. 그리고 함께 쳐다봤다. 눈빛이 치열하게 오가는 탐색전! 나는 그들이 궁금했고, 그들은 앞으로 자기네 매니저가 될 한국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많이 궁금했을 것이다.
그런데 직원들을 유심히 보다 보니 독특한 행동이 반복되는 게 눈에 띄었는데, 여직원들이 머리를 손으로 반복적으로 두드리는 것이었다. 심지어 작은 막대기로 머리를 두드리기도 하고 쇠막대로 긁기도 했다.
“사수, 여직원들이 왜 머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리죠?”
“그건 머리가 간지러워서 그런 거야.”
곱슬곱슬 한 머리카락이 말리면서 두피를 파고들어 간지럽기도, 심지어는 고통스럽기도 하다고 했다. 머릿니가 있어 간지러워 그러기도 한다는데, 머릿니는 아주 어릴 때 어머니가 머릿니 잡는다고 참 빗으로 빗어주시던 기억 이후 정말 오랜만에 들어봤다.
가발? 아프리카에선 무시 못 할 대박 아이템
사실 가발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지금까지 나는 가발이란 그저 대머리 아저씨들이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쓰는 위장술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가발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덕화 씨가 광고했던, 바로 그 광고 하나뿐이었다. 생산 공정을 보니 가발의 종류도 정말 다양했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직접 보니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한 바퀴 둘러보니, 생산 규모가 정말 대단하네요! 이렇게 대량 생산되어서 공급할 시장이 있다는 게 더 신기하기도 하고요.”
지금은 정말 조용한 편이야. 연말에는 얼마나 바쁜지 상상도 못 할 거야.
가발은 아프리카에선 대박 상품이야!
그때 마침 우리 앞으로 한 여자 매니저가 지나갔는데 사수가 화제를 돌리며 흥미로운 얘기를 꺼냈다.
“금방 지나간 매니저 봤지? 월급날 지나고 한번 봐봐.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서 올 거야.”
‘월급날이 지나면 다른 사람이 된다?’
가발을 쓰지 않은 거칠고 푸석한 생머리를 고무줄로 질끈 동여맨 한 여자 매니저를 지목하면서, 나중에 가발을 쓰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기대해 보라는 얘기였다.
사실 거기에 아프리카 가발 산업의 성공 비결이 있었다. 타고난 모발 특징 때문에 가발은 아프리카 여성들에게 생필품이자 미용의 ‘화룡점정畵龍點睛’ 같은 제품이었다.
너는 너의 스타일대로 하면 된다
앞서는 일 욕심에 생소한 전문 용어들과 생산 과정들을 중간중간 메모해 가면서 사수의 뒤를 따라다녔는데, 사수는 그런 나에게 의미 있는 조언을 해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보다 더 잘 알게 될 거야. 천천히 해.
너무 빨리 달리면 그만큼 빨리 지친다. 실수하면서 더 많이 배우는 거야.
그는 확실히 경륜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분명 당신도 이곳에 와서 좌충우돌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을 텐데 그렇게 쌓인 노하우를 오늘 처음 보는 나에게 아끼지 않고 다 풀어 주었다. 지금까지 어떤 삶의 과정을 지나왔는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나보다 그릇이 큰 사람인 건 분명했다.
내가 했던 얘기는 참고만 해.
나는 내 스타일대로 했고, 너는 너의 스타일로 만들어 가면 된다.
마지막 공장을 벗어나면서 했던 그의 마지막 말은 참 멋있었다. 그와 함께했던 짧은 동행에 참 많은 것을 배우고 내일부터 당면하게 될 많은 일들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런 사수를 만나게 된 것은 이곳에서 ‘굿 스타트’를 할 수 있는 좋은 징조 같았다.
길어도 너무 길었던 하루
새벽에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해서 오늘 이곳 공장에서 해가 지기까지 하루라고 하기엔 너무 길어 마치 며칠 같이 느껴졌던 하루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모든 것이 나를 온종일 자극했던 특별한 하루였다. 아직도 꿈만 같았다.
내가 아프리카에 있다니...
회사에서 제공되는 기숙사는 당분간 혼자 쓰게 됐다. 홀수 번째 직원이다 보니 깜짝 당첨된 복권과 같았다. 사실 나는 혼자 있으면 외로움도 잘 타는 편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쉴 때는 좀 편하게 쉴 수 있고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얼마 안 되는 짐을 대충 정리하고 샤워를 하려는데 샤워기에서 물이 정말 졸졸 흘렀다. 역시 물이 귀한 곳 아프리카! 그래도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지 않고 편하게 쓸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하루의 가장 달콤한 순간은 새벽에 있다 - 윌콕스 -
알람 시간 새벽 05:00.
챙겨 온 자명종 탁상시계에 시간을 맞추어, 머리 곁 테이블 위에 놓았다. 당분간은 조금 일찍 일어나서 빨리 익숙해지도록 공장도 둘러보고, 하루를 차분하게 시작하고 싶어서 군대 기상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을 알람으로 맞췄다.
제법 쌀쌀한 아프리카의 겨울밤. 해가 지고 나니 급격하게 기온이 떨어졌고 체감온도는 더 떨어졌다. 도대체 아프리카의 밤이 왜 이렇게 추운 건지 이해가 안 됐다. 이렇게 추운 줄 알았으면 다른 짐을 줄이고 전기요를 가지고 왔을 텐데... 아쉬움이 밀려왔다.
싸늘한 데다 누적된 비행 피로와 적응되지 않은 시차로 왠지 몸살이 날 것 같아 긴소매 옷과 잠바를 껴입고 웅크린 채 잠을 청했다. 출근 첫날부터 감기 따위에 걸린 나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니까...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기를 몇 번, 그리고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오직 한 가지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 전기요를 가지고 와야 했어!
케냐의 겨울은 낮에도 쌀쌀하지만 해가 지고 나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아프리카에 전기요가 웬 말이냐고 할 수 있지만 케냐는 정말 그랬다.
케냐로 7월~8월 사이에 장기여행이나 출장을 계획한다면 따뜻한 잠바와 전기요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몇 시나 됐지?
아직 자명종이 울리지 않은 새벽 창밖에서 울어대는 새소리에 잠이 깼다. 밤새 싸늘했던 날씨와 바뀐 잠자리,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들로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었는데... 어쩌면 시차 때문에 눈이 뜨여버린 것 같기도 했다.
어차피 다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눈을 비비며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담장 너머 전선 위에 나란히 앉은 새들이 그야말로 ‘떼창’을 하고 있다. 왠지 아프리카다워 보인다고나 할까? 고요한 가운데 울리는 새소리는 아주 청명하게 들렸다. 그렇게 아프리카에서 공식적인 첫 아침은 조금은 피곤했지만 부지런한 새들의 노래와 함께 시작됐다.
햇빛을 받으며 수확한 사람은 그늘에서 먹게 될 것이다. - 스와힐리 속담 -
공장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미리 공장을 한 바퀴 둘러보려고 일찍 숙소를 나섰다. 아직 아무도 없는 공장은 적막하리만큼 조용하고 평안했다. 산책하듯 가볍게 한 바퀴 돌고 출근 게이트 앞에 앉아 쉬고 있는데 뒤쪽에서 사수가 성큼성큼 걸어 내려왔다.
“우 대위! 잘 잤어?”
오랜만에 들어보는 친근한 호칭. 정말 요즘은 산이든 들이든 머리 기댈 곳만 있으면 단잠을 잤던 그때가 가끔 그립다.
웨! 웨! 아직 이르다고!
이제 수천 명의 직원이 벌떼 같이 몰려올 출근 시간이다. 아침 출근을 준비하는 모습은 마치 군대 작전과 같았다. 한국 매니저와 경비는 기본이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지역 경찰까지 동반되는 출근 작전! 몰려오는 직원들의 수만큼 치밀한 안전대책도 필요했다.
게이트가 열리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
출근 작정 중 매니저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효한’ 공장 직원이 아닌 사람들을 찾아 돌려보는 것이었다.
사수에게 듣고 보니 별별 사람이 이 문이 열리는 때만 노리고 있었다. 불성실하게 근무하다가 해고된 사람, 통보 없이 장기 무단결근으로 해고된 사람, 무작정 공장에 들어와서 취직을 간청하는 사람 그리고 심지어는 그냥 호기심에 한 번 들어와 보는 사람까지...
“오우! 그 많은 직원들 얼굴이 다 구별되십니까?”
“관심이지. 관심을 가지면 보여.”
관심이라... 사실 나는 유난히도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라 어려운 과제가 하나 생겼다. 천명 가까운 직원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 더욱이 마치 군용 흑색 위장을 한 듯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사람들을...
탕! 탕! 탕!
아직 이른 시간, 출근에 맞추어 게이트를 오픈하는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밖에서 게이트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남들보다 일찍 도착한 직원들이 ‘게이트 러시아워’가 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일찍 들여보내 달라고 보내는 신호였다.
왜! 왜!
어쩌다 과하게 게이트를 두드리면 경비가 아직 시간이 안 됐다고 화답으로 안쪽에서 게이트를 두드리며 “왜! 왜!”라고 소리쳤다.
왜? 왜? 왠지 한국말처럼 아주 선명하고 친근하게 들렸는데 실제로는 ‘왜 왜’가 아니라 ‘웨웨Wewe’였다. ‘웨웨’는 스와힐리어로 ‘Hey, You! 야 너!’라는 뜻,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는 ‘야! 너! (가만히 있어!)’란 뜻이었다. 나에겐 마치 ‘왜? 왜! 문을 두드려!’처럼 들려서, 경비가 게이트를 두드리며 소리칠 때마다 웃음이 났다.
마침내 약간의 긴장 가운데 출근 게이트가 열렸고 대형 트럭이 지나다니는 대형 게이트에는 정말 쓰나미처럼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로 한 치의 틈도 없었다.
와우! 이것이 말로만 들었던 ‘게이트 러시’였다.
관심을 가지니, 사람이 보였다
서로 밀치듯 들어오니 혹시나 안전사고가 날까 봐 사수와 경비는 게이트를 들어서는 직원들에게 뛰지 말라고 큰소리로 종용했다. 아무리 뛰지 말라고 외쳐도 각자의 길을 달려가는 직원들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뭔가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아직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라서, 그저 곁에 서서 출근 통제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첫 번째 출근 급류가 지나가고 나니, 조금은 여유로워진 게이트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좀 더 자세하게 눈에 들어왔다.
가죽 잠바는 좀 과한 게 아닌가?
복장을 보니 다들 두껍게 겉옷을 챙겨 입었는데 어떤 남자들은 가죽점퍼를 입고 있었다. 대략 영상 10도 되는 날씨인데 그 기온에 비하면 대부분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껴입었다. 옷 입은 모습을 보니 케냐, 아프리카인의 겨울이 실감됐다. 하기야 공항에서 나를 픽업해준 기사도 요사이 추위로 몇 명이 얼어 죽었다고 했었다. 생각해보니 아침 동이 트기 전에 출발했다면 지금보다 더 추웠을 것이다. 영상의 날씨에 추위를 느끼는 사람들, 심지어 동사하는 사람들... 기묘하지만 이게 이곳 케냐의 겨울 진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들 중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딱 봐도 꽤 무거워 보이는 짐을 이마에 걸치고 게이트를 통과하는 아줌마였다.
“그런데 저기 이마에 잔뜩 짐을 메고 온 사람은 누굽니까?”
“아, 저 사람? 우리 공장 직원인데 점심 장사하는 사람이지.”
부업으로 점심 장사를 하기 위해 음식과 과일을 조금씩 보따리에 싸 들고 온 직원이라고 했다. 보통 각자 자기 점심을 챙겨 오지만 미처 챙기지 못한 사람들은 저 사람에게 사 먹는다고 했다. 뭐가 들어있는지는 몰라도 보따리가 울퉁불퉁한 걸 보니 과일 같은 것들인 것 같았다.
왠지 그를 따라 내 시선이 옮겨졌는데 가지고 온 짐 보따리를 잃어버릴까 봐 경비 초소 옆 옥외 선반 한구석에 꼭꼭 묶어 두고선 경비에게 잘 부탁한다는 듯 뭐라고 하면서 손으로 사인을 보냈다. 경비는 보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아줌마는 나중에 뭐라도 좀 나눠주는 일종의 ‘공생관계’로 보였다.
저 무거운 짐을 메고 얼마나 걸어온 걸까?
보따리는 허리를 굽혀서 지고 올 정도로 무거워 보였는데 도대체 얼마나 먼 거리를 걸어왔을지... 푼돈 얼마라도 좀 더 벌려고 저 보따리 짐을 지고 걸어온 그를 보니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여기까지 달려온 내 모습과 부모라는 무게와 책임감이 함께 투영되어 마음이 짠했다.
열린 게이트로는 많은 직원이 여전히 부지런히 걷고 뛰어서 출근하고 있었다. 그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발 빠르게 걸으면서도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큰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게이트 밖에서는 오토바이 소리와 크고 산만한 음악 소리,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자연과 기계 그리고 사람이 만들어내는 각각의 또 부조화한 오케스트라 연주 같은 소리들은,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 부산히 움직이는 이곳 가발공장을 둘러싼 아침 소리였다.
이곳의 아침은 정말 살아있다. 활짝 열려있는 게이트는 마치 천국으로 들어서는 문 인양 한 곳을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누구 하나 일그러진 표정 없이 밝고 환했다.
열린 ‘천국의 문’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은 조금씩 달랐다
첫 번째는 부류는 걸어온 사람들이었다.
대다수 직원이 짧게는 삼십 분, 길게는 두 시간까지도 걸어서 출근했다. 이 첫 번째 부류는 그들의 신발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흙먼지가 신발 위에 뽀얗게 앉아있어서 그들이 걸어온 길의 컨디션까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비포장 흙먼지 길을 걸어오다 보니 신발도 발도 뽀얬다.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다 졸여질 때 가 있었다. 낡고 해어지고 뜯어진 신발에 아슬아슬하게 지탱하고 있는 신발 끈을 보니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내가 다 걱정이 됐다. 어떤 이들은 아예 신을 벗어 들고 맨발로 걸어왔다. 낡은 신발 하나도 아끼고 아끼는 ‘귀한 재산’인 게 보였다.
두 번째 부류는 낡았지만, 화려하게 치장한 미니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그 미니버스는 바로 케냐의 보편적 대중교통인 ‘마타투 Matatu, 15~30인승의 한국 봉고차와 비슷한 승합차’였다. 회사 출근 시간에 맞추어 특별 운행하는 마타투에서는 정원을 초과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탑승했는데 마치 어릴 때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소형차에 많이 타기’라는 주제의 기네스북 도전 영상이 떠올랐다. 최근 기네스북(2012년)에서는 ‘미니’라는 소형 승용차에 28명의 성인이 탔다고 한다. 아마 ‘미니’가 아니라 ‘마타투’에 많이 타기였다면 단연 이들이 우승 후보였을 것이다.
이 마타투는 비포장 언덕길을 마치 춤을 추듯 일렁일렁하면서 언덕 저 아래에서부터 경적을 울리면서 단숨에 공장 게이트 앞까지 달려왔다. 마타투는 중간에 멈추는 법이 없었다. 많은 사람을 태우고 오다 보니 중간에 멈추면 차가 힘에 부쳐 언덕길을 오르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꺄~악!”
마타투가 뒤에서 성난 황소처럼 달려오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가, 바로 뒤에서 울리는 요란한 경적에 깜짝 놀라 좌우로 뛰며 피하는 여자들의 비명이 연신 터져 나왔다.
마타투 마타타! Matatu Matata!
마타투는 케냐 전역에서 운행되는 주요 대중교통 수단이지만 마치 ‘도로 위의 무법자’처럼 달릴 때가 많아, 그런 마타투를 보고 현지 사람들은 ‘마타투 마타타!’라고 부른다. ‘마타타 Matata’는 스와힐리어로 ‘문제 또는 걱정’이란 뜻이라 문자 그대로 ‘문제 많은 마타투!’라는 뜻이다.
마타투 마타타, 마타타 밍기!(문제의 마타투, 문제 정말 많아!)
마타투의 어감과 라임을 이루듯 딱 맞아떨어지는 재미있는 표현이다.
마지막 부류들은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
그들은 정말 과감하게 게이트 앞 50cm까지 질주해 왔다. 이들은 가장 고급스럽고 ‘다이내믹’하게 출근하는 부류들이었다. 그런데 이 이른 아침부터 정신 사나운 음악을 스피커가 터지도록 볼륨을 높이고 다니는 이 오토바이 택시 이름이 너무 재미있었다. 바로 ‘피키 피기 Piki Piki오토바이 택시’였다. 마치 나에겐 우리말로 ‘삐끼 삐끼’처럼 들렸다.
삐끼 삐끼? 비켜 비켜!
걷고, 뛰고 또 타고.
이 게이트를 향해 달려오는 모양은 다르지만 오로지 목표는 안전하게 이 게이트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희비 喜悲가 교차하는 천국의 문
한바탕 출근 전쟁이 끝나갈 때쯤 요란한 벨이 울렸다. 근무 시작을 알리는 예비 신호인데 가장 치열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벨이 울리면 경비가 게이트를 조금씩 닫기 시작했는데 닫히는 큰 철문 게이트를 밀어내며 아직 입장하지 못한 직원들이 안간힘을 쓰며 들어서려 했다. 경비는 게이트를 닫으려 안간힘을 썼고 이에 질세라 뒤이어 가까스로 도착한 직원들이 또 밀어붙이고 또 닫으려 하고... 한동안 치열한 ‘밀당’이 이어졌다.
“아직 들어오지 못한 직원들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좀 보자.”
보다 못해 사수가 나섰고 나도 사수를 따라 게이트 밖으로 나갔다. 아직 게이트 아래쪽 언덕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고 더 뒤로는 오토바이 택시 두 대가 경적을 울리면서 달려오고 있다. 오토바이 뒤에 탄 사람은 양손을 하늘로 높게 펼쳐서 흔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뭐라는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아직 문을 닫지 말아 달라는 게 분명했다.
“저기 오토바이 탄 사람들까지만 열어 주지...”
마지막 인원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주위 둘러보니 게이트 앞에는 한 오십 명쯤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여기 이 사람들은 왜 모여 있죠?”
가끔 우리 공장에서 결원된 자리가 많거나 일거리가 늘어나 생산인력 충원을 위해 그야말로 현장에서 ‘번개 채용’을 할 때가 있었는데,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때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시골 마을에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거의 없다 보니 그들에겐 취직의 희망을 품고 온종일, 며칠이라도 기다리는 게 희망이고 낙이었다. 언제까지라는 기다림의 기한은 없었다. 취직될 때까지 그들은 이 자리에서 기다릴 것이다. 마치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인디언 기우제’가 생각났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저기 달려오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게이트를 통과해야 했다.
오늘 이 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내일 그들의 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게이트는 그야말로 ‘희비喜悲’가 교차하는 천국의 문이다.
공장으로 들어가니 벌써 전기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분주히 그날 분량에 맞춰 재료들을 옮기는 사람들과 벌써 자기 자리에서 차분히 목표 생산량을 채우기 위한 부산한 손놀림, 늦게 출근한 사람들을 독려하는 파트 매니저의 목소리! 이것은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과 ‘소리 있는 아우성’의 절묘한 하모니였다. 아침내 싸늘했던 공장 안은 어느새 직원 천 명의 열기, 재봉틀이 내는 열기, 가발 스타일링을 위해 돌아가는 열풍 건조기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행복은 정말 사소한 것에도 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리기 십 분 전부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펼쳐지는 치열한 눈치작전과 팽팽한 긴장감! 마치 백 미터 달리기, 그 준비 선상에 선 사람들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식사 장소가 야외 테이블과 공터이다 보니 한발 늦게 나가면 그늘 아래 좋은 자리는 금방 매진되기 때문이었다.
따르릉!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던 벨이 울렸고 천 명의 직원이 일제히 공장 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요일마다 파트별로 공장 이탈 순서가 정해져 있었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눈앞에 둔 사람들에겐 일 분 일 초가 급하기만 했다.
웨웨! 뽈레 뽈레! (polepole polepole 천천히 천천히!)
마지막 사람을 따라 점심 풍경을 보려고 밖으로 나섰다. 공장 문을 나서니 강렬한 햇살에 눈이 부셨다. 싸늘하다가도 해만 들면 이렇게 따듯했다. 야외에서 점심 먹기 딱 좋은 날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들, 낮은 턱에 걸터앉은 사람들 그리고 운 좋게 그늘을 차지한 사람들 등 차지한 자리는 달랐지만 모두들 아무렇게나 널브러지듯 편하게 앉아서 하나같이 비닐봉지에 싸 온 점심을 꺼냈다.
점심은 단출했다. 아보카도 반쪽, 삶은 달걀과 감자, 바나나와 이름 모를 과일들 그리고 아무렇게나 뭉쳐 만든 주먹밥... 덩치 큰 성인들이 저 정도만 먹고 온종일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로 간단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 보잘것없는 점심에도 수다와 웃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정말 순수한 행복이 보였다. 문득 풍요가 넘쳐나는 이 시대의 거추장스럽고 비만 서러워진 행복이 다이어트를 해서 슬림해진다면 딱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 게 있어 행복하고, 먹을 수 있어 더욱 행복하다.
어쨌거나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그 들만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저쪽 아래에 아까 한 보따리 이마에 걸쳐 메고 왔던 사람이 보였다. 풀어헤쳐 둔 보따리에 바나나 몇 개만 남은 걸 보니 오늘 장사는 제법 괜찮았나 보다. 그 사람은 나와 사수를 쳐다보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팔다 남은 바나나 두 개를 떼서 건넸다. 매니저에게 보내는 특별한 인심이었다. 그의 집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새벽부터 그 무거운 짐 보따리를 들고 와 얼마 되지도 않는 가격에 파는데 차마 그냥 받을 수는 없었다. 환전이라도 해두었으면 한 개 사주기라도 할 텐데 아직 주머니가 텅 비었다. 그사이 사수가 한사코 돈을 거절하는 그의 짐 보따리 위에 넉넉하게 얼마를 올려두고 바나나를 두 개 챙겼다.
그런데 바나나 원산지는 아프리카였나?
따스한 햇볕. 천국의 원재료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어느 곳이든 기대어 잠깐의 잠을 청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나른한 오후. 새벽부터 달려온 사람들의 피로회복제는 공짜로 무한히 내리쬐어 주는 햇볕이었다. 달달한 음식 냄새를 맡고 날아든 파리들이 단잠을 깨우면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휘휘 저으며 불청객을 쫓아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그다지 불편해 보이지도 귀찮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그들의 오래된 일상 같았다.
정말 사람은 다 똑같다
평화로운 정적을 깨고 오후 일과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요란히 울렸다. 아까 공장에서 뛰쳐나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일어서기에 너무 무거워진 엉덩이를 툭툭 털면서 최대한 여유롭게 공장으로 돌아갔다. 정말 사람은 다 똑같다. 여기나 저기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하라카! 하라카!
경비들과 파트 매니저들이 노래하듯 ‘하라까’를 외치며 각자 근무 위치로 서둘러 돌아가길 독려했다. ‘하라까Haraka’는 ‘서둘러, 빨리’ 이런 뜻인데, 한국말과 제법 연결이 잘되는 스와힐리어는 알면 알수록 재밌다.
“빨리빨리! 하라카~이!”
조용히 들리는 음성, 너도 그렇게 살아라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오랜만에 많이 걸어서 그런지 종아리가 얼얼했다. 그나마 지금은 겨울이라 선선해서 좋은 시즌이라는데 곧 여름이 되면 무더위로 많이 지칠 거라고 했다. 사람과 기계가 만들어 내는 열기가 정말 후끈하다고 했다. 그래도 지금은 어서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 공항에서 안아주었던 아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진하게 인스턴트커피를 한 잔 타고 의자에 걸터앉아 오늘 하루를 돌이켜 보았다. 새벽부터 마지막 퇴근하고 공장 문을 닫기까지 그 모든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런저런 일도 많았지만 순간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도 많았던 하루였다.
팍팍한 삶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웃고 있던 사람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삶은 감자, 바나나 하나에도 감사가 있고 또 기꺼이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따뜻한 햇볕만으로도 천국을 누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하루 일할 수 있는 기쁨을 놓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주어진 삶에 그저 감사하며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소소하고 소박한 행복이 보였었다. 확실히 더 많이 가졌다고 더 행복한 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했다.
너도 그렇게 살아라.
너무 욕심내지 말고 묵묵히 그리고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누군가 귓속에 속삭이듯 마음으로 잔잔한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사실 카자흐스탄에서 치른 전쟁 아닌 전쟁으로 마음이 헐 대로 헐어있었고 자신감이 바닥을 치니 ‘일상 속 감사’가 많이 줄었었다. 그런데 어제오늘 이곳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그동안 무뎌졌던 많은 것들이 다시 살아났다. 마치 마른 잔디밭에 시원한 비가 쏟아지듯 죽어있던 것 같았던 마음에 생기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일상의 작은 행복, 오늘 또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셀 수없이 많다는 걸 재발견하게 됐다.
케냐...
문득 지난 몇 년 동안 정신없이 달려온 나에게 이 시간이 왠지 신께서 허락한 위로의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몸과 마음’ 둘 다 바빴는데 이곳에선 몸은 바쁘겠지만 마음의 여유는 좀 생길 것 같았다. 몸은 힘들겠지만 마음만이라도 좀 쉴 수 있다면 그것만도 당분간은 충분할 것 같다.
샤워기를 틀었더니 불안 불안한 물줄기가 오락가락했다. 마음에 불편함이 없었다. 이 약한 물줄기도 이곳에선 넘치는 것 같으니...
I know well that happiness is in the little things.
행복은 사소한 것에 있다.
- 존 러스킨 -
잠자리에 들기 전, 아내에게 안부 문자를 보내려고 인터넷을 연결했는데, 핸드폰이 인터넷에 연결되니 새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표시됐다. 별생각 없이 메일을 열었는데 낯익은 발송처가 눈에 들어왔다.
카자흐스탄 재외 한국문화원!
설마...
한국문화원에서 추가 공석이 생겼으니, 면접 가능 날짜를 회신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추가 면접을 보러 오라고 친절히 안내해 주는 걸 보니 채용 가능성이 높은 러브콜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문화원은 카자흐스탄에서 살아보려고 최후의 희망으로 지원했던 곳이었다. 그토록 간절하게 바랐던 자리인데 케냐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면접 통보가 왔다. 정말 운명의 장난 같았다. 불과 3일 전 만이라도 메일을 받았다면 한국에서 면접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휴...
아쉬움에 긴 한숨이 내뱉어졌다.
그래. 어쩌면 케냐에 올 운명이었겠지...
이렇게 며칠 차이로 빗 껴 가는 걸 보면...
Amor Fati
아직 나는
오늘 내게 온 이 쓴 운명을 완전히 사랑할 자신이 없다.
다만
늘 내게 온 원치 않은 운명도 기꺼이 품을 수 있어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걸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