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카리부 케냐!

아모르 파티 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 - 니체 -

by 청연
1장. 카리부 케냐!
- 나이로비 공항, 간 졸이는 입국 신고식
- 세관은 '갑 of the 갑!'
- 8월, 얼어 죽는 아프리카의 겨울
- 케냐. 왠지 괜찮을 것 같아!
Amor Fati! (운명애 運命愛) - 네 운명을 사랑하라. - 니체 -


아모르파티 Amor Fati


케냐의 국화는 자카란다 Jacaranda(일명 아프리카 벚꽃).
몽환적인 ‘보랏빛 향기’ 나무 꽃, 그 꽃말은 ‘화사한 행복’이다.
운명의 거센 파도에 휩쓸리듯 도착한 곳 아프리카, 케냐.
인생 공백인 줄 알았던 그곳에서 자카란다를 만났고 여태껏 보지 못했던 가장 화사한 행복을 보았다.
소유의 많고 적음에 구애받지 않는 '궁극의 행복'을 보았다.

두 번째 이민지 케냐는
잠시 쉬어갈 만한 나무 그늘이었다.
조심스레 끌어안아 본 또 다른 운명이었다.
마침내 또 한 번 달려가고픈 아련한 여백이 되었다.


나이로비 공항, 간 졸이는 입국 신고식


2016년 8월. 한국은 한여름의 정점인데 케냐는 지금 겨울이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 조모 케냐타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말로만 듣던 아프리카에 도착한 실감이 났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참 낯설고 어색했다.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온 몇몇 중국 사람들을 제외하면 동양인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지금껏 살아왔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것이 직감되는 순간이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왠지 모를 위압감에 압도되는 기분, ‘촌놈 증후군’이 시작됐다.


3개월 도착 비자를 받으세요. 특별한 어려움 없을 겁니다.


한국에서 케냐까지의 여정을 설명해 주었던 회사 담당자는 일단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하면 3개월짜리 도착 비자를 받으라고 했었다. 비자 신청창구가 어디인지 둘러보았는데 한쪽으로 외국인들이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그 너머로 ‘비자’라고 쓰인 팻말이 보였다. 후... 카자흐스탄에서 얻은 ‘비자 트라우마’는 비자라는 말만 들어도 움츠러들고 바짝 긴장되게 했다. 다만 특별한 어려움 없이 비자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었기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비자 창구 앞에서 안내하는 공항 직원이 먼저 비자 신청서류를 작성하라고 해서, 잔뜩 쌓인 신청서 더미에서 습관적으로 신청서 양식을 두 장 챙겼다. 항상 한 장은 예비용으로 챙겨두는 게 마음이 편하다. 창구 옆 스탠드에서 옆 사람이 적는 것을 커닝하면서 눈치껏 칸을 채워 나갔다. 작성해야 할 사항이 제법 많았다. 오랜만에 영어를 써보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아주 이른 새벽이라 정신도 조금 혼미해서 어린아이 같이 삐뚤빼뚤하게 작성한 비자 신청서를 들고 도착비자 창구에 줄을 섰다.


다행히 앞사람들이 빨리빨리 통과 하늘 걸 보니 그리 까다롭진 않은 것 같았다. 내 순서가 되어 비자 신청서와 여권, 샛노란 황열 예방접종 증명서 그리고 미리 준비한 수수료를 담당관에게 내밀었다. 서류를 받아 든 담당관이 신청서와 여권을 번갈아 보면서 뭐라고 했는데 특유의 억양이 섞인 영어라 한 번에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I asked, why do you want to stay in Kenya for 3 months? (왜 3개월(이나) 머무르려 하지?)


담당관은 귀찮다는 듯이 나를 추켜올려다 보며 다시 천천히 또박또박 질문했다. 내리깐 안경 위로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하얀 눈 흰자위 그리고 딱딱한 어투! 그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선뜻 대답하기에 질문이 좀 난해했다. 비자 신청서에 분명히 “For Tourism(관광 목적)”이라고 적었는데 무슨 다른 이유가 있을까? 아무래도 케냐 한나라를 관광하는데 왜 3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하냐는 뜻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현지 회사에서 인턴으로 머문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케냐에 너무도 유명한 관광지가 너무 많잖아요!
그래서 가능한 많은 곳을 방문해 보려고 합니다.”


아부든 아첨이든 일단 상황을 모면하는 게 중요했다. 아무래도 자기네 나라가 좋아서 오래 머문다고 하면 좀 더 호의적으로 받아 주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다시 반문하는 담당관의 말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럼, 한 달이면 충분할 텐데?”

‘어, 이게 아닌데...’


전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길게 줄 선 사람들이 빨리 좀 끝내라고 눈치를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질문에 끌려 갈수록 불리해질 것 같아 빨리 담판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세요! 한국에서 케냐까지 거리가 10,000km입니다. 비행시간만 15시간이 걸렸고, 항공료를 1,000달러 넘게 지급했는데 어떻게 한 달만 머물고 가죠?”


담당자는 대답조차 하지 않고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여권을 앞뒤로 살펴보면서 고개를 까딱까딱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결정을 재촉하는 질문에 마지못해 “오케이”하면서 스탬프를 찍어 주었다. 결국은 승인해 줄 거면서 이렇게 사람 애간장을 녹였는지 모르겠다.


카 XX!


“네?”

담당자는 여권과 서류를 돌려주면서 뭐라고 짧게 한마디 했는데, 흥분하고 긴장한 탓에 놓쳐버렸다.

“I said, welcome to Kenya!”

“아. 네. 감사합니다!” 되돌려 받은 여권과 비자 서류를 챙겨 도망치듯 여권심사대로 이동했다. 여권심사를 대기하면서 생각해보니 아까 그 담당관이 ‘카리부! - Karibu(환영합니다!)’라고 했던 것 같았다.

아, 그 단어는 공부해왔었는데...




< 케냐 입국 시 도착 비자 신청 방법 >

* 신청 : 나이로비 조모 케냐타 국제공항 도착 비자 창구

* 운영시간 : 24H

* 발급비용 : 단수 기준, $50

* 체류 가능 기간 : 3개월(90일) 이내

* 주의 : 가끔 까다롭게 심사하며, 간혹 1개월만 승인해 주는 경우도 있어 반드시 승인 기간 확인해야 함!




세관은 '갑 of the 갑!'


헤이, 미스터! 거기 서세요!


수화물을 찾아서 얼른 공항을 빠져나가려고 출구로 향하는데 세관 직원이 나를 불러 세웠다. 처음엔 나를 부르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는데, 다시 한번 나를 불러 세웠다.


“그 자루 속에 뭐가 들었죠?”

“아, 사용하던 가전제품 같은 것들입니다.”


조금 불안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눈치 빠른 세관에 딱 걸렸다. 사실 케냐로 출발할 때 공항에서 한국지사에서 케냐 본사로 보내는 짐 자루 하나를 부탁받고, 일반 수화물 가방이 아니다 보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몇 가지 소형 가전제품과 기계 부품 같은 현지 본사에 급히 필요한 물품들이라 해서 그러려니 하고 받긴 했는데, 자루 윗부분이 풀 수 없도록 봉인 처리되어 있어서 내용물을 정확히 확인하진 못했었다.

“엑스레이 검사대 위에 짐을 모두 올리세요!”


왠지 예감이 안 좋았다. 내 짐이야 옷가지와 생필품 몇 개밖에 없으니 뒤져본들 문제없지만, 회사 물건에 관해 물어보면 정확한 정보가 없으니 대답하기가 좀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짐을 엑스레이 검사대를 통과시킨 세관 직원은 모니터링하는 직원과 함께 한참 동안 스와힐리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더니 처음 나를 붙잡았던 세관 직원이 수화물에 문제가 있다면서 안쪽 사무실로 따라 들어오라고 했다.


“신고하지 않고 반입하는 전자제품들에 대한 관세를 내야 합니다. 제품 종류, 가격 그리고 반입목적을 말해 주시오.”


세관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나를 다그쳤다. 사용하던 제품이고, 친구가 나이로비에 살아서 선물로 가져온 것들이라고 둘러대 보았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몇 번의 대화가 오간 후 처음 직원이 잠깐 밖으로 나오라고 해서 따라 나갔더니 사무실 문을 닫고선 조용히 말했다.


저 보따리 통과시켜줄 테니 200달러(US $)만 내.


헉! 200달러. 적은 돈은 아니긴 하지만 혹, 압류되기라도 하면 문제가 더 커질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저 자루 없이 회사로 향하면 ‘환영받지 못할’ 신입사원이 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 어쩌지? 이렇게 붙잡힌 이상, 조용히 빠져나갈 방법은 없어 보였다. 다만 직원이 조용히 얘기하는 걸 보니 정식 통관 세금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협상의 여지는 있지 않을까?


결국 약간은 비굴하고 조심스러운 ‘밀당’을 시도했고, 끝내 100달러로 할인받았다. 그래도 절반은 줄였으니 나름 성공한 셈이었다. 웃기게도 반값 할인이라도 받은 듯 약간의 희열이 느껴졌다.

잔돈으로 100달러를 받은 세관 직원은 얼른 세어보고선 바지 주머니에 쑥 집어넣었는데 그야말로 눈 뜨고 당하자니 기가 막혔다. 그래도 상도는 아는지 짐을 다시 넘겨주고선 세관 통과 대 앞까지 동행해 주었다. 그리고는 다른 세관 직원이 또 나를 불러 세우자 “내가 체크했어!” 하며 통과시켜 주라고 손짓을 했다.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순간 고민이 됐다. 이건 뭐... 완전 병 주고 약 주고다. 습관적으로 "Thank you"라고 얼른 말하고 또 잡힐세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얼른 출구로 빠져나왔다. 그나마 나는 흥정에 성공해서 빨리 나온 편이었다. 비행기에서 같이 내린 어떤 사람은 아직도 가방을 열고 풀고 언성을 높이고... 우후...

나중에 들어보니 케냐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각 국가들 세관은 악명이 높았다!



8월, 얼어 죽는 아프리카의 겨울


‘으... 생각보다 훨씬 춥네.’


좁은 출구통로로 찬바람이 확 들어와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8월이 겨울이라더니 출구를 빠져나오는 순간 실감됐다. 얇게 걸친 겉옷을 추스르면서 밖으로 나오니 새벽 동이 트고 있었다. 비행기는 벌써 도착했지만, 세관에서 아직 고전하고 있는 ‘후진’들이 많아서 그런지 피켓을 들고 기다리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내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현지인 운전기사가 마중 나올 거라고 했는데...


“Mr. Woo?”


대기자들 사이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피켓을 들고 있지 않은 한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바로 그가 나를 마중 나온 기사였는데 기다리다가 너무 추워서 차에 두었던 옷을 챙겨 입고 다시 왔다고 했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왔어요? 비행기는 한 참 전에 도착했는데?”

“아... 그게 짐이 늦게 나왔어요.”


그는 내 수화물 가방 하나를 손에 잡으면서, 기다리다 얼어 죽을 뻔했다고 넋두리했다. ‘블랙 머니’를 챙긴 세관 이야기는 현지인에게 기분 좋게 들리지 않을 터라 애꿎은 짐 탓으로 둘러댔다. 여하간 짐 때문인 건 사실이니까!


종종걸음으로 주차장에 도착해서 차에 짐을 싣고 앞좌석에 앉았다. 다행히 기사가 미리 틀어둔 히터에서 나오는 따뜻한 바람이 몸을 녹여 주었다.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 대화의 문을 열어줄 '아이스 브레이커'가 필요했다.


“나이로비의 겨울은 생각보다 춥네요.”

“추울 때죠. 이런 추운 날에는 사람들이 얼어 죽기도 해요. 최근에도 몇 명이 동사했다고 뉴스에 났어요.”


충격적이었다. 생각보다 춥긴 하지만 이 정도 추위에 동사라니!


공항을 빠져나오니 서서히 날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해 뜨는 아프리카의 첫 아침... 주변이 환해지면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참 신선했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아프리카 풍경’을 검색했을 때 맨 처음으로 등장했던 아프리카 '우산 아카시아 나무 Umbrella tree’가 가로수로 늘어져있고, 그 위로는 새벽빛 비친 꽃구름들이 하늘을 뒤덮었다. 몰려오는 잠을 깨려고 간간히 창문을 열 때 면 히터 열기를 비집고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까지... 이런 새로움과 상쾌함이 좀 전에 공항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한 번에 날려 주었다.

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만큼만 평온한 날들이었으면 좋겠다!

내 맘 알지?




중앙아시아와는 또 다른 느낌의 아프리카의 평원과 초원


누가 아프리카가 덥다 했던가!

아프리카는 무조건 덥다는 편견은 금물이다.

케냐의 겨울은 생각보다 춥다.

우리나라 쌀쌀한 가을 날씨를 생각해서 따뜻하게 복장을 준비해야 후한이 없다.

참고로 케냐의 여름은 한국의 여름보다 시원하다!




케냐. 왠지 괜찮을 것 같아!


먼저 나이로비 타운에 있는 본사에서 들러 전입 인사를 마치고 보직을 받아 근무하게 될 외부 생산 공장으로 대형 트럭을 타고 이동했다.


잠보! (Jambo!-안녕!)


나를 태워 줄 물류 트럭 운전사가 반갑다며 인사를 건넸는데 딱 보기에도 흥이 넘치는 친구였다. 차고가 높은 트럭에 짐을 올리고 앞좌석에 앉으니 마치 자대 발령받아가는 군인 같았다.


Ready? Twende! (트웬데-출발!)


기사는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서 스와힐리어를 섞어서 썼는데 내가 잘 못 알아들을 때는 난감한 듯 웃으면서 보디랭귀지를 더했다. 트럭은 검은 연기 내뿜으며 힘차게 출발했다. 커다란 앞 유리창이 탁 트인 시야를 주어서 너무 좋았다. 마치 관광버스 맨 앞자리에 앉은 느낌이었다.


나이로비 타운, 내가 상상했던 아프리카가 아니었다

나이로비 타운 중심부를 통과하면서 눈에 들어오는 모습은 어릴 때 배웠던 ‘가난한 아프리카’의 느낌과는 사뭇 거리가 멀었다. 고층 빌딩도 제법 많이 보였고 언덕 위 높은 담 너머로 보이는 웅장한 개인 주택들은 꽃이 피는 큰 나무들이 여러 그루 심겨 있었다. 딱 봐도 부자들이나 살 수 있는 주택들이었다. 아까 출발할 때 스쳐 지나온 본사 주변 마을 풍경은 마치 난민촌, 판자촌의 모습을 연상케 했는데 이런 부촌을 보니 빈부의 격차가 한눈에 보였다. 허름한 판자촌과 붉은 벽돌 부자촌의 어색한 공존, 그것이 이방인의 눈에 비친 케냐 나이로비의 첫인상이었다.


생각해 보면 아프리카에 대한 지식은 학창 시절 세계사 시간에 별 관심 없이 들었던 것들뿐이었다. 시골 촌놈인 나와는 평생 관계없을 것 같았던 얘기들이었고, 그저 지구 반대편 어딘가 물이 필요한, 또 국제원조가 필요한 빈민국들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사실 옛 기억에 남아 있는 아프리카의 이미지는 텔레비전 ‘동물의 왕국’을 통해 봤던 초원, 야생 동물들, 원시 부족, 만년설의 킬리만자로산.... 이런 것들뿐이었다.


부시맨의 원제는 'The Gods must be crazy'

그리고 보니 기억나는 아프리카 기억이 하나 더 있었다. 부시맨!(1980년 개봉 영화)


명절 때마다 특선영화로 방영해 주어서 몇 번이나 보았던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다. 그 영화는 순진한 한 아프리카 원주민이 하늘에서 떨어진 콜라병을 주우면서 이야기가 시작됐고, 이 기묘한 물건 때문에 마을에 불화가 생기자 주인공은 콜라병을 신에게 다시 돌려주기 위해 땅의 끝까지 걸어갔었다.


문득 그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났다. 그 어린 시절, 빛바랜 옛 기억 속 아프리카에 내가 와 있다니...


어쨌거나,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아프리카의 모습은 그동안 상상했던 그것과는 너 무도 다른 느낌이었다. 벌써 30년도 넘은 영화 속 기억이니 그사이 아프리카도 많이 변했을 것이다.



낯설지만, 한동안 머물러도 좋을 것 같은 케냐

얼마나 달렸을까? 트럭은 어느새 번잡한 나이로비 타운을 벗어나서 시원하게 뻥 뚫린 4차선 대로로 들어섰다. 생각보다 아주 잘 정비된 도로가 외려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참 동안 창밖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기사가 말을 걸어왔다.


“케냐는 처음이죠? 마음에 들어요?”

“케냐요? 지금까지는 아주 좋은 것 같네요. 풍경도 아름답고!”


실제로 첫인상이 참 좋았다.

딱히 어떤 부분이 좋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이 그랬다. 많이 낯설지만 생각보다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물론 잠시 지나가는 자유 여행자였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지난 3년을 살았던 심켄트는 이보다 더 황량했던 것 같다. 아마 쫓겨나듯 떠나게 되어 더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일이야 해봐야 알겠지만 큰 문제없다면 한동안 뿌리내리고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으로 하는 아프리카식 고막 청소

내가 또 잠잠 하자 기사가 심심했는지 빠르고 흥겨운 음악을 틀었다. 힙합인가? 한국에서는 나이트클럽에서나 틀 것 같은 마치 주문을 외는 듯한 가사에 아주 빠른 템포와 리듬! 아프리카에서 들어보는 첫 음악은 ‘흥’ 그 자체였다. 기사는 운전대를 잡은 손으로 핸들을 두드리며 리듬을 맞추기도 따라 부르기도 하면서 음악을 즐겼다.


“아프리카 음악 어때요? 괜찮죠?”


사실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아니지만 예의상 아주 좋다고 대답해 주었다. 서비스로 최고의 찬사인 ‘엄지 척’을 더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햇볕에 다시 밀려드는 잠도 깰 겸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조금씩 들썩였더니, 그는 내가 정말 좋아한다고 생각했는지 음악 볼륨을 차 뚜껑이 날려버리려는 듯 최대로 올렸다. 고막에 전해지는 강렬한 진동! 마치 고막 청소를 하는 것 같았다.


난생처음 생 사탕수수 주스를 맛보다

그렇게 한동안 고속도로를 달려가다가 어느 한적한 시골 갓길에 갑자기 차를 멈추어 섰다. 그리곤 “헝그리, 런치! OK?”하면서 나를 쳐다봤다. 기사는 여기 어딘가에서 점심을 먹을 모양이었다. 나는 그사이 잠깐 눈이라도 좀 부칠까 싶어 배가 고프지 않으니 괜찮다고 차에 있겠다고 거절했는데 그의 계속되는 권유에 못 이겨 차에서 내렸다.


“사탕수수 주스 마셔본 적 있어요?”

“아니요. 아직. 사탕수수 주스라... 괜찮을 것 같은데요?”


상점 앞에 대나무를 잘라 만든 날카롭고 짧은 죽창처럼 생긴 사탕수수 줄기가 묶음으로 쌓여있었는데, 사실 사탕수수를 실물로는 처음 봐서 처음에는 불쏘시개같이 다른 용도로 쓰는 일반 옥수수 줄기인 줄 알았다. 몇 개의 사탕수수 대를 꺼내 아주 낡은 압착기 같은 즙 틀에 넣고 통과시켰는데, 마른 대에서 생각보다 많은 양의 주스가 나왔다.


손에 쥐어진 사탕수수 주스는 그다지 호감 가는 비주얼을 아니었다. 아주 얇은 일회용 투명 플라스틱 컵에 담아준 주스는 작은 섬유질 같은 부유물들이 둥둥 떠다녔다.


미지근하고, 달짝지근한 음... 설탕 조금 빠진 이온 음료 맛?


처음 마셔보는 순도 100%의 사탕수수 주스 맛에 대한 내 평가는 그랬다. 그래도 피로가 조금 가시는 것 같았는데, 아마도 그 맛에 오래 운전해야 하는 기사는 사탕수수 줄기를 질겅질겅 씹는 것 같았다.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마시면 훨씬 더 좋았을 것 같았는데 이런 아프리카 시골 상점에서 얼음 찾는다는 것은 확실히 욕먹을 일이었다.

까끌까끌 하게 입에 걸리는 작은 껍질을 걸어내면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거칠고 마른 거리에 간간힌 핀 꽃 들이 보였다. 참... 이런 척박한 곳에도 꽃은 핀다.


미처 환전할 시간이 없어서 달러를 몇 장 내밀었더니 그는 얼마 안 한다며 절대 안 받겠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어쩔 수 없이 말로만 고맙다고 할 수밖에 없었는데 기사가 “Asante! 아싼 떼!”라고 화답했다.


Asante! (아싼 떼!)


‘아싼떼’는 스와힐리어로 ‘고맙습니다’라는 뜻이었다.

한국 커피믹스는 전 세계에서 통했다


아싼떼. 아싼떼... 고마운데 뭔가 줄만 한 게 없나?


문득 한국에서 가져온 커피믹스가 생각났다. 카자흐스탄에 있을 때 만났던 모든 외국인들은 한국 커피믹스를 ‘Amazing!’이라 극찬하며 좋아했었다. 여정 중 피곤할 때 마시려고 챙겨 왔었는데, 마침 메고 있던 작은 가방에 들어있어 몇 개를 꺼내 기사 손에 쥐여 주었다. 한국 커피믹스라고 얘기해주고 최상의 레시피와 당부의 말도 전했다.


“뜨거운 물 100mL를 붓고 잘 저을 것! 적거나 많으면 맛이 덜함!”


십 년 넘는 군 생활 동안, 최소 하루 다섯 잔의 커피믹스를 마시면서 터득한 비법! 일부러 한쪽 눈을 찌푸리며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는데 기사는 몇 번이나 고맙다며 꼭 그렇게 마시겠다고 하면서 웃었다.


‘그런데... 100mL를 잴 도구나 있으려나?’


내리 20분을 쉬지 않고 달려가는 동안은, 주고받은 선물로 급격히 친해진 기사와 함께 케냐의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들로 수다를 떨었다. 그는 그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냈고 나는 가끔 추임새를 넣으며 일방적으로 들었지만 유용한 정보들이 많았다.


내가 근무할 생산 공장이 있는 곳은 나이로비 타운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주 시골 동네라고 했다. 시장 근처에 있는 맛집도 둘러볼 만한 곳도 알려주었는데, 밤에는 위험할 수 있으니 가급적 돌아다니지 말라고 당부했다. 정말 커피믹스 몇 개로 ‘생존 오리엔테이션’을 완전 제대로 받았다.


내 운명을 가를 근무지, 가발 공장

드디어 마을 재래시장을 돌아서 비포장 길로 들어섰고, 마른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렸다. 사실 예상했던 만큼 시골은 아니었다. 오는 동안 기사가 해주었던 이 동네 묘사는 마치 ‘저 푸른 초원’ 위에 덩그러니 서 있는 생산 공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현대식 민가도 많았고 크고 작은 공장들도 제법 보였다. 물론 나이로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나이로비에 비한다면 여기는 정말 ‘깡촌’이 맞긴 했다.


“이제 거의 다 왔어요. 바로 저기예요!”


기사는 곧 도착하니 의자 뒷공간에 넣어둔 짐을 잊지 말고 잘 챙겨서 내릴 준비 하라고 워닝을 줬다. 얼마간 높은 담장을 따라가던 트럭이 마침내 큰 철문(이하 게이트) 앞에 섰고 쪽문이 열리더니 경비가 나와서 트럭 기사와 인사를 나누고 굳게 닫혀있던 게이트를 열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대규모 생산 공장!

마침내 앞으로 일하며 머물 곳에 도착했다고 생각하니 설레고 조금 긴장되기도 했다.



올해로 서른일곱.

군 생활을 제외하면 사실 직장을 통한 사회생활은 처음인 곳이다. 그러니 이제 이문을 지나면 지금껏 살아온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질 것이다. 일단 여기까진 잘 왔는데 이곳에서 잘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또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희망을 품고 왔으니 그저 내 앞길이 저 철문처럼만 활짝 열려주었으면 좋겠다.





Penye nia, pana njia.

뜻을 세울 때, 그곳에 길이 있다.

- 스와힐리 속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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