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굿바이 아프리카, 굿바이 케냐

아모르 파티 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 - 니체 -

by 청연
6장. 굿바이 아프리카, 굿바이 케냐
- 바람이 분다
- 더 많이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 여기, 민물장어들의 꿈
- 유턴, 후회 없다면 괜찮아
- 이별여행 '아웃 오브 아프리카' (나이바샤 국립공원)
- 모닥불 로망, 나이바샤의 밤
- 아프리카를 떠나며
* 시 : 너에게 달려가겠다.


바람이 분다


한 여름밤의 꿈, 다시 제자리로

따뜻했던 날씨로 한편으론 ‘한여름 밤의 꿈’ 같던 몸바사 여행은 강렬했고 짧았다. 다시 전쟁 같은 현실로 돌아온 마음은 내려놓는 짐 무게보다 더 무겁기만 했다. 왠지 공허해지는 마음. 비움과 채움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몸바사에서 다 비우고 온 줄 알았는데 그새 다시 무거워져 버렸다. 막연한 소원이 마음을 ‘톡톡’ 쳤다.


매일을 여행하듯 살 수 있다면...


슬프게도 이런 몽상은 살아가야 할 현실 앞에 너무도 무력하다.


아내는 남은 연휴 기간은 먼 곳을 나서지 말고 집에서 좀 편히 쉬기를 권했다. 몸바사 여행만으로 충분하다면서 두 달가량을 정신없이 살아온 나에게 쉼을 주고자 했다. 사실 휴식이 좀 필요하긴 했다. 그런데 웃기게도 막상 주어진 ‘완전한 자유’ 앞에 뭘 해야 할지 몰라할 일 없이 이 방 저 방 왔다 갔다만 하고 있었다. 하드웨어는 쉬고 있는데 소프트웨어는 멈추질 않는 기분이었다.

일 중독일까?


이 초조함은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 왠지 생산적인 어떤 일도 하지 않은 것은 나답지 않고 조금은 죄스럽게 느껴졌다.


아내가 불러줄 때가 가장 좋다

“옥수수 드세요!” 역시 이럴 때 구세주는 아내뿐이다. 드디어 아내가 나를 불러주었는데 지난번에 사둔 옥수수를 삶아 간식으로 내놓았다. 정말 먹는 것만큼 중요하고 즐거운 일도 없다. 얼른 쫒아 가 아프리카 옥수수 맛은 어떤지 맛을 봤는데 사실 옥수수는 누가 뭐래도 한국 찰 옥수수가 최고다!


그런데 옥수수를 먹다가 갑자기 신경이 곤두섰다. 아직 바닷가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이 아까부터 좁은 집에서 술래잡기한다고 좁은 아파트를 쿵쿵거리며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그만! 그만 좀 뛰라고!”


갈수록 소음의 강도가 심해지니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고 아이들은 깜짝 놀라 멈춰 섰다. 시무룩해져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는데 어깨를 늘어뜨리고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괜히 미안해졌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얼마나 답답할까 싶다. 한 참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집에만 갇혀 있으니... 뛰지 말고 뭘 좀 하라고 해야 하는데 딱히 대안이 없었다. 그나마 카자흐스탄에서는 컨테이너에 실어 보낸 동화책들과 현지 교민들이 물려준 책들이 있어서 심심해지면 스스로 책을 찾아 읽었었다. 그런데 케냐로 올 때는 수화물 무게 제한으로 각자가 원하는 책 세 권으로 한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가져온 책은 벌써 수십 번도 더 읽어 더 이상 흥미를 주지 못했다.


아까 언성을 높인 것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내가 나에게 자격지심으로 화를 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뭐라도 할 게 없나?

베란다로 나가 밖을 보니 일몰에 가까운 오후라 딱히 할 만한 게 없었다. 그러다 문득 지난번에 아내가 가끔 옥상에서 걷는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케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했는데 나는 아직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볼 기회가 없었다.


“얘들아, 우리 옥상에 한 번 올라가 볼래? 가자! 가자! 가자!”


미안한 마음에 옥상에 같이 올라가 보자고 아이들을 재촉했다.


옥상에 올라보니 저 멀리 지평선까지 탁 트인 파노라마 풍경이 참 좋았다. 여기까지 닿을 새라 높이 자란 나무들과 그 사이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한 무리의 새들 그리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왜 진작 올라오자고 얘기 안 했어? 너무 좋은데!”


애꿎은 아내가 화살을 맞았다.


그날 화를 그날 풀면, 추억이 된다

아내는 새들을 보더니 지난번 옥상 에피소드를 풀어놓았다. 그날도 오늘처럼 옥수수를 간식으로 내놓은 날이라 아이들은 먹고 있던 옥수수를 들고 엄마를 따라 옥상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아내는 앞서서 걷고 두 딸아이는 먹고 있던 옥수수를 들고 하나씩 떼어먹으면서 뒤따르고 있었는데 검고 큰 새가 날아와 큰딸이 손에 들고 있던 옥수수를 낚아채 갔다고 한다. 그런데 손을 할퀴고 옥수수를 가져간 새를 향해 울면서 외친 큰딸의 절규에 완전 배꼽을 잡았다.


야! 내 옥수수 내놔! 으앙! 내 옥수수...


역시 큰딸이다. 지난번에 빵을 들고 가다가 넘어졌을 때도 아픈 것보다 흙이 묻어 먹지 못하게 된 빵이 속상해 통곡했던 아이였다.


맞아. 맞아. 아빠, 그때 있잖아...


자기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큰딸이 불쑥 끼어들어 다시 한번 그때의 상황을 아주 소상히 설명했다. 아까 언성 높인 것이 미안해 “와우! 그래? 그래서?” 추임새를 넣어가며 ‘오버 리엑션’을 가미해 들어주었다. 다행히 아까의 불편한 마음은 어느새 불어 지나가는 바람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석양, 나를 돌아보게 하는 그 붉음

넓은 옥상을 걷다 보니 조금씩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석양 시간이었다. 자연 풍경과 어우러지는 아프리카 석양은 특별한 매력이 있다. 걷기를 멈추어 해가 지는 쪽 난간에 기대 지평선 너머로 붉은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말없이 바라봤다.



잘살고 있는 건가?


아내에게 아직 말하진 않았지만 요즘 들어 자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의 삶도 많이 적응되었고 소소한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늘 감사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끔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날이 있고 그 빈도도 잦아지고 있다.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느껴지는 전에 없었던 감정의 기복. 조금씩 줄던 체중이 어느새 8킬로 가까이 빠졌는데 그래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건강에 문제가 있나? 아니면 벌써 호르몬이 바뀌고 있나? 아니면...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오늘 불어오는 이 바람은 확실히 심상치 않았다.




더 많이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소유보다 소유 전, 그 기대가 더 좋다

연휴 마지막 날 가벼운 나들이로 가까운 쇼핑몰로 향했다. 지난번에 두바이에서 잃어버린 인형 대신 다른 인형을 사주기로 아이들에게 약속했었는데 그 미뤄두었던 숙제도 겸하기로 했다.


먼저 아이들 바람대로 장난감 가게에 들렀는데 아이들은 주저함 없이 인형 매대 앞에 멈춰 섰다. 각자를 선호에 따라 또 공통의 기호를 찾아 끊임없이 두 딸의 토론이 이어졌다. 그리고는 들었다 놓기의 무한 반복... 오랜만에 온 기회를 쉽게 써 버리고 싶지 않은 아이들의 마음이 읽혀 오늘이라도 마음껏 누리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생각해보면 사람은 결과적인 ‘소유의 기쁨’보다 ‘소유의 기회’라는 기대감에 더 기쁘게 반응하고 행복해지는 것 같다.


그래 결국, 인형이지...


아빠로서 딸아이들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는 무한한 인형 사랑이다. 한 달도 채 못가 방 한구석에 장식될 인형이 뭐가 그리 좋은지... 그렇게 인형이 좋냐고 물어볼 때마다 아이들은 ‘보기만 해도’ 좋다며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나는 좀 더 가치 있고 효용성 있는 책이나 스케치 도구 같은 것들을 주로 권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딸, 지난번에도 인형을 샀었으니까, 이번에는 다른 게 어때?”

“네, 그럼 다른 인형으로 살게요!”

“......”


그리고 이어지는 아내의 ‘가벼운’ 쇼핑 나는 또 대기 상태다. 사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딸과 아빠’라는 쇼핑 조합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의 남자는 이러한 ‘무료한 쇼핑 대기시간’을 꺼리기 때문이다. 나도 결혼 초반에는 그랬던 것 같은데 언젠 부터인가 이런 기다림에 조금씩 길들여지고 있었다. 심지어 이렇게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은근한 행복이 되었다. 아마 여자 셋 남자 하나, 3:1이라는 압도적인 성 비율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들을 닮아 가고 있다.


치킨은 진리가 아니었던가?

늦은 점심은 KF*에서 치킨으로 결정했다. 카자흐스탄에는 아직 KF*같은 프랜차이즈가 없어서 그 ‘강렬한 맛’이 늘 그리웠었다. 오랜만에 치킨다운 치킨을 먹어 본다는 기대감에 아주 푸짐하게 주문했다.


오! 대박!


아직 뜨거운 치킨을 한 조각 먹으니 또 다른 신세계가 열렸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놀라운 맛! 어마 무시하게 짰다. 짜도 짜도 너무 짰다. 그 맛있는 치킨을 남겨본 것도 케냐가 처음이었다.


만화영화가 뭐라고 마음이 흔들려...

연휴의 대미는 영화로 장식하기로 했다. 쇼핑몰에 들어올 때 입구에 ‘모아나’라는 애니메이션 영화 포스터와 실사 홍보물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애들이 그걸 보자마자 “우리 저 영화 보면 안 돼요?”하며 애교를 부렸었다. 나는 슬쩍 수작(?)을 부려보았다.


“음... 영화가 영어로 나오는데 괜찮겠어?”

“네, 괜찮아요!”


우리 아이들은 왜 이렇게 긍정적인지 모르겠다. 내일이 출근 날이라 일찍 들어가서 쉬고 싶었지만 못 알아들어도 좋다며 간청하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니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럼, 팝콘도 풍성히 사야겠지?


사실 우리 가족 중 영화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요새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랬지 예전에는 재밌다는 영화는 꼭 찾아서 봤었다. 다만 오늘은 장르가 좀 그렇다. 마흔이 다된 나이에 애니메이션 영화라니... 생각해보니 연애 시절 첫 영화도 ‘쿵후 판다’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였다. 그때는 뭘 보든 흠모하는 사람과 ‘함께’라는 게 좋았긴 했지만...


오늘은 영화 시작 직전에 현장 예매를 했더니 우리 가족이 다 같이 앉을 수 있는 연속된 자리가 없어서 나만 뒤쪽 줄로 밀려났다. 그렇게 약간의 소외감을 느끼는 가운데 영화는 시작됐다.


마흔 문턱, 또 흔들린다

The question keep asking yourself, who are you meant to be?

네 속에 너를 향한 끊임없는 질문, 너는 누구니?

한 참 영화를 재미있게 보다가 어느 순간 한 질문에 사로잡혔다.

자신을 ‘동네의 한 미친 여자’라고 소개했던 할머니의 선명한 대사 한마디 때문이었다.


너는 누구니? Who are you mean to be?


나는 누구인가... 내 꿈이 뭐였지?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잘살고 있는 건가?


연못을 스치는 바람이 만들어낸 잔잔한 물결처럼 끊임없이 질문들이 밀려왔다.


그냥 이렇게 직장 생활하면서, 케냐에 정착해야 할까?


솔직히 내 마음을 나도 잘 몰랐다.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 정확한 이유조차도... 다만 분명한 것은 이곳에 온 것이 궁극적인 꿈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날카롭게 말하자면 잠시 비자 문제를 피해 온 ‘피난처’였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런대로 살만하고 정도 많이 들었다. 일상의 감사함도 있었다. 회사에서 약간의 마찰이 있기도 하지만 어느 직장이든 그렇지 않은 곳이 있을까? 그러니 본질적으로 외부적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곰곰이 반년 가까운 생활을 돌이켜보니 ‘안정감’은 있는데 나를 밟아도 또 살아 움직이게 하는 ‘꿈과 비전’이 없었다. 정말 여기에 내 꿈은 없었다. 그래, 바로 그게 문제였다. 마치 좋은 옷이지만 내게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과감히 이 옷을 벗어 버려야 할지 아니면 그 옷에 나를 맞추며 살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다가도 눈을 돌려 쑥쑥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 어서 안정적으로 정착해야 할 것만 같기도 했다. 이방인이라는 고립된 환경에서 외롭지 않게 현지 친구들을 사귈 기회라도 주려면...


더욱이 아이들을 둘러업고 피난민처럼 이리저리 다녔던 날들을 떠올릴 때면 늘 아찔했다. 2번의 이민, 정말 진이 빠지게 했던 키르기스스탄으로의 비자 여행, 그리고 그동안 벌써 2번의 이민을 포함한 5번의 이사... 짐을 풀고 싼 것을 생각만 해도 절레절레 고개가 저어졌다.


자꾸 나를 돌이켜 보게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한창 젊은 나이. 아직 두려움 없이 무엇이든, 어디든 과감하게 도전해도 좋을 나이다. 그런데 카자흐스탄에서의 첫 시작이 너무 힘겨웠던 탓일까? 아님 여기까지 오는 길이 쉽지 않았던 탓일까?

이제 내가 늘 동경했던 ‘새로움’은 희망의 푸른색이 아니라 치열한 붉은색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또 흔들린다...


마음은 복잡하지만 한동안은 또 그냥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은 원래 그렇게 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어깨에 놓여있는 짐의 무게를 잘 가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삶의 짐을 가장 정확한 무게로 받아내게 될 때 우리는 어른이 된다.
애써 모르는 척하며 다른 일에 몰두하기에는 너무 나이 들고,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헛헛하게 웃으며 넘겨버리기에는 너무 젊은,
바로 그 시점에 말이다.

- 김난도,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중 -




여기, 민물장어들의 꿈


간질간질한 코와 연속되는 재채기. 최근 들어 비염이 심해졌다. 일전에 수년 동안 쌓여있던 재고창고를 정리했는데 그때 마신 케케묵은 먼지와 누수로 생긴 곰팡이가 결정타를 날렸다. 성가신 비염은 계속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식욕도 의욕도 떨어지게 했는데 그 때문인지 한동안 머물러있던 체중이 다시 주는 것 같았다.


더 줄일 구멍이 없는 벨트에 송곳으로 구멍을 하나 더 뚫고 채우면서 도대체 얼마나 몸무게가 줄었는지 궁금해서 상자 무게를 재는 대형 저울에 올라가 보았다. 저울 바늘은 옷을 입은 채로 67kg을 가리켰다. 케냐에 올 때 몸무게가 77kg이었던 걸 생각하면 10kg이 넘게 빠졌다. 다이어트라곤 한 적이 없는데 자꾸 살이 빠지니 내심 걱정이 됐다.


좋았던 인연들의 씁쓸한 빈자리

“하바리, 우 대리!”

오늘은 반가운 직장 선배가 창고를 방문했다. 오랜만에 업무차 본사에 올라왔다가 잠시 들렀다고 했다. 그는 전에 이 물류 창고 책임자였다. 외롭고 힘들 때 한 번씩 만나서 조언도 받고 가끔 운동도 같이하면서 정이 많이 든 사람이었다. 지금은 회사 홍보와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데 영어는 기본이고 스와힐리어까지 잘해서 그는 정말 팔방미인이었다. 참 부러운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쩌면 상당히 ‘재수 없는’ 사람이 될 뻔했는데 심지어 겸손하기까지 했다. 이래서 ‘신은 불공평하다’는 불평을 들으시는 거다.


나 곧 한국으로 떠나...


반갑게 안부를 주고받던 중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사실 충격이었다. 이 선배는 자녀가 셋이나 있다. 그리고 마흔이란 나이 이직을 쉽게 결정할 나이도 사람도 아니었다. 더욱이 아직 다음 직장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곳에 가장 오래 남을 사람 중 한 명이라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그만둔다니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말을 흐렸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갑자기 사직을 결정할 정도라면 뭔가 큰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다이어트해? 살이 너무 많이 빠진 거 아니야?


떠나기 전에 밥이라도 한 끼 하자며 내 어깨를 쓰다듬고선 뒤돌아선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무척 씁쓸하고 서운했다. 좋은 사람이 곁에서 멀어지는 것만큼 서운하고 안타까운 일은 없다.


벌써 몇 명의 매니저들이 떠났다. 어떤 이는 다시 꿈을 찾아서, 어떤 이는 회사의 기대에 부응 못 해 인턴 기간이 끝나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중에는 생산 공장에서 아주 가까워졌던 로스쿨 출신 동생도 있는데 그는 꿈을 다시 찾고 싶어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한국에 떨어져 있는 아내와 두 살배기 아이도 너무 보고 싶다고... 그가 마지막으로 내게 남겼던 말이 기억난다.


“급하고 절박한 마음에 여기까지 와서 살았었는데 그 마음으로 죽도록 공부하고 다시 도전하면 안 되겠습니까? 형님은 뭐든 열심히 하시니 꼭 성공하실 겁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무사히...”


참 괜찮았던 친구였는데... 잘살고 있겠지?

오늘따라 좋았던 인연들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여기, 우린 다 그렇게 살고 있다


이 세상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아프리카까지 오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짠’한 사연들이 참 많았다.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또 살아 내려고 지구 반대편까지라도 가보겠다고 여기까지 온 사람들... 전직 대학교수, 로스쿨 출신 법조인 지망생, 한국 최고 명문대학 학벌을 배경으로 하는 사람, 해외 건설 회사에서 소위 잘 나갔었는데 갑자기 직장을 잃어 여기까지 흘러온 사람... 하나같이 과거에는 대단한 스펙을 가진 직장인, 가장들이었다.


그때는 자존심이 셌을 어쩌면 목이 뻣뻣해도 누구나 인정해 줬을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누구나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게 인생 룰이다. 모두에게는 가슴 벅찬 꿈이 있었고 일부는 그 꿈을 살았었지만 이젠 과거일 뿐이었다. 여기 마흔을 전후로 한 우리는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카자흐스탄에서 힘들 때 가끔 들었었는데 최근에 우연히 다시 듣게 된 그 노래가 요즘 따라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민물장어의 꿈’. 작년에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록 가수 하현우가 ‘우리 동네 음악대장’이란 이름으로 등장해 편곡해 불렀던 고古신해철 원곡의 노래다. 가사 하나하나, 한 줄 한 줄이 오늘 여기,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이야기 같았다.


여기 우리 모두는
닿고 싶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꿈, 그 바다를 노래하는 민물장어다.





민들레 홀씨처럼 가벼이 날아 바다에 이를 수 있다면...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 내리 미련 없이


.......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중 -




[일기] 일희일비一喜一悲


일희一喜, 기쁜 소식 하나.

케냐 생활 10개월째. 카자흐스탄 영주권이 열렸다는 소식은 아직 없고, 한 번 폭락한 환율과 경제 사정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외려 물가는 더 오르고 있고,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 관계가 팽팽한 대립될 때마다 또 환율이 곤두박질칠까 봐 조마조마하다. 그래도 참 감사한 건 우리의 빈자리에도 불구하고 식당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이직한 직원이 없고 우리를 대신하고 있는 매니저도 자기 일처럼 성실하게 감당해 주고 있다.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었는데 반년이 훌쩍 넘도록 이렇게 잘 버티고 있으니 그야말로 기적이 틀림없다.


일비一悲, 슬픈 소식 하나.

한날은 한국에 있는 형님으로부터 SNS로 메시지가 왔다.


‘엄마 건강이 너무 안 좋으시다. 한 번 들어올 수 있니?’


어머니가 쓰러지셔서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고 했다. 혹시 어떻게 되실지 모르니 혼자만이라도 잠깐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지 물었다. 주저앉고 싶었다. 어머니는 여섯 살 때 아버지의 대형사고 이후 가족 생계를 꾸려오셨다. 그 고생의 흔적은 당뇨라는 지병으로 남았고, 높은 당뇨 수치로 오랫동안 고생하셨다. 한국을 떠나온 이후 몇 번이나 입원하였었는데 괜히 외국에 나가 있는 아들 걱정만 키운다고 알리지 말라고 하셨단다. 떠날 때 이제 죽어도 못 보는 것 아니냐며 눈물 흘리셨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이번에는 정말 달려가야 할 것 같은데 녹록지 않은 현실이 발목을 붙잡는다. 하루 이틀 만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도 아니고, 가장 바쁜 물류창고 담당자라 오래 자리를 비울 수도 없다... 가슴이 아프고 먹먹하다.




유턴, 후회 없다면 괜찮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딱히 대안이 없긴 한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곳의 삶이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너무 불편하네...


늦게 퇴근해서 아내와 둘만 앉아 밥을 먹다가 그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을 꺼냈다. 결국 무책임한 말이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사실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아내는 이미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는 것 같았다. 턱까지 찬 고비가 왔고 곧 넘어질 듯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는 걸. 늘 괜찮다고 했지만 정말 괜찮아서 괜찮은 게 아니었다는 걸.


아내는 잠시 말을 참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요. 그럼 다시 돌아가요. 먼저 한국에 가서 어머님부터 뵙고 다시 방법을 찾아봐요. 당신이 힘들어하는 것도 알고 있어요.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면서 위기를 버텨준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아내는 맞은편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나를 안아 주었다. 아내는 언제나 내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나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아내에게는 잠시 찾아왔던 안정된 삶이 단번에 날아 가버리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나보다 아내가 더 고생하고 있는데...


“괜찮아요. 아직 젊고 건강하니 뭐든 할 수 있잖아요.”


다시, 출발선

잠이 오질 않는 밤. 앞일을 생각해보니 막막했다. 회사와의 노동 계약 기간 2년을 채우지 못해 적지 않은 노동 비자 취득 비용을 변상해야 하고 다섯 명의 한국행 비행기 표를 사려니 그 비용도 적지 않았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차를 팔고 받을 월급까지 보태면 딱 떨어질 것 같았다. 정말 다시 ‘제로’ 상태로 돌아간다. 막상 떠나려고 마음먹고 나니 후련하기보다 앞날의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마음에 끝없이 되뇌는 한 가지 질문...


이제 어디로 가지?


다음 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난 아내가 부산히 아침을 준비했다. 식탁을 가득 채워 진수성찬을 차리고 넉넉히 먹고 출근할 수 있도록 평소보다 일찍 잠을 깨웠다.


“어차피 돌아가기로 결정했으니까 이제 많이 먹고 다시 건강 회복해요. 그렇게 말라서 부모님 뵈면 더 걱정하실 거예요.”


조용히 식사하는데 장모님이 건넛방에서 나오셨다.


“그만두고 돌아간다고 들었네. 그래 잘 생각했어. 일도 마음이 편해야 하는 거지... 아무 걱정하지 말고, 끝까지 일 잘 마치고 돌아가세. 그동안 고생 참 많았네. 사위 잘 만난 덕분에 아프리카에서도 살아봤네. 고맙네.”


아... 이 집안 여자들은 사람을 울리는 재주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좋은 아내를 얻은 남자다.
- 탈무드 -




이별여행, 아웃 오브 아프리카(나이바샤 국립공원)

떠나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케냐에서 마지막이 될 여행은 그동안 방문해 보고 싶었던 여러 곳 중에서 나이바샤 국립공원 Lake Naivasha National Park으로 정했다. 나이바샤 국립공원은 나이로비에서 멀지 않아 주말을 이용해 다녀오기 딱 좋은 거리였다. 케냐 버킷리트스였기도하고 아이들에게도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대자연 생태체험을 시켜 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나이바샤로 출발하는 날은 날씨가 너무 좋았다. 나이로비에서 두 시간쯤 되는 거리라 이동 시간도 아주 적당했다. 몸바사 9시간 주행을 커버한 이후로 3시간 이내 거리는 근교나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우리를 위해 잔 고장 없이 잘 달려준 ‘빨간 중고 자동차 붕붕’이 마지막으로 힘을 내주길 바랐다. 아이들은 어디로 향하든 나들이 자체가 기쁨이다. 창문을 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기도 하고 둘이 맞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의 삶은 비록 짧았지만 아이들에게도 좋은 경험과 추억이 되었을 거라고 믿는다.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 뷰포인트 The Great Rift Valley View Point


한 시간 조금 넘게 달려가다 잠시 쉬어갈 만한 곳을 찾고 있는데, 도로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무슨 전망대인 것 같은데 이름이 참 길고도 거창했다.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 음... 자화자찬이 좀 심한 거 같았다. (사실 그때 나는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 뭔지도 몰랐다.)


주차장에 들어서서 차를 세우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밀려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우리가 선 곳은 해발 2,500m. 지금껏 두발로 서본 가장 높은 해발 고도였다. 해발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바람이 엄청 세고 찼다. 절벽 위 아슬아슬한 전망대에 서니 그 아래로 내려 다 보는 끝없이 펼쳐지는 파노라마가 정말 압권이었다.


사진에 다 담을 수 없어 아쉬운 'Great' 한 풍경


The Great Rift Vally 대 지구대

레바논 베카 밸리에서 시작해서 이스라엘(요단강, 사해) ~ 홍해 ~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끝 모잠비크까지 이어지는 지상 최대 지구대로 장장 9,600km에 달한다.
그 유명한 킬리만자로 산도 이 지구대의 한 점을 잇는 휴화산이다.


오, 경관이 그 이름만큼이나 ‘Great’ 하네! 이름값 하는구나!


사진을 몇 장 찍어서 남기긴 했는데, 아쉽게도 사진에는 실제 풍경의 감동이 다 담기지 않았다.

거친 물, 샘 물, 새 희망 그 뜻도 다양한 산정호수, 나이바샤

잠깐의 휴식 후 부지런히 달려가니 해발 약 1,900m의 고지대 산정호수 나이바샤가 눈에 들어왔다. 정말 단번에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는 풍경이었다.


“저기, 플라밍고다!”


국립공원 관리 게이트를 통과해서 숙소로 들어가는 길 옆 호수에 여유를 즐기는 한 무리의 플라밍고 Flamingo들이 보였다. 이곳 나이바샤와 더 북쪽에 있는 나쿠루 호수가 플라밍고의 성지라고 하더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핑크빛 바디에 롱다리를 자랑하는 플라밍고의 자태는 눈 호강을 확실히 시켜줬다.


나이바샤, 나꾸루 국립공원은 플라밍고 Flamingos의 천국


호수 변 들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니 기린이 나뭇잎을 뜯고 있었는데, 키가 너무 커서인지 낮은 나뭇잎을 뜯기 위해 양 앞다리를 벌려 엉거주춤한 자세로 풀을 뜯는 모습이 준수한 자태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우스꽝스러웠다. 가까이 다가가면 위험할 것 같아 길가에서 풀 뜯는 기린을 먼 배경 삼아 사진도 한 장 남기고 숙소로 향했다. 마치 아프리카 야생동물 종합 선물세트를 받은 것 같다. 정말 케냐는 도시만 벗어나면 어디든 사파리 그 자체였다.


아프리카 초식동물 종합 선물세트, 나이바샤 국립공원


공원 안에는 ‘로지 Lodge’라고 부르는 별장들이 아주 많아서, 단번에 우리가 예약한 로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가다 보니 길의 끝, 호수 바로 앞에 있는 우리가 예약한 별장이 보였다. 빗장으로 닫혀있는 문 앞에 차를 세우니 관리인이 나와 문을 열며 열열이 환영했다.


별장 주변으로는 자연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높은 시멘트 담장이 둘러쳐져 있었는데 주야간으로 출몰하는 야생동물들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공원에는 초식동물들만 서식하고 있지만 밤에는 위험할 수도 있으니 돌아다니지 말라고 당부했다.


여하간 케냐에선 밤에 돌아다니지 않는 걸로!


푸... 품바다!

일몰 전에 호수 옆에서 잠깐이라도 풍경을 보려고 로지를 나서니, 원숭이 가족들이 모여 반상회를 하고 있다. 야생 원숭이는 사람 곁에는 오지 않지만 사람이 있으면 뭐 좀 얻어먹을 게 있나 싶어 늘 모였다.


헉! 이건 무슨 냄새지?


하늘을 찌를 듯한 푸르른 나무들과 바싹 마른 고목 군락을 지나 호수로 내려가는데 아주 구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위를 둘러보니 호숫가에 가까워질수록 완전 ‘똥 밭’이었다. 얼마나 많은 야생 동물들이 살고 있는지 똥으로 도배된 바닥만 봐도 짐작이 됐다.


조심스레 지뢰를 피하면서 앞장서서 내려가는데, 저 앞으로 한 무리의 동물들이 보였다. 땅바닥 색과 비슷해 뭔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품바 Pumba (아프리카 혹 멧돼지 ; 스와힐리어로 바보, 멍청이란 뜻)’가족이었다. 품바는 만화영화 ‘라이언 킹’의 감초 조연이었다. 간혹 나이로비 타운에도 출몰한다는데 나는 아직 한 번도 못 봤었다.


“어서 와봐. 품바야!”


도망갈세라 조용히 아내와 아이들을 어서 오라고 손짓하며 불렀다. 생긴 것 같지 않게 어찌나 예민한지 우리가 조심스레 밟아 부서지는 마른 나뭇가지 소리에 놀란 품바 가족이 고개를 들고 우리를 쳐다봤다. 어미로 보이는 품바는 생각보다 덩치가 컸다. 양 갈래로 뿔이 난 넓적한 주둥이와 머리와 가슴은 큰 데 비해 엉덩이 쪽으로 갈수록 급격히 왜소해지는 몸통, 극단적으로 짧은 다리! 아주 완벽히 웃기게 생긴 체형으로 우리를 피해 꼬리를 바짝 세우고 사뿐사뿐 걷는 모습이 얼마나 웃기는지. 우리가 보고 있어 불편했는지 어미가 이리저리 살피더니 새끼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라지는 모습도 아주 기가 막혔는데 어미를 선두로 덩치 큰 순서대로 한 줄로 따랐다. 아주 짧은 꼬리를 안테나처럼 바짝 세우고!


지그재그 인생길, 어찌 그 의미를 다 이해할 수 있을까?

푸른 하늘과 구름이 반사된 잔잔한 호수와 그 호수 안에서 고사한 나무들, 자유로이 날아가는 새들 그리고 오늘 우리까지... 나이바샤 호수는 참 많은 것들을 품고 있다.


참 아름답다. 이런 멋진 곳들을 본 것만 해도 케냐에 온 보람이 있어요.
지난번 몸바사 여행도 그랬고. 그냥 멋진 여행 했다고 생각해요.


말없이 멀리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아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야겠지?”

살며시 손을 잡은 아내가 어깨에 기댔다. 우리는 함께 말없이 잔잔하게 너울지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지난 시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짠해지는 걸 보니 짧은 시간에 참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이곳에 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더러는 깊은 인연이 되었고 그들과는 떠남과 남음이 서로 안타까운 사람들이 되었다. 난생처음 본 것과 경험한 것도 참 많았다. 그동안 고집스레 가지고 있던 수많은 편견도 깨졌다.

이곳에서 나는 아주 아주 조금 더 넓어지고 깊어진 것 같다.




좀 더 머물러도 좋겠지만 결국에는 떠나야 할 것이다.

맞지 않는 옷을 계속 입고 살 수는 없으니...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이르긴 하지만 아름다운 기억을 가지고 떠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언제고 다시 와보고 싶어 참 다행이다.

힘든 날 피난처가 되어준 이곳이 참 고마웠다.



모닥불 로망, 나이바샤의 밤


Hey! Come out!

고요함을 깨는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뒤를 따라온 로지 관리인이 해가 져가니 어서 호숫가에서 나오라고 소리치며 손짓했다.

“하마가 올라올 시간이에요!”

관리인은 하마 성격이 아주 사나워서 위험하니 어서 돌아오라고 했다.


엥? 하마가 올라온다고? 그런데 하마가 위험한가?


호수 주변에서도 호수 안에서도 못 봤는데 어디서 온다는 건지 의아하기만 했다. 더군다나 하마가 위험하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 봤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실제로 야생하마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위험하고 사나운 동물 중 하나였다.)

저녁을 먹고 나서 숙소 주변을 돌면서 나뭇가지들을 주워 모았다. 대자연 속에서 불태우는 ‘모닥불 로망’! 오늘은 별이 빛날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들 나누다가 밤마저 지새우고 싶었다. 떠나려니 더 아쉬워지는 이 시간이 더 오래 기억되도록...


‘타닥타닥’ 마른 나뭇가지가 타면서 내는 불꽃 튀는 소리와 뿌옇게 일어나는 연기와 나무 타는 냄새가 너무 좋았다. 모닥불 주변으로 가져다 놓은 앉은뱅이 통나무 의자가 운치를 더했다. 아이들은 점점 타오르는 모닥불 주변을 춤추듯 빙빙 돌았다. 저렇게 좋을까? 주변에 떨어져 있는 잔가지들을 모아 와서 내 옆에 놓으며 오늘은 늦게까지 놀자고 보챘다. 아내와 장모님은 포일에 싼 감자를 들고 나왔다. 카자흐스탄에서는 가끔 앞마당에 불을 지피고 감자를 구워 먹었었다.


“역시, 모닥불엔 감자 구이지!”


감자들을 불씨 속에 묻어두고 다들 자리에 앉았다.


일 년여 시간. 우리에겐 무엇이 남았을까?


감자 익는 동안 각자 케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얘기해 볼까?


큰딸은 옥수수를 낚아채 간 까마귀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날을 회상하며 또 한 번 흥분하면서 설명했는데 청자를 배려한 화자의 설명은 아주 디테일하고 열정이 넘쳤다. 막내는 몸바사에서 바다를 본 것과 밤에 봤던 수많은 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너무 무서웠는데 너무 신기했다고. 그도 그럴 것이 둘째는 기저귀를 떼지 못하고 나왔으니 흔하지만 아름다운 한국의 바다를 잘 기억하지 못했다. 몸바사 해변에서 모래사장을 걷는 것과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것조차 겁냈던 막내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내와 장모님도 몸바사 추억을 첫 번째로 손꼽았다.


“당신은?”

“글쎄...”


내 차례가 되었는데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 참 어려웠다.

생각해보면 꿈에도 상상치 못했던 아프리카까지 와서 살아 본 것 그 자체가 가장 신기한 일이었다. 순도 100% 흑인들 사이에서 더 현지인 같이 살아봤던 기억, 완전히 깨어진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 군 입대할 때 보다 짧게 잘라본 머리, 충격적인 말라리아와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되새겼던 삶과 행복의 참 의미, 친구가 된 마사이족 멀대 친구, 아홉 시간을 내리 달렸던 몸바사 길과 그 길에 만났던 잊지 못할 바오바브나무 그리고 행복해지는 마법의 주문 ‘하쿠나 마타타’까지... 돌아보니 참 많은 것들이 좋았다. 정말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는 소중한 기억들이었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음. 음! 아, 그러고 보니...”

“응?”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그 모든 날들이 좋았어!


지난겨울 재미있게 보았던 도깨비라는 드라마의 명대사가 생각났다. 참 멋진 말이었다. 참 멋있는 사람이 했던.


“뭐야~! 여보, 같은 대사인데 어쩜 이렇게 분위기가 다르지? 자기는 ‘공유’가 아니라 글쎄 뭐랄까... 그냥 ‘공유기’ 같아! 나와 아이들이 공유하는!”

“그래 정말 고마워. 공유가 아닌 공유기와 살아줘서!”

아직 남아있는 새로움, 그리움이 될 여운

감자 익는 냄새가 솔솔 났다. 긴 막대로 대충 만든 부지깽이로 포일에 잘 싸서 묻어두었던 감자를 하나씩 굴려서 꺼냈다. 각자 하나씩 들고 뜨거운 껍질을 호호 불며 어떻게든 빨리 먹어보려고 난리였다. 시커먼 숯에 입이 지저분해져도 맛있고 즐겁기만 했다.

감자를 한참 맛있게 먹고 있는데 동물 울음소리가 들렸다.


“꾸으으~~. 꾸으으...”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동물 소리였다. 중저음의 톤이 심상치 않았는데 마치 코를 푸는 것 같기도 하고 신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담장 너머 낮은 나무들이 막 흔들렸는데 아까 관리인이 말했던 하마가 생각났다. 먹던 감자를 내려놓고 조용히 다가가서 담장을 넘어다보니 역시 하마였다. 덩치 큰 하마 두 마리가 수풀 사이를 비집고 누워 있었다.


“쉿! 조용히 와봐. 여기 하마가 있어.”


아내와 아이들이 로지 조명의 끝자락 담장 구석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담장이 높아 첫째는 어깨에 목말을 태우고, 둘째는 아내가 허리를 잡고 들어 올렸다.


“자, 이제 불 켠다. 잘 봐봐.”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담장 너머를 비추니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하마들이 보였다. 머리를 반대쪽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등짝과 통통한 엉덩이로 봐선 하마가 분명했다. 갑자기 불이 켜지고 사람 소리가 들려 놀란 하마들은 꿈틀꿈틀하더니 달아나 버렸다. 놀라게 할 마음은 없었는데 조금 미안하게 됐다. 하마를 눈앞에서 보니 저런 거구의 하마가 ‘으~~’하고 다가오면 정말 무섭긴 하겠다.


“별들이 참 많네. 저건 은하수인가?”


로지 주위의 조명들이 하나둘씩 꺼지고 모닥불도 잔잔하게 숯만 남으니 별들이 더 선명하게 빛났다. 초롱초롱한 별이 빛나는 나이바샤의 밤. 오늘따라 유난히 별들이 많이 나온 것 같다.

떠나더라도 잊지는 말라는 듯...




그날, 우리를 따스하게 보듬어준 그 모닥불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삶을 희망으로 전진시키는

그날까지 끝까지 울음을 참아내는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 안도현, '모닥불' 중 -




아프리카를 떠나며


길의 끝, 그것은 또 다른 시작

몇 줄 안 되는 사직서를 쓴다고 종이를 몇 장이나 낭비했는지 모르겠다. 전역 지원서 쓰던 때가 생각났다. 그래도 그때는 다음 목적지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야말로 ‘무작정’이다. 하얀 종이에 손수 정성스럽게 쓴 사직서를 새하얀 봉투에 고이 접어 담았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


회사 분위기가 적당할 때 사직서 내기 좋은 날 제출하려고 사직서를 며칠째 가슴에 품고 다녔는데 드디어 오늘 제출했다. 비상구가 필요했던 날 잠시 피난처가 되어 주었던 고마웠던 직장을 이렇게 떠나지만 후회는 없었다. 비록 능력은 부족했지만 회사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걸로 된 거다.


사직서를 내고 사무실을 나오니 오늘따라 하늘이 너무도 맑고 푸르렀다. 다시 돌아온 계절, 그 상쾌함. 마치 이곳을 내려놓은 오늘, 힘내라고 응원이라도 하듯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공장을 한 바퀴 돌면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는데, 처음 전입해 왔을 때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혈혈단신으로 왔는데, 그사이 친구도 많이 생겼고, 한 번쯤은 안아주고 떠나야 할 사람도 많이 생겼다.


무엇을 남기고 갈 수 있을까?

내 두 손에는 초라하지만, 마음을 담은 작은 작별 선물이 들려있었다. 아직 새것 같은 옷가지와 신발... 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그동안 나를 믿고 열심히 따라와 준 그들에게 더 줄 수 있는 게 없어 괜히 미안해졌다. 동고동락했던 현지 매니저들과는 포옹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눴는데 헤어짐을 안타까워하며 진심 어린 ‘Good luck’을 빌어주었다.


우 매니저 언제든 다시 와요. 그리울 거예요.


작별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매니저들이 공장 앞까지 배웅 나와서 “We will miss you!”라고 외치며 손을 흔드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그래도 잘 살았나 보다.


조심스레 걸어온 발자취, 케냐 팔찌

일전에 아내가 부업으로 팔찌를 만드는 매니저에게 케냐 국기와 우리 가족들 이니셜이 담긴 기념 팔찌를 주문해 두었었다. 그는 팔찌들을 노란 봉투에 정성스럽게 담아 건넸다. 어디서 구했는지 아직 빳빳한 새 봉투에서 팔찌를 꺼내 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예쁘고 정교하게 잘 만들었다. 이 팔찌들은 가족들에겐 케냐를 살다 간 기념이 될 것이다. 나에게는 후에 추억할 돌아 돌아 걸었던 길, 그 발자취가 되겠지만...

형님 (Brother) 꺼라 특별히 신경 썼습니다.


매니저는 팔찌를 건네주면서 ‘형님’이 주문하신 거라 더 정성스럽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나보다 열 살 가까이 어렸는데 처음에는 얼굴만 보고 정말 동년배인 줄 알았다. 친해진 이후론 장난도 치고 가끔 ‘헤드 록’을 걸었었던 마치 동생처럼 아꼈던 직원이다.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넉넉히 계산해 주었는데 그는 금액을 확인하더니 너무 많이 줬다며 일부를 도로 돌려주었다. 외려 내 것은 값없이 선물로 싶다고 했다.

몇 년이 지난 일인데 아직도 막내는 그 팔찌를 끼고 다닌다


어떻게 그냥 받을 수 있을까?


말로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고 마음을 표하고 그의 주머니에 다시 찔러 넣어 주었다. 이들은 물질적으로는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마음조차 가난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동안 함께했던 사람들이 떠올라 미소가 그려졌다. 눈으로만 보았던 사람들이 이제 서야 가슴에 담겼다. 괜히 미안해졌다. 조금만 더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참 좋았을 뻔했다. 조금만 더 웃어줄 걸 그랬다. 이렇게 빨리 헤어지게 될 줄 알았다면...


가족,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

사직서를 내고, 일찍 퇴근해 집에 도착하니 조촐한 저녁 파티가 준비되어있다. “그동안 고생했어요. 아빠!” 아내의 감사 축사로 시작된 우리만의 파티. 앞길이 막막한 ‘백수’로 돌아온 나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가장의 무게. 그 무게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믿어주는 가족 때문에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 궁극에는 가족밖에 없다.


굿바이 아프리카, 굿바이 케냐!

아침 출발 비행기라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받으신 노동비자는 단수 비자라 출국하면 무효화됩니다. 그렇게 되어도 문제없나요?”

“아, 네. 그렇습니다. 다음에 다시 비자받아 올게요!”

‘물론, 관광비자로요.’


잘 있어라. 아프리카, 케냐.

다음에 꼭 다시 올게!




인생은 그런 것 같다.

때로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흘러 흘러가는 것이다.


좀 더 살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짧은 인생,

꼭 이 아프리카, 케냐를 통과해야만 했던 이유를...



[여백을 위한 시]



너에게 달려가겠다


처참한 공백인 줄 알았던

그곳에서의 삶은,

실은 휴식 같은 여백이었다.


여백이 아름다운 이유는

의도적으로 다 채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가치 無價値’로서의 공백과는 다르다.

미련 없이 떠났기에

공백이 여백으로 바뀌어 버렸다.


여백은 생명력이 있다.

채움보다 더 강렬한 비움.

‘더 나은 선택 Better choice’은 무엇인가?


새들이 노래할 때, 바람이 서늘하게 불 때

그리고 하늘이 푸른 날

나는 그곳이 그립다.

내가 남겨 놓은 빈 공간, 그 시간이 그립다.


언제고 미처 다 채우지 못한 여백

사무치게 그리울 때

주머니에 작은 붓 하나 숨겨

너에게 달려가겠다.


- D. 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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