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너의 별을 따라가라
- 나의 별, 조지아에 뜨다
- 트빌리시로 와요. 오작교 건너듯
- 배움, 그 즐거움에 관하여
- 예술이 기본, 조지아
너의 별을 따라가라!
여전히 내 눈은 틀림없으니 너는 영광의 항구에 이를 것이다. - 단테 -
영광의 항구
여전히 지옥에서 안내자는 ‘너의 별’을 따라가라고 했다.
‘영광의 항구’에 이르게 할 그 별을 따라가라고.
2017년 7월 7일. 나의 별을 따라온 지 4년.
마침내 이곳, 영광의 항구 조지아에 기쁨의 닻을 내렸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별이 있다.
그것은 꿈과 희망이다.
좌절되고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판도라의 상자에는 여전히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당신만을 위해 준비된 ‘영광의 항구’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그곳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의 별, 조지아에 뜨다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틈틈이 인터넷으로 이력서를 넣으면서 구직활동을 했다. 카자흐스탄으로 언젠가 다시 들어가긴 해야겠지만 장기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까지는 쉽게 복귀를 결정하기 어려웠다. 다음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케냐에서 출발할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지,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이 늘어가는 것을 부정할 순 없었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고급 레스토랑 매니저부터 해외 공사 현장 타일공까지.. 다시 한번 간절히 해외 취업의 문을 두드렸다. 국내에서도 이런저런 일자리를 구할 수 도 있겠지만 아직은 국내로 완전히 돌아와 머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카자흐스탄의 꿈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미 떠났기 때문에 꿈을 따라 떠난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사실 ‘거봐, 결국 너 가 틀렸지?’라며 나를 안쓰럽게 바라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의식되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이런저런 사연을 늘어놓고 위로 아닌 위로를 받을 순 있겠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내 꿈을 누군가에게 가볍게 평가되고 싶지 않았다.
또다시 해외로의 도전은 어쩌면 지난 과정보다 더 고난스러운 길일 수도 있겠지만, 이젠 그 길이 나의 길이란 확신이 들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거기에 내 심장이 뛰기 때문이었다.
참 험난한 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나의 길을 가고 싶다.
나의 별, 마침내 조지아에 뜨다
해외 취업은 그 자리도 많지 않은 데다 법적 취업 조건이 까다롭고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아서 좀처럼 합격이나 면접 통보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롭게 올라온 구인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유럽. 조지아 현지 가이드 / 통역 관광가이드 채용
조지아? 그루지야?
케냐로 떠나기 전에 주 조지아 한국대사관 행정직원 채용 공고에 지원한 적이 있어서 조지아란 이름이 제법 친근했다. 그때도 조지아에 대한 희망을 품었었는데 아쉽게도 기회가 오지 않았었다.
현지, 통역 관광가이드... 생전 가이드 경험은 고사하고 관광가이드를 직접 본 경험조차도 딱 한 번, 그것도 신혼여행 때 특별한 설명 없이 장소 이동만 도왔던 가이드를 만났던 기억이 전부였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밑져야 본전이니 도전해 봐요. 거기도 구소련 국가였고 이젠 러시아어도 제법 잘하니까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당신은 입담과 사교성이 좋으니 왠지 가이드란 직업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망설임 끝에 결국 아내의 응원에 힘입어 지원서를 제출했다. 이력서에는 가이드 경력이 전혀 없으니 해외 거주 경험과 가이드 업무에 도움이 될 만한 언어능력을 덧붙여 보강했다.
‘구소련 문화권 카자흐스탄 3년 거주, 중급 수준 러시아어 구사’
그리고 초조한 기다림의 날들이 시작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메일을 확인하고 ‘새로 고침’해서 또 확인하기를 며칠, 마침내 전화로 굿 뉴스가 전해졌다.
“언제 면접 가능하세요?”
“아! 내일이라도 가능합니다!”
며칠 뒤 서울 여행사 사무실에서 면접을 보았다. 여행사 사장님과 인사를 짧게 나누고 본격적인 면접이 시작되었다.
“워낙 많은 분이 지원해서 사실 이력서를 제대로 볼 시간도 없었어요. 어디 한번 볼까요?”
지원자들이 많았다니 채용의 기대를 좀 낮추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군 장교 출신, 헬기 조종사, 카자흐스탄 3년 거주, 카자흐스탄 현지 외식업 경영 3년, 케냐 가발공장? 영어점수도 괜찮고 러시아어도 중급이라... 이력이 아주 특이하시네요?”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무심결에 튀어나온 대답. 정말 그랬다. 복잡하고 심란했던 지난 여정을 다 설명하려면 밤을 새워도 시간이 부족했다. 잠깐의 대화였지만 간간이 웃어주시는 걸 보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게 직감됐다. 사장님은 여행업계와 가이드 경험은 없지만 러시아 문화권에서의 오랜 거주로 구소련 국가들의 공통적인 문화를 잘 알고 있고, 특히 현지에서 통역 없이 바로 가이드를 시작할 수 있는 러시아어를 구사한다는 걸 높게 평가해 주셨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면접이 끝난 후 사장님이 악수를 청하시면서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현장에서 선발을 결정해 주셨다.
“언제 조지아로 출발할 수 있죠?”
“아! 내일이라도 가능합니다!”
“하하. 너무 적극적이네. 그런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정말 내일이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출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보채는 나를 못 이긴 사장님은 빠른 시일 내에 항공편을 잡아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사무실을 나오는데 갑자기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별을 따라 조지아로 간다
면접 보러 출발할 때 기왕 서울 가는 김에 몇 가지 알아볼 게 있어서 아내와 동행했었다. 엘리베이터를 문이 열리니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가 “여기요!”하면서 크게 손을 흔들었다.
“어떻게 됐어요? 면접은 잘 봤어요?”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웃으면서 팔짱을 끼는 아내, 기다리는 동안 많이 궁금했을 것이다.
“아. 그게...”
좋은 소식을 손에 쥐니 태생적 막내의 장난기가 발동해서 잠시 뜸을 들였다.
“괜찮아요. 잘 안됐어도. 인연이 아닌 거겠죠.”
“조지아 출발 항공편이 정해지면 알려주신 데. 와우!”
“정말? 축하해요!”
아내는 마치 소녀같이 끼었던 팔을 크게 흔들며 좋아했다.
아프리카까지 거치고 나니 이제 세상 어느 곳이든 살아가는 것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회사의 기대만큼 내 몫을 잘해 낼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은 되지만 늘 그랬듯 부족함은 노력으로 채우면 될 것이다.
아! 나는 이제 조지아로 간다.
내일이, 출발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트빌리시로 와요, 오작교 건너듯
우리 오작교 건너듯 다시 만나
7월 7일. 조지아 출발 날짜가 통보되었다. ‘러키세븐’ 그 행운의 숫자가 더블! 날짜조차 마음에 들었다. 기분이 좋으니 뭐라도 더 좋은 의미를 더하고 싶었다.
“출발 날짜가 7월 7일이래.”
“오작교를 건너는 건가? 아 참. 그건 음력이지!”
“먼저 가 있을 테니까, 오작교 건너듯 다시 만나자.”
우리의 계획은 항상 같았다. 내가 먼저 자리 잡고 그다음은 가족이 이주해 오는 것. 얼마나 빨리 재회하느냐는 온전히 ‘선발대’ 격인 나에게 달려있었다.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올해가 다 지나기 전에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춥고 외로울 겨울이 오기 전에...
그런데 비자는 어떻게 되는 거지?
비자 트라우마! 나와 우리 가족에게 비자는 정말 너무도 중요한 문제였다. 따지고 보면 결국 비자 문제 때문에 이렇게 지구를 떠돌고 있는 것이니... 지난번 케냐 입국 때 도착 비자발급이 생각보다 까다로웠던 기억이 나서 회사 담당자에게 확인요청을 했는데 ‘관광 목적으로는 1년 동안 체류 가능’하다고 했다.
무비자 1년? 정말 그럴까?
외려 길어도 너무 긴 무비자 체류 기간을 그대로 믿기에는 왠지 불안했다. 예전에 카자흐스탄에서 조지아를 거주 대안으로 생각하고 비자 규정을 알아보았을 때 관광목적 체류 기간이 연속 180일 중, 3개월이었던 걸로 기억했다. 어렴풋하긴 했지만 분명 1년은 아니었다. 조금 미심쩍어 인터넷으로 직접 조지아 외교부를 찾아 들어가 확인해보니, 정말 ‘Full 1(One) year’라고 되어있었다.
무비자 1년!!!
정말 말도 안 되는, 듣도 보도 못한, 무한하게 자비한 비자 법이었다. 아직 일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조지아의 관대함에 감사함이 솟구쳤다. 그래선 안 되겠지만 가이드라는 일에는 실패할 수 있어도 거주에는 실패함이 없을 거라는 현실적인 생각도 들었다. 회사를 통해 따로 비자를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손님은 신이 보낸 선물
서울에서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까지 거리는 6,770Km. 케냐보다는 가깝고 카자흐스탄보다는 먼 곳. 조지아로 가는 직항 편이 없어 모스크바를 경유해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 처음 밟아보는 유럽 땅이었다. 얼마 전까지 흑인들 사이에서 살았는데 이젠 토종 백인들 사이에 홀로 서 있었다. 나는 또 다른 세상에 와있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새로 지었는지 깔끔한 건물 복도를 따라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보통은 비행기 착륙 전에 ‘입국 카드’ 정도는 나눠주며 체류 기간 동안 묵을 호텔과 주소, 여권 번호 등 최소한의 정보를 기록하는 입국 카드 정도는 작성하라고 하는데 여긴 그것조차도 없었다. 입국 절차가 너무 간소해서 당황스럽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앞서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입국 심사를 마치고 어느새 내 차례가 되었다. 내 여권을 받아 든 제복이 잘 어울리는 여성 담당관이 “헬로” 하며 가볍게 웃어주었는데, 예쁘고 친절했고 심지어 입국 스탬프도 아주 선명하게 잘 찍어 주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Have a nice trip!” 하면서 바로 여권을 돌려줬다. 여권 스캔하는 시간밖에 안 걸린 쾌속 입국심사! 이게 정말 끝인가 싶어 멈칫하고 있으니 “다음 사람”하고 외쳤다.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통과였다.
여권 심사대 옆으로 열린 게이트를 통과하는데, 마치 천국의 문을 통과하는 것 같았다.
სტუმარი ღვთისაა.
A guest is a gift from God.
- 조지아 속담 -
< 조지아 공화국 무비자 비자 규정 (2020년 기준) >
출처 : 조지아 외교부 공식 홈페이지 ※주의 : 실제로 날자 계수는 ‘360일’을 법적 체류기간으로 한다.
‘따뜻함’, 그 뜻만큼이나 푸근한 트빌리시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짐을 찾고 출구로 향했다. 입국자를 기다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 사이로 현지 지사에서 보내준 기사분이 내 이름표를 들고 있었다. 구레나룻 수염과 이어지는 풍성하고 붉은색에 가까운 턱수염이 멋있는 기사의 이름은 기오르기 Giorgi였는데, 영어로는 '조지 George'라고 했다. 조지아에서는 아주 흔한 이름인데 남자 셋 중 한 명은 ‘기오르기-조지’라고 했다. 조지, 기억하기 쉽고 나라 이름 조지아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조지가 사는 조지아!
영어가 서툰 그와는 러시아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편했다. 우리는 트빌리시 시내에 소재한 사무실로 향했는데 친절한 그는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건물과 풍경들을 가이드하듯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저쪽 강 너머 산 위에 큰 동상이 하나 보이죠? 그게 바로 조지아의 어머니예요!”
“아, 조지아의 어머니상!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그 옆으로는 고풍스럽고 거칠어 보이는 성벽이, 그 아래로는 주황색 톤의 지붕들과 알록달록하게 색칠된 낡고 오래된 목조 테라스를 받치고 있는 벽돌 건물들이, 그리고 중간중간 보이는 오래된 교회까지... 강을 끼고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이 주는 느낌이 그러하듯 트빌리시를 흘러가는 강이 한층 운치를 더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예쁘네!’ 마음속으로 연신 감탄하며 처음 마주하는 트빌리시에 완전히 매료됐다.
첫눈에 들어온 트빌리시 풍경 / 트빌리시 Tbilisi는 '따뜻함'이란 뜻
조지아의 어머니상 한 손에는 와인 잔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조지아의 어머니는 환대와 응징(적)의 상징이다.
알록달록한 Old Tbilisi트빌리시는 조지아의 고도古都이자 AD 5c부터 현재까지 1,500년 수도다.
가장 중심부, 아름다운 ‘올드 트빌리시’는 ‘역사 보호지구’로 지정되어있다.
성 조지 St. George도 모르고 조지아에 왔어요?
“저기 높은 황금 동상에 말을 탄 사람은 누구죠?”
“성 조지 St. George에요. 아시죠? 나쁜 용을 무찌른 기독교 용사!”
“아, 네... 미안한데, 사실 잘 몰라요. 하하.”
나라 이름 조지아, 기사 이름 조지,
흠숭하는 성 조지와 성조지 기마상, 좀 전에 지나간 성 조지 교회!
정말 조지아는 ‘조지’로부터 시작해서 ‘조지’로 끝나는 나라였다. 트빌리시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거리인 ‘쇼타 루스타벨리 Shota rustaveli’ 대로를 지나면서는 기오르기가 설명을 많이 해줬는데 지나가는 풍경을 보느라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이렇게 즐겼으면 좋겠다 싶었다.
공항에서부터 시내까지 들어오면서 눈과 가슴에 담기는 트빌리시의 느낌이 참 좋았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편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도시같이 낯선 곳에서 익숙함이 느껴졌다. 이곳에도 러시아풍 건축물들이 많이 보였는데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같은 구소련 국가들을 다녀보고 또 살아봐서 친근한 것 같았다.
세 번째 인생 목적지, 왠지 그 번지수를 제대로 찾은 것 같다.
혹시, 케냐에서 봤던 세 겹 무지개가 조지아를 뜻했나?
성 조지 황금 기마상 / 트빌리시 자유의 광장
배움, 그 즐거움에 관하여
조지아는 기본, 아르메니아는 덤?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두 나라 가이드 준비해 주세요.”
“네, 아르메니아도요?”
사무실에 도착해서 지사장님께 도착 인사를 드리고 잠깐 말씀을 나눴는데 자세하게 현지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한국에는 이제 막 알려지고 있는 여행지 조지아는 인접 나라들과 연계해서 여행 상품이 개발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가이드 일을 시작할 수 있을지 확답을 받을 수는 없었다. 물론 아직 내가 전혀 준비되지 않기도 했지만...
아르메니아 Armenia라...
코카서스 3국 중 아제르바이잔을 제외한 조지아, 아르메니아 2개국 가이드를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고 하셔서 조금 부담이 늘었다.
“기회가 오면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 주세요.”
“네. 그럼요. 사실 일은 제가 더 급한걸요.”
면담의 끝에는 10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투어를 이끌어 가려면 각 여행지뿐만 아니라 역사, 문화, 전통 음식 등 다방면에 지식을 쌓아야 하신다고 당부하셨다. 현재는 인접 국가 가이드가 단체관광객이 있을 때만 잠깐씩 와서 가이드를 해주고 있었고 상주하고 있는 한국 가이드는 없었다. 곁에서 조언이나 도움을 받을 데가 없으니 틈날 때마다 개인적으로 발품을 팔면서 공부해야 할 상황이었다. 초기 시장에 가장 먼저 선발되어 온 예비 가이드의 비애라면 비애였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면담을 마치고 회사에서 마련해 준 숙소로 짐을 풀기 위해 이동했다. 가지고 온 짐이라고 해봐야 오래된 노트북과 옷가지 몇 개밖에 없어 대충 정리하고 테이블에 앉으니 ‘백지상태’인 지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방향이 잡히질 않았다.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좀 전에 사무실에서 가져온 조지아 지도를 펼쳐서 한동안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자주 봐야 빨리 익숙해지고 친근해질 것 같아, 네 모서리에 테이프를 붙여 벽에다 붙였다. 그리곤 지도 한구석에 아주 간단한 일일 계획을 노란색 포스트잇에 써서 붙였다.
딱히 계획이랄 것도 없지만 무엇을 하든 ‘하루치 배움의 양’을 채우겠다는 나름의 결연한 의지였다. 공부해 가다 보면 집중해야 할 방향이 잡히겠지만 지금은 ‘질’보다 ‘양’이 더 필요한 시점이었다. 아무리 늦어도 ‘앞으로 2개월 내에 가이드로서 손님들 앞에서 최소한 부끄럽지 않은 지식을 갖추자'를 목표로 정했다.
포스트잇에 써 붙인 이 단순한 학습 시간 계산법은 그동안 독학을 하면서 나름대로 체득한 ‘학습 총량의 법칙’에 기초한 것이었다. 사람마다 배움의 속도는 다르겠지만 배움이 더딘 나는 새로운 언어든 손에 익혀야 할 기술이든 간에 총량이 500시간을 넘어가면 기초가 잡혔고, 1,000시간이 넘어가면 꽤 쓸 만한 지식이나 기술이 되었다. 나만의 경험적 평균인 셈이다. 그래서 목표로 정한 ‘두 달 내, 1,000시간.’이다. 포스트잇을 단단히 붙이면서 내가 잘 준비되어 하루라도 빨리 가이드 일을 시작할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배움, 즐겁지 아니한가?
나의 현재 모드는 ‘독수공방 獨守空房’.
처음 며칠 동안은 숙소에서 최소한의 외출만 하면서 공부에 몰두했다. 결국 그동안 굳어있던 뇌에 과부하가 걸렸다. 홍수처럼 대량으로 급격히 유입되어 정리되지 않은 정보들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만 했다. 아무래도 가장 어려운 주제는 조지아의 역사와 그와 연계된 세계사였다. 더욱이 세계사는 학창 시절 가장 싫어했던 과목 중 하나였다. 그때는 그야말로 ‘나와 무슨 상관?’이었는데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제대로 만난 느낌이었다.
조지아 180만 년, 아르메니아 200만 년!
도대체 이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숫자들이 이들 나라의 역사 기원이었다. 조지아, 아르메니아 역사에 포함되어있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고대 페르시아 제국, 알렉산드로스(헬라) 제국, 로마제국 등 고대 근동 역사와 몽골제국 칭기즈칸의 침략기, 러시아 제국의 침략과 구소련 시기 그리고 마침내 자유 독립! 거기에다 조지아,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 바로, 구약, 신약을 관통하는 초기 ~ 현재까지의 기독교 역사까지! 후~!
아, 신이시여! 제가 해낼 수 있겠습니까?
조지아 노트
아르메니아 노트
다시, 발품이 명품 가이드를 만든다
휴... 이제 좀 걸을까?
첫 주말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트빌리시 현장답사에 나섰다. 사실 따로 집중 답사 목적지를 두고 나설 때도 있었지만 주목적은 트빌리시 타운을 세, 네 시간씩 걸으면서 도시와 친근해지는 것이었다.
걷고, 걷고 또 걷고...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을 걸으며 느껴지는 트빌리시는 너무 바쁘지도 않은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은 도시라서 좋았다. 젊은이들의 버스킹과 때때로 광장에서 벌어지는 작은 공연들에 발길을 멈춰 한참을 들었다. 조지아 와인 공부 차 들어갔던 와인 매장에서 ‘와인 시음’을 권유하는 매장 직원의 성화에 8,000년 빈티지 와인에 살짝 취해보기도 했다. 색색이 운치 있는 카라반 사라이식 발코니들과 중세 성벽 흔적들을 따라 걸으며 ‘배움의 발품’을 파는 일은 너무도 즐거웠다.
새벽 공기 쐬며 공부하는 이 새벽에도, 어김없이 폭죽이 터졌다.
트빌리시는 축하할 일이 그렇게도 많은, 매일매일 행복한 도시였다.
한밤에 폭죽 터지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라 베란다를 열고 무슨 일인가 내다봤던 기억이 난다.
아름다운 모양과 색으로 하늘을 수놓았던 폭죽놀이.
정말 매일매일 알 수 없는 축제가 연신 터지는 트빌리시였다.
예술가의 나라, 조지아
조지아어, 글자인가? 예술인가?
가마르조바! (გამარჯობა-안녕하세요!)
조지아에 도착했을 때부터 눈에 띄었던 마치 그림을 그려놓은 듯한 낯선 조지아 글자. 부드러운 그 글자의 모양이 마음을 왠지 편하게 했다.
사실 구소련 일원이었던 나라라 러시아 글자를 흔하게 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찾아보기 어려웠다. 상점 간판이나 교통표지판도 대부분 조지아어와 영어를 혼용해서 쓰고 있었다. 그것은 2008년 조지아-러시아 전쟁 이후에 독립국가연합(CIS)을 탈퇴하고 ‘탈러시아’를 주창하고 있어서 그랬다. 하지만 여기도 카자흐스탄처럼 기성세대는 여전히 러시아어를 상용어로 쓰고 있고, 여전히 국가 간 분쟁과 자원외교를 통해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러시아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안타깝게도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의 약소국은 강대국에 그 근간마저 휘둘릴 수밖에 없다.
‘포도나무 순’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게 생긴 글자. 조지아 문자는 정말 둥글둥글하게 생겼다. 지금까지 몇 개 국어를 공부했던 경험이 있어서 문자를 보면 대략이라도 ‘근본 어족’이 유추가 되는데, 이 조지아어는 정말 감조차 오지 않았다. 조지아어는 ‘코카서스 - 카르트 벨리안 어족’이라는데, 현재 쓰고 있는 조지아 문자의 기원이 1,600년도 넘었다고 하니 그 역사가 정말 대단했다.
문자와 언어는 곧 그 민족의 정체성이다. 수많은 제국의 침략과 지배 속에서도 민족 고유의 문자와 언어를 끝까지 지켜온 자긍심은 대단했다. 우리가 자랑하는 한글이 500년 조금 넘는 역사다. 수없이 당한 외세의 침략으로 한글을 지키기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조지아 인들이 얼마나 그들의 언어를 각별히 지켜왔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내 인생 6번째 언어. 조지어
얼마 전에는 스와힐리어, 그전에는 러시아어와 카자흐어, 이제는 조지아어... 모국어인 한국어와 영어까지 포함하면 이번이 무려 6번째 언어다. 정말 어쩌다 보니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조지아에선 러시아어로도 충분히 소통되긴 하지만 여행자가 아닌 거주자로서 살아 보려고 하는 나에겐 필수인 언어다. 그래서 또 이렇게 ‘새로운 영혼 만들기’라는 의미 있는 도전이 시작됐다.
현지 서점에서 구매한 조지아어 회화책을 펼쳐놓고 틈틈이 공부할 때마다 한 가지 생각만 떠올랐다.
아! 이것은 글자인가 예술인가?
보통 카르툴리 ქართული(조지아어)와 영어를 혼용해서 쓴다
조지아어를 ‘카르툴리 ქართული’라고 하는데 미국의 유력 매체인 매타도르 네트워크(Matador Network)에서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알파벳’ 중의 하나다.
A.D 4c부터 쓰인 ‘카르툴리’는 놀랍게도 한글처럼 쓰는 대로 읽고, 읽는 대로 쓰는 문자다.
따라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과학적인 문자 체계 중 하나이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 그 자체가 예술
조지아는 역사, 문화, 언어 심지어 와인까지 ‘센츄리 Century-백 년’ 단위가 아니라 ‘밀레니엄 Millennium-천 년’ 단위로 끊어야 밤을 새우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나라다. 사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대중매체에서 ‘밀레니엄’이란 단어를 처음 들어 본 이후로 다시 밀레니엄이라는 단어를 써보는 건 조지아가 처음이었다.
‘크베브리 (Qvevri-항아리)’ 와인, 8,000년 빈티지 예술
수도원마다 오래된 크베브리 Qvevri가 운치를 더한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조지아의 와인의 역사는 무려 8천 년이다. 와우!
술 마시는 인간, ‘호모 임비벤스 Homo Imbibens’의 원조는 아마 조지아인이 아닌가 싶다. 그를 방증하듯 조지아에는 ‘물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크베브리에 빠져 죽은 사람이 더 많다’라는 말이 있다.
‘신의 눈물’이라 하는 거룩한 와인을 빚고 항아리에 담아온 그들은 누구나 와인 한잔과 노래 한곡과 시를 읊을 줄 아는 진정한 ‘예. 술. 가(예술 예藝, 술 술酒, 노래 가歌)!’들이었다.
길거리에 흔한 예술가들의 흔적, 그라피티
트빌리시, 조지아 전역에서 그라피티를 아주 흔하게 만나게 된다. 지하로, 건물, 붉은 벽돌담... 그들 뛰어난 예술 감각은 도시 곳곳, 다양한 주제의 그라피티에 잘 드러난다.
지하차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그라피티
건물을 그라피티로 도배한 트빌리시 명소, 파프리카 (Fabrika , Tbilisi)
[조지아 문학 영웅]
죽었으나 영원히 살아있는 쇼타 루 스타 벨리
Shota Rustaveli (შოთა რუსთაველი)
인간이여, 운명을 불평치 말라!
그것에 만족하고 수용하라.
전사들은 항상 용감하고, 일꾼들은 그들의 일을 즐길 지어라.
사랑에 쉬이 미치는 사람들이여, 사랑의 참뜻을 알지 어라.
타인의 사랑을 경멸치 말며,
그들이 그대의 숭고한 사랑을 경멸치 못하게 하라.
- 『표범 가죽을 입은 기사』 서문 11절, 쇼타 루스타벨리 -
*조지아의 민족 영웅 쇼타 루스타벨리 Shota Rustaveli / AD 1172~1216)의 대서사시 ‘표범 가죽을 입은 기사(Knight in the Panther’s Skin, AD 12c 경)’는 그 역사성과 뛰어난 예술성으로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