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나, 너 그리고 우리

너는 영광의 항구에 이를 것이다. - 단테 -

by 청연
3장. 나, 너 그리고 우리
- 공백, 이젠 여백으로
- 세컨드 제네시스, 아르메니아를 가다
- 가보고 싶은 그대와 우리 사이의 섬
- '천 개의 언덕' 부룬디 Brundi로의 초대

[Out-tro] 별을 따라간 고래


공백, 이젠 여백으로


나의 별 그리고 우리의 별

2017년 11월.

올해 마지막 행사가 끝나는 날에 맞춰 아내와 아이들이 아빠가 새로 튼 둥지 조지아로 입국했다. 이곳도 겨울은 춥다지만, 우리는 새 보금자리 덕에 마음은 어느 때 보다 따뜻한 계절이 될 것이었다.


“와! 아빠, 이런 예쁜 나라에서 가이드를 하니 너무 좋겠어요!”


“그렇지?”


청명한 하늘과 시원한 바람, 고풍스럽고 멋스러운 도시... 내가 그랬듯 아내와 아이들도 감탄했다.


거봐, 내 말 듣고 도전해 보길 잘했죠? 역시 여자의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니까!
그래, 그래. 당신이 항상 옳아!


집에 도착해서 짐을 간단히 풀고 아내에게 준비한 특별한 선물을 내밀었다. 그동안은 늘 ‘당신에겐 내가 선물이잖아!’라며 우겼었다. 이번에는 그 ‘오래되어 그 신선함이 현저히 줄어든 선물’에 더불어, 손에 잡히는 선물로 준비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해. 그동안 고생했으니.


두 달 반 동안 열심히 일해 모은, 제법 두툼한 돈 봉투를 금일봉처럼 아내에게 건넸다. 비록 큰 액수는 아니었지만 마음대로 편하게 써보라고 월급 외의 봉투를 내밀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진작 그랬어야 했는데 조금 늦은 감이 있어 미안했다.


와! 진짜 그래도 돼요?


기대했던 대로 아내의 반응은 극히 좋았다. ‘오래돼 낡은 선물’을 껴안으면서 고맙다고, 고생 많았다고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음. 나 이 돈을 어떻게 쓸지 결정했어요!


아내의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고 그 소원은 아주 소박했다.


작고 값싼 중고차를 사서 일정에 구애받지 않는 우리들만의 여행을 하는 것!


여성들이 좋아한다는 고급스러운 가방도 값나가는 반지도 아닌 달랑 가족 자유여행 하나였다.


이런 기회가 자주 오지 않을 텐데? 다른 건 없어?
그거면 충분해요. 가이드가 실력 좀 발휘해 봐요.


우리를 어느 곳이든 데려다 줄 차가 준비되기 전까지는 트빌리시를 매일 같이 걷기로 했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매일 트빌리시를 누볐다. 떨어져 있던 아쉬움의 시간만큼 더 많은 추억을 차곡차곡 쌓았다.


그렇게 우린 '트빌리시안 Tbilisian - 트빌리시 사람'이 되어 갔다.

나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또 모두의 천국을 누렸다.


트빌리시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우리 가족의 일상 같은 조지아 어느 길거리의 그라피티
A happy family is but an earlier heaven.
행복한 가정은 미리 누리는 천국이다.
- John Bowring -


지금껏 세워 본 가장 완벽한 계획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 코카서스 여행이 다시 성수기를 맞는 내년 봄까지는 백수다. 가이드라는 프리랜서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장점이라면 시즌과 비시즌의 구분이 명확해서 내일이 얼마간은 예측된다는 것, 단점은 매월 균등하고 예측 가능한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가용예산을 잘 분배해서 살아야 했다.


봄은 다시 올 것이고 꽃은 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전과 같지 않게 한동안 일이 없는 데도 크게 불안하지 않았다. 봄이 오면 다시 꽃은 필 것이다. 이 공백이 더 멀리 가기 위한 잠깐의 휴식이라면 이런 공백은 기꺼이 여백으로 남겨둘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온 들판에 야생화가 피고 햇볕이 따뜻해질 때 까지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걸을 것이다.
아기자기한 카페들과 소박하지만 숨겨진 맛집들을 찾아다니면서 먹을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이 웃을 것이다.


지금까지 세워본 계획 중 가장 간명하고 완벽했다.


그래, 살아 있다는 것 또 살아간다는 것은 진작 이런 느낌이어야 했다.

여백마저 즐길 줄 알았어야 했다.




세컨드 제네시스, 아르메니아를 가다


오늘을 살아가는 베짱이같이, 오늘만 사는 하루살이같이

적당한 가격에 중고차를 한 대 샀다.


혹시 모르니까 많이 다니자. 언제 또 어디로 쓸려갈지 모르니.


“오! 여보, 그만!”

아내가 정색했다. 정말 이제는 파도에 쓸려가듯 떠돌고 싶지는 않았다. 윈드서핑 하듯 멋지게 파도를 타고 간다면 모를까...


조지아에서 맞이한 첫겨울은 '허술'하게 계획했던 대로 완벽했다. 따뜻하고 석양이 아름다운 흑해 변 도시 바투미에서 크리스마스를, 빙하 같은 눈 쌓인 길을 달려 하얀 카즈베기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나와 우리 가족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백을 맞이한 겨울이었다. 그것은 특별히 무엇해서 좋았다기보다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여행이란, 우리로서 존재하는 것

여행은 참 많은 것을 우리에게 준다. 휴식, 회복, 생기, 자존감 그리고 새로운 영감...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 여행을 즐기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공유된 추억’ 때문이다. 자라나는 아이들과 손을 잡고 걸었던 모든 길들 그 추억들은 곱씹고 또 곱씹어도 새롭다. 아이들은 불현듯 떠오른 추억을 나눌 때면 항상 다음 여행을 재촉했다.


아빠, 그때 거기 기억나요? 그때 너무 좋았어요. 다음에는 책에서 봤던 이집트나 로마도 좋을 것 같아요. 생각만 해도 행복해져요. 그래서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가요?”

‘그때, 그곳에 함께 존재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와 유대감을 준다. 늘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가족이지만, ‘공유한 추억’이 없다면 각자 ‘한 조각’ 일뿐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까지는 되도록 ‘우리’로서 존재하려 했다. 지금 우리는 원하던 방향으로 걷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아르메니아로 가자!

들에는 야생화가 한들거리고 바람이 적당히 시원한 봄, 어느덧 웅크렸던 겨울이 지나고 기다리던 따뜻한 봄날이 왔다. 겨울잠에서 깨 움직일 때가 되었다. 마치 출발선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스프린터처럼 우리는 늘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봄, 다시 우리만의 여행이 시작될 그날을.


출발!


오늘 우리는 아르메니아로 떠난다. 직접 운전해서 가는 먼 길. 하지만 그동안 손님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늘 다녔던 길이라 마치 매일 다니는 길같이 편안한 마음으로 나설 수 있어 좋았다.


처음 가이드를 시작했을 때는 무비자 방문 국가가 아니었는데 올봄(2018년 3월) 드디어 한국과의 무비자 방문 협정이 체결되었다. 아르메니아가 무비자 방문국으로 확정되기 얼마 전에 우즈베키스탄도 무비자 방문국으로 열리면서 우리나라가 '무비자 최다 방문 가능국'이라는 ‘여권 파워’ 세계 1, 2위로 올라섰다고 했다. 그러니 더더욱 '무비자 오픈' 기념으로 우리가 먼저 '스타트'를 끊어야 했다!


“일본인들이 아르메니아 무비자 방문 특권을 누릴 때 얼마나 부럽던지!”

“왜, 우린 아니었어요?”

“아니었지. 그런데 우리를 위해 올봄에 완전 열렸대!”


이제 무비자 방문국이 되어 얼마나 편해졌는지 모른다. 긴 줄을 서서 비자를 받았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쾌속 통과다.


“바레브 제즈! (Բարեւ Ձեզ 안녕하세요!)”

“오! 아르메니아어를 하시는군요?”

“네. 아직 인사 정도 만요.”


아르메니아 국경은 참 관대하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웃으며 넘을 수 있는 곳은 아르메니아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쉬노라깔루쭌! (շնորհակալություն 감사합니다!)


국경을 더 빠르게 통과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인사 정도는 나눌 줄 아는 아르메니아어 덕택이다.




아르메니아 국기

< 아르메니아 비자(무비자 방문) 규정>

무비자 입국 및 180일 체류 가능 / 2018.3.19부터

출처 : 대한민국 외교부




비슷하지만 다른 나라, 아르메니아

국경을 넘어 목적지 예레반으로 가는 길은 해마다 눈과 비로 심하게 파여 곳곳이 도로포장 공사 중이라 속도를 내긴 어렵다. 하지만 굳이 속도를 내지 않아도 될 우리는 천천히 그 길을 즐기며 달렸다. 이것이 우리의 여행이 더욱 즐거운 이유다. 천천히 그리고 충분히!


아르메니아 북부지역의 자연풍경은 조지아의 한 지역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사뭇 다르다.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과 관습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그 각각의 매력이 있다. 그래서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는 다르다.


야생 개양귀비의 만발, 아르메니아 평원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여행


그런데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조지아 사람들하고 달라요?
Good question! 좋은 질문이야!


아이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기분이 참 좋다. 아이들의 ‘학구열’때문이 아니라 ‘호기심’이 자극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관심이나 흥미가 생길 때만 자발적인 질문을 했다. ‘자기 주도 학습 Self-directed learning’이란 이상적으로 손꼽는 양육법은 ‘자기 내면으로부터의 동기부여 Self-oriented motivation’가 선행될 때 가능하다는 게 내 믿음이었다.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은 가장 강력한 자극이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많은 질문을 기대했는데 드디어 때가 왔다.


딱 걸렸어!


아이들의 질문이 즐거운 또 하나의 이유는 무엇이든 아빠에게 물어보면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아빠에 대한 ‘기대’ 그 자체다. 특히 지난 4년 동안 공식적으로만 1,000권 이상의 책을 읽은 큰딸의 질문은 깊이가 대단하다. 그러다 보니 답을 당장 못 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는 솔직하게 잘 모른다고 대답해 주고선 나중에라도 답을 구해서 알려주었다. 재밌게도 아빠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때 아이들은 약간의 희열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마치 전혀 모르는 척 골라서 질문을 했다. 알고 속지만, 속으면서도 행복하다.


아빠가 이건 모르겠지?


여행, 그 자체로 가장 훌륭한 배움

지난 해외 생활과 여행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기회가 될 때마다 또 기회를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자주 여행을 하려 했었는데 너무 잘했다 싶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데 그 바람을 이루기에 여행만큼 탁월한 방법은 없었다.


여행은 아직 풀지 않은 ‘종합 선물 세트’다. 그 기대, 그 설렘. 그래서 우리는 틈 만나면 여행을 한다. 목적지 그 자체도 좋지만 ‘그 가는 길과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하고 또 그만큼 그릇이 커지고 있다고 믿는다. 늘도 우리는 여행을 통해 함께 배우고, 함께 성장하고 있다.

3, 2, 1! 긴 터널을 지나면, 다른 세상이 나타난다

아르메니아서 가장 긴 터널을 지나면 전혀 다른 풍경이 우리를 맞이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해발 1,900m의 고산지대 푸른 바다 같은 세반 호수 Sevan lake가 나타난다.

세반 호수는 내륙 국가인 아르메니아에서 현지인들이 ‘엄마의 바다’로 부를 만큼 사랑받는 호수다. 그러다 보니 다이내믹한 역사 이야기도 흥미로운 러브스토리를 포함한 사연도 참 많은 곳이다. 나는 그 무엇보다 주황빛 돌이끼 낀 돌담에 앉아 넉넉히 담아보는 그 탁 트인 풍경의 시원함을 좋아한다. 이런 느낌은 현장에 가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세반 호수는 그동안 나의 홍보 효과 덕에 아내가 아르메니아 여행 중 가장 기대하고 있던 곳이었다.


갈매기 날며 우는 바다보다 더 바다 같은 호수, 세반

긴 터널과 언덕을 넘어 드디어 세반 호수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고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구름이 소 코카서스 Lesser Caucasus 산맥을 덮은 세반 호수 풍경


와! 바다다!


갈매기 날아 더 바다 같은 세반 호수.

오늘은 왠지 더 차갑고 도도하고 ‘시크’ 해 보였다.




[세반 호수 이야기]


엄마의 바다, 세반 호수


... 다니엘, 몇 살이라고 했지? 넌 그때의 우리 삶을 상상하기조차 힘들 거야.


구소련이 붕괴되고 모든 보급이 끊겼던 정말 아무것도 먹을 게 없었던 어린 시절, 일부 조지아 사람들은 이곳 세반 호수까지 걸어왔었어. 아주 먼 길이었지. 그 당시 세반 호수에는 물고기가 참 많아서 이곳에 오면 그래도 먹을게 좀 있었거든... 물고기는 그저 잡으면 되니까. 그때 나도 아버지를 따라왔었어.

생선을 몇 마리 사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어.

그때 세반 호수는 아르메니아 사람뿐만 아니라 배고픈 조지아 사람도 먹여 살렸어.

지금도 이 길을 지날 때면, 저 길가에 생선 장수를 볼 때면 그때 생각이 나...

어린 시절 배고팠던, 생선 한 마리로 모두가 행복했던 식탁이...

다니엘, 저기, 나 잠시 버스 세우고 생선 한 마리 사서 가도 될까?

그래서 세반 호수는 '엄마의 바다'라 불린다.

배고픔을 달래주었던, 엄마의 젖가슴 같은 평안이 깃든 바다보다 더 바다 같은 호수다.


- 아르메니아에서 조지아 버스 기사와 나누었던 세반 호수 이야기 -




청명한 날 세반 호수와 세반 반도의 '악타마르 Aktamar' 섬(현재 반도), 고풍스러운 아르메니아 교회
아르메니아의 상징 하치카르 Khachkar를 만드는 장인
여행을 사랑하는, 여행이 키운 두 자매




세컨드 제네시스, 아라랏 산과 아르메니아

“자 퀴즈를 하나 낼 테니까 한 번 맞춰봐. 상품 있음!”

“네, 좋아요. 빨리 내주세요!”

“원래 내 것(우리)이었는데 지금은 빼앗겼지만 여전히 내 것인 것은?”

“음... 우리나라?”


둘째가 먼저 대답을 했는데 의도한 답은 아니었지만 놀랍게도 답에 굉장히 근접했다.


“오... 그럼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우리나라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가 다시 찾았잖아요. 원래 우리 거였는데 빼앗겼다가 음... 우리는 다시 찾았으니까... 아닌가?”


아르메니아의 상징인 ‘아라랏 산 Mt. Ararat’은 원래 아르메니아의 영토였다. 그런데 구소련 과도기 정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터키로 영토가 이양(1921년)되었고 그때부터 터키의 영토로 확정되었다. 하지만 아르메니아인들은 아라랏산을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속히 아르메니아로 환원되기만을 소망하고 있다.


왜 아라랏 산이 그토록 중요한 걸까?


아르메니아는 AD 301년, 세계에서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공표한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1,700년이 넘도록 기독교 국가다.


...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아르메니아 인들은 성경(창세기 8장 4절)의 기록에 따라 ‘노아의 방주’가 저 아라랏산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아와 그의 아들 야벳 Japheth을 그들의 직계 선조로 믿고 있으니, 그들에게 아라랏산은 단순히 영토를 초월한 의미가 있다.


아라랏산은 아르메니아와 아르메니아인의 ‘정체성’ 그 자체다.


Don't throw away, Hopes and Dreams! - 아르메니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문구 -


아르메니아인들에겐 결코 버릴 수 없는 꿈과 희망이다.


수도 예레반 Yerevan에서 보이는 손에 닿을 듯한 아르메니아 ‘제네시스 Genesis’ - 아라랏 산
태초와 현재가 공존하는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이야기]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그 추모의 상징 ‘물망초’

1915년 1차 세계대전 기간 중 오토만 투르크 제국에 의해 자행된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로 150여만 명이 희생되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인류 최초의 제노사이드'로 기록되었다. 이 사건은 오토만 투르크의 후신인 현재의 터키 공화국과 아르메니아 공화국 사이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무조건적 사과를 요구하는 아르메니아와 전쟁의 부차적인 결과로 축소해서 평가하는 터키 양국 사이의 팽팽한 의견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100년도 넘은 갈등의 골. 우리에겐 남의 이야기 같지 않은 이 슬픈 사실은, 아르메니아인에게는 손에 닿을 듯 너무도 가까운 저 아라랏산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매일 마주하는 가슴 시린 현실이다.


아르메니아에는 공식적인 국화가 없다.

다만 ‘물망초’ 꽃을 국화처럼 또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추모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Forget me not! - 나를 잊지 말아요!


물망초의 꽃말은 너무도 애잔하다. ‘Forget me not! - 나를 잊지 말아요!’.

아르메니아를 기억할 때마다 가슴 시린 그 아련한 외침이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ԱՆՄՈՌՈՒԿ! - Forget me not!
나를 잊지 말아요...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Armenia Genocide 추모관, 예레반





The world is a book and those who do not travel read only one page.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자는 단지 그 책의 한 페이지만을 읽을 뿐이다.

- St. Augustine -


여행을 통해 세상을 본다.

여행을 통해 세상을 읽는다.

그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까지 우리는 여행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가보고 싶은, 그대와 우리 사이의 섬


너, 도대체 어디에 살고 있는 거야?


“아직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지?”

“아니, 지금은 조지아에 살고 있어.”

“아, 그럼 미국으로 또 이민 간 거야?”


지인들과의 대화 그 시작은 늘 같은 패턴이다. 아직 한국인에게 코카서스 조지아는 생소한 나라다. 사실 아직 지구 상에 조지아라는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는 분들도 있다. 그래서 조지아에 살고 있다고 하면 열의 아홉은 귀에 익숙한 미국의 조지아 주로 생각을 했다.


조지아? 커피가 유명한 곳 말이지?


그중 꼭 한 명은 커피를 연상한다. 모 회사의 커피 광고가 아주 효과적이었나 보다. 그나마 그루지야라고 하면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다고 한다. 이름조차 생소한 조지아는 공중파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나 예능프로그램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이제 어디쯤 붙어있는 나라인지 정도는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너에게 가보고 싶다


거긴 살기 어때?
여기? 여긴 천국이지! 우리에게는...


우리가 조지아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면서 조지아와 우리 가족을 방문해 보고 싶어 하는 지인들이 부쩍 늘었다. 항상 우리 집 문은 언제나 열려있으니 언제든 마음 편히 오라고 하지만 다들 삶이 '너무' 바쁘다 보니 선뜻 떠나오지 못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너무 바쁘게만 사는 것 같다.


우리, 정말 갑니다!


여러 사정으로 이곳으로의 출발을 망설였던 가까운 지인 두 가족 마침내 동시에 ‘스타트 라인’에 섰다. 무려 2주라는 긴 일정! 아주 가까운 지인들이라 기꺼이 우리 집에 함께 머무르기로 했다. 우리 가족 모두는 곧 좁은 공간에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길 그때를 손꼽아 기다렸다.


외로움과 향수, 이민의 두 그림자

문득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워질 때 이곳과 한국이 조금만 더 가까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때로는 사람이 그립다. 마음 편한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나누었던 시간들이...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지만, 가장 위로가 되는 것도 사람이다. 삶은 결국 사람이다.


이제 며칠 밤 자면 와요?


지인들의 방문을 가장 학수고대하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 흥분해서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직 마음이 여리고 현지어가 서툰 아이들은 가끔 한국을 동경한다. 한 번은 왜 그리 한국에 방문하고 싶은지 물어보았는데 아이들의 대답이 조금 짠했다.


그냥... 다 좋아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한국) 말이 통해서 좋아요.


한국에는 단지 모국어로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아이들이었다.


“여기, 말이 잘 통하는 아빠가 있잖아!”


나는 요즘 부쩍 외로움을 타는 아이들에게 말이 잘 통하는 친구가 되어 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씩 제법 농담이 잘 통하는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외국이라도 아빠, 엄마와 함께하는 곳이 어디든 더 좋아요.”

“오, 딸! 나는 너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


가보고 싶은, 그대와 우리 사이의 섬

그렇게 우리 식구 넷, 손님 7명, 총 11명의 합숙 생활이 시작됐다. 이방 저 방을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여자들의 접시 깰 듯한 수다와 웃음소리, 고된 사회생활에 지친 남자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만끽하는 여유... 줄을 서서 화장실 순번을 기다리는 일조차도 즐거웠다.


트빌리시를 온종일 걸어 다니면서 멋 집과 맛 집들을 접수하고 저녁이면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늦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트빌리시 생활자만 알 수 있는 너무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또 비밀스러운 곳들을 거침없이 누볐다. 우리를 방문한 사람들 중 누군가에는 휴식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또 누군가에게는 일상에서 잠깐 벗어남이 간절했었다. 그들에게 우리가 잠깐의 쉼과 위로, 피난처가 되어 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우리를 방문한 그들을 통해 우리의 빈 공간도 채워졌다. 함께여서 정말 모든 날이 좋았다.


손님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헤어지는 슬픔을 못 이겨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내는 아이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 줬다.

“걱정 마. 다른 선물이 오고 있어.”


이후 2년 동안 총 7 가정 24명의 손님과 약 5개월가량의 시간을 보냈다. 좋은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 추억을 공유하는 것. 그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또 와요. 언제든지!”

“당연하죠! 일부러 전화 안 받거나, 다른 곳으로 도망가기 없기!”


사람들 사이의 섬, 가끔 그 섬이 그립다


섬.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




‘천 개의 언덕’ 부룬디 Burundi로의 초대


향기로운 드립 커피 같은 부룬디 친구, 디오


우리, 이번 크리스마스 같이 보낼까?


카자흐스탄에서 인연이 되어 형제 같은 친구가 된 디오에게서 SNS로 메시지가 왔다. 그는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열흘 정도 우리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다고 했다. 물론 우리가 불편하지 않다면이란 전제를 붙였다.

그의 프러포즈에 우리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You are more than welcome!”


디오는 아프리카 부룬디 공화국 Republic of Burundi 출신인데 끝없이 내전 중인 본국에서 살 수 없어 미국으로 망명을 한 사람이었다. 다행히 미국으로 망명해서 고등 교육도 받고 시민권자가 되었고 해외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카자흐스탄 대통령 학교에서 수학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다.


우리의 깊은 인연은 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집 외동딸이 우리 큰딸과 동갑이라 큰딸이 잠깐 경험 삼아 다녔던 학교에서 친구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우리도 친구가 되었다. 아프리카 케냐로 잠시 떠나게 되었을 때도 형제처럼 걱정해주고 응원해 주었던 참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는 그때부터 마음을 가장 깊게 나누는 흑인 친구가 되었다.


재래시장에 가면 다들 우리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봐.
그리고 가끔 현지 아이들이 우르를 몰려와서 같이 사진 찍자고 조를 때는 진짜...


“그렇구나... 많이 불편하겠네. 여기 사람들이 흑인을 볼 기회가 얼마나 있었겠어? 마음 편히 생각해...”


그의 내전 중 부룬디 탈출기와 생활기를 듣고 있자면, 정말 평화로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어느 나라에서도 환영받는 대한국인으로 살고 있는 우리는 그 자체로 감사해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천 개의 언덕, 부룬디로의 초대

도착 날 공항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여권 심사를 마치고 수화물을 찾으러 내려오는 디오네 가족이 보였다. 절대다수의 백인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다크-블랙 톤’의 피부를 자랑하는 내 친구, 더욱이 샛노란 셔츠를 입어서 완전 ‘나 여기 있어!’라고 하는 것 같았다.


“Hey, Dio!”


반가워 손을 흔드니 그는 하얀 치아를 완벽하게 드러내며 웃었다. 그와 그의 가족은 짐을 찾고 달려 나와 '아메리칸 스타일'로 우리 가족과 돌아가면서 찐한 포옹과 볼 키스를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우리 눈 덮인 ‘밀리터리 하이웨이’를 달렸는데, 디오네 가족은 마치 안톤 체호프가 그랬듯 감탄과 감동의 탄성을 연신 뿜어냈다.


그 모든 마음을 아우르는 간결한 한마디!


오~우. 맨! 쏘 뷰티풀!


우리 크리스마스 여행의 마지막 숙소는 스키 리조트로 유명한 구다우리 마을이었는데, 백설의 자연 눈으로 ‘광’을 낸 듯 반짝이는 산악 풍경이 최고조인 시기였다.


여기는 해발 2,800m. 꾸떼비 피크 Kudebi peak


케이블카를 타고 두 번을 환승해서 '꾸데비 피크' 정상에 오르니 단번에 가슴이 뻥 뚫렸다. 새파란 하늘 아래 하얀 눈 덮인 고봉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대 코카서스의 위엄 눈 호강도 이런 호강이 없었다.


꾸떼비 피크에서 바라본 대코카서스 산맥


“내년에 꼭 다시 올게!”


디오는 이런 멋진 풍경을 보여줘서 정말 고맙다며 몇 번이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대신에 언젠가 자기네 아름다운 고향 ‘천 개의 언덕’ 부룬디의 내전이 끝나고 평화로워지는 날, 우리 가족을 꼭 초대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부룬디의 커피는 아주 '특별 Cup of Excellence'한데 커피 마니아인 내게 ‘피부가 커피색이 될 때까지’ 마실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오, 그럼 당연히 가야지! 그동안 연락 끊으면 안 돼!”


그는 한동안 말없이 설원 풍경을 바라보았다. 왠지 쓸쓸함이 묻어나는 뒷모습...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이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미국 망명 이후 아직 한 번도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한 그의 심정이 조금 헤아려졌다. 그리고 그의 뒤에 선 나도 눈에 차오르는 그리운 고향을 그려보았다.


그에게는 부룬디 국기가, 나에게는 태극기가 보였다


우리는 같은 곳에 서서 다른 고향을 바라보았다.




마음만 통하면 어떤 국경도 장애가 되지 못한다


방문하는 이들을 위해 시간을 또 우리의 작은 공간을 내어 주는 것.

아직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이 작은 것들밖에 없지만 곁에선 그들의 미소를 볼 때마다 힘이 난다.

줄 수 있어 행복하다.




[나에게 쓰는 시]


카즈베기의 투명한 겨울밤


그런 사람이고 싶다.


좋아하는 시인의 시구처럼

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 어마어마한 일,

환대를 노래한 그의 속삭임처럼 살고 싶다.


나에게 오는 사람들을

바람같이 헤아려 보고 싶다.

한 번쯤은 가슴으로 안아보고 싶다.

고요한 밤 따듯한 필라멘트 백열등처럼 비춰주고 싶다.

잠시 기댈 만 기둥이, 앉아 쉴만한 그루터기가 되고 싶다.

추운 날 깊이 파고들고픈 포근한 담요가 되고 싶다.

그런 휴식이 되고 싶다.


지나는 바람 같은

오늘 잠시 머무는 그대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 D. 우 -




[아웃트로] 별을 따라간 꼬마 고래 (저자 창작 동화)


우린 함께 꿈을 향해 출발했다.

꼬마 고래는 항해 내내 중얼거리듯 나의 가르침을 되뇌었다.


너의 별을 정하고, 그 별을 따라가라!

나는 그 꼬마 고래가 늘 동경했던 별똥별이 떨어지는 저 바다의 끝에 도착했을 거라고 확신했다.

내가 그랬듯, 그도 그랬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오직, 그가 '그의 별'을 충실히 따라갔다면...

오직, 그가 '그의 꿈과 희망'을 포기 않고 따라갔다면...


그는 반드시, 지금 그곳에 있을 것이다.

오직 그만을 위해 준비된 영광의 항구에 닿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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