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핀 꽃, 미생에게

사막에도 꽃은 핀다. 사막은 아름답다. - D. 우 -

by 청연
4부. 미생 (美生 ; Beautiful Being)에게
- 두배로! 두배로!
- 중동의 붉은 꽃, 그 향기
- '미안해'가 민망한 아랍어
- 페트라 Petra에서 부르는 '호라티우스의 송가'
- 사막에서 쓰는 편지, 미생에게
- 사막은 아름답다
사막에도 꽃은 핀다. 사막은 아름답다. - D. 우 -


미생 美生에게


사막은
하늘을 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다운 곳이다.
나를 반추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나를 발견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그 무엇이든
덜어놓고 오기 가장 좋은 곳이다.

사막에도 꽃은 핀다.
사막에도 생명이 숨 쉰다.

사막은 아름답다.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으로만 보이는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나와 우리의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이다.

- D. 우 -




두 배로, 두 배로!


조지아 정착 3년 차 잘 적응된 일상이 주는 편안함은 너무도 달콤했다. 어찌 보면 우리 삶에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된다. 안정적으로 정착하니 한없이 머물러만 있고 싶어 졌다. 특별한 외부 자극이 없는 지금 평안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올해는 유난히 배움의 의욕도 떨어지고 가끔은 정체된 느낌마저 들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가장 행복한 타인의 평가, 신뢰

그러던 어느 날 동료 가이드 선생님에게 요르단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요르단은 선선한 가을, 따뜻한 봄이 여행 성수기라고 했다. 작년에 현장학습 겸 가족여행으로 이스라엘을 일주일간 다녀왔었는데 그때 이스라엘을 ‘데칼코마니’처럼 마주한 땅 요르단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었다.

마침 올해는 예년보다 일찍 코카서스 가이드 일이 끝나서 시간의 여유도 많았다. 이 늦은 가을, 어쩌면 요르단을 경험하고 배울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물론 기회가 된다면 내년부터라도 그곳에서 가이드까지 도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도 함께 품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요르단의 문을 두드렸다.


정 그렇게 의지가 있다면 한 번 와보세요.


신뢰를 쌓는 것은 참 어렵지만 한 번 쌓인 신뢰는 또 다른 신뢰를 낳는다. 일면식도 없었던 요르단 여행사 사장님은 ‘열심히 노력하는 가이드’라며 나를 추천해주신 분들의 의견을 믿고, 대면 면접 없이 ‘배움의 길’을 허락해 주셨다. 어쩌면 신뢰는 타인에게 받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평가다.


그렇게 새로운 나라 요르단과의 인연은 10월 중순, 여행하기 참 좋은 날 시작되었다.


희망이 비전이 되다

홀몸으로 오르는 요르단 길, 이전에 수화물 가방을 쌀 때와는 달리 기쁨이 밀려왔다. 드디어 3번의 파도에 밀린 이민 끝에 처음으로 ‘의지로 선택’하여 배움을 위해 떠나는 여정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행복은 시작되었다.


인터넷으로 비자 겸 관광지 입장 할인권인 ‘요르단 패스 Jordan Pass’를 구매하고 출력해서 손에 쥐니, 막연했던 희망이 생생한 비전으로 다가왔다.


요르단 여행의 시작, 요르단 패스!


욕심이겠지만, 기왕이면 가이드까지 시작할 수 있다면...


이 길 이 배움의 끝자락쯤 기회가 닿는다면 새로운 나라 요르단에서 첫 가이드라는 가슴 설레는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솔직한 욕심이 들었다. 가장으로서 생계라는 중하고 시급한 ‘미션’을 기쁨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은 숙명이므로...


막연한 꿈을 실현시킬 단순한 비결, 두 배로! 두 배로!

요르단으로 출발하기 얼마 전에 한 평범한 사람의 성공 스토리를 감명 깊게 읽었었는데, 그의 명언을 이번 여정의 모티브로 삼기로 했다.


두 배로 생각하라! 두 배로 노력하라!
그것이 가진 것 없는 ‘보통 사람’이 성공하는 비결이다.
- Indra Nooyi -


이 '보통 사람'에게 전하는 성공의 비결은 인도 태생 여성 ‘보통 사람’ 인두라 누이 Indra Nooyi가 한 말이다. 그는 훗날 코카콜라의 최대 라이벌 ‘펩시코 Pepsico’의 최고경영자가 되었는데, 그녀의 성공 비결은 ‘두 배로, 두 배로!’라고 했다. 지금껏 들어본 성공 비결 중 누구나 실행 가능한 가장 간단명료한 지침이었다. 성공의 문턱에 선 그녀가 펩시코를 선택한 이유는 ‘당신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라는 제의 때문이었고 한다.


꼭 필요한 사람


그 말에 한동안 사로잡혔다. 꼭 필요한 사람. 꼭 필요한 사람...


나도 이번 여정에 그 심플한 성공 비결과 희망의 메시지를 따라보기로 했다. 그리고 '두 배로, 두배로!'를 다짐했다.


당신 같은 사람, 가이드가 꼭 필요합니다!


너무도 가슴 설레는 그 말, 그 존재감 넘치고 가슴 벅찬 부름을 받기까지!




가슴 뛰는 꿈 Dream이

생명력 있는 희망 Hope이 되고,

생명력 있는 희망이 간절한 소망 Aspiration이 되고,

간절한 소망이 생생한 비전 Vision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가슴 뛰는 꿈에 한걸음 One step closer 가까워진다.


- D. 우 -




중동의 붉은 꽃, 그 향기


요르단은 인생 첫 중동 아랍 국가였다. 거칠고, 가공되지 않은 거친 광야와 사막이 국토 대부분을 차지하는 요르단은 지금껏 지나왔던 나라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 ‘신비함’을 벗겨보고자 습관을 따라 포스트잇에 붙여 나열해본 ‘중동의 붉은 꽃’ 요르단 키워드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요르단 노트


키워드를 따라 본격적으로 요르단 따라잡기를 시작했다. 매일매일 또 고개를 드는 매 순간 그 얼굴을 보려고, 요르단 지도를 벽에 붙여놓고서 한동안 바라봤다. 경험은 참 중요하다. 학습의 방향을 잡지 못해 헤매었던 3년 전과는 느낌이 달랐다. 경험만큼 배움의 속도가 빨랐다.


7개의 언덕 위 바람의 도시 암만 Amman

내가 머무는 곳은 요르단의 수도 암만이다. 처음 요르단의 수도 이름을 들었을 때 실소했던 기억이 난다.


암만?


왠지 들어 본 듯 익숙한 단어.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 암만! 한번 들으면 절대 잊어버릴 리 없다.


암만은 바위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라 평지길이 드물다. 오르고 내리는 언덕을 걷고 또 걸으면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는데 더 많이 맺힐수록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생각해보면 걷는 것은 마치에 노트에 글자를 급히 흘려 쓰는 것과 같다. 집에 돌아와 그 길을 회상하며 다시 깔끔하게 정리하다 보면 걸었던 모든 길이 이야기가 됐다.


걷기의 목적지로 자주 향했던 곳은 암만의 주요 관광지인 암만 시타델 Amman citadel이었다. 그곳에서는 선사시대로부터 그리스-로마 시대 그리고 현재를 잇는 그 흔적과 역사를 관통하는 매력에 한껏 빠져 보고, 지진으로 그 흔적과 웅장한 기둥만 남은 헤라클레스 신전 기둥에 기대어 멍하니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먼저 걸어보고 느껴보고는 것은 가이드로서 누리는 호사 중의 호사였다. 비록 '자비로 누리는 호사'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건 확실한 투자니까.


‘직무유기’를 피하려고 노트를 꺼내 간단한 스케치와 메모로 현장을 담아두었다. 이야기를 나눌만한 공간과 쉴만한 그늘, ‘인생 샷’을 남길만한 포인트들, 그리고 동선과 소요 시간 등을 판단해보면 ‘여행 연출’의 기본 골격이 완성됐다. 이제 그 뼈대 위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살을 붙여야 했다. 현장에서 이야기 주제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미련 없이 거칠게 스케치한 노트를 닫고 호기심 품은 방문객으로 되돌아갔다. 아직은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껴야 할 때니까.


필수인, 그러나 아직은 부담스러운 ‘걸쭉하고, 아주 진하고, 향이 강한’ 텁텁한 아랍 커피를 한잔 들고 로마 극장이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걸터앉았다. 사방으로 탁 트인 파노라마 도시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언덕마다 빼곡하게 들어선 낮은 돌집들이 풍기는 묘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언덕 아래에서부터 골을 타고 불어 올라와 나를 쓸고 넘어가는 시원한 바람은 방문자를 위한 배려 같았다.


바람, 언덕, 거대한 돌기둥... 아, 시상이 떠오른다!


발라드? 여긴 아랍의 소리, 알 발라드 Al balad!

드라마 ‘미생’의 촬영지였다는 알 발라드 시장 거리는 몇 번을 걸어도 또 새로웠다. 예로부터 세계 3대 상인이 중국 상인, 유대 상인 그리고 아랍 상인이라 했던가? 또 옛 아랍 속담에 ‘중국인의 손’, ‘유럽인의 두뇌’ 그리고 ‘아랍인이 혀’라는 말이 있다는데, 가히 아랍인 특히 아랍 상인들은 수다와 협상의 달인들이었다.


일단 비싸게 부르고 흥정을 시작하는 아랍 상인은 도무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비싸서 안 산다고 돌아서면 터무니없이 깎아주었는데 ‘정가’보단 ‘적당한 가치’에 중점을 두지 않으면 속 쓰릴 일이 많은 거래였다. 또 자주 마주치게 되는 상인은 ‘맞춤형 조제 향수’를 권하는 향수 상이다. ‘원하는 모든 향수를 만들 수 있다’는 그의 구호다. 가히 아랍 상인은 모든 게 ‘가능’했다.


인샬라 Insha'Allah!(과연, 신이 허락하신다면!)


시장을 둘러보다 허기가 지면 값싸고 고소한 중동 음식 ‘팔라펠 Falafel’과 차 한 잔으로 요기했다. 커다란 기름 솥에서 갓 튀겨낸 팔라펠을 겁 없이 한입에 넣고 씹었다가 입을 홀딱 뎄던 화끈한 경험과, 익숙하지 않은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샐러드를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던 기억... 독특한 아랍의 거리와 재래시장 그리고 꾸밈없이 사람 사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너무도 짧게 지나갔다.

아, 내일은 또 어디로 걸을까?


이곳은 언제나 '바람'이 분다.




헤라클레스 신전과 기둥, 암만 시타델 Amman citadel


암만의 국기게양대(2003년, 126.8m, 건립 후 5년간 세계 1위, 현재 세계 5위(2020년 기준))


시타델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로마극장과 올드 타운의 묘한 매력


꼭 한 번은 걸어 볼 만한 알 발라드 Al balad 시장, 암만




‘미안해’가 민망해


슈크란 Shukran!


문제를 풀어내는 마법 같은 아랍어, 슈크란! (Shukran ; 감사합니다)

슈크란은 요르단에 도착해서 지금껏 가장 요긴하게 써먹고 있는 단어다. 처음에는 길을 물을 때도, 물건을 살 때도, 좁은 길을 지나쳐 갈 때도 한 단어면 충분했다. 요르단은 관광을 주요 산업으로 하는 나라라서 영어가 주요 외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로 소통이 가능했다.


특별히 나에게 ‘러키’ 한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현지인(특히 현지 가이드)들이 꽤 많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러시아어 권역에서 방문하는 관광객이 많은 까닭일 것이다. 자연히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하는 상인과 현지 가이드들도 많아졌을 것이다. 때로는 러시아어로 소통하는 것이 편할 때도 있었는데, 울며 겨자 먹기로 배웠던 러시아어를 여기서 요긴하게 쓰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었다.


미안해를 미안해라고 하기 무안해서...

그러던 어느 날 아랍어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 사건이 생겼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아랍어지만, 한국 사람에겐 정서적으로 불편한 어감으로 생긴 오해였다.


آسف (Asif)!


그것은 바로 ‘미안합니다’. 아랍어로 ‘آسفAsif - 아씨ㅍ ’ 다.


한날, 버스 기사가 버스 뒷문으로 내리는 나를 보지 못하고 문을 닫는 바람에 가볍게 문에 부딪히는 일이 있었다. 조금 놀라서 나도 모르게 “아!”하고 좀 크게 말했는데, 기사가 운전석에서 큰소리로 ‘아씨 x’라고 했다.


뭐라고요?


순간 욕을 하는 줄 알고 깜짝 놀라서, 당황스러운 듯 기사를 쳐다보자 "Sorry!"라며 영어로 다시 말해 주었었다. 이때까지 아랍어라곤 ‘슈크란’밖에 몰랐던 때라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었는데, 나중에 아랍어 회화를 공부하다 정확히 알게 되었다. 천생 욕 같았던 그 말은 욕이 아니라 사과였다는 걸... 외국어를 배우다 보면 한국인에게는 발음하기 좀 민망한 단어들을 종종 마주치게 되는데 여기 하나 더 추가다.


그런데 아랍어로 ‘미안합니다’의 ‘여성형’을 알게 됐을 때는 제대로 실소가 터졌다.


아씨파! (Asifa)


아씨파라니... 남성형과 비슷하지만, 여성형이 더 ‘확실하게 부담스러운 발음’이다.

'미안합니다'는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니 듣거나 말할 때도 오해(?)가 없어야 한다!






페트라에서 부르는 ‘호라티우스의 송가( Odes)’


바위 중의 바위, 페트라(Petra)

요르단에 와서 가장 큰 ‘인생 이득’ 중 하나는 신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된 페트라를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영원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밋빛 같은 붉은 도시 페트라!


페트라, 그 위대함을 칭송했던 한 영국 시인의 시귀는 페트라를 한마디로 정의하기에 아주 적절해 보였다.


페트라가 세계에 더 널리 알려진 것은 명화의 배경이 되면서부터였다.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편,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편 그리고 우리나라 드라마 ‘미생’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이곳은, 다양한 영화에 묘사됐던 배경만큼이나 걸을 때마다 새롭다.


날씨에 따라 변하는 거대한 바위의 색감은 자주 찾는 방문자가 아니면 알아채기 어려운 비밀이다. 거대한 자연 암벽 사이로 난 좁은 길 ‘시크(Siq-아랍어로 협곡이란 뜻)’를 따라 걷다 보면, 끝이 없을 것 같은 그 길 끝자락에 놀라운 인류의 흔적이 나타난다.


이백여 년 전 스위스 탐험가 요한 부르크 하르크 Johann Burckhardt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탐험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페트라는 비밀로 남아 있을 곳이었다. 그의 공으로 세상에 알려진 페트라는, 그 신비함과 명성을 찾아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연일 북새통을 이룬다.


그런데, 페트라에는 가 보았는가?


예로부터 다이내믹한 중동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 회자되는 한마디 문장이 이다. 페트라를 아직 보지 못했다면, 아직 중동을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협소한 시크 길을 따라 걸으면서 좁은 바위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구름, 마치 위대한 장인이 심오한 의미를 담아 휘날려 그려놓은 듯한 바위의 무늬들을 마주할 때면, 마치 환상 속을 걷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여행객들은 하나같이 잠시 멈추어 이 놀라운 순간을 담아보고자 정성 들여 사진을 찍어보지만, 그 느낌을 다 담아내기엔 역부족이다.

페트라의 비밀 통로, 시크(Siq - 협곡)
물감을 휘감아 그린 듯 화려한 색감과 문양을 뽐내는 페트라의 바위 들

시크, 그 감탄의 끝자락에 도달하면, 좁고 비밀스러운 바위 틈새로 페트라의 보물 ‘알 카즈네 (Al-Khazneh) - 보물창고란 뜻’가 나타난다. 웅장하고 경이로운 이 정교한 거대 조각상은, 과연 그 압도되는 위상으로 ‘이집트 파라오의 보물창고’라 믿어질 만했다.

알 카즈네는 아직도 역사의 베일에 가려져 있는 아랍계 유목민 ‘나바테아인(Nabataeans)’이 거대한 바위에 남긴 ‘초대형 조각상’인데, 아쉽게도 문화유산 보존의 이유로 그 내부는 볼 수가 없다. 그 비밀스러운 내부가 궁금하신 분들은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편을 꼭 보시라고 가끔 농담을 하곤 한다.


내부를 공개하지 않아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는 알 카즈네!

그것은 방문자의 풍성한 상상력에 맡겨두는, 페트라 알 카즈네의 여백이다.


<용감한 탐험가의 위대한 발견>

1812년 8월 22일.
스위스 탐험가 요한 부르크하르트는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여름 사막을 지나 마침내 '와디 무사(Wadi Mousa - 아랍어로 모세의 협곡)'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2,000년 동안 ‘잊혀진 도시’ 고대 나바테아인의 페트라를 처음 목격한 근대 유럽인이 되었다.

"와디 무사(페트라)는 후대에
인류가 발견한 ‘가장 경이로운 고대 예술’의 목록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그의 직감은 정확했다.
페트라는 198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고, 마침내 2007년 7월 7일에 ‘세계 신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되었다.
바로 그 비밀스러운 ‘멈춤의 장소’에서, 저자
어, 저기 뭔가 보인다!
알카즈네가 바위틈으로 살짝 보일 때 멈추어 서서 탐험가 요한 부르크하르트가 되어보자.
그 비밀스럽게 열린 문을 바라보며
그 경이로움을 온몸으로 받아낼 준비를 하며...


크로노스(Χρόνος), 그 멈춤 없는 흐름의 시간에서 건져낸 카이로스(Καιρός)

‘페트라 (Petra)’는 아람어-그리스어 어원으로 ‘바위’라는 뜻이다. 그런데 바위나 돌은 고대 근동 사회에서, 또 기독교 성경에서 또 동방 문화에서도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는 ‘영원성’의 상징이다. 성경 인물 베드 Πέτρος’도 ‘바위, 반석’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페트라(Πέτρα-Petra-반석)’ 위에 세운 교회는 그 ‘거룩한 영원성’을 상징한다. 페트라는 바위 곧 베드로 곧 불변의 ‘영원성’을 상징한다.

페트라, 곧 '바위'는
‘크로노스(Chronos, 고대 그리스어 - 아직 의미가 부여되지 않은 절대적인 시간) 시간’이
‘카이로스(Kairos, 고대 그리스어 -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가치 있는 시간) 시간’으로
옮겨지는 매개체 역할을 한 셈이다.


혜성처럼 등장했다 사라진 아랍계 사막 유목민 ‘나바테아인’은 그들의 황금기에 영원한 번영이라는 염원을 담아 알카즈네를 조각했다. 알카즈네의 최상부에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물어 ‘영원의 세계’로 데려간다는 독수리가 좌우에 새겨져 있다. 그것은 필멸의 먼지 같은 인간이 감히 불멸을 꿈꾸었던, '크로노스의 바위에 남긴 생생한 카이로스의 흔적'이다. 더욱이 페트라에는 이천 년 전 전 세계를 호령했던, 영원보다 더 영원할 것 같았던 ‘영원한 제국’ 로마가 남긴 흔적들도 많다.

이 모두가 페트라에 남겨진, 필멸의 인간이 불멸 곧 ‘영원’을 갈망했던 인류의 흔적들이다. 그러나 가시적으로 담아냈던 화려했던 영원의 모습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다만 그 흔적과 불멸의 정신만이 남아 페트라 곳곳에 유유히 흐르고 있다. 그리고 불현듯 방문자들에게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영원하다는 것,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여 카이로스, 그 영원한 또 영원할 현재를 살아가라!


‘불혹 不惑’을 넘어 ‘지천명 知天命’으로 나아가야 할 내 삶 앞에 좀 더 진중해진 때문일까?


페트라를 걸을 때마다 가시적인 경이로움 너머 아득하게 울리는 ‘섭리 Divine providence’의 메시지가 들려온다.


Nothing lasts forever in this world.
이 세상, 영원한 것은 없다.


문득 ‘미래는 오로지 신의 영역’이라 노래했던 시인 호라티우스(Horatius)의 시구절이 떠올랐다.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오늘 페트라의 바위, 그 영원을 감고 지나는 바람이 귓가에 속삭이고 지나간다.

너에게 허락된 오직 현재, 바로 지금을 힘써 더 의미 있게 살라고.

그 영원한 현재를 꽉 움켜쥐고 애써 살아가라고.





‘Present (현재, 바로 지금)’은 영원을 갈망하는 인간에게 신이 허락한 비밀스러운 ‘Present(선물)’이다.

그러므로 매 순간순간을 의미 있게 산다는 건 이미 영원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와디 럼, 베두인 그리고 환대


와디 럼으로 얄라! 날라!

아랍어로 ‘달의 계곡’이란 뜻의 ‘와디 럼 Wadi-rum’은 요르단의 자랑이다. 형이상학적으로 다가오는 기암 바위들과 붉은 살 굿 빛 고운 모래로 가득한 와디 럼은 몽환적인 달빛과 은하수가 품은 별빛이 아름다운, 세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비현실적인, 동화 같은 사막이다.


그곳에는 인류사의 시작과 더불어 터를 잡고 살아온 사막의 정복자 ‘베두인-사막에 사는 사람들’들이 아직도 전통을 고수하며 살고 있다. 이 모든 매력을 온몸으로 느껴보고자 낙타 대신 낡은 지프차를 몰며 와디 럼을 누비는 순박한 베두인 기사와 함께 사막 사파리를 나섰다.


이 낡은 차로 사막을 달릴 수 있을까?


차에 오르자 걱정할 틈도 없이 기사는 짧게 한마디 외치며 액셀을 힘껏 밟아 출발했다.


“쌀라 말레 쿰! 얄라!”

“얄라? OK! 얄라 얄라!(빨리빨리) 오빠 달려!”


20191023_150458.jpg 낙타대신 지프차를 모는 유쾌한 베두인과 함께
와디 럼의 지프차 사막 사파리 투어는 단연 요르단 버킷리스트다.
지프차의 상태는 복불복!
모래바람이 불고 앞차가 일으키는 모래 먼지가 심하니 미리 마스크나 스카프를 준비하는 게 좋다.


이슬람 베두인 Bedouin이 위스키를 마신다?

와디 럼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아랍 반란 Arab Revolt과 실존 인물 ‘T. E. Lawrence’를 모티브로 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촬영지로 유명하다. 와디 럼 곳곳에 기념비처럼 남아있는 아랍 영웅 로렌스의 흔적을 따라가 보는 것은 신비하고 의미 있는 여정이다.


달리고 달리다 지치면 근처 베두인 텐트에서 전통차로 환대받으며 사막의 불같은 태양을 피해 쉼을 얻기도 했다. 차를 끓이는 양은 주전자는 찌그러지고 검게 그을려 원래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검게 그을린 주전자 색만큼이나 진한 차를 대접하는 베두인 상인의 인심은 넉넉했다.

이건 베두인 위스키예요!


‘엥? 모슬렘들이 위스키를?’


처음에는 순진하게도 위스키를 끓여서 마시는 줄 알았다. 이곳 베두인들이 즐기는 ‘메르 미아’ 차를 끓이면 그 우러나는 색상이 마치 위스키 같아서 ‘베두인의 위스키’라는 별칭이 붙었다.

사막에서 마시는 뜨거운 차. 문득 생각해보니 ‘이열치열’은 우리에게만 있는 문화가 아니다. 베두인들은 장작불에 끓인 뜨거운 차 한 잔으로 사막의 열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이열치열'이었다.


사막 그 열기에 지친 나그네에게 열려있는 환대의 마음이 뜨거운 차보다 더 뜨겁게 느껴졌다.




그들의 특별한 위스키, '차이'를 끓이는 베두인 들


사막에 말라비틀어진 고목들을 주워 피운 장작불로 끓여 진하게 우려내는 베두인 위스키 ‘차이’. 그들이 자주 마시는 허브티 ‘메르 미아’는 위장에 아주 좋다고 한다.


사막에 나무가?

그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건 와디 럼은 가끔 폭우로 큰 홍수가 난다는 사실이었다!



[아랍 커피 -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알 데이르 사원 전망대에서 차이를 준비하는 베두인, Petra
‘아랍 커피’는 <너그러움의 상징 ‘아랍 커피’ Arabic coffee, a symbol of generosity>라는
제목으로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무심코 한잔의 커피를 대접받았다면, 이미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을 누린 셈이다.


환대, 그 인간애 넘치는 공존의 원리

베두인의 아주 관대한 나그네 환대 법은 유명하다. 그것은 나그네에게 조건 없이 물과 빵 그리고 휴식처를 제공하는 ‘적극적인 환대’인데, ‘디야파 Diyafa’라는 베두인들의 최고 덕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오늘은 내 차례, 다음은 네 차례.


오늘은 내가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이지만, 내일은 내가 마주 앉은 객이 될 수도 있다.


간단하면서도 인간애 넘치는 공존의 원리가 아랍 커피처럼 향기롭다.


시력이 최대 ‘3.0’에 달한다는 사막 원주민 베두인은 아주 멀리서 오는 ‘손님’도 잘 구별한다.


보통 손님 접대의 시작은 직접 볶고 갈아 끓인 ‘아랍 커피’나 베두인의 위스키 ‘차이’로 시작된다. 차나 커피를 대접하고 대접받는 나름의 관습도 있지만 커피든 차든 보통 연이어 ‘3잔’을 대접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문득, 3잔이라는 특징적인 다도 茶道 문화에 질문이 생겼다.


왜, 꼭 3잔인가?

현지 베두인에게 직접 물어봐도 ‘전통’이라는 것은 공통적이었지만 정확한 의미에 대한 대답은 조금씩 달랐다. 학자들도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나는 ‘신 또는 그 신성의 상징'이자 천상의 숫자, 3’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그들의 해석에 덧붙인 나의 주관적인 해석은, 3잔은 이 세상 더 없을 ‘천상의 환대’였다.


접근의 진위를 알 수 없는 낯선 이방인과 나그네에게 대가 없이 베푸는, 바람 같은 시원한 그늘 같은 이타적 호혜. 과연 인간이 베풀 수 있는 최고의 환대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베두인의 환대는 내가 경험한 가장 지고지순 至高至純한 환대였다. ‘신분, 외모와 관계없이 3잔 통일!’이란 점도 아주 맘에 들었다.


주는 편이 더 낫다

허름한 텐트 그 그늘 안에서 차를 한 잔 대접받으며 긴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저 밖 이글거리는 사막을 바라보니 소원이 더 없었다. 이 환대의 차 한 잔이 붉은 모래와 바위 투성이인 마치 ‘Nothing’ 같은 텅 빈 사막에서 지금 내게 필요한 ‘Everything’이었다. 감사가 차고 넘쳤다.


무조건적 환대. 대가를 바라지 않는 환대...


점점 더 각박해지는 세상, 조금씩 말라가는 사람들 사이의 온정, 그 거리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안타까운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 보게 된다.

마지막 차 한 모금에 조용히 다짐해 본다.


‘Give and Forget’으로 살아가리. 주는 편이 더 나으니...


베두인의 환대 같은 사막 한가운데 나무 그늘
사랑은 주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The Art of Loving' 중 -




사막에서 쓰는 편지, 미생 (美生, Beauiful Being - 아름다운 존재)에게


미생 美生이 아니라 미생 未生이라고?


와디 럼은 한국 드라마 ‘미생-2014년 방영’의 촬영지로도 유명한데 마지막 회의 주 촬영지가 요르단 암만과 페트라 그리고 이곳 와디 럼이었다. 바둑 문외한인 나는 ‘미생 未生’이 ‘완생 完生’과 대조되는 의미의 단어라는 것도 이 드라마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사실 처음 드라마 제목을 들었을 때는 ‘아름다운 인생-미생 美生’을 뜻하는 줄로만 알았었다. 아직 나는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미생’이다.


처음 드라마 미생의 마지막 회를 요르단에서 촬영했다는 정보를 입수했을 때,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요르단이 그려졌을지 무척 궁금했다. 급한 대로(?) 요르단 촬영분인 마지막 회부터 보았는데 오가는 대사들이 하나같이 명언들이었다. 특히 마지막 회에 인용된 로버트 프로스트의 ‘걸어보지 않은 길’과 루쉰의 ‘고향’을 인용한 대사는, 드라마의 주제를 함축하기에 너무도 탁월했다. 명시들과 명언들로 가득했던 드라마는 와디 럼 광야를 먼지 날리며 자유롭게 질주하는 장면으로 끝이 났다. 곱씹어 볼 만한 여운을 남기면서...




희망 이란 원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도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에 난 길과 같다.

지상에는 원래 길이 없었다.

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 ‘고향’ 중 -




나는 정말 미생이다

한동안 ‘미생’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그것은 바둑에 관심이 생겨서가 아니라 ‘인생’에 더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는 우리는 모두가 아직 완전치 못한 ‘미생’이라고 했다.


미생... 미생...


미생이라는 단어를 좀 더 깊게 알고 싶어서 이런저런 바둑 자료와 어원을 쫓아가 보았다. 바둑에서 '미생 未生'은 ‘두 눈이 없는 상태’를 말했다. 그것은 아직 죽은 것도 아닌 그렇다고 완전히 살아남은 상태도 아닌 그야말로 ‘알 수 없는 미래’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것은 한 치 앞도 모르는 ‘미래 근시안’인 ‘영장 靈長’ 인간을 표현하기에 너무도 딱 맞는 표현이었다.


오늘 돌아보는 내 삶이 그랬다.

지난 해외 생활 동안 나는 한 치 앞을 모르는 '미생 중의 미생'이었다. 사실 가끔은 내가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것 같은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우문현답 愚問賢答, 사막에서 답을 얻다

와디 럼 모래언덕 정상에 올라앉아 붉게 석양이 드리우는 사막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최근에 다시 읽었던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글들이 떠올랐다. 그는 그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신이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은 것은 ‘지금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의 삶에 온 힘을 기울여라!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이고
가장 중요한 이는 현재 당신이 대하고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중 -


위대한 사상가이기도 했던 톨스토이는 ‘신이 허락하지 않은 것’을 겸손히 내려놓고, 주어진 ‘현재의 삶’에 온 힘을 기울이라고 조언했다.


현재. 지금. 사람. 사랑.


반복되는 단어들이 선명하게 마음에 들어왔다. 마치 누군가가 나에게 콕 찍어서 보내는 메시지인 듯...

그러다 태양, 그 찬란한 마지막 빛이 어둠에 자리를 내어줄 때, 낮 동안 사람들이 부지런히 지나간 발자취가 그림자 지며 나타났다.




붉은 사막, 와디럼의 석양


보이지 않았던 길들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오늘 저 길을 걸어간 사람이 방향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어디든 쉼을 얻을 그곳에서 편히 쉬기를 바랐다.




[사막에서 쓰는 편지]



길을 묻는 나그네여

그대 어디로 가려하는가? 무엇을 망설이는가?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네.

첫걸음,

그 희망의 발바닥이 거친 땅에 닿을 때

그때 비로소 그대만의 길이 시작된다네.


낮에는 우물을 찾아 걷고, 밤에는 별을 따라 걷게.

포기하지 않으면

멈추지 않으면

반드시 '그대의 그곳'에 당도하리니!


오늘 사막에 선 그대여 주저 말고 걷게나.

오직 그대의 꿈을 향해 걷게나.

오직 그대의 마음을 따라 걷게나.


그저 오늘만 힘써 걷게나.


오늘 걸어간 고생의 길, 미생 未生이

훗날, 추억하여 아름다울 미생 美生이 되리니...


- D. 우 -




사막은 아름답다


지금, 목숨을 걸만한 강렬한 꿈이 있나?

거칠고 붉은 모래사막과 바위 그리고 오아시스. 요르단 중남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막, 광야 지대는 몇 시간을 달려가도 똑같은 모습이다. 가뭄에 콩 나듯 나타나는 물이 있는 초지와 오아시스 주변으로 양치는 목동 외에는 인적도 드물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 이 광야와 사막을 신으로부터 허락받은 유목민들은 ‘떠남’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름의 꽃을 피웠다. 이 사막, 광야 그리고 오늘 지나는 이길 어디에선가...


결국 떠남은 숙명이다.


지금은 잘 포장된 도로인 요르단 남북을 가로지르는 ‘왕의 대로 King's highway’와 사막 길은 4천 년 전부터 카라반들이 유향과 향신료를 싫은 낙타와 함께 목숨을 걸고 다녔던 길이다. 성공을 꿈꾸었던 대상들은 일 년도 넘는 고단한 여정을 치밀하게 준비했고 위태로운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들 중 일부는 사막의 신기루같이 어딘가에서 부서져 한 줌의 모래가 되었다. 돌아오리라는 보장이 없는 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4천 년 동안 이 길을 멈추지 않고 걸었다.




낙타는 여전히 그 길을 걷고 있다


그들에겐 꿈이 있었다.

목숨조차 내걸만한 강렬한 꿈이 있었다.

문득, 그런 꿈과 열정이 있었던 그들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에게도 꿈이 있었다.


미친 듯이 꾸었던, 걸어보았던 또 살아내었던 꿈.


오늘 그 길을 돌아보니 비록 실수와 좌절은 있었지만 끝내 닿고 싶은 꿈이 있어 아름다웠다.


다시 그 모든 시간을 처음으로 돌린다면 그 험했던 길을 다시 걸을 수 있을까?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분명 쉬운 길은 아니었다. 다만 그때의 내가 또다시 꿈에 뜨겁다면, 마침내 영광의 항구에 도착한 나를 어렴풋이라도 기억할 수만 있다면 주저 없이 다시 이 길을 선택할 것이다.





어둠이 내려 은은한 달빛과 별들이 총총한 아름다운 사막의 밤. 고요히 별이 빛나는 차 창밖을 보고 있자니 문득 어린 왕자가 생각났다.


별들이 아름다운 건 보지지 않는 꽃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에요.

...


“사막은 아름다워요.”라며 어린 왕자가 덧붙였다.

그건 사실이었다. 나는 항상 사막을 동경했다.

모래 언덕 위에 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그럼에도 사방에서 고요의 원이 빛을 발한다.

어린 왕자가 말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에요.

...


“그들이 찾고 있는 건(우물은) 단 한 송이의 장미꽃에도,
어쩌면 단 한 방울의 물에도 있을 수 있는 건데.
하지만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어. 마음으로 봐야지….”


- 생택쥐 페리, ‘어린 왕자’ 중 -




마흔, 마침내 영광의 불티 하나를 남기며


마흔 -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는
열심히 살아야 할 때와 내려놓아야 할 때를 알게 된
나를 둘러싼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깨달은
그리고 또다시 가슴 뛰는 꿈을 발견하고 가슴앓이하게 된, 내 인생 첫 번째 정점.

하염없이 광야를 달리는 버스 미등 그 미세한 불빛이 비치는 유리창에 마흔의 내가 보였다. 지난 여정을 통해 나도 모르게 부쩍 성숙해진 내가 보였다. 조용한 미소가 지어졌다.


떠나지 않았으면, 그만큼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떠나지 않았다면, 이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머니 속 구겨진 메모지를 꺼내 창가로 새어든 달빛에 끄적였다.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작은 ‘불티’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가 찾고 있는 우물, 그 보물은
가치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모든 것’이다.

- D. 우 -



이 글을 통해 단 하나, 그 영광의 불티가 그 누군가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그 누군가의 생존 가이드가 되길 바라며...


그리고 가벼이 마침표를 찍었다.





오늘도 나는 사막을 걷고 있다.

또 어린아이 같이 함부로 낙서하듯 꿈을 꾼다.


이 꿈, 그 여정 어딘가에는

반드시 숨겨진 우물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정말,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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