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넷 여행 이야기 26 : 포카라
기도
여행자 거리 타멜 숙소에서 이른 새벽, 잠이 깼다. 추위에 뒤척이며(그래도 호텔인데) 빈둥거리다 책(김어준, ‘건투를 빈다’)을 읽었다. 내가 누구인지, 뭘 할 때 행복한지를 주체적으로 찾고 시도해보라는 김어준의 글을 읽다 순홍이 순호와 셋넷들이 떠올랐다. 딴지 총수는 생존을 위한 삶이 아니라 존재를 위한 삶을 독려한다. 이기적인 엄마와 탐욕적인 세상의 시선에 복무하지 말고, 즐거이 내 욕망의 주인이 되어 살라고 먼 나라 외딴 방에서 건투를 빌었다. 순홍이 순호와 셋넷 아이들의 한 번뿐인 삶을 위하여 건투를 빌었다. 부디 쫄지 말자. 무한정 자유로워지자. 눈물을 글썽이며 서로를 사랑하자.
해후
카트만두 공항에서 포카라 가는 비행기를 기다린다. 흰 옷과 하얀 모자를 쓴 허연 수염 할아버지가 깊은 강물 흐르듯 걸어 나온다. 가족들이 기쁨으로 몰려든다. 호들갑 떨며 포옹하지 않는다. 소란스럽지 않다. 그의 두 손에 허릴 낮추고 경건하게 입 맞춘다. 노인은 손을 들어 그들 머리를 햇볕처럼 어루만지며 축복한다. 아름다운 해후다.
하늘길
경비행기 흐린 창 너머 눈(雪)의 바다에 섬들이 있다. 하늘과 땅 사이 흰 산들이 섬처럼 아스라이 떠 있다. 하늘을 여행하는 섬들은 위대하다. 바닥까지 투명하게 비치는 바다에는 갖가지 모양을 띤 무지개 색 구름들이 해파리처럼 헤엄치며 히말라야 섬들을 에워싼다. 저 바다로 순식간에 빠져든다. 아, 포카라!
기도 2
호숫가 숙소 옥상에서 허락되지 않은 산 마차푸차레와 네팔 술을 주고받는다. 거리로 쫓겨나 다급한 선택들로 가슴 졸였던 지난 시간들로 안주는 눅눅해진다. 남조선의 평양 서울을 떠나야 행복할 수 있는 분단의 아이들과 서울에 갇혀버린 막막한 시간들이 허기진 술상 위로 어슬렁거린다. 치열한 전투가 잠시 멈추고 어색한 휴식을 취하는 병사들처럼 불안한 현재의 시간에 취한다.
순식간에 따뜻한 어둠이 찾아오고 별들 수런거리는 착한 소리 올려다보는 순간, 어! 별똥별 하나 내 가슴을 뚫고 길게 사라진다. 잠시 엄마의 삶을 떠올린다. 지금 엄마의 시간에 행운이 허락된다면 무엇일까? 당신의 죽음은 어찌할 수 없겠지만 이별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전한다. 참으로 기구했던 길들을 쉼 없이 헤쳐온 엄마의 마지막 삶이 평안하게 죽음과 동행하기를 빌고 또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