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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Nov 10. 2021

쉼과 재충전

셋넷 여행 이야기 25 : 박터푸르


슬픔(홍세화,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홍세화의 슬픔의 길 따라 셋넷 공화주의 다섯 원칙을 세워본다. 

첫째, 학생과 교사가 평등하게 소통하는 교육주권 선언

둘째, 기본적 자유의 존중

셋째, 사회적 문제(다문화, 평화)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

넷째, 교육과 종교의 분리

다섯째, 다름과 차이들의 차별 없는 그물망

(프랑스 역사학자 필리프 다리윌라의 프랑스 공화주의 5원칙을 컨닝하다.)


홍세화는 프랑스에서 망명자로 살며 살아남기 위해 택시를 운전했다. 그는 프랑스 사회라는 거울을 통해 공화국을 정의한다. 평등사상, 사회정의와 연대 정신. 남을 배려하는 개인주의에 기초하는 공공성에 주목한다. 힘의 논리 서열의 논리가 관철되고, 권위를 경배하는 무감각해진 모국 사회의 지식인과 대중에 대한 비애를 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카뮈의 ‘끝없는 패배’로 기뻐한다. 삶은 이기는 게 아니라 패배다. 끝없는 패배다. 좌절이나 절망을 거부하고 껴안는다. 홍세화는 내가 만난 가장 매력적인 택시 ‘기사’다. 정의로움과 명예를 목숨 걸고 수호하던 진정한 중세의 ‘기사’다.   

   

박터푸르

박터푸르는 네팔에 올 때마다 꼭 들러 하룻밤 머무는 곳이다. 작고 소박한 왕궁이지만 나를 사로잡는 시간의 마력 같은 게 느껴지곤 한다. 800년 전 기억과 현재의 삶이 욕심 없이 동거한다. 신앙과 삶이 옛과 오늘을 오가며 적대감 없이 지속되는 모습이 신기하다.  

숙소에서 한가로이 내려다보는 광장은 흡사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나와 닮은 아주머니가 눈에 확 띈다. 인도에서 본 듯한 아가씨가 요염하게 지나간다. 베트남 작은 마을에서 만났던 할머니가 힘겹게 바나나를 팔고 있다. 방콕 뒷골목에서 방값을 흥정하던 아저씨가 은퇴를 앞둔 오토바이의 경적을 요란하게 울린다.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한 종교의식이 골목 곳곳에서 쉼 없이 치러진다. 그들 복장 또한 신앙의 대상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서로를 향한 눈짓은 이상하리만치 편안하다. 자신과 다른 생각, 생김새, 신앙, 삶의 방식 때문에 긴장하거나 지치지 않는다. 억압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 


* 홍세화는 여전히 내게 명예로운 기사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홍세화가 만난 프랑스에 동의하지 않는다. 근대 역사의 온갖 악행을 일삼았던 영국 신사만큼이나 한 줌 참회하지 않는 프랑스의 정의로움과 공공성은 허상이다. 프랑스를 미화하는 우아한 지식인들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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