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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Jan 13. 2022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셋넷 여행 이야기 34 : 2017 다시 인도


타지마할(26)

문명의 길은 철로 만든 괴물들의 오만한 횡포로 뒤덮인 지 오래다. 인도의 길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뭇 생명들이 먼지와 소음들로 거침없이 부활한다. 무표정한 인디언들이 부유한 나라에서 외면당한 헐거운 차에 빼곡히 담겨 어디론가 바삐 떠난다. 신사와 예술의 도시에서 정육점으로 향하던 소들은 당당하고 거리낌이 없다. 타지마할로 향하는 흙먼지 길에서 만난 말들은 한없이 여위었다. 광활한 영토를 잃어버린 채 빈 수레를 끌고, 고단한 양 떼는 목장 없는 길에서 쉬지 못한다. 천년 왕국의 미친 사랑을 쌓아 올리던 타지마할 백성들은 여전히 길 위에서 길을 잃고 초라한 신들을 찾아 길을 떠돈다.     

 

Ashoka U Dr.Reddy’s Auditorium(27)

인도에 오기 전 여러 차례 의논하고 결정했음에도 아쇼카 대학에 도착하니, 행사 일정과 공연시간이 뒤죽박죽 어지럽다. 해명이나 설명 따위는 무시되고 떠밀리듯 무대에 오른다. 이질적인 문화들이 소통하기 위한 절차와 논의와 국제적 약속은 대충 무시되고 파티에 열중한다. 수천 년 이어온 인도의 힘은 밥의 기억이고 밥의 축복이려니 너그럽게 불편해하며 쓸쓸하게 배를 채운다. 저들이 초대하지 않았고 내가 들떠 궁리했을 뿐이니 억울할 일이 아니지만, 무례함이 평화의 다른 얼굴로 다가와 내 사랑 하릴없고 착잡하다.  


어쩌다 이리도 멀리 떠나 왔을까. 인도에는 카레가 없고 아쇼카 대학에는 인간에 대한 예우가 없구나. 아무렴 어때, 너무 빠르지 않게 걷고 또 걸어가야 하는 길인걸. 리허설 무대조차 생략되었지만 감동의 공연을 보여준 평화원정대 남북 젊은이들이 반짝인다. 저들이 빚어낸 평화의 몸짓이 혼탁한 델리의 어둠을 쫓고, 머나먼 분단의 밤하늘에 우정의 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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