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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Jan 19. 2022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셋넷 여행 이야기 35 : 2017 다시 인도 


델리를 떠나며(7월 28)

델리를 뒤로하고  물기 하나 없는 몸들로 덜컹덜컹 밤기차로 떠나면 

‘내일 아침은 내가 가장 먼 도시로 가는 아침'일 수 있을까. 

시인 한강의 슬픔에 젖어 이 밤 잘가온으로 간다.   

 

펄펄 내리는 눈의 슬픔에게 반짝이는 숲이 얘기했어요.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잘가온(29)

밤새 달려온 기차가 잘가온 역에 들어서자 울분을 토해내듯 비가 퍼붓는다. 펄펄 내리는 눈의 슬픔처럼 비에 젖은 풍경이 흐릿하다. 애타게 비를 기다리던 라지 아줌마가 비를 몰고 온 우릴 격하게 환영한다. 딱딱하고 지루한 어둠에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여행자들은 행운의 레인 맨이 되어 시바신에게 영광을 돌린다.  


넉넉한 몸과 한층 넉넉한 웃음으로 반기는 라지 아줌마는 환하게 핀 목련 같다. 그녀의 남편 평화학 박사 닥터 존의 미소는 온 세상 시름을 품고도 남는다. 그의 눈빛이 평화이고 그의 몸짓은 평화에 젖어있다. 거짓 평화를 설계하고 조작하고 치장하는데 열중하는 한반도의 영악스러운 지식인들과 기묘한 대조를 이룬다. 먼 길 돌아 평화의 깃발 날리며 찾아온 나는 무엇을 갈망하는가. 간사한 세상은 집요하게 곁에 머물고, 그리운 나라는 너무 멀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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